#117. 금단의 방정식 (2)
- 그룬덴 사니릭투스.
그는 신성왕국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영특하기로는 당대의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총명했던 소년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원리.
그 바람에 불어오는 꽃씨.
그 꽃씨에 담겨 있는 진화의 실체.
꽃씨를 모으는 곤충.
그 곤충의 관절이 움직이는 역학.
소년에게 세상은 매번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를 던져 주었으나 사니릭투스는 포기한 적이 없었습니다. 궁리하고 연구하다 보면 인형 속 톱니바퀴처럼 ‘원리’가 들여다보였으니까요.
“그룬덴 사니릭투스, 정녕 네가 이걸 만들었다고?”
아홉 살의 나이에 소년은 신전의 촛대에 자동으로 촛불을 붙이는 목각 인형을 만들어냈습니다.
인형은 두 다리 대신에 바퀴로 굴러가면서 손 대신 달린 점화 장치로 불씨가 꺼진 촛대를 찾아 되살리곤 했지요.
“사제 아저씨들이 촛불을 켤 때마다 무릎을 굽혀야 해서 관절염에 시달리시잖아요? 그래서 만들어 봤어요.”
보통의 어른들은 이렇게 말하는 사니릭투스에게 기특함과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일부 사제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신의 제단을 관리하는 노동 또한 숭고한 의식의 일부.
하지만 이 소년은 그것을 자동화시킨다는 것에 담긴 의미를 몰랐어요.
신을 향한 숭배의 의식을 기계에게 일임한다는 것은 교리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는 것을.
결국 왕국에서 파견 나온 고위 사제가 사니릭투스를 심문하기 이르렀습니다.
“기도를 드리지 않겠다는 것이냐?”
“네. 제게 일용할 양식을 주는 것은 신이 아니라 농부 아저씨의 노동력과 요리에 투자된 어머니의 시간 자원인걸요. 그분들에게 감사한다면 모를까 어째서 신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거죠?”
“아이야, 그 말은 무척 위험하구나.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불신자가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신의 분노는 지엄하다.”
“저는 신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인격을 가졌다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는걸요? 만약 신이 지금 제 눈앞에서 저를 혼쭐내준다면 제 인식을 수정할 용의는 있고요.”
사제 앞에서 무신론을 펼치는 사니릭투스.
그 소년의 총명함과 잠재력은 사제에게 큰 위기감을 주었습니다. 신의 은총에 기대지 않고 이성과 두뇌의 힘으로 온갖 것을 만들어내는 사니릭투스에게 작은 마을이 감화되어가는 현장을 직접 목격했으니까요.
그는 곧 왕국으로 돌아가 이단심문관을 파견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사니릭투스의 부모는 아들로 하여금 머나먼 여행을 떠나라고 내보낸 뒤였습니다.
“그룬덴, 이 마을은 너의 지적 욕구를 채우기에는 너무 작고 위험하구나. 최대한 멀리 달아나렴. 그리고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말거라.”
“아버지, 전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에요.”
“……하지만 진실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계속 너를 쫓을 거다. 조심하렴.”
위대한 연금술사 사니릭투스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줄에서 떨어지지 않는 오토마타가 펼치는 지상 최대의 곡예!”
처음으로 몸을 의탁한 곳은 서커스 유랑단이었습니다.
사니릭투스가 만들어낸 자동인형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고, 단장은 어디서 이런 복덩이가 왔냐며 그를 예뻐했습니다.
평범한 인간이 해낼 수 없는 아찔한 점프를 해야 했기에 인형들은 숱하게 관절이 부러지고 금이 갔습니다. 사니릭투스는 서커스의 장막 뒤에서 인형들을 고치고 또 수리했습니다.
소년의 망치 소리는 매일 밤 끊이지 않았고 단장이 금화를 세는 웃음소리도 멈추지 않았지요.
서커스단은 사니릭투스가 만들어준 공중마차로 대륙 각지를 유랑했습니다. 솜털이 보송보송했던 사니릭투스의 얼굴은 이제 면도칼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습니다. 물론 스스로 면도를 한 적은 없었습니다.
자신이 만들어낸 인형들이 대신해 주었으니까요.
“자네가 뭐든 조립해낼 수 있는 연금술사라며? 내가 카지노를 만들어보려고 하는데 말이야.”
세계 최초의 슬롯머신과 룰렛이 사니릭투스의 손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카지노는 거대한 사업이 되어 도시 전체를 큼지막한 도박장으로 집어삼키기도 했죠.
어느덧 위기를 감지하는 능력이 발달한 사니릭투스는 카지노의 이권을 쥐락펴락하려는 마피아들의 항쟁을 피해 사막을 건넜습니다.
그리고 사막에 뿔뿔이 흩어진 채 왕국의 이방인으로 살고 있던 모래 부족에게 전투용 오토마타 병사들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죽지 않는 병사들로 우리는 왕국과 싸울 걸세! 현자 사니릭투스여 영원하라!”
아무리 뛰어난 병사라 하더라도 사니릭투스의 오토마타들을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평생에 걸쳐 수련한 체술과 검술, 전장을 유린하는 전술들의 약점을 학습할 만큼 오토마타가 발전한 뒤였기 때문이죠.
전쟁의 업화에 계속 휘말렸다가는 연금술에 대한 탐구를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부족을 떠나겠다는 사니릭투스의 말에 족장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요. 다만 이렇게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자네는 어째서 금속으로만 인형을 만드는가? 피와 살, 뼈를 가진 인형을 만들 수 있다면 영혼을 가진 병사가 탄생할 수도 있을 터인데.”
“유기체는 한 번 손상되면 수복이 쉽지 않으니까요. 효율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저는 연금술이 극에 달하면 영혼 또한 연성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쇠붙이라 하더라도 영혼이 거하지 말라는 법은 아직 증명된 바 없습니다.”
사니릭투스 자신은 깨닫지 못했으나 연금술이 극한의 단계에 다다르면 복제인간 호문쿨루스와 자동인형 오토마타의 길로 양분되기 마련.
사니릭투스가 선택한 길은 후자였습니다.
“레나스, 너는 나와 함께 가자.”
주황색 단발머리를 한 역사상 가장 완벽한 오토마타.
자신의 이름 사니릭투스(Sanericktus)를 아나그램으로 바꾼 이름을 가진 소녀 레나스(Renas)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주인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레나스를 처음 만들었을 때 그 외양은 사니릭투스의 또래나 다름없었으나, 녹슬지 않는 오토마타와 달리 그 주인인 연금술사는 점차 세월의 풍파를 맞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친구로 보이던 둘은 언젠가부터 남매, 곧 아버지와 딸, 나아가 할아버지와 손녀 사이처럼 보였습니다.
그리하여 사니릭투스가 마지막으로 정착한 곳은 척박한 토양을 지닌 왕국의 외곽지대였습니다.
가장 훌륭한 동력원인 마정석이 대규모로 묻혀 있는 산속의 마을이었습니다.
연금술사의 고향 사니릭타운의 탄생이었습니다.
신을 믿지 않고 과학을 신봉하는 불신자, 연금술을 배우기 위해 몰려든 학자, 사니릭투스를 신봉하는 추종자들이 모두 그곳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신성왕국은 이제 거물이 된 사니릭투스를 제거하기 위해 정예 병사들을 그 마을로 보내었으나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일당백의 전투 오토마타 부대가 마을을 수호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신전의 촛대에 불을 밝히는 인형을 만들었던 아홉 살 소년.
그는 이제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의 제왕이 되었습니다.
*
- 세상에 만들지 못할 것이 없었던 사니릭투스.
사니릭투스는 마정석을 통해 철도를 만들고, 비행선을 날리고, 마신주를 세워 마을 구석구석까지 동력을 공급했습니다.
단신의 힘으로 구축한 도시국가 안에서 시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끝내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인간의 영혼.
통찰력이 극에 달한 사니릭투스는 영혼의 존재를 포착해내는 데 성공하였으나 그 구성물질을 분석하여 새로운 영혼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연거푸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성자로 추앙받았던 그의 얼굴은 매번 수척해져만 갔습니다.
언제나 쾌활한 웃음소리가 넘쳤던 그의 연구실에서는 어느덧 적막을 가르는 기침소리와 간헐적인 울부짖음만이 들려왔다고 합니다.
오토마타 레나스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주인님, 영혼을 만들어내는 것을 포기하고 그저 행복을 찾으시면 안 되는 건가요?”
“허허. 네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느냐?”
“아니오. 그러나 저는 주인님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 그리고 주인님은 인간이십니다. 제가 인간을 관찰한 결과 그들은 행복이라는 걸 숙원으로 추구하며 죽을 때까지 살아간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주인님께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 좌절하시는 모습이 제게 과부하를 주고 있습니다.”
“영혼을 만들어내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행복을 찾으라는 거냐.”
“그렇습니다, 주인님.”
사니릭투스는 자신의 모든 연금술의 정수로 만들어진 소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습니다.
“안 된다.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영혼을 만들어내어…… 너에게 주는 것이다.”
“만약 제가 영혼을 갖지 못하면 주인님은 끝내 행복해지실 수 없는 건가요?”
“그렇다. 이 우주는 나에게 인간을 뛰어넘는 지식과 통찰력을 주었음에도…… 자신에게 도전하지는 못하도록 하는구나. 뛰는 놈이 나는 놈을 이기려면 어찌해야 하는 것이냐.”
도달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이 사니릭투스의 남은 수명을 탐욕스럽게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그 오래된 신전에서 꺼져가던 불씨처럼요.
연금술사는 이제 병상에 누워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메이드인 레나스에게 부탁하는 것도 급격히 줄더니…… 어느 날부터는 그저 노래를 들려달라고만 하였습니다.
자신이 불러주는 노래의 가사를 사니릭투스가 잊어버리는 일도 종종 일어났습니다.
망각을 모르는 오토마타로서는 그것이 의아했습니다. 인간의 뇌세포가 그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뿐, 거기에서 어떤 감정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나는 주인님의 숙원을 위해 만들어졌어. 그분이 숙원을 이루는 것이 곧 나의 사명.’
오토마타 레나스는 매일 궁리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인님이 바라는 미래로 데려다줄 수 있을까.
자동인형에게는 사니릭투스만큼의 지식이 없었기에 그녀는 마정석이 추출되고 있는 도시의 최하층까지 내려가 보았습니다. 그곳엔 마정석으로 문명을 유지했던 고대 유적지가 있었거든요.
유사 이래 모든 언어의 자료가 입력돼 있던 레나스는 암호를 풀어 유적지의 깊숙한 미궁의 문을 열어젖혔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군. 생명이 없는 자가 악마인 나를 불러내다니.”
레나스 앞에 고대종 악마가 소환되었고 그 악마에게 오토마타는 질문했습니다.
“영혼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나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0을 아무리 곱하더라도 0이 될 뿐인 것과 같은 이치.”
“주인님의 말대로 결국 불가능한 겁니까.”
“아카식 레코드라는 것을 아느냐. 우주의 탄생 이전과 이후의 역사마저 모두 기록되어 있는 도서관. 너의 주인을 그곳으로 데려가 주면 ‘영혼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0을 곱해 1을 탄생시키는 금단의 방정식이 어딘가에 있다면 그 장소는 아카식 레코드뿐이다.”
“어떻게 하면 주인님을 그 도서관에 데려다줄 수 있나요?”
“푸르가토리움이라는 차원감옥이 있다. 그곳에 너의 주인을 데려가려면 ‘등가교환’의 법칙 아래 제물이 필요하지.”
악마는 검은 꼬리를 들어 미궁의 천장을 가리켰습니다. 그러곤 사악하게 속삭였지요.
“저 도시의 모든 불빛을 꺼트리고 그 안의 생명을 전부 죽이도록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