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116화 (116/300)

#116. 금단의 방정식 (1)

“또 만나는군요, 관객님들.”

오페라 <위대한 연금술사의 스완송>의 주연인 프리마돈나. 아름다운 노래로 우리 모두의 넋을 빼놓게 만들었던 오토마타 소녀 레나스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네가 교도관의 전령이야?”

“그렇습니다. 계속 복도에 서 있을 경우엔 호텔 청소부의 위생 증진 활동에 방해요소가 됩니다.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레나스의 정중한 물음에 나는 돌연 장난기가 발동했다.

“만약 내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저는 계속 이 문 앞에서 관객님의 초대를 기다려야 하겠지요.”

“종일 서 있으라고 해도?”

“네.”

레나스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꾸를 하는데 조금의 망설임도, 생각하는 기색도 없다. 생글생글 웃거나 깜짝 놀라기도 하는 다른 오토마타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형아, 레나스 누나 왜 괴롭히는 거야?”

등 뒤에서 캉이의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레나스의 등장에 가장 반가워했던 녀석답게 왜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느냐는 거다.

하지만 한 가지 더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었다.

“미안한데, 레나스. 만약 한 달이 넘도록 내가 안으로 들여보내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할래? 너는 오페라 무대에 올라가야 하잖아.”

“전령의 임무보다 제 본연의 소명이 더 우선시되기에 저는 오페라 극장으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공연을 마치는 대로 전령의 임무를 위해서 관객님께로 되돌아올 테죠.”

입력된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오토마타. 그 명령들이 서로 상충될 경우엔 우선순위를 매겨서 상위의 명령에 따른다는 뜻이다.

정말로 미래형 안드로이드 같은 느낌이네.

“계속 서 있게 해서 미안해. 들어와.”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레나스는 스위트 룸 안으로 걸어들어와 응접실의 테이블 앞에 서 있었다. 캉이가 반가움에 눈앞에서 아홉 개의 꼬리를 연신 흔들어대도 조금의 미동도 없이.

“그러면 전령의 임무를 시작해도 될까요?”

우리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레나스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곧 레나스의 초록색 눈이 푸른색으로 돌변하더니 나직하고 걸걸한 노인의 목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반갑소이다, 등반죄수 슈바인 스트링거와 그 동료들이여. 나는 이 층의 교도관을 맡고 있는 ‘침묵으로 통곡하는 검’이올시다.”

“교도관과 이런 식으로 대면하는 건 또 처음이네. 층장의 열쇠가 내 손에 있고, 포탈도 상시 열려 있으니까 당신은 화신체를 만들 수 있는 거 아니야?”

“아쉽게도 그렇지 못하오. 본인은 모종의 사연으로 다른 교도관분들과 달리 화신체를 만들어내지 못하게 되었거든.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이 아이의 몸을 빌리게 되었소이다. 양해를 부탁하오.”

3층의 교도관인 뱀 녀석의 막돼먹은 말버릇과는 심히 다른 느낌이다.

“등반죄수여, 그대는 어찌해서 다음 층으로 넘어가지 않고 이 층에 머무르고 있소이까?”

“원래는 그러려고 했지. 하지만 교도관장 녀석이 만철도시를 그냥 지나치지 말고 둘러보길 권하더라고.”

“관장님께서 그대를 특별 관리하고 있다는 소문은 사실이었구려. 심오한 그분의 뜻을 비록 다 알 수 없으나 그 안배가 나에게도 닿아 이런 만남을 주선하게 되어 감개가 무량하오.”

아담한 체구를 가진 오토마타 소녀의 입에서 노회한 대현자 같은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처음엔 어색했으나 곧 적응할 수 있었다.

“나는 제르비어스라고 한다. 당신에게 뭐 하나 물어보고 싶다.”

한때 1층장이었던 폭렬마왕이 레나스, 정확히는 그녀의 몸을 빌린 교도관에게 물었다.

“나는 이 만철도시에서 감옥에게 빼앗겼던 채찍과 재회했다. 이름은 오메가 위프. 하지만 그 무기가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는 오토마타가 있었어. 아무리 원래 소유주가 나라고 해도 돌려줄 생각이 없어 보였지. 다시 되찾을 방법이 있겠나?”

간절한 질문에 오토마타의 고개가 마왕을 향해 돌아갔다.

“등반죄수 제르비어스 폰타인. 그대의 수갑을 잠깐 보여줄 수 있겠소이까?”

“자, 여기.”

[4층의 교도관 ‘침묵으로 통곡하는 검’이 죄수 제르비어스 폰타인의 신상을 조회합니다.]

마왕의 수갑을 훑던 오토마타의 손길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확실하군요. 그대는 오메가 위프라는 무기의 정당한 소유주가 맞습니다.”

그러자 제르비어스는 반색했다. 하지만 이내 흘러나오는 말은 희망적이지 않았다.

“하나 이 만철도시 사니릭타운은 연금술사가 만들어낸 계획도시. 이 도시는 연금술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등가교환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소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있으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곤란하지.”

무기를 회수하기 위해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라.

나는 그 대가가 무엇인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오토마타들의 금속 피부 안에는 수천 개의 부품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소이다.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톱니바퀴를 일컬어 ‘숙원’이라 부른다오. 그대가 그 오토마타의 숙원을 대신 이루어준다면 오토마타는 소멸하여 그 무기는 본래의 소유자에게 되돌아갈 것이오.”

제르비어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녀석은 오메가 위프를 되찾기 전엔 다음 층으로 올라가지 않을 기세였다.

마왕의 채찍을 무기로 건네받은 오토마타 사이브리즈.

검궁 기사단의 용맹한 기사인 그녀의 숙원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나 우리는 그것을 이루어줘야만 한다.

상념에 빠진 제르비어스 대신 내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게 이 층의 시련인가 보군. 당신이 설계한 시련 말이야.”

오토마타의 어깨가 들썩였다.

“오해하고 있구려, 등반죄수여. 나는 이 층에 시련 같은 것을 만들어두지 않았소이다. 그대가 만철도시에 올라오자마자 층장의 열쇠를 건네받은 걸 보면 모르겠소? 적어도 이 층에 한해서 그대는 시련의 도전자가 아니오.”

교도관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거꾸로 시련의 대상이 된다면 모를까.”

내가 누군가의 시련이 된다?

화룡도의 1층장 제르비어스나 대수림의 3층장 구미호 캉이처럼 다른 죄수의 도전을 받게 되는 입장이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이 층에 죄수라곤 우리뿐이잖아.”

“지금 당장은 그렇소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란 법은 없겠지.”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하는군.”

그때, 뭔가를 떠올렸는지 아스티나가 질문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어떤 무기의 정당한 주인이 아니라면, 그 무기를 다음 층으로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은 있어?”

“등가교환의 법칙을 무시하고 무기를 습득하겠다? 딱 한 가지 경우라면 가능하겠지.”

오토마타의 입은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무시한 답변을 꺼냈다.

“교도관을 죽이면 되오.”

*

충격적인 말을 끝으로 교도관은 레나스에게 다시 육체를 돌려주었다.

레나스의 눈빛이 다시 초록빛으로 변했으며 풍부했던 표정 또한 마네킹의 그것으로 되돌아왔다.

“저는 전령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보이는군요. 그럼 이만 돌아가는 것을 허해 주십시오.”

“교도관과 우리가 했던 대화를 너도 듣고 있었어?”

“아니오. 23분간 저의 의식은 비활성 모드로 접어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관객님과 교도관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제 데이터에 없습니다.”

“그래. 여기까지 와줘서 고마워. 또 볼 수 있기를 바라.”

“제 예측 기능으로는 저희가 다시 마주칠 확률은 한없이 낮습니다. 그럼 편안한 시간 되십시오.”

절도 있는 자세로 인사를 한 다음 오토마타는 총총걸음으로 퇴장했다.

아니, 그러려 했다.

“레나스. 하나만 물어도 될까.”

“네, 말씀하십시오.”

“혹시 너에게도 무기가 있어?”

오토마타 소녀는 생각하는 기미도 없이 즉각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저는 무기를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레나스는 스위트 룸을 떠났다.

제르비어스는 ‘오메가 위프 기다려라. 곧 되찾아주마’라고 중얼거렸고, 아스티나는 무언가 생각에 골몰해 있었으며, 캉이는 레나스의 목소리가 주는 여운에 아직도 빠져있었다.

반면에 나는 단탈리온을 펴들고 있었다.

교도관 ‘침묵으로 통곡하는 검’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 만철도시의 유래에 대해 알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 용사님이 계신 4층이 어째서 다른 층과 이토록 다르게 만들어졌는지가 궁금하신 거군요?

“응. 일단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살아 있는 죄수가 한 명도 없다는 점. 교도관이 화신체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제약에 걸려 있다는 점. 오토마타들이 이 도시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푸르가토리움이 압수한 무기들이 그 오토마타들에게 쥐어져 있다는 점.”

이 의문들은 처음부터 계속 내 뇌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다만 다음 층으로 넘어갈 수 있는 포탈이 이미 만들어져 있다는 상황 때문에 그동안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오메가 위프를 사이브리즈에서 건네받아야 하는 숙제가 생긴 이상 상황은 달라졌다.

이 만철도시의 기이한 태생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정보가 있어야 공략법을 설계할 때 치명적인 실수를 피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생각에 비밀은 이 층의 교도관이 쥐고 있었다.

“처음 이 층에 떨어졌을 때 암스트롱이라는 오토마타가 우릴 안내해줬지. 녀석은 분명 이 도시 전체가 위대한 연금술사 사니릭투스가 만들어낸 도시라고 설명했어.”

사니릭투스가 만들어낸 만철도시.

그 연금술사를 기리는 오페라의 주인공 레나스.

그런 레나스를 자신의 전령으로 선택한 교도관.

모든 파편이 단 하나의 사실을 증거해 주고 있다.

- 네, 맞습니다. 연금술사 사니릭투스. 그가 바로 4층의 교도관 ‘침묵으로 통곡하는 검’의 진명(眞名)입니다.

[단탈리온이 당신의 MP를 300만큼 가져갑니다.]

“무려 교도관의 진짜 이름을 확인시켜주는 데 얼마 안 가져가네?”

- 4층 교도관은 아홉 교도관을 통틀어 가장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용사님. 보통 이 정도로 격이 높은 존재들이 자신의 진짜 이름을 밝히지 않는 이유는 윤회의 고리에서 낮은 단계에 있었던 시절을 들키기 않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사니릭투스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만철도시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차원감옥 푸르가토리움.

그 감옥의 아홉 층을 지배하고 관리하는 교도관.

나는 교도관들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는 부분이 극도로 적었다.

애초에 일개 죄수가 한가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도 아니었거니와 2, 3층의 교도관들과는 크나큰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어쩌면 이번 층에서 교도관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는 기회가 생길 수도 있겠어.’

나는 단탈리온에게 요청했다.

“이 도시를 만들어 낸 연금술사 사니릭투스가 어떻게 교도관이 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들려줘.”

[단탈리온이 당신의 MP를 18,000만큼 가져가려다 실패합니다.]

지금 내 MP의 양은 무려 14,000이 넘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니릭투스의 정보는 값어치가 굉장히 높았다.

“쳇. 아직은 넘볼 수 없는 부분인가.”

나는 단탈리온의 책장을 덮으려다 멈칫했다.

이번 층으로 넘어오는 층간구역에서 진화한 파천황의 권능이 생각난 것이다.

“아스티나, 제르비어스. 나한테 마력을 좀 빌려줄래?”

“어떻게 하면 되는데?”

“그냥 마음속으로 동의만 해주면 돼.”

잠시 후 두 동료들의 몸에서 마나 스트림이 흘러나와 내 주변에 맴도는 것이 느껴졌다.

차오르는 고양감과 충만한 느낌.

[용사가 일시적으로 동료의 마력과 연결됩니다.]

[MP: 13,899/14,199 + 5,000]

“어때, 단탈리온? 이러면 충분히 너를 배불리 먹일 수 있겠지?”

- 훌륭하십니다, 용사님. 그렇다면 연금술사 사니릭투스. 그 위대했던 현자가 어떻게 참혹한 죄를 저지르게 되었는지 이야기해 드리죠.

마도서 단탈리온이 한 사내의 야망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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