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114화 (114/300)

#114. 백조와 까마귀 (2)

“너 이 새끼, 오르콰이움과 무슨 관계냐?”

“응? 오르…… 뭐?”

마피아 무이크루는 오르콰이움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너희들은 아냐?”

“모릅니다, 카포레지메.”

“새로 생긴 술집 이름일까요?”

녀석의 부하들 또한 내가 꺼낸 이름을 생소해했다.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푸르가토리움의 교도관들은 붙잡아온 죄수들에게서 모두 ‘무기’를 압수해 간다.

때문에 화룡도의 죄수들은 모두 빈손으로 채석장의 곡괭이로 싸웠으며,

삼월초원의 초마인들 또한 나무를 깎아서 조악하게 만든 목검과 지팡이로 전쟁을 펼쳐야 했다.

그런데 이 마피아들은 저 대단한 무기들을 다 어디에서 손에 넣은 걸까.

“무이크루라고 했지? 일단 너는 나한테 좀 처맞자.”

“호오, 죽기 전에 발악해보겠다는 건가.”

“어. 네놈이 들고 있는 무기의 원래 주인한테…… 내가 좀 쌓인 게 많아서.”

콰아아앙!

나는 무영보로 녀석에게 돌진한 다음 천마수라검의 초식을 시전했다.

채애애앵!

무이크루는 낫을 휘둘러 내 검을 막아냈으나 그 충격파로 뒤로 날아갔다.

전력을 실어서 후려친 공격.

녀석은 건물 벽을 통째로 부수며 처박혔다.

“……냄새 나는 자식이 감히.”

카포레지메는 블랙슈트에 묻은 먼지를 털며 건물에 난 구멍에서 걸어 나왔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버럭 소리쳤다.

“뭐 하고 있냐. 죽여버려!”

마피아들이 서슬 퍼런 기세로 달려들었다.

캉이가 다시 구미호로 변신하자마자 앞발을 휘둘러 한 마피아를 날려 보냈다.

아스티나는 그래비티 잽을 크레이모아처럼 터트렸고, 제르비어스는 날아오는 도끼를 업화의 쌍장으로 막아 세웠다.

마피아들은 권총을 쏘던 오토마타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을 보유하고 있었다.

손에 든 무기에 최적화된 전투법을 익히고 있었던 데다, 공격을 허용하는 내구도 또한 대수림의 야수들 못지않게 단단했다.

당장 내게 낫을 휘둘러오는 무이크루 또한 독특한 마법을 사용했다.

끼아아아아악!

내 검과 낫이 부딪힐 때마다 오르콰이움의 포효 언령과 똑같은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며, 녀석을 감싸고 있는 어둠이 농밀해졌다.

그것이 내 귀를 파고들 때마다 미약하게 신체의 리듬이 흐트러지고 있다.

레이스의 정신계열 마법이 분명하다.

다행히 무극파천공의 반탄지기를 귀에 집중시키니 언령을 들으면서도 견딜 만했다.

“제법 싸울 줄 아는 죄수로구나.”

“너 방금 사망플래그 뱉은 거 알아? 그렇게 말하는 놈은 꼭 상대의 손에 박살이 나더라고.”

“이상한 일이야. 나는 네놈을 오늘 처음 봤는데 왜 이렇게 그 면상을 짓이겨주고 싶은 걸까.”

“이쪽이 할 말이다. 머리통을 잘라내 준 다음 그 찰랑이는 머리카락을 전부 한올 한올 뽑아내 주마.”

깡! 까앙!

무이크루가 휘두르는 낫의 궤적은 변화무쌍했다. 공격이 적중하기 직전에 날이 줄어들었다가 늘어나는 등 상대의 감각을 기만하는 무기였다.

하지만 14,000이 넘는 MP를 보유하게 된 내가 당해내지 못할 적은 아니었다.

이제 큰 기술을 막 퍼부을 수 있는 몸이라 이거야.

[용사전용기 무극참월공]

[제삼식 살신참]

한 차례 낫을 거칠게 튕겨낸 뒤 참격을 날리자 무이크루의 왼팔이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오토마타답게 녀석은 당황하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바닥에 떨어진 팔에서 케이블이 주욱 늘어나더니 다시 어깨에 달라붙었다.

“아항, 그런 식으로 회복된다 이거지?”

이놈들은 연금술로 움직이는 자동인형들.

완전히 작동을 중지시키려면 ‘핵’이 되는 마정석을 깨트려야 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이곳저곳 전부 잘라보면 되지.’

나는 조금도 실망하지 않은 채 다시 진각을 밟았다.

그런데 무이크루의 부하 중 한 녀석이 거대한 전투도끼를 휘둘러 내 앞을 막아섰다.

까아아앙!

블랙슈트가 터질 듯이 우람한 덩치를 가진 오토마타였다. 앙 다물어진 턱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 같은 고집이 느껴졌다.

“넌 또 뭐야.”

“나는 엘룩크로. 마피아의 병사인 솔다토(Soldato)다. 카포레지메를 해치게 둘 순 없다.”

엘룩크로가 나와 무기를 맞댄 상황에서 스킬을 사용하는 것이 느껴졌다.

철커덕.

갑자기 녀석의 두꺼운 허벅지가 분리되더니 총 네 개의 다리로 변신했다.

마치 인간의 상반신과 말의 하반신을 갖춘 전설 속의 반인반수처럼.

‘어? 이거 설마?’

설마가 맞았다.

엘룩크로가 앞발을 번쩍 들어 올린 후 내게 무서운 속도로 쇄도해 들어왔다.

바람을 농락하며 질주하는 수인병단의 액티브 스킬.

나는 도끼의 날에 잘려나가는 머리카락을 보며 황망해졌다.

“……천년명마의 질주.”

그리운 7번 방의 죄수인 올쿠레 켄타. 저 녀석이 든 전투도끼는 하반신을 잃은 채 좌절해 있던 그 노병의 무기였다.

솔다토 엘룩크로의 도끼를 받아낼 때마다 나는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야이씨. 너는 좀 딴 데로 가면 안 되냐?”

“겁을 먹은 건가. 마피아는 적군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집중하면 충분히 때려잡을 수 있는 상대였다.

하지만 인자하게 웃던 올쿠레 어르신의 얼굴이 녀석에게 겹쳐 보이면서 심경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때, 다시 왼팔을 움직일 수 있게 된 무이크루가 낫을 휘두르며 협공해 들어왔다.

주변을 살펴보니 세 동료들 역시 마피아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개별 전투력은 우리가 앞서고 있으나 숫자에서 밀리고 있었다.

나는 몸을 빼내면서 ‘아수라대멸겁’을 사용할까 고민했다.

천마 류운학의 필살기인 그 스킬이라면 이 마피아들에게 전방위 타격을 줄 수 있다.

‘시전하기 직전에 단체 텔레파시로 동료들한테 신호를 주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한 후 내공을 끌어올리려던 순간.

삐이이이이이익!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더니 맹공을 펼치던 마피아들의 공세가 우뚝 멈추었다.

무이크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젠장. 너무 요란하게 싸웠나.”

하늘 위에 으리으리한 크기를 자랑하는 비행선이 떠 있었다.

그곳에서 하얀색 제복을 입은 오토마타들이 내려왔다.

쾅! 콰아앙!

마피아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제복 오토마타들의 숫자가 그들의 두 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아리따운 용모를 지닌 한 여성 오토마타가 허리춤에서 검을 뽑으며 선포했다.

“도시의 치안을 어지럽히는 무리들이여. 검궁기사단 앞에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그러자 무이크루가 신랄하게 응수했다.

“미쳤다고 너희 하얀 땅개들의 말을 듣겠냐. 무기를 잃은 오토마타가 어떤 처지가 되는지 우리가 제일 잘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문답무용! 기사단장 에니찰리드의 검을 받도록.”

쐐애애애액!

에니찰리드의 검에서 십자 모양의 풍참이 날아와 마피아들을 휩쓸었다. 무이크루 앞을 막아선 솔다토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하얀 제복의 오토마타를 쳐다보았다.

“방금 그 스킬…….”

두 개의 참격을 교차시켜 파괴력을 증가시키는 풍참.

내가 저것을 몰라보면 돌대가리 소리를 들어도 할 말 없다.

천마신교 귀혼오마 중 한 명인 딜라스틴 쿠레미의 ‘귀영풍참’이었다.

“제기랄! 달아나라.”

무이크루가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마피아들에게 소리쳤다. 퇴각 명령을 받은 솔다토들이 일제히 여러 방향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사단장 에니찰리드가 누군가에게 외쳤다.

“사이브리즈!”

붉은 머리카락의 기사 한 명이 채찍을 휘둘러 벽을 타고 달아나던 마피아 한 녀석을 잡아챘다. 더할 나위 없는 솜씨로 채찍을 잡아당기니 허리째로 두 동강 난 마피아가 힘없이 추락했다.

“달아나는 불온분자들을 추적하라! 위대한 사니릭투스의 이름을 걸고 한 명도 놓쳐서는 안 된다.”

에니찰리드의 명령에 따라 제복의 기사들이 마피아들을 쫓아 몸을 날렸다.

우아한 동작으로 검을 꽂아 넣은 기사단장이 나에게로 걸어왔다.

“소란에 휘말리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층장 님.”

“어, 어어…… 괜찮아요.”

“저는 만철도시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검궁기사단장 에니찰리드입니다. 불편하시겠지만 사정 청취를 위해 잠시 동행해 주시겠습니까?”

우아한 몸가짐과 뛰어난 무력. 그리고 적을 섬멸하겠다는 단호한 투쟁심.

에니찰리드의 일거수일투족은 명백하게 삼월초원의 엘프 검사 딜라스틴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잠깐만. 이 기사단장의 이름이…….’

에니찰리드(Enitsalyd).

거꾸로 하면 딜라스틴(Dylastine).

‘그렇구나.’

아나그램이다. 특정한 대상의 이름 철자를 재배열해 순서를 바꾸거나 배치를 달리해서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내는 방식.

그런 방식이라면 마피아 쪽 녀석들의 이름도 같은 방식으로 복원해볼 수 있다.

무이크루(Muiqroo)를 거꾸로 하면 오르콰이움.

엘룩크로(Eruklo)를 거꾸로 하면 올쿠레.

무기의 원래 소지자의 이름을 아나그램으로 변환한 것이 틀림없다.

나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에니찰리드에게 말을 걸었다.

“기사단장님, 뭐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네, 말씀하십시오. 어차피 단원들이 작전을 마치고 돌아오기까진 시간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무기…… 그리고 저 마피아들이 휘두르는 무기들, 전부 어디에서 나오는 거죠?”

그러자 에니찰리드는 자신의 등 뒤를 가리켰다.

그곳엔 도시 어느 곳에서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우뚝 솟은 초고층 빌딩이 불빛을 밝히고 있었다.

“저곳은 검궁(Sword Palace)이라 합니다.”

빌딩의 8분의 1 지점인 최상단의 폭이 다른 층보다 좌우로 넓게 퍼져있다.

마치 한 자루의 검을 거꾸로 땅에 꽂아넣은 듯한 모양새다.

그래서 검궁인가.

“검궁은 모든 오토마타들의 고향. 저곳에서 생산되는 오토마타들 중에서 자격을 갖고 만들어지는 소수의 오토마타들만이 탄생과 동시에 무기를 지급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저 마피아들도?”

“네. 무기와 함께 태어나는 오토마타들 중에서 절반은 저희 기사단으로 전향하며, 나머지 절반이 마피아에게 거둬들여지지요.”

성향에 따라 나뉘어지는 건가.

“기사단과 마피아의 사이가 좋아 보이진 않네요?”

“그럴 수밖에요. 마피아들은 도시에 총기를 밀반입시켜 시민들로 하여금 질서를 어지럽히게 만듭니다. 검궁기사단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문제지요.”

나는 인형을 훔치려 했던 오토마타의 잔해를 가리켰다.

“저 도둑…… 아니, 오토마타는 자신이 무기를 잃어버렸다면서 우릴 습격했습니다. 무척 절박해 보였어요. 당해낼 수 없는 상대에게 무모한 싸움을 걸 정도로.”

에니찰리드는 씁쓸하게 말했다.

“저 역시 오토마타로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무기는 저희의 동반자.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수족과도 같은 무기가 사라지는 현상이 일어나곤 합니다.”

무기가…… 사라진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어요. 기사단과 마피아를 가리지 않고 그 일은 벌어집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죠?”

“무기를 잃은 오토마타는 내구력이 급감하며 자동 수복 기능도 잃게 됩니다. 기사단은 그럴 경우에 제복을 반납하고 평범한 시민으로 생활하게 되지만…….”

“마피아였던 오토마타는 아닌 거군요. 지급받은 총기로 저 같은 죄수들을 협박해 무기를 갈취해서 힘을 되찾으려고.”

“그렇습니다. 전부 욕심을 내려놓지 못해 벌어지는 일이지요.”

그때, 마피아들을 추적하던 기사들이 돌아왔다.

몇몇 기사들은 작동이 멈춘 마피아의 목을 들고 귀환했으나 그 숫자는 많지 않았다.

채찍을 휘둘렀던 기사 사이브리즈가 상사에게 경례를 올렸다.

“마피아 단원 셋을 즉결처분했으나 그사이 다른 단원들은 경계선에서 놓쳐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야. 수고했다. 마피아들의 아지트에 접근하는 건 엄격히 금지돼 있어. 규율을 어기지 않은 건 잘한 거야.”

그때, 내 등 뒤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르비어스가 한 발짝 걸어 나왔다.

녀석의 얼굴은 당혹감과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왜 그래, 제르비어스?”

마왕은 내 말이 들리지 않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에니찰리드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무슨 일이시죠, 층장의 동료분?”

제르비어스는 기사단장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상큼하게 무시한 다음,

군기가 바짝 든 채 서 있는 여성형 오토마타 사이브리즈 앞에 섰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를 격하게 움켜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너를 다시 내 눈앞에 두는 날 말이다. 다른 녀석은 모두 속여도 마왕의 눈을 속일 순 없지.”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너의 아름다운 육체, 그건 내 것이다.”

나직한 침묵이 공터를 가득 채웠다.

그 누구도 이 싸늘한 분위기에 아무런 말을 보태지 못했고,

짜아아악!

사이브리즈가 있는 힘껏 팔을 휘둘러 제르비어스의 뺨을 올려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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