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백조와 까마귀 (1)
“용서할 수 없어. 내가 어떻게 타 낸 건데.”
분기탱천한 목소리와 함께 아스티나의 은발 머리카락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두 눈동자는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잠깐만. 그런데 저거 내가 뽑은 거 아니었던가.
스파아아아앗!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구미호가 본연의 모습을 해방시켰다. 늠름한 주둥이에서 나온 목소리가 재촉했다.
“내 등에 올라타!”
우리는 군말 없이 캉이의 등에 매달렸다.
뒷발을 강하게 박차 뛰어오른 구미호가 마신주를 즈려밟았다.
구미호의 육중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마신주가 우지끈 무너지는 것과 동시에 우리는 오페라 하우스의 지붕 위에 올라섰다.
“누나! 찾았어? 내 몸을 툭 쳐서 알려줘.”
캉이가 높은 곳으로 올라와준 덕분에 아스티나는 손쉽게 도주하는 공중마차의 행방을 포착해냈다.
“저쪽이야!”
바로 다음 순간.
우리는 어린 구미호가 작심하고 달릴 때 얼마나 역동적인지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전신 감각을 이용하는 바이크 레이싱 VR 게임도 결코 지금처럼 박력 넘치진 못했다.
만철도시의 건물들이 내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테라스에서 화분에 물을 주던 오토마타가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거대한 환수에 놀라 물뿌리개를 놓쳤고, 그것은 지나가던 한 오토마타 행인의 양복을 흠뻑 적시고 말았다.
“으악! 뭐야!”
“이봐요. 조심하라고요!”
도둑이 타고 있는 공중마차는 도로를 역주행하며 막대한 소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신호등의 빨간 불도 제멋대로 무시하면서 행인들을 질겁하게 만들었다.
백색 털의 구미호 캉이가 곧 공중마차를 지근거리에 둘 정도로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캉이의 주둥이에 붉은 광선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는 황급히 귓속말을 걸었다.
- 캉이야, 멈춰. 여우트림을 쏘면 안 돼.
- 왜? 부숴서 잡아야 되는 거 아냐?
구미호 상태의 캉이는 평소보다 많이 과격했다. 사냥감을 추격한다는 야수로서의 본능이 강해지기 때문인 듯하다.
붙잡고 있던 캉이의 털을 놓고 두 다리로 일어섰다.
내가 걱정하는 건 공중마차나 도둑의 안위가 아니었다. 아스티나의 고양이 인형이 여우트림에 휩쓸려서 소멸되는 것이었다.
“내게 맡겨.”
천마어기행공으로 날아오른 후, 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하고 있는 공중마차를 주시했다.
[용사전용기 무극참월공]
[제이식 무영보]
소닉 붐을 일으키며 쏘아져 나간 내 육체는 그대로 속력을 줄이지 않은 채 공중마차의 옆면을 들이박았다.
콰아아아앙!
내 어깨에 찌그러진 공중마차가 옆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다가 푸드 트럭에 충돌하며 멈춰 섰다.
중간에 튕겨져 나간 도둑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지 삐걱이면서 벌떡 일어났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오토마타였다.
나는 녀석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이봐. 네가 지금 누구의 물건을 훔쳤는지 알아?”
“쳇!”
도둑은 등을 보이며 달아나려고 했으나 워핑으로 그 앞을 막아섰다.
“어딜 도망가려고?”
용감하게도 도둑은 손에 쥐고 있던 쇠막대기를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공중마차의 방향을 전환하는 운전대의 파편이었다.
“다치고 싶지 않으면 날 보내줘.”
“나야 널 보내주고 싶어도…….”
나는 현무패웅검을 들어서 도둑의 등 뒤를 가리켰다.
“내 친구는 결코 그럴 맘이 없어 보이는데?”
콰앙!
아스티나가 흑기사의 갑옷을 풀장착한 채 아이언맨처럼 지면에 내려섰다. 그녀의 무릎이 지면에 충돌하자 맨홀 뚜껑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덜컹였다.
“내 인형 돌려줘.”
마검사가 내뿜는 살기가 일대를 진동시켰다.
나는 도둑의 뒤통수에 대고 친절하게 경고해 주었다.
“모가지가 뽑히고 싶지 않으면 그거 놓고 달아나. 쟤 뚜껑 열리면 나도 못 말리거든?”
그런데 다시 내 쪽을 바라보는 도둑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흥. 기고만장해하긴. 너희들은 내 함정에 걸린 거다. 내가 그깟 볼품없는 인형을 노렸던 것 같아?”
도둑이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수십 명의 오토마타들이 골목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지금껏 우리가 보아온 도시의 평범한 오토마타들과 달리 부랑아와 같은 옷차림과 살벌한 얼굴.
놀랍게도 녀석들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어떤 녀석들은 기관총을 양손에 들고 있기까지 했다.
도둑이 가리킨 것은 내 현무패웅검이었다.
“너 말이야, 제법 괜찮은 무기를 들고 있더군.”
“아하. 인형을 탐냈던 게 아니라…… 내 무기를 빼앗기 위해서 유인한 거다?”
“후후. 그렇다. 너희들은 살아있는 존재. 우리 오토마타와 달리 온몸이 벌집이 되면 다시 살아날 수 없지.”
철컥. 철컥.
수십 개의 총구가 나와 동료들을 겨누고 있었다. 도둑은 의기양양한 말투로 턱짓했다.
“그 검을 건네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지.”
“너나 그 인형을 건네라. 그럼 목숨을 살려줄지 말지 고민은 해 드리지.”
협박이 통하지 않자 도둑은 내게 냅다 운전대를 집어던졌다.
검기를 발출할 필요도 없이 그 쇳덩이를 둘로 잘라내 버렸고, 도둑은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외쳤다.
“뭐 하고 있어, 쏴!”
타다다다당!
수십 개의 총구들이 불을 뿜었다. 하지만 미리 대비하고 있던 아스티나의 마법진이 그보다 한 박자 빠르게 회전했다.
[마도제국학파 중력 마법]
[그래비티 리플렉션]
우리를 향해 공기를 찢으며 날아오던 총알들이 모조리 발포자를 향해 되돌아갔다.
퍽! 퍼버벅!
절반 이상의 오토마타들이 팔과 다리에 총알이 박힌 채 거꾸러졌다.
인상적인 것은 그러는 와중에 누구도 비명을 지르거나 찡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살해 협박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던 안내인 암스트롱처럼 이 오토마타들도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그 녀석들 중 하나가 자신의 손목을 부여잡더니 팔꿈치에서 떼어냈다.
그러고는 푸른색으로 빛나는 원형 물체를 우리에게 집어던졌다.
폭탄인가?
그 순간 옥상에서 보라색 기운이 번쩍이더니 폭렬마왕의 지옥파쇄포가 그 폭탄을 허공에서 소멸시켜 버렸다.
캉이 옆에 선 제르비어스의 손이 다시 망토 안으로 회수되는 것이 보였다.
“이봐, 이제 그만 포기해. 전력 차이가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빌어먹을. 안 돼! 안 된다고.”
엎드려 있던 도둑은 절망하고 있었다.
나는 녀석의 턱에 현무패웅검을 들이댄 다음 물었다.
“자, 인형을 돌려줘.”
“…….”
오토마타는 분하다는 듯이 나를 노려보다가 고양이 인형을 품속에서 꺼내 내놓았다.
그때, 녀석의 손안에 들어 있던 고양이 인형이 두둥실 올라가더니 아스티나의 손안으로 되돌아갔다.
“휴우, 다행이야. 인형은 멀쩡해.”
인간 형태로 되돌아온 캉이와 제르비어스 역시 지면에 내려섰다.
나는 힘없이 주저앉은 도둑을 향해 물었다.
“좀 싱거웠다. 더 불러올 패거리는 없냐?”
“제기랄. 무기가 있어야 돼.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 망가질지 모르는…… 아아아악!”
도둑은 맨땅에 주먹을 내리치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왜 이 녀석들은 내 ‘무기’에 대해서 집착을 보이는 걸까?
“이 평화로운 도시에 전쟁 같은 게 일어날 리도 없고. 왜 우리 무기를 탐낸 거지?”
“나도 원래는 무기를 갖고 있었다. 그때는 이렇게 맥없이 당할 만큼 약하지 않았어! 저런 형편없는 총기에 매달릴 정도로 몰락하다니.”
얼핏, 오토마타의 얼굴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전사의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관록 있는 전사라면 무기가 없다 해도 권법이나 체술, 호신술 등을 배웠어야 하지 않나. 이렇게 형편없는 몸놀림을 보여주는 대신에.
“무기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는데?”
“그야 당연히…….”
내 질문에 오토마타는 턱을 달그락거렸다.
퍼어어억!
그런데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날붙이에 가슴이 꿰뚫려 버렸다.
“……엇?”
오토마타의 몸을 관통하고 지면에 박힌 채 부르르 떨리는 것은 흉흉한 기운을 뿜어내는 대형 낫이었다.
이윽고 낫은 그것을 투척한 자의 손으로 되돌아갔다.
그 과정에서 도둑 오토마타는 태엽과 톱니바퀴, 마정석 등을 내장처럼 흘린 채 철푸덕 쓰러졌다.
“무기를 잃어버린 오토마타가 어떻게 되냐고?”
새카만 블랙슈트를 차려입은 오토마타들이 어느샌가 우리를 포위하고 있었다.
“어떻게 되기는. 저렇게 냄새나는 폐기물이 되는 거지.”
블랙슈트 위로 장발이 어깨까지 흘러내리고 있는 오토마타. 녀석이 대형 낫을 어깨에 걸머진 채 중얼거렸다.
그 뒤에 도열한 오토마타들이 손에 든 무기를 휘둘러 쓰러진 오토마타들을 무참히 도륙했다.
작동을 정지한 오토마타들을 걷어차는 구둣발이 무정하기 그지없었다.
“뭐 하는 놈들이냐.”
“사니릭시티의 마피아를 몰라봐? 흐음. 이 층에 막 도착한 모양이로군.”
검은 낫의 오토마타가 음흉하게 웃었다.
마피아라. 아무래도 이 만철도시의 오토마타들 중에선 선량한 시민들만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이런 냄새 나는 것들이 우리 마피아에겐 필요하지. 얘들한테 권총을 쥐어 준 게 누구라고 생각하냐.”
장발의 오토마타가 양팔을 벌린 채 부하들을 가리켰다.
“모두 우리 조직의 소행이지. 그러면 새로운 무기를 가진 녀석이 나타났을 때, 이처럼 소란을 일으켜주거든. 어차피 허섭스레기들이라 네놈들 같은 죄수의 손에서 무기를 빼앗는 데 성공하는 일은 없고.”
그러는 동안 나는 마피아들의 숫자를 모두 파악해 두었다.
숫자는 스물둘.
마나나 기(氣), 오러를 내뿜지 않는 오토마타들의 강함은 판단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녀석들이 손에 들고 있는 무기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하나같이 긴 시간 피맛을 봐 온 훌륭한 병장기들이었다.
나는 현무패웅검에서 검기를 발출하며 물었다.
“너 머리카락 긴 놈. 이름이 뭐냐.”
“무이크루. 사니릭시티 마피아의 네 카포레지메(Caporegime) 중 한 명이지.”
카포레지메?
뭐야, 그게.
넷이나 있는 걸 보면 중간보스 비슷한 건가.
무이크루는 오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닥거렸다.
“이놈들은 아마 너희한테 제안했겠지? 무기를 내놓으면 살려 주겠다느니, 마느니. 후후후후.”
저 다크서클과 서늘한 웃음.
왜 자꾸 어디선가 본 것만 같지?
“하지만 우리 마피아들은 자비가 없다. 협박은 상대를 죽일 자신이 없는 것들이나 입에 담는 거야.”
그리고 아까부터 왜 이렇게 내장이 뒤틀리면서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지 모르겠다.
저 무이크루란 놈의 머리통을 냅다 후드려 까고 싶은 이 욕망은…… 어디서 오는 거야?
“자. 냄새나는 것들아. 그 목과 함께 무기를 내놓거라.”
마피아의 카포레지메가 손에 든 낫을 휘둘러 지면에 박았다.
그러자 그 무기에서 검은 어둠이 흘러나오며 귀곡성을 발했다.
끼아아아아아악!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이 느낌을 언제 어디에서 느꼈는지 기억해 냈다.
현무패웅검을 쥔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간다.
“너 이 새끼…….”
감옥의 1층 화룡도.
그곳에서 우리 7번 방 죄수들을 ‘냄새나는 것들’이라고 부르며 겁박했던 4번 방장.
어둠의 레이스 오르콰이움.
틀림없다.
저 낫은 그 오르콰이움이 압수당한 무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