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111화 (111/300)

#111. 오토마타의 세레나데 (2)

[새로운 스탯이 표기됩니다.]

[행운 51/100]

고양이 토템을 인벤토리에 넣어보자 이런 메시지가 떴다. 표기되는 행운 스탯이 51인 걸 보면 용사가 가진 기본 행운 스탯은 50인 모양이었다.

‘딱히 쓸모가 있진 않을 것 같은데.’

마왕과 가위바위보를 100번 해서 50번 이길 확률이 51번으로 늘어나는 정도 아닐까?

강적과의 전투에서 어떤 변수를 만들어낼 정도의 물건으로 보이진 않았다. 애초에 아이템 등급도 D에 불과했으니까.

“빨리 돌려줘, 언능.”

나는 재촉하는 아스티나에게 인형을 돌려주었다.

“정 그러면 하나 더 뽑아줄까?”

“어어? 그래 줄 수 있어?”

그러나 주인이 난처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죄송합니다, 손님. 이 기계는 한 번 인형을 뽑아가신 분의 재도전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분께 모든 상품이 거덜나버리면 곤란하지 않겠어요?”

에이. 그럴 줄 알았다면 더 신중하게 인형을 고를 걸 그랬다.

우리는 아쉬움을 안고 액세서리 숍을 빠져나왔다.

그때, 캉이의 귀가 쫑긋하고 세워지는 게 보였다.

“왜 그래, 캉이야.”

“저쪽에서 희미하게 기분 좋은 노랫소리가 들려. 아스티나 누나가 불러준 자장가 같은 느낌이야.”

하지만 우리의 귀엔 오토마타 시민들의 발자국소리와 공중마차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더 가까이 가보고 싶어, 형아.”

캉이는 여우 특유의 뛰어난 후각으로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다니는 초능력을 보여준 적 있었다. 제르비어스의 뿔이 마력을 탐지하는 능력만큼이나 민감한 감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캉이가 노랫소리를 들었다면 거기엔 분명 누군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 네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갈게.”

캉이는 종종걸음으로 도로를 가로질렀다.

공중마차를 운전하던 오토마타들은 캉이를 발견하면 차분하게 멈춰서서 소년이 길을 건널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몇 개의 블록을 지나쳐 우리가 도착한 곳은 브로드웨이를 연상시키는 극장가였다.

오토마타들이 공중곡예를 펼치거나 신체를 분리시키는 서커스단의 천막 옆에 장중한 오페라 하우스가 있었다.

간판에는 뛰어난 붓질로 칠해진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고깔모자를 쓴 백발의 노인이 어린 소녀의 손을 잡고 돋보기를 들이대고 있는 그림이었다.

[위대한 연금술사의 스완송]

[만철도시 대표 오페라의 726,491회차 공연이 시작됩니다.]

[불세출의 프리마돈나 레나스 출연!]

캉이는 오페라하우스 입구에서 홀린 듯이 서 있었다.

이토록 가까이 와보니 맑고 청아한 소녀의 노랫소리가 또렷하게 귓가를 파고들었다.

“어서 오십시오.”

검표원에게 오른 손등의 불빛을 보여주자 고풍스러운 유니폼을 입은 오토마타는 정중한 동작으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공연 중에도 입장할 수 있나요?”

“물론이지요. 하지만 입장하시려면 여기 있는 공들 중 하나를 뽑아주셔야 합니다. 남아있는 객석의 열 중에서 무작위로 추첨됩니다.”

아스티나의 섬섬옥수가 통 안에서 주황색 공을 뽑아 들었다.

공에 그려진 숫자는 2-30.

검표원이 호들갑을 떨었다.

“2층 앞자리 중앙이군요! 무대가 한눈에 보이는 최고의 자리. 손님께선 엄청난 행운의 소유자시군요.”

아스티나는 허리춤에 매달아 놓은 고양이 인형을 툭 치며 미소지었다. 정말로 저 인형 때문에 이런 행운이 찾아온 건지도 모르겠다.

검표원이 객석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어주었다.

바닥에 박힌 마정석이 은은한 불빛을 내뿜는 통로를 지나 우리는 오페라 홀에 입장했다.

수천 개의 객석들이 부채형으로 무대를 감싸고 있는 프로니시엄 극장.

객석의 오토마타들은 우리가 시야를 가려도 조금도 불평하지 않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 세계는 타오르는 불꽃. 그리도 흔들리는 불꽃 속에서 신들의 진리를 훔쳐보았노라.”

“위대하신 연금술사 사니릭투스여!”

“한 줌의 불티를 우리에게 선사하시여 공허로운 어둠을 밝혀 주시옵소서.”

불꽃이 형상화된 로브를 입은 백발의 노인이 무대에서 열창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 만철도시를 만들었다는 연금술사 사니릭투스의 배역을 맡은 오토마타인 듯했다.

그의 등 뒤에는 백댄서들이 군무를 추고 있었고, 무대 위에는 허공에 날아오른 채 악기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악단이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사니릭투스가 로브의 소맷자락을 떨칠 때마다 관객석에 불티가 뿌려지며 신비스러운 광경을 연출했다.

곧 하나의 챕터가 끝나고 열다섯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걸어 나왔다.

모든 악기가 연주를 멈추었고 관객들도 모두 숨을 죽였다.

“주인님. 인간의 숨결이 폐에 머물고, 피가 심장을 타고 돈다면…… 영혼은 어디에 머무르나요?”

오토마타의 성대를 타고 나오는 목소리는 기계장치가 만들어내는 음색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옆 좌석에 앉은 아스티나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은 채 집중하는 것이 느껴졌다.

내 양팔에도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의심할 여지 없이 저 오토마타 소녀가 이 공연의 프리마돈나인 레나스.

“친애하는 내 딸 레나스야. 내 숨이 다하기 전에 너에게 그것을 알려 주고 싶었다만 그리할 수 없었구나.”

“주인님은 이제 먼 곳으로 떠나시나요?”

“그러하다. 우주의 모든 지식을 탐구하였으나 끝내 마지막 장막만큼은 넘지 못해 애석하도다. 뛰는 놈으로 태어나 나는 놈의 발끝에 닿지 못하였으니, 남겨진 너의 무한한 삶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울지 마셔요, 주인님. 주인님이 흘리신 눈물이 잎사귀에 떨어지면 저는 그 풀잎이 산천초목이 되어 초원을 이룰 때까지 기리고 또 기릴 것이랍니다.”

노래로만 이루어지는 공연이었으나 대략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위대한 연금술사 사니릭투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발명가이자 창조자였으나 가장 아끼는 오토마타인 레나스에게 ‘영혼’을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오페라 ‘위대한 연금술사의 스완송’은 그렇게 세상을 떠난 주인을 내내 그리워하는 오토마타 소녀의 슬픈 진혼가였다.

공연의 클라이맥스는 주인의 무덤 앞에서 구슬프게 노래하는 레나스의 독창으로 끝을 맺었다.

“브라보!”

객석의 모든 오토마타들이 기립박수를 쳤다.

“지독하리만큼 슬픈 이야기다. 어헝헝.”

제르비어스가 코를 훌쩍였다. 망토를 훔쳐 콧물을 닦기까지 했다.

음. 당분간 저 녀석 옆에 가까이 가지 말아야겠다.

레나스를 비롯한 모든 배우들이 무대에 일렬로 서서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었다.

일사불란하게 퇴장하는 관객들이 단 한 명도 남지 않을 때까지 무대를 지키려는 모양이었다.

캉이는 이야기를 거의 이해하지 못했으나 ‘음악’이 주는 여운에 깊게 취해 있었다.

“저 누나…… 가까이서 보고 싶어.”

“장막이 아직 내려오지 않았으니까 내려가도 되지 않을까.”

우리는 1층 객석으로 내려가 무대를 코앞에서 볼 수 있는 자리까지 다다랐다.

사니릭투스의 배역을 맡은 오토마타가 나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었다.

“오오, 오늘은 객석에 귀한 손님이 계셨었군요. 푸르가토리움을 등반하는 층장 님이 아니십니까.”

무대 위에서 로브 자락을 휘날릴 때의 근엄함은 온데간데없었다. 확실히 정해진 배역을 수행하는 배우라는 느낌.

‘그런데 저 소녀는 다르다.’

주인공인 레나스.

그녀는 정반대로 무대 위에서 보여준 다채로운 모습과 달리 무표정한 얼굴로 객석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 도시의 무수한 오토마타들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이질적인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어쩌면 배역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내 상념을 깨트린 것은 캉이의 돌발적인 요구였다.

“레나스 누나! 혹시 한 번 더 노래를 불러주면 안 돼? 나 또 듣고 싶은데.”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레나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죄송합니다, 관객님. 정해진 스케줄의 무대가 아니라면 저는 노래할 수 없도록 만들어졌거든요.”

입구에 적힌 공연 주기는 한 달에 단 한 번.

레나스의 노래를 또 듣기 위해선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였다.

물론 탈옥을 위해 등반하는 우리가 그렇게나 긴 시간을 이 층에서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요청을 거절당한 캉이가 울상을 짓자 아스티나가 다독여 주었다.

캉이는 원래 잠들지 않아도 되는 육체를 가졌으나 3층 대수림에서 아스티나가 친구들에게 불러주는 자장가를 함께 듣고 싶어서 일부러 잠든 척을 하기도 했던 아이다.

그만큼 아쉬움이 큰 듯했다.

그때, 사니릭투스의 배우가 손가락을 튕겼다.

“하지만 여러분, 언제든 원할 때 레나스의 독창을 들으실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답니다.”

“그게 뭐지요?”

“레나스가 던지는 질문에 올바른 대답을 하시면 되지요. 정답을 맞춘 사람에게 우리의 프리마돈나가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세레나데를 들려주도록 되어 있거든요.”

슈퍼스타의 특별 공연이 약속된 퀴즈.

흐음. 이번에도 게임인가.

그만큼 이 오토마타 소녀의 노래는 아름다웠기에 나는 그 질문이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했다.

레나스의 입이 달그락 열렸다.

“뛰는 놈이 나는 놈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종의 넌센스 퀴즈 같은 걸까.

가능하면 캉이에게 한 번 더 레나스의 노래를 들려줄 기회를 붙잡고 싶었다.

그런데 난 넌센스 쪽은 늘 약했단 말이지.

제르비어스가 번쩍 손을 들었다.

“뛰는 놈이 허벅지 근육을 키워 나는 놈보다 더 빨리 달리면 된다!”

그러자 레나스의 입에서 판정이 흘러나왔다.

“오답입니다. 동일 응답자는 지금까지 4,801명이었습니다.”

어이구, 마왕아. 너무 일차원적인 대답이잖냐.

이번엔 아스티나가 도전했다.

“뛰는 놈이 마법으로 태풍을 일으켜서 나는 놈의 속도를 늦춘다?”

“역시 오답입니다. 동일 응답자는 지금까지 1,264명이었습니다.”

마탑주의 딸다운 발상이었으나 아스티나의 선택 역시 정답이 아니었다.

나는 자신감 없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화살로 나는 놈의 날개를 쏴서 맞춘다?”

그러자 레나스가 살포시 고개를 저었다.

“오답입니다. 동일 응답자는 지금까지 13,097명이었습니다.”

으윽. 꽝인가.

옆에서 제르비어스가 망토로 입을 가린 채 웃고 있었다.

“껄껄껄. 용사야, 이 소녀는 내 대답이 더 신선했다고 하는구나.”

“……그게 아니지. 내 대답이 더 보편적이라는 뜻이야. 뜀박질을 빨리해서 나는 놈을 이겨? 아홉 살도 그거보단 나은 대답을 하겠다. 그리고 그 망토에 콧물 묻은 거 알고 있냐? 그걸로 입을 가리다니. 저리 가라. 훠이.”

마왕과 내가 시답잖은 다툼을 벌이고 있을 때조차도 캉이는 솟아오른 귀를 부여잡고 고민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정답을 맞추고 싶은 모양이었다.

“끄응. 뭐지……?”

하지만 그러는 동안 우리를 제외한 관객이 전부 극장을 빠져나갔고, 배우들이 퇴장 인사를 해왔다.

“아쉽지만 기회는 또 있을 겁니다, 관객 여러분. 다음 달에 같은 공연이 또 열리니 언제든 극장을 방문해 주십시오.”

사니릭투스가 쓰고 있던 꼬깔모자를 벗어 정중하게 인사하자 옆에 서 있던 배우들이 모두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나는 아쉬운 마음에 무대 뒤로 퇴장하는 레나스를 붙잡았다.

“저기, 레나스.”

“네?”

“안타깝게도 우리는 다음 달까지 여기에 있진 않을 예정이야. 한 달 뒤에 다시 도전할 수 없다는 거지. 그래서 말인데, 정답이 뭔지 말해주겠어?”

한참 동안 침묵하던 레나스의 아랫입술이 슬그머니 열렸다.

“정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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