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109화 (109/300)

#109. 만철도시 (3)

“왜 그래, 슈바인? 뭘 보고 놀란 거야.”

“감옥이 안내해 주기를…… 내가 방금 층장이 되었다는데?”

“뭐라고오?”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선 오른쪽 손등을 내려다 봤다.

착각이 아니었다. 가로세로 3줄로 만들어진 칸에 분명히 4번째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아니 잠깐만. 포탈에서 나온 지 30초나 지났을까. 이 층에 내려서서 한 일이라곤 숨 쉬는 것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간단히 층장의 열쇠를 준다고?

[4층의 교도관 ‘침묵으로 통곡하는 검’이 등반죄수를 주목합니다.]

[교도관은 방금 등반죄수 슈바인 스트링거가 층장의 시련을 통과했음을 확인해 줍니다.]

교도관마저 나를 층장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믿을 수 없는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띠링!

[메인퀘스트 #2. ‘열쇠 수집’을 4/9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을 고를 수 있게 됩니다. 스탯 하나의 x2 효과, 혹은 스탯 하나의 한계돌파]

열쇠를 하나씩 얻을 때마다 달성되는 메인퀘스트의 달성 알림.

지금껏 교도관장이 보내오는 시스템 관련 메시지는 단 한 번도 나를 기만하거나 속인 적이 없다.

즉, 나는 정말로 시련을 통과했고…… 4층의 층장이 된 것이다.

[메인퀘스트 #2.의 보상을 골라 주십시오.]

내가 계속 침묵하고 있자 메시지가 재촉하듯 반짝이고 있었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전에 나는 메인퀘스트의 3번째 보상을 골랐었고 MP의 한계치를 돌파했다.

아직 이 층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사태의 진의를 파악할 때까진 가능한 한 선택을 미루고 싶었다.

“생각할 시간을 줘. 내가 필요할 때 보상을 받아도 되는 거잖아? 지금 당장 안 고른다고 치사하게 꿀꺽해버리는 건 아니지?”

다행히도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보상은 이번 층을 벗어나기 전에 선택하시면 됩니다.]

동료들에게 지금까지 목격한 현상들을 전해주자 나와 같은 반응이 되돌아왔다.

“속임수나 함정일지도 모른다, 용사.”

1층에서부터 함께 올라온 제르비어스는 경계했고,

“네가 층장이 되었다는 건 이 층에 층장이 없었다는 거 아닐까? 마치 삼월초원에서처럼 공석이었다는 거지.”

아스티나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길 촉구했으며,

“어쨌든 좋은 거 아니야, 형아? 축하해!”

캉이는 그저 신이 나 있었다.

내 기본적인 입장은 제르비어스 쪽에 가까웠다.

0층 대기실에서부터 이 푸르가토리움은 단 한 번도 내게 편한 길을 제시한 적이 없었다.

때문에 입장하자마자 층장을 시켜주는 이 상황에서도 쾌감이나 안도감은 들지 않았다. 문을 여는 순간 벽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해일이 날 집어삼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 강했다.

“물론 삼월초원에서도 층장은 없었지. 그렇다고 덜컥 등반죄수인 내게 층장의 열쇠를 던져주진 않았어.”

캉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형아, 이 층의 교도관이 되게 착한 사람일 수도 있잖아. 안 그래?”

“캉이야, 착한 교도관은…… 죽은 교도관뿐이다.”

내가 이렇게 어린 구미호의 동심을 파괴하고 있을 때, 다리 저편에서 무언가가 다가왔다.

불빛을 뿜어내고 있는 마차가 빠르게 우리 쪽으로 돌진해오고 있었다.

챙! 챙!

나와 아스티나가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 들었고, 제르비어스가 캉이 앞을 망토로 막아섰다.

그때 나는 한 가지 의아한 점을 발견했다.

‘마차인데 왜 말발굽 소리가 들리지 않지?’

정체불명의 마차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번쩍번쩍 오색창연한 불빛을 내뿜는 마차를 끌고 있는 것은 말이 아니었다. 마차 스스로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마부석에서 중절모를 쓴 콧수염의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환영합니다, 새로운 층장이시여.”

중절모를 슬쩍 내리며 정중하게 인사하는 사내는 멋드러진 외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신경 쓰이는 점이 두 가지 있었다.

손목과 발목이 깨끗하다.

그리고 용사의 심안이 정보창을 띄우지도 않고 있다.

“너는 누구지?”

“네. 저는 만철도시(萬鐵都市) 사니릭타운의 관광 가이드를 맡고 있는 암스트롱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을 도시로 편안히 모시기 위해 마중을 나왔습니다.”

암스트롱이라는 사내를 파악하기 위해서 나는 기감을 펼쳐보았다.

어쩌면 캉이처럼 감옥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수갑이 없는 걸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그의 전신을 기감으로 훑은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이 녀석…… 생기(生氣)가 하나도 없어.’

심지어 손가락으로 눌러 죽일 수 있는 곤충이라고 하더라도 한 터럭의 생기는 갖고 있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암스트롱의 전신 어디에도 생명체가 뿜어내는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하. 제가 신임 층장님을 놀래켜드린 모양이군요.”

“너…… 언데드냐?”

“언데드라 하심은 생명력을 잃고서도 움직일 수 있는 분들을 일컫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저는 언데드가 아닙니다. 그들은 본래 살아 있었던 존재가 마법의 힘으로 죽음을 극복하는 것.”

암스트롱은 도자기처럼 매끈한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응? 잠깐만. 매끈한 얼굴?

인간의 피부가 저 정도로 광택을 뿜어낼 수 있나.

“저는 단 한 번도 살아 있었던 적이 없답니다. 왜냐하면 인형이기 때문이지요.”

*

“오토마타(Automata)?”

달리는 공중마차의 마부석에서 암스트롱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위대하고 존엄하신 연금술사 사니릭투스 님께서 만들어낸 자동인형입니다. 도시의 방문객을 이 마차에 태워드리는 것이 제 소명. 새 층장님을 모시는 것이 얼마 만인지요.”

암스트롱의 손에는 채찍 대신 두 개의 스틱이 쥐어져 있었다. 그걸로 속도와 방향을 전환하는 듯 보인다.

“이 마차의 연료는 뭐야?”

“연금술의 힘이 집대성된 룬 석입니다. 역시 사니릭투스 님의 은총이지요.”

내가 마차에 타지 않겠다고 하자 암스트롱은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고쳐먹더니 그러면 자신도 옆에서 걸으며 도시까지 안내하겠다고 했다.

그때 캉이가 공중마차에 타보고 싶다고 칭얼댄 데다, 암스트롱에게서 전혀 위협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결국 제안을 수락했다.

그 결과 캉이는 객석 창문으로 고개를 내민 채 바람을 만끽하고 있었다.

“와! 시원해!”

마치 승용차 창문에 얼굴만 내민 강아지 같은 느낌이군.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옆 좌석의 암스트롱을 보았다.

“사니릭타운이라고 했지? 정확히 우릴 도시의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 건데?”

“도시 중앙에 있는 광장의 분수대로 가고 있습니다. 층장 님이 오시면 그곳으로 모시도록 제게 입력되어 있거든요.”

이 타이밍에 한 번 떠볼까.

“내가 지금 너의 머리통을 박살 내 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러면 박살이 나 버리겠지요. 다행히 제가 소명을 다하지 못하더라도 마차는 목적지까지 층장 님을 모실 겁니다.”

암스트롱의 얼굴은 여전히 정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자신을 살해하겠다는 협박에도 표정 변화가 없다.

날 비웃는 건 아니다.

그저 이 오토마타에겐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는 것뿐이다.

‘희한한 녀석이야. 사람과 거의 다를 바 없이 생겼는데 대화를 나눠보면 확실히 로봇청소기와 이야기하는 느낌이야.’

갑자기 다리의 폭이 넓어졌다.

공중마차가 도시 입구에 다다른 것이다.

암스트롱이 오른쪽 스틱을 당겨 속도를 늦추었다.

“이제부터는 천천히 가겠습니다. 시민들에게 여러분을 환영할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어요?”

내가 뭐라 대꾸하려고 할 때.

밤하늘에 요란한 폭죽이 펑펑! 하고 터졌다. 그리고 트럼펫과 드럼 소리가 그 뒤를 박력 있게 따라붙었다.

“이게 무슨…….”

거리마다 무수한 시민들이 쏟아져 나와 우리가 타고 있는 마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만철도시에 어서 오세요!”

“여기 한 번 봐주세요, 층장 님!”

“잘생겼다, 꺄아아악!”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고 돌아온 부대의 장군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십대 소년과 소녀들이 느릿하게 달리는 마차를 따라다니면서 바구니에 든 무언가를 우리에게 뿌렸다.

자체발광하는 나비 무리였다.

캉이가 그 나비 한 마리를 잡자 색종이로 변했다. 제르비어스마저 그 마술 같은 광경에 사로잡힌 듯했다.

마차가 지나가고 있는 대로변에는 허리춤에 구슬 묶음을 단 무용수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칼군무라는 단어로도 표현하기 부족할 만큼 완벽한 집단 무용.

착. 착착.

무용수들이 뱅그르르 돌 때마다 구슬들이 서로 부딪치며 리드미컬한 박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무용수들 옆에서는 형광색 머리를 한 광대들이 나팔로 불을 뿜어대고 있었는데, 불길이 내 눈앞까지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뜨겁지 않았다.

‘도시 전체가 우릴 환영해주고 있어.’

아스티나마저 어느새 현무패웅검의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시민들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하늘에는 거대한 비행정들이 폭죽 사이를 날아다니고 있었고, 골목 골목마다 허공에 떠 있는 가로등이 불빛을 자랑하고 있었다.

연금술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전기’에 못지않은 과학문명을 이룩했다는 것이 곳곳에서 드러나 있었다.

마치 동화 속 나라에 느닷없이 빨려 들어온 기분이었다.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광장의 분수대에 도착했습니다.”

암스트롱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공중마차에서 내려섰다.

한가로이 분수대 앞에 모여 현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들이 몇 명 남아있을 뿐, 더 이상 따라오는 시민들은 없었다.

“층장 님을 이곳까지 모시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그럼 이만.”

암스트롱은 절도 있는 동작으로 인사를 하더니 다시 마차를 몰고 사라졌다. 마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캉이는 힘차게 손을 흔들어주기까지 했다.

나는 분수대 앞으로 걸어갔다.

시원하게 비산하는 물줄기 앞에 절대로 오해할 수 없는 ‘그것’이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딱 사람 하나가 들어갈 수 있는 검은 원.

등반죄수에겐 익숙할 수밖에 없는 포탈이었다.

[5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포탈입니다. 접촉하면 다음 층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얼씨구.

의심하지 말라고 확인사살까지.

“무슨 이딴 층이 다 있냐!”

나는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그러자 제르비어스가 등 뒤로 다가와서는 말했다.

“용사야, 여기는 내가 있던 세계의 문명 수준보다 훨씬 앞서 있는 것 같다. 풍선을 타고 있는 사람들이나 스스로 빛을 내는 시계탑 같은 건 상상해 본 적이 없어. 네가 살았던 지구와 비교하면 어떠냐.”

“음…… 한 100년 전 지구와 비슷한 느낌일까? 하지만 그것과도 묘하게 달라. 어쨌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여기가 전혀 푸르가토리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야.”

우리는 등반죄수다.

3번 층을 오르면서 내 형량은 지금 무려 800년이다.

그런데 이 도시는 마치 유럽 어느 도시에 배낭여행을 온 관광객처럼 취급하고 있다.

이 강렬한 위화감이 내 신경을 계속 곤두서게 만들고 있었다.

“확인해 볼 게 있어.”

나는 단탈리온을 꺼내 들었다.

- 부르셨습니까, 용사님.

“이 층에 도착해서 수천 명의 시민들이 전부 우릴 환영해줬어. 그런데 손에 수갑을 차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더군. 오늘 내가 본 시민들 중에 죄수가 있었어?”

- 아니오. 없었습니다.

예상이 맞았다.

골목 어귀에서, 이층집의 테라스에서, 굴뚝에 올라선 채 우릴 보고 소리를 지르던 모든 시민들.

그들 전부가 연금술로 움직이는 오토마타들이었다.

“단탈리온. 그럼 이 층 전체를 통틀어서 우리를 제외하면 살아 있는 존재는 몇이나 돼?”

마도서가 글씨를 만들어내는 속도는 무척 빨랐다.

- 0.

푸르가토리움의 4층.

만철도시 사니릭타운.

지금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곳엔 단 한 명의 죄수도 없었다. 오직 움직이는 자동인형들만이 존재하는 괴이한 층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