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97화 (97/300)

#097. 은둔자의 해방 (4)

띠링!

[메인퀘스트 #5 ‘대수림의 은둔자’가 완료되었습니다.]

[방금 당신의 일행이 대수림에 숨어 있던 은둔자와 눈을 마주쳤습니다. 층장이 은둔 상태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보상으로 근력이 200 오릅니다.]

용솟음치는 기운이 내 혈관을 타고 휘몰아쳤다.

한순간에 근력 스탯이 200이나 오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나는 마냥 기뻐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메시지는 분명 숨어 있던 층장이 모습을 드러냈다고 알려오고 있었으나 나와 아스티나는 서로만을 시야에 두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

“제르비어스가 층장과 마주쳤어.”

나와 아스티나는 망설임 없이 경공술을 발휘해 수직으로 솟구쳤다.

바라보는 방향은 마왕과 캉이가 있을 남쪽의 둥지.

전력으로 둥지를 향해 날아가면서 귓속말을 시도했다.

- 제르비어스! 응답해.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오질 않았다.

귓속말에 응답하는 것은 특별한 기술이나 마력의 소모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잠깐 집중하기만 하면 답이 입력된다.

설마 층장과 전투가 벌어진 걸까?

그렇다면 날아갈 시간도 아깝다.

“친구 제르비어스 폰타인의 곁으로 순간이동!”

다급한 외침에도 내 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옆에서 함께 날아가던 아스티나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순간이동이 발동하지 않은 적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권능 ‘반갑다 친구야’가 발동되려면 지정 대상인 친구의 의식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불길한 메시지가 내 심장을 파고들었다.

[제르비어스 폰타인은 현재 의식 불명 상태입니다.]

*

“제르비어스으으!”

아스티나와 내가 음속을 돌파하려는 기세로 굴을 향해 날아왔을 때.

우리의 눈에 들어온 것은 막대한 파괴의 현장이었다.

다이너마이트라도 터진 것처럼 굴 한복판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잔해 위에 거대한 짐승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기다란 주둥이. 붉은 눈동자.

만년설보다 새하얗고 풍성한 털.

신비롭게 등 뒤에서 요동치는 아홉 개의 꼬리.

“저건…….”

다른 짐승이라고 오해할 여지가 없다.

전설과 신화 속에 단골로 등장하는 영물, 구미호(九尾狐)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입에 물려진 것은 익숙한 검은 망토.

제르비어스가 구미호의 턱 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축 늘어진 것을 보아 기절한 상태.

아스티나가 나를 멈춰 세웠다.

“가까이 가지 마! 위험해.”

그녀 또한 기감을 통해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극히 짧은 시간에 마왕을 제압한 저 짐승이 얼마나 흉흉한 괴물인지를.

[이 존재는 층장입니다.]

구미호와 눈이 마주치자 단검에 찔린 것 같은 압박감이 전달돼 왔다.

아스티나의 고개가 바쁘게 움직였다.

제르비어스가 보호하고 있던 한 소년, 캉이의 흔적을 찾고 있는 것이다.

“슈바인, 캉이가 보이질 않아. 설마 이 사태에 휘말려서…….”

나는 조용히 손바닥을 들어 아스티나를 진정시켰다.

“찾을 필요 없어.”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캉이는…… 지금 우리 앞에 있잖아.”

뒤늦은 충격이 아스티나의 동공을 격하게 뒤흔들었다.

나 역시 입맛이 썼다.

하지만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도 있는 법이다.

나는 파천황의 권능으로 캉이와 친구를 맺었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지 간에 친구를 몰라볼 수는 없었다. 권능이 그것을 강제했다.

“저 구미호가…… 캉이의 본모습이었던 거야.”

대수림에서 우리를 구해주었던 소년.

아홉 명의 친구들과 함께 대수림의 야수들을 피해 끝까지 살아남았던 낙천적인 아이.

하지만 지금은 압도적인 기운을 내뿜는 한 마리 포식자가 되어 나를 향해 도약하고 있었다.

“제르비어스를 구해!”

나는 돌진해오는 구미호의 시선을 유인하기 위해 비행했다.

타앗!

단 한 번 도약했을 뿐인데 구미호는 단숨에 거리를 좁혀버린 뒤 기다란 앞발로 나를 후려쳤다.

[포스 필드 제너레이트]

황급히 방어막을 펼쳤으나 일격에 중력장이 붕괴되고 말았다.

“크허어억!”

돌기둥이 허리를 후려치는 통증과 함께 나는 땅에 처박혔다.

지면에 구릉을 만들며 주르륵 미끄러지다가 멈춰선 나는 재빨리 상반신을 일으키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일격의 후유증이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으르르르르르.”

구미호의 앞발이 포크레인처럼 다가와 내 복부를 짓눌렀다. 초승달처럼 휘어진 4개의 발톱이 어깨와 허벅지를 파고들었다. 발의 측면에 달린 며느리발톱은 내 동공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천마회풍일섬]

그때, 구미호가 물고 있던 제르비어스의 망토가 썩둑 잘려나갔다.

아스티나가 내쏜 참격의 후폭풍이 안면을 강타했음에도 구미호는 몇 번 머리를 털 뿐이었다.

추락하는 제르비어스의 몸체가 사뿐하게 지면으로 이동되었다. 그를 직접 만질 수 없는 아스티나가 허공섭물로 옮기고 있는 것이다.

구미호의 앞발이 멀어져 갔다.

내게서 관심을 버린 뒤 다른 목표물을 설정한 것이다.

“피해, 아스티나!”

제르비어스를 향해 날아가던 아스티나가 내 외침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아홉 개의 꼬리 중 하나가 아스티나의 왼쪽 다리에 휘감기더니, 가차 없이 그녀를 패대기쳤다.

“아아아아악!”

대수림의 나뭇가지를 우수수 부러뜨리며 아스티나가 숲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제야 몸을 일으킬 수 있었던 나는 현무패웅검을 붙잡고 검기를 뽑아냈다.

그러자 요란한 알림음과 함께 퀘스트창이 떴다.

띠링!

[메인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메인 퀘스트 #6. ‘여우 사냥’]

[등반죄수인 당신의 앞을 신화 속 짐승인 구미호가 막아섰습니다. 그가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 동안 살해해서 열쇠를 강탈하거나 자발적으로 열쇠를 건네받아야 합니다.

성체가 아니라 어린 구미호라 하더라도 그의 진면목은 반인반수와는 격이 다른 환수(幻獸). 사실 잡아먹히지 않도록 버티는 것만 해도 쉬운 일이 아닐 거예요.

특히 구미호가 위협을 느낀 대상에게 구사하는 ‘여우트림’을 조심하시길.

무운을 빕니다, 수감자여.]

[기한: 일식이 유지되는 8분 30초 동안]

[보상: 3층장의 열쇠]

[실패 시: 등반 불가]

프라이팬으로 머리를 백만 번 후려쳐도 속이 안 풀릴 교도관장 새끼.

나더러 이런 괴물을 제압해서 열쇠를 빼앗으라고?

“캬아아아아아!”

물고 있던 마왕을 빼앗긴 것에 분노했는지 구미호가 마구 앞발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나는 다급하게 현무패웅검으로 그것을 받아쳤다.

꽈아앙!

단단하기 짝이 없는 현무의 등껍질로 만든 검신이 요란하게 울었다.

일격을 받아낼 때마다 나는 체력이 훅훅 깎여나가는데, 구미호는 전혀 대미지를 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근접공격을 교환하며 힘 대결로 맞섰다가는 금방 부서질 것 같다.

“나 잡아봐라, 인마!”

천마어기행공을 펼쳐 날아올랐다.

녀석은 제자리에서 펄쩍 뛰며 앞발을 휘둘렀으나 나는 상승을 멈추지 않았기에 아슬아슬하게 공격은 빗나갔다.

“캬아아앙!”

허공에 떠오른 나를 한참 동안 노려보는 구미호.

잠시 숨 돌릴 여유가 생겨서 주변을 살펴보자 이미 절반 가까이 가려진 태양이 보였다. 대수림 곳곳에 어둠이 스며들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횃불의 행진은 아마도 구미호에게서 달아나는 죄수들일 터였다.

- 아스티나. 괜찮아?

흑기사의 갑옷을 입은 아스티나가 제르비어스의 망토를 붙잡은 채 질질 끌고 있었다.

- 제르비어스는 어때?

- 아직 숨은 붙어 있어. 다만 몇 군데 뼈가 부러진 것 같아.

- 제길. 일단 내가 캉이를 떨어트려 놓을 테니까…….

- 조심해!

아스티나의 새된 비명소리가 귓속말로 전달됐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거센 풍압이 내 머리카락을 날려 보내고 있었다.

“날 수도 있다고?”

구미호의 거체가 대수림의 잔해와 함께 날아오르고 있었다.

녀석의 엉덩이에 하얀 원반이 생성돼 있었다. 아홉 개의 꼬리를 엄청난 속도로 회전시켜 마치 헬리콥터의 프로펠러처럼 만든 것이다.

“젠장! 캉이야, 정신 차려! 형아야. 못 알아보겠어?”

다급히 외쳐보지만 구미호의 붉은 눈은 여전히 광기만을 발산하고 있었다.

야수들의 트랜스 상태와 정확히 똑같다.

이성을 상실한 채 움직이는 모든 것에 대해 살육본능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대체 무슨 수로 트랜스 상태의 구미호에게 층장의 열쇠를 건네받을 수 있을까.

이렇게 혀를 차고 있을 때.

한껏 날아오른 구미호가 나를 향해 입을 쩍 하고 벌렸다.

‘저게 여우트림인가.’

붉은색 기운이 소용돌이처럼 구미호의 벌려진 입 속으로 모여들었다. 그것은 이내 나를 노리고 내뿜어졌다.

콰아아아아아아!

[용사전용기 무극참월공]

[제이식 무영보]

중력의 영향을 비웃듯이 움직이는 회피기로 몸을 빼냈다. 그러자 구미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기둥이 허공을 갈기갈기 찢었다.

“이게 끝이 아니야?”

멈추지 않고 계속 토해지는 붉은 광선포가 끈질기게 나를 따라붙었다.

여우트림의 궤적이 점차 나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 아스티나! 도와줘!

내가 외치는 것과 동시에 구미호의 턱밑에서 막대한 중력 폭발이 일어났다. 중력 마법의 술식인 그래비티 봄이었다.

퍼어어엉!

강제로 입이 다물려진 구미호가 몇 번 비틀대더니 다시 똑바로 자세를 잡았다.

구미호의 시선이 아스티나와 제르비어스에게 꽂혔다.

그대로 놔두면 아스티나는 몰라도 제르비어스의 몸은 가루가 될 터였다.

구미호가 이번엔 아스티나를 향해 여우트림을 내쏘았다. 붉은 광선포가 아스티나를 집어삼키기 직전에 그녀는 마법진을 완성했다.

[그래비티 리플렉션(Gravity Reflection)]

중력을 왜곡시켜 모든 공격을 굴절시키는 반격기.

붉은 광선포가 휘어지며 제르비어스의 바로 옆 지면을 갈라버렸다. 하지만 막대한 파괴력을 감당하지 못했는지 곧 마법진이 박살나며 아스티나의 몸이 데굴데굴 굴렀다.

“안 돼!”

나는 무영보의 방향을 뒤틀어 도주에서 돌진으로 전환했다.

어떻게든 구미호의 시선을 내 쪽으로 붙잡아 둬야 한다.

‘필살기를 써야 하나.’

층간 구역에서 아스티나와의 특훈 끝에 간신히 완성시킨 기술이 하나 있었다. 일시적으로 모든 MP를 소진시키지만 파괴력 하나만큼은 살신참의 열 배에 달하는 궁극기.

하지만 스킬을 시전하는 것에 망설임이 생겼다.

‘녀석이 이 기술을 감당하지 못하고…… 죽는다면?’

나는 내 손으로 캉이를 죽이게 된다.

어떡해야 하지.

저질러 버려?

뒷감당을 할 수 있겠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다.

‘설마?’

손으로 챙을 만들어 태양을 바라보자 예전처럼 막대한 빛을 내뿜는 항성이 보였다. 일식이 완전히 끝나가고 있었다.

“우우우우우.”

맹렬히 회전하던 구미호의 아홉 꼬리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하얀색 원반 형태였던 그것이 점차 아홉 개의 털뭉치로 변하더니, 구미호의 육체가 스르륵 줄어들기 시작했다.

쿠우우웅.

바닥에 쓰러진 하얀 털의 여우는 이윽고 우리가 알고 있던 모습의 소년으로 변했다.

눈을 감은 채 쌔근쌔근 잠들어 있는 캉이의 얼굴로.

[일식이 끝났습니다.]

[3층의 교도관이 다시 화신체를 강림시킵니다.]

[대수림의 층장이 은둔 상태로 접어듭니다.]

그렇게,

나는 이번 회차의 퀘스트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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