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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95화 (95/300)

#095. 은둔자의 해방 (2)

아스티나가 화들짝 놀라 봇짐을 캉이의 머리맡에서 떨어트려 놓았다.

반면 제르비어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용사야, 나는 마력을 탐지하는 뿔을 갖고 있고, 저주에 관련해서라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전문가라고 자부한다. 하지만 이 붉은 돌에선 한 줌의 마력도 느껴지지 않아.”

저주를 불러일으키는 매개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평범하다고 하는 것이 마왕의 주장이었다.

“만약 이 돌이 두통을 유발하는 거라면 어째서 너는 멀쩡한 거냐. 나는 경계를 서면서 직접 돌을 주워오기도 했고 아스티나는 아이들과 공기놀이를 할 때 여러 번 맨손으로 이것을 집어 들었어.”

나 역시 대수림에서 야수왕을 찾는 여정에서 붉은 돌의 덕을 여러 번 보았다.

그래도 의심을 완전히 지울 순 없었다.

“미지의 병원균 같은 걸 수도 있지. 우리는 이 돌과 접촉한 지 불과 며칠밖에 되지 않았어. 하지만 캉이와 아이들은 훨씬 긴 시간 동안 이 돌에 둘러싸여 살았지. 우리가 모르는 기생충이나 바이러스가 돌에 묻어 있는 거라면? 그래서 바깥의 야수들이 본능적으로 그걸 느껴서 가까이 하지 않는 거라면 말이 돼.”

바이러스 같은 게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인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것은 얼마든지 있다.

대표적으로 방사능 물질 같은 것 말이다.

“물론 그것이 아이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캉이가 내게 빌려주었던 붉은 돌을 모두 꺼내어 봇짐에 밀어 넣었다.

“아이템 수납.”

봇짐째 인벤토리 내부로 이동시켰다. 이 돌의 정체에 대해 무언가 결론이 날 때까진 꺼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래도 교도관과 얘길 해봐야겠어.”

내 말에 제르비어스와 아스티나의 얼굴은 당황으로 물들었다.

마왕은 나를 만류했다.

“꼭 그래야 하나. 저번에 만났을 때 교도관의 화신체가 널 잡아먹으려 들었다면서.”

“말만 그렇게 했을 뿐, 실제로 날 씹어 먹지는 않았으니까. 아이들이 사라지는 현상이 야수들의 소행이 아니라면 의심해볼만한 건 이제 교도관뿐이야.”

나는 둘에게 캉이를 잘 지켜보라고 말한 뒤 혼자서 결계 바깥으로 벗어났다.

결계는 내 마나의 일부를 소모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제지 없이 나를 통과시켰다.

[천마어기행공]

나는 대수림의 한복판에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전에 보았던 풍경과 한 치의 변화도 없는 압도적인 광경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글거리는 태양열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나는 생각했다.

‘훔쳐갈 수 없는 것이 도난당했을 때, 층장의 은둔은 해제될 거야.’

그것은 뇌신 지드가 내게 준 힌트였다.

훔쳐갈 수 없는 것.

어쩌면 하나씩 사라져간 아이들을 말한 게 아닐까.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은 방법에 의해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 아이들.

지드가 암시한 것은 작금의 상황을 내다본 것일지도 모른다.

도난.

그렇다면 이 아이들이 전부 없어져야만 층장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걸까.

“나와라, 증식하는 밀림의 뱀! 내가 정글 위의 하늘을 계속 날아다니게 둘 거냐!”

나는 대수림 어딘가에서 그 거대한 대가리를 치켜들 교도관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아무런 반응조차 돌아오지 않았다.

“안 나올 거야? 설마 겁이 나서 꼬리를 말고 도망쳤냐.”

자극적인 모욕에도 불구하고 숲으로 만들어진 대해는 아무런 파도 없이 잠잠했다.

그때, 예상외의 방식으로 대답이 돌아왔다.

[3층의 교도관이 자신은 현재 화신체를 회수했다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곧 펼쳐질 상황이 가져다줄 즐거움을 만끽하겠다고 전합니다.]

화신체를 회수했다고?

어째서지?

교도관은 압도적인 크기의 뱀으로 현신해 대수림의 상공을 감시하고 있었다.

나와 같은 죄수들이 야수들의 습격을 간단히 파훼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비행’이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왔다.

녀석이 자발적으로 화신체를 거둬간 데는 이유가 있을 거다.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서 ‘감시’ 같은 것은 의미가 없어진다는 소리인가.

“일단 굴로 돌아가야겠어.”

그렇게 대수림의 수면 밑으로 다시 잠수하려는데,

어떤 신호가 내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았다.

“봉화?”

북쪽 방향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거리를 계산해봤을 때 진원지가 어디인지는 명확해 보였다.

캉이가 남긴 벽화와 메시지가 그려진 피라미드 군집.

그곳에서 지금 누군가가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

“봉화를 봤다고?”

방금 전에 내가 본 것들을 그대로 전하자 제르비어스의 동공이 크게 뜨여졌다.

“그게 봉화였다고 확신할 수 있나, 용사. 동쪽의 야수왕은 가슴에서 불을 뿜어댔다고 했잖아. 그 녀석이 숲에 불을 지른 걸 수도 있지.”

곰곰이 그 가능성을 따져보던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만난 야수왕들은 어지간해선 자신의 둥지를 떠나지 않을 것 같았어. 그리고 만약 야수왕 훔바라스의 소행이라면 불길은 훨씬 더 거셌을 거야.”

그런데 내가 목격한 봉화는 분명 우리가 피워냈던 봉화와 비슷한 형태의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캉이의 이마를 쓰다듬고 있던 아스티나가 물었다.

“어떻게 하고 싶어?”

리더인 내 의견을 묻고 있다. 동시에 내 입에서 나올 대답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봉화를 피웠다는 건 글자를 읽을 줄 아는 죄수가 대수림 안쪽에서 고립되었다는 뜻이야. 이렇게 단시간에 등반죄수가 또 탄생했을 확률은 희박하다고 본다면…… 오래 전부터 생존해 온 죄수일 가능성이 높아.”

어쩌면 봉화를 피워 올리는 죄수가 ‘층장’일지도 모른다. 혹은 층장을 본 적이 있거나 어떤 단서를 갖고 있을 수도 있고.

“봉화를 피우면 야수들 또한 그걸 알아차리게 돼. 우리가 구해주지 않으면 고립되어서 변을 당할걸.”

망설일 시간이 없다.

“으으으으.”

하지만 그렇다고 쓰러진 캉이를 이 굴에 혼자 두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결심을 한 뒤 제르비어스를 바라보았다.

“마왕, 네가 여기 남아. 캉이와 함께 있어.”

그러자 바로 반발이 돌아왔다.

“아스티나가 아니라 나를 여기에 둔다고?”

“지금 대수림에는 비행을 금지시키는 교도관이 없어. 그러니 최단시간에 봉화까지 도착하려면 경공술을 펼쳐야만 해.”

제르비어스는 높은 근력과 폭렬마법을 보유하고 있지만 비행만큼은 하지 못한다.

이번 원정은 아스티나와 내가 가는 게 맞다.

“하지만…….”

캉이를 두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아스티나에게 나는 미리 준비한 설득의 말을 던졌다.

“어쩌면 봉화를 피워 올리는 게 죄수가 아닐 수도 있잖아, 아스티나.”

“납치당한 아이들일 수도 있다고?”

사실 나는 그럴 확률은 희박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누군가에게 납치당했다가 가까스로 탈출해 봉화를 피워 올리고 있다는 건 지나치게 편리한 이야기다.

단탈리온은 분명 아이들이 ‘감옥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스티나의 눈빛에는 결의가 맴돌았다.

희박한 가능성에 불과해도 거기에 매달려보겠다는 듯.

그렇게 나와 아스티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을 때.

“형아. ……가지 마. 나랑 있어 줘.”

내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캉이가 입을 열었다.

눈가에는 촉촉한 이슬이 맺혀 있었다.

그것은 고통에서 오는 것일까. 아니면 나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오는 것일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캉이의 손을 잡아주는 것뿐이었다.

“금방 돌아올게, 캉이야. 약속해. 너를 놔두고 죽지 않아.”

*

대수림의 상공 위에서 나와 아스티나는 쏘아진 화살처럼 움직였다.

경공술에서라면 용사전용기 무영보를 시전하는 내가 아스티나보다 한 단계는 더 빨라야 정상이겠지만, 지금의 아스티나는 내가 따라잡기 힘들 정도의 속도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거겠지.

작고 위태로워 보였던 연기가 이제는 코앞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곧 도착해. 전투가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만반의 준비를 하자.”

나는 현무패웅검을 빼들었고 아스티나는 방패 형태로 줄어들어 있던 흑기사의 갑옷을 장착했다.

타악.

우리는 피라미드 군집의 앞마당에 내려섰다. 사위는 고요했고, 아직 장작이 꽤 남아 있는 봉화대만이 우릴 반겼다.

쐐애액!

그때 두 발의 화살이 나와 아스티나를 향해 날아왔다.

화살 한 발은 아스티나의 투구에 튕겨 나가 떨어졌고, 나머지 화살 한 발은 내 목젖 앞에서 정지했다.

내가 허공섭물로 멈춰 세운 것이다.

툭.

관성을 잃은 화살이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일단의 무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야생에서 만든 옷을 기워 입은 죄수들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수갑을 차고 있다.

숫자는 대략 스물.

나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죄수들이 야수들의 습격을 피해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감명 받았고, 그들이 손에 든 화살이나 창의 어설픔만큼이나 죄수들의 별 볼 것 없는 능력에 애석해 했다.

“잠시만요. 우리는 싸우러 온 게 아닙니다.”

나는 현무패웅검을 아래로 내린 채 말했다.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전해야 했으니까.

“제 말을 알아들으실 수 있으신가요?”

내 말에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이럴 수가.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야수와의 전쟁을 치러왔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는 오랜만에 봅니다만.”

험악하게 인상을 쓴 죄수들에게 포위되어 있었지만 별다른 위기감은 들지 않았다.

나는 이제 용사의 심안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죄수들의 힘을 가늠할 수 있었는데, 이들을 완벽하게 제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1초면 충분할 정도였다.

10초는 어떤 기술을 쓸지 고민하는 시간.

1초는 그 기술을 구사하는 시간.

“당신들처럼 강한 자들이…… 지금까지 대체 어디에 있었던 겁니까?”

나는 1층 화룡도에서부터 계속 등반을 하는 중인 죄수라는 것을 밝혔다. 물론 지나치게 세세한 이야기까지 다 해주진 않았다.

내 이야기를 듣던 우두머리는 우리가 대수림의 야수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을 믿는 듯했다.

“다들 무기를 내려라. 어쩌면…… 이분들이 우리를 도와주실지도 모르니까.”

죄수들이 포위를 풀고 뒤로 물러섰다. 명령 체계가 어느 정도 확고한 모양이다.

아스티나 또한 흑기사의 갑옷을 해제하며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몇몇 남성 죄수들이 숨을 들이마시는 것이 보였다.

그럴 수밖에.

저 험악해 보이는 갑옷 속에 아리따운 여자가 들어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 누구라도 놀라게 된다.

나는 검을 집어넣고 우두머리에게 물었다.

“도움이 필요하신 것 같은데요? 혹시 부상자가 있습니까.”

“……어떻게 아신 겁니까?”

우두머리의 눈빛에 경계심이 살짝 떠올랐다.

아주 작은 신호에도 방어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긴, 누구라도 이 대수림에서 계속 생존해왔다면 그렇게 새가슴이 되었을 거다.

중앙 피라미드 내부에 적지 않은 숫자의 죄수들이 모여 있었다. 하지만 기의 흐름이 불순해 보였다.

그들이 부상을 입은 죄수들이라면 우리에게 화살을 내쏘았던 반응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두머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정확히 말해선 부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적지 않은 숫자의 동료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거든요.”

쓰러졌다고?

나와 아스티나의 시선이 묘하게 얽혀 들어갔다.

쓰러진 자들을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우리를 안으로 들여보내 주실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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