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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94화 (94/300)

#094. 은둔자의 해방 (1)

큰 문제?

아스티나의 텔레파시에 담겨진 심리 상태는 불안해 보였다.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는 감정이 그대로 내게 전달돼 온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답장을 보낼 시간도 아깝다.

나는 단체 텔레파시를 끊고 곧바로 순간이동의 권능을 시전했다.

“친구 아스티나의 곁으로 순간이동.”

*

“왜 둘 다 나와 있는 거야?”

제르비어스와 아스티나는 굴 바깥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최소한 셋 중 한 명은 항상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서 지켜보기로 했던 방침을 어기는 일이었다.

둘의 표정은 미약하게 경직돼 있었다.

마치 내게 면목이 없다는 얼굴이었다.

“놀라지 말고 들어.”

“알았어. 말해. 무슨 일인데 그래?”

“아무리 찾아보려고 해도 보이지를 않아. ……사라진 것 같아.”

“사라지다니, 누굴 말하는 거야?”

입술을 꽉 깨무는 아스티나.

당황스러운 일을 맞닥뜨려서 고군분투했던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채근하지 않고 설명을 기다렸다.

그녀는 내가 야수왕들을 찾아 나섰던 스무 시간 동안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었다.

“네가 떠나고 몇 시간 되지 않아서…… 아이들 중 한 명이 땅따먹기 놀이를 하던 중에 쓰러졌어.”

처음에는 단순히 넘어진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내 아이는 두통을 호소하며 끙끙 앓기 시작했고, 아스티나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굴속에 눕혀 놓고 나갔다 왔을 때…… 그 애는 사라져 있었어. 온데간데없이.”

“그게 말이 돼? 다시 기력을 회복해서 숨어 있는 거 아니고?”

원래 아이들은 어른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라면 아픈 척도 마다하지 않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내가 그랬다.

여동생 상희가 태어나서 부모님의 관심이 모두 동생에게 집중되었을 때, 나는 일부러 배가 아프다며 데굴데굴 굴렀던 적이 있다.

그것 말고는 어른의 시선을 주목시킬 방법이 딱히 없을 때 사용하는 아이들의 생존전략이다.

“꾀병을 부린 다음 우리를 골려주려는 일종의 숨바꼭질 놀이일 수도 있잖아.”

하지만 제르비어스가 아스티나의 말을 거들었다.

“아니. 굴의 바깥은 내가 지키고 서 있었다. 내가 눈을 부릅뜨고 경계를 서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어디론가 사라진 거야.”

“방금 아이들이라고 했어? 사라졌다는 게…… 한 명이 아니야?”

마검사와 마왕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아이들은 열에서 일곱으로 줄어 있었다. 갑자기 쓰러지고 두통을 호소한 다음, 눈을 뗀 사이 증발한 것처럼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제르비어스, 잠깐 비켜서 봐.”

나는 믿을 수 없어서 내공을 끌어올려 기감을 최대치로 펼쳐보았다.

기감으로 존재를 탐지하는 것은 흑백으로 이뤄진 세계에 연약한 빛의 균열을 찾아내는 것과 비슷했다. 강한 생명력을 보유할수록 더 쉽게 찾아낼 수 있다.

그런데 미약하게 느껴지는 아이들의 기운은 정말로 일곱에 불과했다.

“왜 진작 내게 알리지 않았어?”

“처음에는 우리도 아이들의 장난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아니었어. 아스티나가 땅 밑에까지 마법으로 탐지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내게 비상 연락을 취하기 위해 텔레파시를 보냈으나 답이 없었던 것이다.

그 순간의 나는 아마 지드의 심상세계에서 르팔타커스와 지드의 격돌을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이상한 점은 또 있어, 슈바인.”

아스티나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캉이가…… 기억을 못 해.”

“무엇을?”

“아이가 한 명씩 사라질 때마다 캉이가 그 아이를 기억해내지 못하는 거야. 마치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오히려 있지도 않은 아이의 이야기를 한다며 나와 제르비어스를 이상하게 쳐다봤어.”

누구보다 친구를 끔찍하게 아끼고 지켜온 캉이다. 몇 분전까지 함께 뛰어놀았던 친구를 갑자기 망각해버린다는 건 기이한 일일 수밖에 없다.

“내가 직접 캉이를 만나야겠어.”

나는 성큼성큼 굴 안으로 들어갔다.

굴 내부의 풍경은 내가 마지막으로 자리를 비웠을 때의 모습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굴에 모여 있는 아이들의 숫자가 일곱이라는 것뿐.

“어서 와, 형아!”

“캉!”

“캉!”

캉이와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와 내 발치에 달라붙었다.

거실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는 붉은 돌의 모양을 보아하니 방금 전까지 공기놀이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들 잘 있었지?”

“응! 밖에 나가지 않고 얌전히 이 안에만 있었어.”

공기놀이는 내가 일전에 알려준 것으로 그 전에는 아이들의 뇌리에 입력돼 있지 않았던 놀이방법이었다.

그런 것은 잘 기억하면서 사라진 아이들에 관해선 잊어버렸다고?

“캉이야, 이 안에 있는 일곱 친구들이 다야? ……혹시 몇 명이 더 있지 않았니.”

“어? 아닌데. 형아도 누나랑 똑같은 얘길 하네. 숫자 세는 법을 다시 배워야겠어. 쯧쯔.”

거짓말을 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캉이는 정말로 ‘애초부터’ 일곱 명이 굴 안에 모여서 살고 있었다고 믿고 있었으며, 그건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로부터 두 시간 뒤에 나는 내 눈으로 직접 괴이한 현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캉…….”

기운을 잃고 쓰러진 아이가 한 명 발생한 것이다.

나와 아스티나는 그 아이로부터 절대 눈을 떼지 않겠다고 명심하고 캉이와 다른 친구들을 방에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도 아이는 사라져 버렸다.

“어디로 간 거야?”

뻔히 지켜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덮고 있던 이불이 폭하고 주저앉았다.

아스티나는 울상이 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제 알겠어? 이건 보통 일이 아니야. 이러다가 아이들을 전부 잃어버리게 생겼다고.”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내 뒤통수에 대고 캉이는 천진하게 졸랐다.

“형, 빈 방에서 뭐하고 있어? 빨랑 같이 놀자. 돌아오면 같이 새총놀이 또 하기로 했잖아.”

쓰러진 아이가 사라지기 직전까지 걱정스런 얼굴로 문 밖을 서성이던 캉이였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가 쓰러진 방을 ‘빈 방’이라고 표현한다.

이대로는 안 된다. 대책이 필요하다.

*

“단탈리온, 사라진 네 아이들의 위치를 알려줘.”

우리 셋은 캉이와 아이들을 가까스로 뿌리친 다음 굴 밖에서 회동을 가졌다.

일단 마도서 단탈리온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 용사님, 네 명의 아이들은 현재 3층 대수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설마 다른 층에 있는 거야?”

- 그것도 아닙니다. 푸르가토리움 내부는 물론…… 현존하는 우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사라지는 연유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교도관장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요.

마도서도 찾아낼 수 없는 완벽한 실종.

나는 떠올리기 싫은 상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야수한테…… 잡아먹히기라도 한 건가?”

아스티나가 내 추측을 정면에서 부정했다.

“그랬더라면 나와 제르비어스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어. 무엇보다 야수들이 오가기엔 굴 내부의 통로가 너무 좁잖아.”

“캉이가 만든 굴은 방마다 여러 개의 통로가 있어. 일종의 미로라고 해석한다면…… 야수의 접근을 미처 알아차리기 못하는 것도 말이 돼.”

잠자코 듣고 있던 제르비어스가 이 타이밍에 끼어들었다.

“그렇다면 발자국이 남지 않는 게 설명되지 않는다, 용사.”

“나는 바깥에서 세 야수왕들과 마주치고 왔어. 녀석들은 보통의 야수들과 달리 고유의 기술체계를 갖고 있었단 말이야. 저 바깥의 야수들 중에서 덩치가 작고, 투명화 마법 같은 걸 쓸 수 있는 야수가 있다면…….”

말하면서도 내 말이 너무 터무니없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어린 아이 한 명만 물어갈 수 있는 야수가 우리 셋의 경계를 모두 피해서 납치를 한다?

그게 가능할까.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겠어. 아스티나, 혹시 반경에 진법이나 결계를 만들어줄 수 있겠어?”

“나 혼자서라면 까다롭지만…… 네가 힘을 빌려준다면 해 볼 수 있어.”

머릿속에는 귀혼산장의 광멸복마진이 떠오르고 있었다.

마법 서클을 가진 소유자가 접촉하면 경보음과 빛을 쏘아 올리던 천마신교의 진법 체계.

아스티나는 십여 분에 걸쳐 굴 앞에 마법진을 그려낸 다음 내게 마력을 빌려달라고 했다.

“조건은 어떻게 하지?”

“모든 생명체. 하다못해 벌레 한 마리가 접근해도 알아차릴 수 있도록 만들어줘.”

“그런 촘촘한 결계를 유지하는 데엔 굉장한 마력이 소모될 거야. 괜찮겠어?”

“다른 건 몰라도 내 마나통은 두 스승님의 수준과 동일해. 마음껏 가져다 써. 그리고 어차피 몇 시간만 유지할 수 있으면 돼.”

아스티나가 내 마력 회로의 조력으로 만들어낸 결계가 푸르스름한 반구를 그리며 펼쳐졌다.

“사실은 반구가 아니라 구야. 지하까지 감당할 수 있도록 설계했어.”

“수고했어. 이제부터는 기다려보자고.”

만약 대수림의 어떤 야수가 아이들을 납치해가고 있는 것이라면 무조건 이 결계에 반응할 것이다.

만약 결계에 걸린 제약을 모조리 무시하고 숨어들 수 있는 야수가 있다면, 그런 대단한 수준으로 제르비어스와 아스티나를 건드리지 않고 아이들만 데려간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 고강했던 마녀 일레인 쿠디슈조차 광멸복마진을 뚫는데 적지 않은 시간을 소요해야 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준비를 마친 뒤, 미지의 습격자를 붙잡을 각오를 했다.

“뭐야! 대체 어떻게?”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이들이 사라지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는데, 아스티나와 내가 만들어낸 결계는 일말의 반응도 보이질 않았다.

그 어떤 생명체도 결계 안으로 들어오거나 나간 적이 없다는 소리였다.

우리는 갖은 수를 다해 굴 내부를 계속 헤집고 다녔으나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고, 습격자의 흔적도 찾아낼 수 없었다.

“젠장. 귀신에 홀린 기분이야.”

굴에 돌아온 지 어느덧 24시간이 흘러갔다.

해가 지지 않는 이 대수림에선 넋 놓고 있다가 시간 감각을 놓쳐버리기 일쑤였다. 단탈리온이 매번 알람처럼 시간을 일러주지 않았더라면 상황은 더 안 좋았을 것이다.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그건 아스티나와 제르비어스도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이제 남은 아이는 단 한 명.

캉이뿐이었기 때문이다.

“형아, 나…… 갑자기 머리가 아파.”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우리는 이제 캉이마저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다.

*

모든 아이들이 사라지고 유일하게 남은 캉이마저 쓰러졌다. 캉이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캉이야, 정신 차려봐.”

이 일련의 사태에 가장 괴로워한 것은 아스티나였다. 아이들과 함께 등반하면 안 되느냐고 고집을 피울 정도로 애정을 보인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돌봄을 갈구하는 아이들의 존재는 자꾸만 지구에 남겨두고 온 여동생 상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나를 쿡쿡 찔러대고 있었다.

마치 심마에 빠져서 헤매었던 그때처럼.

“어쩌면 이것 때문인지도 몰라.”

나는 캉이의 머리맡에 놓인 봇짐을 가리켰다. 그 안엔 나에게 빌려주는 바람에 양이 많이 줄어든 붉은 돌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캉이가 빨강이라고 부르는 정체불명의 돌.

단탈리온은 이것을 어떤 짐승의 ‘배설물’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사라지기 전에 일괄적으로 두통을 호소했잖아. 이 붉은 돌에 장시간 접촉해서 생기는 전염병 같은 건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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