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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90화 (90/300)

#090. 뜻밖의 면회 (1)

멍하니 있던 아이들은 허겁지겁 각자의 방으로 달려가 새총을 꺼내왔다.

“여긴 좁으니까 밖으로 나가는 게 좋겠다.”

무너진 피라미드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적당한 장소가 있었다.

“일렬로 서. 맨 앞줄부터 내가 조종하는 나뭇가지를 그 새총으로 맞히는 거야. 알았지?”

“캉!”

“맞추는 데 성공한 사람은 한 발 더 쏠 기회를 줄게. 하지만 실패하면 맨 뒤로 돌아가서 차례를 기다리는 거다. 그럼 시작!”

아이들은 이 놀이에 홀딱 빠졌다.

캉이는 세 번 연속으로 나뭇가지를 떨궈내는 데 성공했지만 다른 아이들은 캉이만큼 훌륭한 저격실력을 갖고 있진 못했다.

하지만 잽싸게 뒷줄로 돌아가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발을 동동 구르며 신나했다.

이 놀이엔 세 가지 장점이 있었다.

하나는 대수림에서 야수를 마주쳤을 때 표적을 향해 정확히 붉은 돌을 내쏘는 훈련이 된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과녁을 조종하는 내가 가만히 서서 체력을 온존시킬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장점은 이 허공섭물이 나만 보유한 능력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나는 은발의 마검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스티나. 다음은 네 차례야.”

“머리를 잘 썼네?”

내 손바닥을 한 번 마주친 아스티나는 전의에 가득 차서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들을 다시 허공으로 띄웠다.

고정된 채 날아다녔던 내 방법보다 훨씬 극악한 방법으로.

“누나! 너무 어려워. 왜 뱅글뱅글 도는 거야?”

“캉!”

아이들이 볼멘소리를 내어도 엄격한 교관으로 빙의한 아스티나는 절대 봐주지 않았다.

옆에서 지켜보기론 아이들을 훈련시키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경지도 갈고 닦으려는 목적도 채우려는 것 같다.

그렇게 두 시간이 흘렀고 아이들은 결국 지쳐서 나가떨어졌다.

내가 고안한 새총놀이의 효과는 정말 대단했다.

어째서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들이 캣휠이나 자동으로 굴러다니는 깃털 장난감을 하나씩 장만하는지 알 것 같았다.

“다들 잠들었어.”

각자의 방에 아이들을 재우고 돌아온 아스티나가 손뼉을 툭툭 털었다.

내 예상보단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아이들을 기진맥진하게 만들어서 이불만 덮어주고 온 게 아닐 수도 있다. 머리맡에서 자장가라도 불러주었을까.

“아스티나, 생각보다 애들이랑 잘 지내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나보다 어린 인간을 만나본 적이 없으니까. 음. 슈바인, 너는 동생이 있었다고 했지?”

“……과거형으로 말하지 마. 아직 감옥 바깥에 멀쩡히 있다고.”

“어쨌든. 나는 삼월초원의 막동이였어. 귀혼산장에도, 백묘탑에도 나보다 어린 사람은 없었거든.”

그런 막동이에게 이제는 동생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까 너 나보다도 한참 어리네? 난 스물여섯에 감옥에 잡혀왔다고. 오빠라고 불러보렴, 아스티나.”

“웃기지 마. 내가 블랙홀에서 헤맨 시간이 몇 년이라고 생각해? 그것까지 따지면 넌 내 손자뻘도 안 돼.”

“크흠.”

본전도 못 찾았다. 화제를 돌리는 것이 낫겠어.

“넌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 애들이랑 놀아줄 때 네 눈빛을 보면 알거든.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거 아니야?”

아스티나는 정곡을 찔린 표정이었다.

“들켰네. 캉이를 처음 봤을 때부터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네가 그랬지? 다른 죄수들을 보면 이름과 종족, 형량이 뜨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고.”

“어. 그리고 그건 캉이와 꼬마들도 마찬가지야. 이 감옥의 죄수 명단에 올라있지 않다는 거겠지.”

“아빠와 엄마는 나를 낳았을 때 모습 그대로의 젊음을 유지했어. 두 분이야 경지가 대단해서라고 쳐도 다른 죄수들 역시 마찬가지였지. 감옥 안에서는 육체의 시간이 멈춘다고 했거든. 그래서 그 누구도 자라지 않는다고. 머리카락이나 수염조차 자라지 않는다는 걸 자연스레 알게 됐지.”

푸르가토리움은 형벌의 공간이다.

그 어떤 죄수도 죽을 순 있어도 나이를 먹진 않는다. 세포를 유지하기 위해서 음식을 섭취할 필요조차 없는 공간이 이 감옥인 것이다.

“그런데 난 감옥에서 태어나고 자라났어. 매년 키가 자랐고, 머리카락도 길어졌지. 나를 둘러싼 모든 인간이 성장하지 않는 곳에서 오직 나만이 ‘생장(生長)’을 했어. 그래서 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 나는 누구지? 나는…… 뭐지?”

인간이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절대 조건 중 하나는 자아정체감이다. 그런 정체감은 보통 주변을 거울로 삼아 형성되기 마련.

하지만 아스티나는 까마귀 속에 홀로 던져진 백조처럼 특수한 존재였다.

천마신교의 소교주.

백묘탑의 아가씨.

그런데 3층에서 비로소 만나게 된 것이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용사의 눈에 ‘형량’이 파악되지 않는 아이들을.

“어쩌면 나는 그렇게 이상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위안이 되네.”

“…….”

“슈바인.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나한테 한 말이 뭔 줄 알아? 눈을 뜨면 또 함께 놀자는 거였어. 보통은 ‘내일’도 같이 놀자는 말을 할 텐데.”

밤을 거세당한 대수림.

이 층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내일’이란 것을 모른다.

“내 처지도 그랬어. 설공을 피해 달아나며 계속 과거로 무한 회귀하던 시기의 나는 어떤 시간선에도 정착하지 못할 운명인가 싶었지. 언젠가는 내가 바라던 내일로 넘어갈 수 있을까. 그런 두려움이 나를 좀먹고 있었어.”

아스티나의 말투는 애처로웠다.

“이 아이들이 너무 안됐어. 우리와 계속 함께 갈 순 없을까?”

간절한 그 질문에 난 돌멩이를 씹는 기분으로 답변해야 했다.

“교도관장은 내 등반에 분명히 제약을 걸었어. 한 층마다 한 명씩만 데려갈 수 있다고. 너와 단탈리온 중에서 누군가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었던 건 일종의 억지였어.”

그런 억지가 여러 번 통할 리 없다.

열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내 친구목록에 넣어 감옥을 오르는 건 아무래도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교도관장이 허락한다 해도 다른 교도관들이 그냥 두고 볼 리 없었다.

제르비어스가 나무 위에서 뛰어내렸다.

기색을 보아하니 아마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스티나, 뭔가 중요한 걸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닌가.”

“뭐?”

“우린 아직 3층 대수림에서 벗어날 방법도 알아내지 못한 상황이다. 밖에는 여전히 야수들이 우글거리고 있고.”

“그 야수들에게서 우리가 죽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가 뭔데? 캉이가 봉화를 피우고 우릴 데리러 와줬기 때문이잖아.”

“그래. 분명히 고마운 일이지.”

제르비어스는 아스티나의 날선 지적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게 고마운 녀석들이니 더더욱 우리와 함께 갈 순 없는 거다. 위층에 올라가면 점점 강력한 죄수들이 있을 거고, 이보다 더 험악한 환경이 그 죄수들을 괴롭히고 있겠지.”

“하지만…… 이 아이들을 두고 떠나야 한다고?”

마왕이 고개를 돌려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나는 화룡도에서 열쇠를 얻은 후 함께 올라가자고 제르비어스에게 손을 내밀었었다.

그건 녀석의 힘이 다음 층, 그 다음 층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만큼 강력했기 때문이다.

‘모두와 함께 올라오진 못했어.’

뚠 아티르를 비롯한 7번 방의 죄수들은 화룡도에 남겨둔 채 작별을 해야 했다.

이 감옥에서 등반이라는 것은 그만큼 위험한 거니까.

제르비어스는 바로 그 지점을 설명했다.

“아이들은 차라리 이 3층에 남아 있는 것이 행복할 거다. 적어도 이곳엔 안전한 집이 있고, 야수들로부터 몸을 지킬 붉은 돌도 있으니까. 더 위험한 환경으로 녀석들을 데리고 갔다가 우리가 변이라도 당한다면? 남겨진 꼬마들이 무슨 수로 자신을 지킬 수 있겠나.”

“그건…….”

아스티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그만큼의 무게를 담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 것이다.

제르비어스는 계속 후회해 왔을지도 모른다.

용사들에게 잃어야 했던 자식들을 마왕성 안에 두지 않았더라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 떨어트려 놓았더라면, 그들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자세한 사연은 아스티나에게 말한 적 없지만 마왕의 표정에는 그런 진중함이 실려 있었다.

“형아들, 모해? 싸워?”

머리를 긁적이면서 굴에서 나온 것은 캉이였다.

캉이의 눈엔 천진한 궁금증이 돋을새김되어 있었다.

“캉이야, 잠들었다가 깨어난 거야?”

“아니. 그냥 눈만 감고 있었어. 난 친구들이랑 달라서 잠자지 않아도 괜찮거든.”

왜일까.

누군가는 잠든 아이들을 지키는 불침번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일까.

확실히 이 소년은 다른 아이들과 달리 특별하다.

마치 야생동물처럼 “캉!”만을 외치는 아이들과 달리 우리와 대화를 할 수 있으며, 잠도 잘 필요가 없다 한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닐까?

“형아, 왜 그렇게 봐?”

이렇게 뚫어져라 쳐다봐도 정보창이 떠오르진 않는다.

하지만 캉이가 무언가 ‘스킬’을 갖고 있다면? 그렇다면 내겐 그걸 알아낼 수 있는 우회로가 존재한다.

“캉이야, 형아랑 친구할까?”

내 제안이 뜬금없다고 생각했는지 캉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응? 우리는 이미 친구 아니야?”

“맞아. 그렇지. 하지만 서로 친구가 되겠다고 입으로 말하는 것도 의미가 있거든.”

캉이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형아랑 친구할게!”

그러자 기다렸던 메시지가 눈앞에 떴다.

[소년 캉이가 새로운 친구 목록에 등록되었습니다. 이제 그의 스킬을 빌려 쓸 수 있습니다. 스킬의 위력은 시전자의 숙련도에 정비례합니다.]

자, 어디 무엇을 갖고 있는지 볼까.

나는 캉이에게서 빌려올 수 있는 스킬목록을 재빨리 훑기 시작했다.

[새총 쏘기 Lv. Max]

[땅굴 파기 Lv. 8]

[나무 타기 Lv. 9]

하지만 초능력의 영역에 있는 ‘숨겨진 스킬’ 같은 것은 없었다. 오랫동안 대수림을 누비는 야수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익힌 생존법들이 스킬의 형태로 만들어져 있을 뿐이었다.

제르비어스가 내게 전음을 보냈다.

- 친구 신청을 했다고? 이 어린 녀석에게 뭔가 빌릴 만한 기술이 있을 리가 없잖냐.

- 그것 때문만은 아니야. 파천황의 권능으로 친구가 되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바로 곁으로 순간이동할 수 있잖아.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바로 대응할 수 있게 되는 거다. 다른 두 동료에겐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3층 대수림 안에서 캉이는 나와 실시간으로 연결돼 있을 거다.

나는 귓속말과 단체 텔레파시 사용하는 법을 캉이에게 알려줬다.

- 캉이: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면…… 우와! 신기해.

- 슈바인 스트링거: 응. 함께 있지 않아도 여길 통해 대화할 수 있어.

그리고 캉이가 모아온 붉은 돌 10개를 건네받았다.

“형아, 겨우 그걸로 괜찮겠어? 괴물들은 엄청엄청엄청 많아. 이빨도 이따시만 하다고.”

캉이가 양팔을 최대치로 벌리면서 나를 겁주려 했다.

나는 녀석을 안심시켜주기 위해서 붉은 돌을 손가락에 끼운 다음 50미터 정도 떨어진 나무에 대고 쏘았다.

피융!

탄지공으로 날아간 붉은 돌은 나무에 움푹 구멍을 내었다가 다시 내 손바닥으로 되돌아왔다.

“자, 봤지? 형아는 새총이 없어도 이렇게 사용할 수 있고, 탄환을 낭비하지 않아도 돼. 다시 회수하면 되니까.”

“으응. ……그래도 조심해. 특히 다른 괴물들보다 대빵 무서운 애들이 세 마리 있어. 걔네한테는 절대 가까이 가지 마.”

“그렇게 할게.”

나는 이렇게 거짓말을 하며 캉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좀 켕겼지만 어쩔 수 없다.

이번 탐사에서 내 목표물이 그 ‘특별한’ 세 마리라는 점을 알려주면 쓸데없이 걱정만 늘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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