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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89화 (89/300)

#089. 사냥꾼과 사냥감 (5)

- 이 소년의 기억에는 강력한 제약의 주술이 걸려 있습니다. 현재 용사님이 가진 대가로는 알 수 없는 수준의 주술입니다.

“누가 그 주술을 걸었는데? 교도관이?”

- 아닙니다. 소년을 낳은 어머니입니다. 그 어머니는 현재 푸르가토리움의 죄수였으나 더 이상 3층 대수림에 머무르고 있진 않습니다. 제가 알려드릴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예요.

아스티나의 짐작이 맞았다. 캉이는 그녀처럼 이 푸르가토리움에서 태어난 것이다.

하지만 어쩐 일에서인지 캉이를 낳은 죄수는 자식을 홀로 둔 채 사라졌다. 대수림에 없다는 것은 친자식을 남겨둔 채 등반이라도 한 걸까.

나는 이 점을 기억해두고 다음 질문을 꺼냈다.

“빨강이라고 불리는 이 광물은 뭐야? 왜 야수들이 가까이 하려 하지 않는 거고.”

- 그것은 광물이 아니라는 것부터 말씀드려야겠네요. 형태만 돌에 가까울 뿐 구성물질은 유기체에서 떨어져 나온 황화비소를 주축으로 하고 있습니다. 자외선을 흡수하는 성질에다 민감한 후각을 가진 야수들을 질겁하게 하는 페로몬을 흘리고 있네요.

“돌이 아니면…… 뭔데?”

- 쉽게 말해 어떤 짐승의 배설물이라는 뜻입니다.

“으힉!”

나는 자신도 모르게 캉이에게서 넘겨받았던 붉은 돌을 툭 떨어트렸다.

보석이 아니라 똥이었다니.

정체를 알기 위해 혓바닥을 대볼 생각도 하고 있었는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어떤 녀석이 싸놓은 건데?”

-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용사님이 그만한 대가를 갖고 있지 않거든요.

교도관장이 제한할 만큼 중요한 정보라는 거지.

퀘스트의 대상인 층장의 배설물일까.

어쩌면 소피라미드의 벽화에서 보았던 세 야수왕이 그 주인공일 수도 있겠다.

[단탈리온이 당신의 MP를 1,850만큼 가져갑니다.]

잠깐만. 1,850점이나 가져간다고? 그건 내 마력 수치 전체의 5분의 1이나 되는데!

나는 참지 못하고 소심한 항의를 했다.

“야이씨, 단탈리온. 결국 제일 중요한 정보는 안 알려주면서 너무 많이 떼어가는 거 아니냐, 너?”

- 죄송합니다. 삼월초원에서 용사님이 벌인 일 때문에 가격이 많이 올랐어요. 교도관이 화신체로 현신하고 있는 것 때문에 정보 제한이 더 엄격해졌거든요.

후우우.

내가 참아야지. 종이쪼가리에게 분풀이해봤자 뭐가 달라지겠나.

“그래. 그 머리가 늘어나는 뱀대가리 녀석. 왜 다른 교도관과 달리 그놈은 자유롭게 층을 돌아다닐 수 있는 거지?”

- 증식하는 밀림의 뱀이 화신체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층장의 자격을 획득한 자가 열쇠를 손에 넣었을 때로 한정됩니다. 기억을 되짚어보세요, 용사님.

“그랬지. 마그마 볼에서 우승하고 열쇠를 얻었을 때 고양이가 현신했고, 설공을 물리쳤을 때 나선기둥이 펜으로 현신했으니까.”

그렇다는 건 자격을 얻은 층장이 그 열쇠를 계속 손에 쥔 채 은둔했다는 뜻이다.

- 상황이 용사님께 좋지 않습니다. 층장은 지금 당장이라도 포탈을 만들어낼 수 있거든요. 그러니 느긋하게 있다가 층장이 다음 층으로 올라가게 되면 시련은 초기화되고, 용사님께선 긴 시간 동안 대수림에 묶여있을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되선 곤란해. 방법을 찾아낼 거야.”

그때, 굴 안에서 머리가 산발이 된 아스티나가 허겁지겁 뛰쳐나왔다.

그리고 한가로이 단탈리온과 수다를 떨고 있는 나를 보더니 벌컥 역정을 냈다.

“슈바인! 이제 네 차례야!”

“벌써? 한 시간도 안 지난 것 같은데.”

“무슨 소리! 단탈리온한테 물어봐!”

- 용사님, 1시간하고도 12분 13초 흘렀습니다.

“제길. 내가 물어본 거 아니니까 MP 뺏어가지 마라.”

- 서비스로 치겠습니다, 용사님.

나는 단탈리온을 집어넣고 심호흡을 한 번 한 뒤에 굴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덧 익숙해진 통로를 따라 거실로 들어서니 캉이와 아이들이 제자리에서 방방 뛰면서 좋아했다.

“우와, 형아 왔다!”

“형아가 이제 술래야!”

“도망가자!”

굴 안에 내가 등장하자 아이들은 작은 체구를 이용해 온갖 구멍들 속으로 사라졌다.

숨어 있는 아이들을 모두 찾아내지 않으면 나는 계속 술래여야만 한다. 아스티나가 진땀을 뺄 정도로 이 녀석들의 은신술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난 자신이 없다. 질 자신이.”

승부가 걸린 것이라면 나는 가위바위보에서도 최선을 다 한다. 종목이 무엇이든, 상대가 누구든 물러설 수 없다.

각오해라, 애송이들아.

나는 눈을 감고 기감을 펼쳐내 아이들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

“허억, 허억, 허억.”

“그래서 2시간 넘게 술래를 했다고?”

제르비어스는 체력이 완전히 방전된 나를 안쓰럽게 내려다봤다.

“저 녀석들…… 도무지 지치질 않아. 어떻게 십 분도 쉬지 않고 술래잡기를 할 수 있지?”

“원래 꼬맹이들은 그렇다. 그 왕성한 활동력을 감당하려면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하지. 육아가 그렇게 쉬운 줄 알았냐?”

우린 굴 근처에서 가장 높은 나무의 가지를 벤치 삼아 앉아 있었다. 제르비어스가 나와 아스티나에게 아이들 상대를 맡기고 굴 바깥에 나와 경계를 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보송보송한 마족의 보라색 피부를 보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왜 팔자에도 없는 육아를 갑자기 하게 된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어째서 너만 쏙 빠져 있는 거야? 엉?”

“너도 봤지 않냐. 꼬맹이들은 내 뿔을 무서워해.”

“그거야 처음 며칠간만 그랬을 뿐이고. 이제는 널 별로 겁내지 않아. 네가 근엄한 표정만 안 지으면 술래잡기도 할 수 있다고.”

실제로 캉이와 몇몇 용감한 아이들은 마왕의 뿔을 건드려보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하지만 제르비어스는 아이들이 반경 1미터 안으로 접근하면 마치 영역을 침범당한 고양이처럼 으르렁댔다.

“쿠와와와왁!”

그러면 담이 작은 아이들은 질겁하며 달아났으나 해꼬지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마왕의 소스라치는 반응 자체를 즐기는 아이들도 생겨났다.

그래서 마왕은 아이들이 올라오기 힘들 정도의 높은 나뭇가지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것이다.

“넌 동물들은 그렇게 좋아하면서 왜 이 사랑스럽기 짝이 없는 꼬마애들은 싫어하는 거냐.”

그러자 마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1층 화룡도에서 자신의 과거를 담담하게 내뱉었을 때 이후로 볼 일이 없었던 눈빛을 하고선.

“기억할지 모르겠으나 마왕성에 군림했을 당시 내게는 자식들이 있었다.”

“어…… 그랬었지.”

“나는 어린 아이들을 싫어하지 않아, 용사.”

굴 밑에서 아스티나의 비명 소리와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며칠간의 경험으로 나는 저 웃음이 어떤 상황에서 나오는지 잘 알고 있다. 술래의 손길을 피해내서 달아나는 데 성공했을 때 아이들이 내는 웃음소리다.

“내가 너를 만졌을 때 어떻게 됐었는지 알지 않나. 그리고 강물에 발을 담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얘기한 적이 있지.”

“이런. 내가 실수했다, 제르비어스. 미안.”

“그래. 네놈은 워낙 축복받은 몸뚱이라서 괜찮을 수 있었을지 몰라도…… 저 꼬맹이들은 나약하기 짝이 없어. 우연이라도 내 피부와 접촉한다면 저주를 견디지 못해서 죽게 될지도 모른다.”

대수림의 안쪽에서 불어오는 열풍이 내 앞머리를 간지럽혔다.

“층간 구역에서 네가 보여준 그 움직이는 그림들 말이다.”

“어, 철왕전기 제트카이저.”

“그걸 꼬맹이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그래. 나도 딱 저 아이들 나이 때에 그 애니메이션에 푹 빠졌었으니까.”

“나에겐 변사들처럼 어린 아이들의 혼을 쏙 빼놓을만한 말솜씨 같은 건 없으니까.”

제르비어스의 자식들은 용사 일행에게 납치당했고, 잘린 머리는 마왕성의 정문 앞에 효수되었다.

어쩌면 녀석이 그토록 감옥 안에서 ‘가상의 이야기’에 집착했던 건 용사들에게 잃어버려야 했던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할 말을 잃고 우두커니 서 있자 제르비어스는 어깨를 으쓱 한 다음 말했다.

“따라와라, 용사. 네가 꼭 봐야할 것이 있어.”

나무에서 훌쩍 뛰어내린 제르비어스는 굴로부터 조금 떨어져 있는 공터로 나를 데려갔다.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숨 막힐 정도로 슬픈 광경이었다.

공터에는 일곱 개의 나무 십자가가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었다.

그 십자가에 걸려 있던 것은 이 푸르가토리움에서 내가 지겹도록 많이 목격한 어떤 쇠붙이였다. 원형으로 만들어진 굵은 쇳덩이.

지금 내 팔목에도 달라붙어 있는 속박.

“이건…… 죄수의 수갑들이잖아.”

총 일곱 개의 수갑이 덩그러니 십자가의 중심에 걸려 있었다. 죽음의 신이 걸어준 목걸이처럼 보이는 풍경이었다.

제르비어스는 순찰을 돌다가 이 장소를 발견했다고 했다.

“의심의 여지가 없어. 여기는 묘지다.”

“캉이와 그 친구들을 지켜줬었다는 죄수들의 수갑인가.”

아이들이 ‘어른들’이라고 불렀던 죄수들의 흔적이 쓸쓸히 매달려 있었다.

그중에 세 개의 수갑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서리이끼가 달라붙어 검은색 부분이 잘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잡아먹힌 거겠지?”

내 질문에 제르비어스는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바깥에는 야수들이 득시글댄다. 습격을 당해서 사망을 하게 되면 그 자리가 바로 녀석들의 만찬 장소가 되는 거야. 뼛조각도 찾기 어려웠을걸.”

하지만 포식의 욕망에 휘둘리는 야수들도 씹어 삼킬 수 없는 게 있었던 것이다.

수갑.

“저 어린 것들이 대수림을 헤매면서 이것들을 모두 주워왔다는 거잖아.”

자신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돈독한 관계를 쌓은 죄수들이 고깃덩어리로 변한 참혹한 현장.

캉이와 친구들은 그 끔찍한 흔적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자신들을 지켜주었던 죄수들의 징표를 거둬 들여온 것이다.

무려 일곱 번이나.

“장하네. 녀석들한텐 꽤 무거웠을 텐데.”

이름 모를 어떤 죄수가 차고 있었을 수갑을 쓸어내리는 내게 제르비어스는 이렇게 말했다.

“이게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슈바인.”

푸르가토리움은 각 층마다 죄수들에게 형벌을 가한다.

나는 등반죄수로서 그 형벌들을 격파하거나 우회해서 층장의 열쇠를 얻어내 왔다.

그렇다면 3층 대수림의 형벌은 무엇일까.

‘아무런 죄 없이 감옥에서 헤매고 있는 이 아이들을 지켜내라는 뜻인가.’

나는 내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툭툭 두들기며 다짐했다.

“나는 사냥꾼이야. 사냥감이 되진 않겠어.”

*

“술래잡기는 이제 그만하자.”

굴로 되돌아온 내 말에 캉이와 아이들의 표정은 사색이 되었다.

“어째서?”

“캉!”

“캉!”

곧 거센 항의에 부딪혔으나 내게는 아이들의 불만을 잠재울 묘안이 있었다.

나는 양손에 들고 있던 나뭇가지 한 묶음을 허공에 던졌다. 대략 스무 개의 얇은 나뭇가지가 자유낙하로 추락하다가 중간에 스르륵 멈춰 섰다.

그것들을 공중에 멈춰 세운 것은 층간 구역에서 갈고 닦은 허공섭물이었다.

여러 개를 동시에 컨트롤 하는 것은 그만큼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이었으나 다행히 나뭇가지의 무게는 아주 가벼웠다.

“우와아아아!”

캉이와 아이들은 자신들의 주변을 요정처럼 날아다니는 나뭇가지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마치 난생 처음 요람에서 자동 모빌을 본 신생아들이 꺄르륵 웃는 것처럼.

“이제부터 술래잡기 대신에 새로운 놀이를 하는 거야. 다들 새총 갖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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