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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88화 (88/300)

#088. 사냥꾼과 사냥감 (4)

캉이와 아이들의 옷차림은 거의 누더기에 가까웠다. 본래 하얀색이었을 표면이 회색 티끌과 황토색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핵전쟁이 벌어져서 지구가 멸망한다면…… 그때 살아남는 아이들이 아마도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우울한 속내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 나는 화제를 돌릴 거리를 찾았다.

어중간한 위치에서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르비어스를 가리키며 물었다.

“캉이야, 그럼 네 친구들은 저 형아를 보고 뭐래?”

“캉.”

“캉.”

“캉?”

아마 내 말을 알아듣는 건 아이들에게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저마다 제르비어스를 바라보며 한 마디씩 보탠 것이다.

제르비어스 역시 대답이 궁금한지 귀가 쫑긋 세워져 있었다.

“어…… 저 형아는 좀 무섭게 생겼대. 뿔 때문에.”

“뭐라고! 이 건방진 꼬마들아. 난 마왕성 미남 콘테스트에서 1위도 했던 몸이란 말이다.”

제르비어스의 이마에 혈관이 솟아올랐다. 생각보다 자존심이 많이 상한 모양이다.

나는 발끈하는 마왕을 가까스로 제지하며 물었다.

“그 콘테스트, 익명 투표였어?”

“어? 왜 익명으로 투표를 하냐. 거수로 했지.”

“……그럼 그게 제대로 된 콘테스트냐? 두들겨 맞고 싶지 않은 바에야 모두가 너를 꼽았겠지.”

그야말로 신뢰도가 형편없는 콘테스트다.

그런데 캉이가 부연설명을 했다.

“너무 울적해하지 마, 뿔달린 형아. 영 못 봐줄 얼굴은 아니거든.”

“이익?”

“다만 내 친구들은 나보다 훨씬 더 괴물들을 무서워 해. 괴물들 중에서는 뿔이 달린 것들도 많고. 그래서 더 그럴 거야.”

괴물.

캉이는 대수림을 배회하는 야수들을 일컬어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기억을 되짚어보니 이마나 정수리에 뿔을 단 채 돌진해오는 야수들도 여럿 있었던 것 같다. 버팔로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제르비어스의 뿔이 충분히 아이들의 트라우마를 자극시킬 수 있다.

“마왕, 그거 탈부착 안 되냐?”

“되겠냐? 뿔의 크기와 모양은 마족의 자부심이라고.”

*

우리는 마음을 조금 편안히 먹고 캉이의 안내를 따라 굴 내부로 걸어 들어갔다.

아이들이 오가던 통로는 꽤 비좁아서 유독 제르비어스는 조금 애를 먹었다. 천장에서 종유처럼 튀어나온 돌덩이에 뿔이 몇 번이나 걸려서 덜컥댔기 때문이다.

“캉!”

그럴 때마다 몇몇 아이가 제르비어스를 보며 키득거릴 정도였다.

나는 이마에 힘줄이 돋아나는 마왕을 다독였다.

“그러니까 탈부착되면 참 좋겠구만.”

“네 머리를 탈부착시키기 전에 닥쳐라, 슈바인.”

“애들 앞이잖아. 말을 가려서 해.”

“이익!”

제르비어스와 몇 번 투닥거리고 나니 제법 널찍한 공간이 등장했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복마전의 교주실만 한 크기였다. 천장 곳곳에 뚫린 구멍으로 햇빛이 들어와 시야에도 어려움이 없었다.

변변찮은 도구도 없이 이런 정교한 굴을 만들어 내다니 솔직히 감탄이 나왔다.

화룡도 7번 방의 친구 뚠 아티르가 여길 보았다면 고향처럼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내 이름은 슈바인 스트링거야. 옆에 있는 누나는 아스티나 류. 그리고 저 구석에 벽을 보고 삐져 있는 형아는 제르비어스 폰타인이라고 해.”

거실 역할을 하는 공간에서 일행의 간단한 소개를 마쳤다.

그런 후 우린 캉이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 이전에 다른 어른들을 만난 적이 있었니?”

“응. 하지만 지금은 우리뿐이야. 마지막으로 우리랑 함께 했던 아저씨는…… 이제 없어.”

“그 아저씨도 나처럼 손목에 이런 걸 차고 있었어?”

“맞어! 그러고 보니 그랬어. 엄청 잘 싸우고 용감한 아저씨였는데.”

캉이와 친구들의 얼굴에 울적함이 내려앉았다. 나는 그 표정에서 크나큰 상실감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아저씨는 어떻게 됐는데?”

“잡아 먹혔어. 괴물들한테. 빨강이가 다 떨어져서 그걸 구하겠다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거든.”

이름 모를 그 죄수는 홀몸으로 굴의 영역 바깥으로 탐험을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고 했다.

대수림의 야수들이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생각해보면 그 죄수가 아무리 뛰어난 강자였다 하더라도 홀로 살아남긴 어려웠을 거다.

야수화된 죄수들의 정보창엔 ‘트랜스 상태’라는 표현이 있었다.

이것은 1층 화룡도에서 7번 방의 디멜 무바크가 해준 설명과도 맞아 떨어진다.

‘여긴 최하급 죄수들이 있는 화룡도. 다음 층으로만 올라가도 초마인(超魔人)들의 구역이야. 그 위로는 반인반수, 불사자, 거인…….’

이 대수림은 아마 디멜이 언급했던 죄수들 중에서 ‘반인반수’가 배정되는 층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수갑과 족쇄를 찬 야수들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

나는 그때 반인반수라는 표현이 키메라처럼 인간과 야수가 하나로 합쳐진 생물일 것이라 추측했었다.

하지만 내가 틀렸던 것 같다. 합성 생물인 올쿠레 켄타는 3층 대수림이 아닌 1층 화룡도에 배정받았으니까.

라이칸스로프. 늑대인간.

인간이었다가 특정 조건이 갖춰지면 야수로 돌변하는 ‘변신종족’을 일컫는 말이 아니었을까.

‘아이들을 지켜준 죄수는 어째서 트랜스에 빠져들지 않고 멀쩡할 수 있었을까. ……변신에 어떤 법칙 같은 게 있는 걸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캉이야, 마지막으로 그 아저씨를 본 게 언제인지 기억할 수 있겠어?”

“응, 기억해. 엄청엄청엄청 오래 됐어.”

“더 자세히 말해줄래? 몇 밤이나 지났는지 말야.”

그러자 캉이와 친구들이 일제히 고개를 갸웃했다. 되돌아온 질문은 내게 중대한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밤이 뭔데, 형아?”

나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3층 대수림에 떨어진 이후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되짚어 보았다.

숲 속에서 나무에 새겨진 발톱 자국을 발견하고, 개울을 찾아 헤매다가 그곳에서 갈가베니온이라는 늑대 야수를 만났다. 그리고 야수들에게 한참을 쫒긴 끝에 피라미드를 발견해 휴식한 후…….

“아스티나, 우리가 그 피라미드에 몇 시간이나 있었어?”

“글쎄. 최소한 여섯 시간은 넘었던 것 같은데.”

“그렇지?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내 상처가 완전히 아물고, 텅 빈 마력 회로가 다시 차오를 때까지 걸린 시간은 결코 적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쯤 바깥에선 노을이 뉘엿뉘엿 지고 있어야 한다. 한데 아스티나의 머리 위에선 또렷한 태양빛이 구멍을 통해 내리꽂히고 있었다.

정확히 수직으로 내리쪼여지는 빛줄기.

태양이 아직도 천공의 한가운데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소리였다.

왜 지금까지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을까.

“캉이야, 저 하늘 위에 떠 있는 게 뭔지는 알지?”

“응, 해잖아.”

“저 해가 땅 밑으로 사라진 적은 없어? 그리고 주변이 캄캄해진 적도?”

그러자 캉이는 해맑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한 번도 그런 적 없는데. 해는 늘 우리 머리 꼭대기에 있는 걸.”

“캉!”

“캉!”

“다른 캉이들도 그렇대.”

비로소 많은 것이 이해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개념을 알고 있던 캉이가 어째서 ‘밤’이란 단어에 고개를 갸웃했는지.

시간관념에 대해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오래’라는 표현밖에 쓸 수 없었는지.

“그렇구나. 밤을 본 적이 없는 거야.”

푸르가토리움의 3층 대수림.

이곳은 영원히 해가 지지 않는 저주 받은 밀림이었다.

*

“나는 여기에서 깨어났어.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겠고. 엄청엄청 오래 전이라는 느낌만 있는데?”

캉이가 기억하는 최초의 순간은 돌무더기 위에서 눈을 뜬 것이었다. 그때 이미 지금의 육체를 갖고 있었으며 그 이전에 어디에서 무얼 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백지처럼 텅 빈 상태로 대수림 한복판에서 눈을 뜬 것이다.

“괴물들이 너무 무서웠어. 말도 안 통하고…… 모두가 캉이를 잡아먹으려고 덤벼들었거든.”

반짝임이 예뻐서 주워 갖고 다니던 빨강이가 아니었다면 진작 야수의 한 끼 식량이 되었을 것이었다.

야수들이 그것에 가까이 오려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캉이는 생존을 위해 붉은 돌을 필사적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처음엔 덩치가 큰 야수를 만나면 모은 돌을 한꺼번에 내던진 후 달아나서 고생했던 적이 많았다.

이글거리는 태양도 위협적이었다.

그래서 무너진 피라미드 밑에 굴을 파는 일도 시작했다.

“혼자서는 너무 힘들었어. 한 번은 커다란 돌이 무너져 내려서 깔릴 뻔했거든.”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밀림 속에서 어린 소년은 홀로 고독과 싸워야 했다.

누군가 친구가 있어주길 바랐다.

놀랍게도 캉이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캉!”

괴물에게 잡아먹히지 않은 아이들이 하나둘 캉이의 굴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몇 명은 야수들에게 잡아먹히기 직전 캉이가 새총으로 물리쳐 구해내기도 했다. 그렇게 지금의 열 명이 살아남게 된 것이다.

이름조차 갖고 있지 않았던 캉이는 자신들을 향해 외치는 친구들의 ‘발음’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았다.

그것이 세계가 자신을 향해 말을 거는 유일한 한 글자였으니까.

“정말 기적적인 일이네.”

무언가를 먹지 않아도 되는 푸르가토리움의 특수한 상황과 야수들의 크립토나이트라 할 수 있는 돌의 존재 덕분에 지금까지 버텨온 것이다.

캉이를 비롯한 아이들의 전투력은 보잘 것 없었다.

마법이나 주술 같은 능력은커녕 근력 또한 그 나이대의 평범한 아이들이 갖고 있는 것을 벗어나지 못했다.

대수림의 야수까지 갈 필요도 없다. 1층 화룡도의 16번 방장인 코볼트 콩파스 한 녀석만 있더라도 열 명의 아이들은 무참하게 몰살당할 거다.

“캉!”

한 아이가 내 허벅지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먼지가 잔뜩 일어나는 굴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머리카락은 떡 져있고, 양 볼엔 땟국물이 흐르고 있었으나 눈빛만큼은 초롱초롱했다.

나는 캉이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방금 이 애가 뭐라고 한 거야?”

“떠나지 말아달래. 우리랑…… 같이 놀자고.”

여자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묶어주고 있던 아스티나의 손짓이 우뚝하고 멈추었다. 그녀는 무언의 눈빛으로 내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 마.’

나는 등반죄수다.

결국엔 대수림 어딘가에 있을 층장을 찾아내어 열쇠를 건네받아야 하는 목표를 갖고 있고, 그것을 얻어내면 지체 없이 4층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이 존재는 층장이 아닙니다.]

캉이를 비롯한 아이들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생겨나는 메시지였다.

혹시나 기대해보았으나 이 굴에 모여 사는 아이들 중에 층장은 없었다. 결국엔 굴 바깥으로 탐사를 해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지금의 아이들에게 말해주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아주 오래 전 놀이터에서 상희를 업고 우두커니 지는 해를 바라보았던 한 소년이 자꾸만 생각나서.

“그래. 형아랑 누나들이 너희를 지켜줄게.”

내가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자 아이는 싱긋 웃었다.

*

마력 수치가 완전히 회복되자 나는 굴에서 슬쩍 빠져나왔다.

몇 가지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탈리온.”

- 네, 용사님. 물어보십시오.

마도서 단탈리온은 인벤토리가 답답했다는 듯이 기쁘게 응답했다.

녀석에겐 표정을 지을 눈과 입이 없었으나 글씨를 만들어내는 속도와 리듬에서 흥분을 느낄 수 있었다.

“캉이의 정체는 뭐지? 어떻게 저런 평범한 아이가 이런 무시무시한 층에 있을 수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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