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7. 사냥꾼과 사냥감 (3)
“캬아아아아아!”
“우워어어어어!”
지긋지긋한 추격전이 다시 시작되었다.
지난번보다 더욱 많은 숫자의 야수들이 떼로 몰려오고 있었다.
“대체 몇 마리나 있는 거야?”
처음 야수들에게 집단 공격을 당했을 때는 당황해서 일단 몸을 빼내는 도주 말고는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이젠 미리 준비도 하고 있었던 데다 한 번의 경험이 있어서 포위를 당해 혼쭐나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볼 여유가 있었다.
선두에서 땅을 박차는 야수들의 속도는 대단했다. 아우토반 위를 달리는 슈퍼카만큼이나 빨랐다. 뼈와 살로 이루어진 생물이 저렇게나 민첩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무엇보다 왜 저놈들은 지치지도 않는 걸까.
“야이씨! 대체 뭘 얻을 게 있다고 그렇게 쫓아오는 거야, 엉?”
여전히 대화는 통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말을 듣고도 무시하는 것일까 생각했는데 기색을 보니 그렇지 않았다.
진짜 야생동물이 그러하듯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으르르르르.”
그리고 입가에 침이 흘러 넘쳐 턱에 고이고 있다.
분명하다.
저 녀석들은 우리를 ‘먹고’ 싶어 한다.
발톱 공격은 주로 우리의 다리와 몸통을 향하는데 기동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거리가 가까워지면 지체 없이 이빨을 들이댄다.
“이거나 먹어랏!”
나는 가까이 다가오는 야수들을 향해 용사전용기인 축공탄을 지뢰처럼 던져놓았다가 터트렸다.
퍼어어어엉!
일전의 경험처럼 마력 수치가 바닥나선 곤란했기에 스킬을 남발할 수 없었다.
고맙게도 가끔 아스티나가 그래비티 잽을 날려 야수들을 견제해 주었다. 가장 기동력이 떨어지는 제르비어스는 선두에서 도주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캬아아아아아!”
약이 올랐는지 야수들은 나무를 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야수들은 포유류의 형태를 하고 있어서 꼬리를 갖고 있었는데, 그 꼬리를 나무에 휘감은 다음 한 바퀴 회전해 피칭볼처럼 날아오기도 했다.
“우린 맛없어, 인마!”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1층과 2층의 죄수들을 돌이켜 봤을 때 푸르가토리움의 죄수는 무언가를 먹을 필요가 없다. 허기도 느끼지 않는다.
내가 화룡도에서 흙을 퍼먹었던 것은 HP 스탯을 키우기 위해서였지 배가 고파서가 아니었고, 참월의 마녀 일레인이 달맞이 꽃차를 마셨던 것은 죽어간 어머니들에 대한 추모 의식이었다.
물론 차카 도기노브 같은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녀석이 보인 식탐 또한 내게 고통을 주고 싶어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공격성에 가까웠다.
‘죄수들이 야수로 변신해서 이렇게 식욕에 미쳐 돌아가버리는 건 아무래도 이상해.’
내 직감은 이것이 어떤 초월적 권능에서 비롯된 저주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유력한 범인은 당연히 3층 교도관인 증식하는 밀림의 뱀. 게다가 이 녀석은 지금껏 만나온 두 교도관과 달리 화신체를 줄곧 강림시켜 놓고 있었다.
풀어야 할 의문이 많았다.
‘그러기 위해선 봉화의 지령을 남긴 죄수를 반드시 만나야만 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용사야! 정면을 봐라.”
망토가 찢어져라 달리던 제르비어스의 외침이 귀를 파고들었다.
나는 무영보를 시전해 아스티나를 빠르게 지나쳐 마왕과 보폭을 맞췄다.
그러자 믿기 힘든 광경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쟤네 뭐야?”
누더기 옷을 입은 세 명의 아이들이 우릴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캉!”
짤막한 외침을 남긴 아이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고 나서 남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제르비어스, 진짜 아이들이었어?”
남자 아이 둘에 여자 아이 하나.
세 아이들은 맨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법 뜀박질에 익숙해 보였다. 우리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뒤를 돌아보며 확인하기까지 했다.
우리는 머지않아 정체불명의 아이들을 바짝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러자 아이들이 일사불란한 동작으로 뒤를 돌더니 상체를 수그렸다.
“캉!”
의미를 알 수 없는 외침은 덤이었다. 손짓을 보아하니 우리도 엎드리라는 것처럼 보였다.
영문을 몰랐지만 왠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동료들에게도 질주를 멈추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멈춰선 지점의 한 나무의 굵은 가지 위에서 누군가가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아이들과 같은 옷을 입은 검은 머리카락의 소년.
그가 손에 든 뭔가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옆으로 물러나!”
소년이 들고 있는 것은 나무를 깎아 만든 Y자 모양의…… 새총이었다.
고작 저걸로 뭘 하겠다는 거지? 싶었지만 우리는 좌우로 비켜서 소년의 시야를 확보해주었다.
피유웅!
바짝 당겨진 새총이 무언가를 쏘아냈고, 그것은 달려오던 야수들의 한복판을 향해 날아갔다.
“키에에에엑!”
“캬아아아아!”
그러자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파괴적인 공격 마법을 연달아 퍼부어도 끄떡없던 야수들의 돌진이 멈춰선 것이다.
꼬리를 바짝 내린 야수들이 허겁지겁 뒤로 물러났다.
“으르르르르르.”
눈빛은 여전히 공격성을 드러내고 있었으나 감히 달려드는 녀석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소년이 새총으로 내쏜 것의 정체는 모르겠으나 야수들은 명백히 그것을 극도로 기피하고 있었다.
나뭇가지에서 뛰어내린 소년이 눈앞으로 착지했다.
“형아, 말할 줄 알아?”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우와! 진짜야. 살아 있는 어른이다!”
내 대꾸에 소년은 눈동자를 크게 뜨곤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나와 제르비어스는 이게 대체 무슨 영문인지 몰라 서로만 쳐다보고 있었고, 아스티나는 여전히 청룡패웅검으로 야수들과 대치중이었다.
그러자 소년이 아스티나를 안심시켰다.
“칼 내려도 돼, 누나. 괴물들 내가 쫓을 수 있어.”
그러면서 소년은 어깨에 메고 있던 봇짐에서 진홍색 광채를 내뿜는 돌멩이를 꺼내보였다. 방금 전에 새총으로 내쏜 발사체가 저것인 모양이다.
“끼이잉.”
몇몇 덩치가 작은 야수들은 이제 귀까지 바짝 내리며 땅을 벅벅 긁고 있었다.
저것은 혐오를 넘어선…… 공포의 기색이었다.
“꼬마야, 그게 대체 뭐야?”
“꼬마? 내 이름은 캉이야!”
“그래. 만나서 반가워, 캉이. 그 손에 든 걸로 야수를 쫓아낸 거야?”
“어! 하지만 급히 나오느라 많이 못 가져왔어. 그러니까 쟤들이 저러고 있을 때 도망쳐야 돼.”
캉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턱짓을 했다.
그러자 세 아이들은 알았다는 표시로 “캉!” 하고 외치더니 다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내 친구들을 따라가! 조금만 더 가면 우리가 사는 굴이 있거든. 형아랑 누나를 반겨줄 거야.”
“너는?”
“나는 저 괴물들이 형아를 따라오지 못하게 막아줘야지. 엣헴.”
오른손에 새총을 든 채 왼손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두드리는 캉이였다. 이 녀석에게 묻고 싶은 것이 산더미처럼 많았으나 일단은 몸을 빼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좋아. 얘 말대로 하자고.”
캉이는 제법 비장한 얼굴로 돌아서더니 천천히 뒷걸음질로 야수들과 거리를 벌렸다.
가장 덩치가 큰 대호 야수가 용감하게 한 발 앞으로 나서자 캉이가 벼락처럼 새총을 내쏘았다.
붉은 돌멩이가 날아오는 것을 본 대호가 펄쩍 뛰며 물러서다가 엎드려 있던 야수의 등을 찍어 눌렀다. 도미노가 무너지는 형국.
신기한 일이었다.
캉이에게선 아무런 힘도,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간 남자아이의 기운을 갖고 있었다. 나이는 아홉 살에서 열 살 정도 됐을까?
그러니 캉이가 보여주는 저 기적적인 위업은 모두 붉은 돌에서 나온다고 봐야했다.
옆에서 달리던 아스티나가 뒤돌아보면서 캉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왜 그래, 아스티나?”
“이 애들 팔이랑 다리를 자세히 봐봐. 수갑과 족쇄가 없어.”
“어? 그게…… 진짜네.”
정말 그랬다. 우리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캉이는 물론이거니와 앞에서 우릴 안내하는 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푸르가토리움에서 수갑과 족쇄가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이던가. 이 감옥에 잡혀온 게 아니라는 소리다.
아스티나의 속눈썹에 구슬픔이 살짝 내려앉았다.
“이 애들…… 이 숲에서 태어난 거야.”
*
“도착했어! 여기가 우리가 사는 굴이야.”
우거진 밀림 한가운데 크고 작은 돌무더기로 만들어진 언덕이 있었다.
돌의 형태를 보아하니 거대한 피라미드가 본래의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무너져 내린 것처럼 보였다.
“굴이라고?”
캉이와 아이들은 피라미드 잔해 밑의 땅을 파고 굴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야수들을 피해서 이곳에 모여 지내왔던 것이다.
큼지막한 굴 입구 앞에는 방금 피워 올린 봉화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띠링!
[돌발퀘스트 #8 ‘봉화 찾기’가 완료되었습니다.]
[당신은 단 한 번도 야수와 접촉하지 않은 채 안전한 피신처에서 피어오른 봉화를 찾는 것에 성공하였습니다.]
[보상으로 민첩이 80 오릅니다.]
우르르 생성되는 메시지창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내 시선은 여전히 우리가 달려온 방향의 숲길에 꽂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오면 안전해. 내가 빨강이를 굴 주변에 잔뜩 뿌려놓았거든.”
“빨강이? 그 돌을 말하는 거지?”
“응!”
캉이가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너진 피라미드의 잔해를 한 바퀴 돌아본 제르비어스가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그 꼬마 말이 맞아. 이 일대에 원형으로 붉은 돌이 나무에 하나씩 매달려 있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야수들이 안으로 넘어온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아.”
일단 이 인공굴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면 습격당할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려나.
교도관장이 보여준 메시지에도 ‘안전한 피신처’라는 표현이 있었으니 믿어도 될 것이다.
“여기엔 너희만 있어? 어른들은 없고?”
“응! ‘지금’은 캉이랑 친구들만 있어.”
캉이가 휘파람을 불자 굴 입구에서 역시 지저분한 옷차림의 아이들이 걸어 나왔다. 캉이와 우리를 안내해 준 세 아이들까지 합쳐서 총 열 명이었다.
새로 모습을 드러낸 아이들이 나와 아스티나의 주변을 뱅글뱅글 돌았다. 낯설어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다만 손가락으로 나와 아스티나를 쿡쿡 찔러보면서 신기해했다.
“캉!”
“캉!”
“응,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이들의 말에 대꾸한 것은 캉이였다. 나는 아스티나와 당혹스런 시선을 교환한 뒤 캉이에게 물었다.
“방금 쟤들이 뭐라고 한 거야?”
“응. 형아랑 누나가 지금껏 만났던 어른들 중에서 가장 예쁘게 생겼대!”
“……얘네 방금 캉이라고 한 글자만 말하지 않았어? 그런데 그렇게 긴 의미를 담고 있었다고?”
“뭐야. 지금 내가 거짓말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캉이의 미간이 격하게 좁혀지며 심통이 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그런 표정을 지으면 위협적으로 보인다고 생각하는 듯했으나 워낙 짜리몽땅하고 귀엽게 생긴 용모라서 깜찍하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그때, 아스티나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캉이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런 거 아니야. 누나는 캉이 친구들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들었거든. 그런데 너는 알 수 있는 거니?”
“당연하지! 캉이랑 캉이들은 다 알아들을 수 있지롱.”
“……설마 네 친구들 이름도 모두 캉이인 거야?”
“응! 얘 이름은 캉이. 쟤 이름도 캉이. 저기 머리를 긁고 있는 캉이도 캉이.”
“캉!”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열 명의 아이들이 서로를 캉이라고 부르면 대체 어떻게 구분한단 말인가. 그런데 그게 가능한 모양이다.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캉이만이 우리와 의사소통이 자유로웠다. 다른 아이들은 “캉!”이라는 외마디 발성으로 모든 표현을 대체했는데, 어차피 자기들끼리는 의사소통이 가능하니 이름을 구분할 필요가 지금껏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거기서 한 가지 추리에 도달했고,
그 때문에 조금 슬퍼졌다.
‘이 아이들, 얼마나 오랫동안 자기들끼리만 남겨져 있었던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