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85화 (85/300)

#085. 사냥꾼과 사냥감 (1)

방귀가 만들어낸 풍압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의 파괴력이었다. 제르비어스는 망토째로 날아가 데굴데굴 구르다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조심해!”

내 경고를 들은 마왕은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황금색 갈기의 고릴라를 향해 지옥파쇄포를 내쏘았다.

퍼어어엉!

지옥파쇄포에 턱이 돌아간 고릴라가 기절하며 추락했고, 녀석의 육중한 덩치는 아래에서 달려오던 공룡형 야수 두 마리를 짓뭉개 버렸다.

‘상황이 좋지 않아.’

야수 한 마리 한 마리의 힘은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다. 마법을 쓰지도 않았으며, 무기를 갖고 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맷집이 어마어마하게 좋았다. 2층에서도 대단한 외가기공의 소유자였던 폭암도인. 그의 내구력에 비견할 만한 녀석들이었다.

무엇보다 끝을 모르고 쏟아지는 숫자가 위협적이었다.

이렇게 계속 도망치는 과정에서 수백 마리의 야수들을 쓰러트린다 쳐도 체력이 방전되는 순간 물려 죽는 신세가 될 것이다.

“제르비어스! 잠깐 시간을 끌어줘.”

“뭘 하게?”

마왕의 다급한 외침에 나는 손가락으로 머리 위를 가리켰다.

“도망은 치더라도 피난처는 정해야 할 거 아니야.”

마법진을 그려내 중력마법 ‘리버스 그래비티’로 몸을 띄워 올렸다.

두 다리는 지면으로부터 급속도로 멀어졌다.

검기를 뽑아내 수직으로 세운다.

대수림의 거목들이 서로 가지를 얽어 만들어낸 돔형의 수관부. 나는 그 녹색의 천장을 찢는 송곳처럼 ‘바깥’을 향해 뛰쳐나왔다.

“후아아아아.”

몸에 달라붙은 방패만한 나뭇잎들을 털어내자 탁 트인 시야가 나를 반겼다.

그것은 마치 숲으로 이루어진 대해(大海)를 보는 듯했다. 정수리 위에 떠 있는 태양이 무궁한 밀림을 달궈대고 있었다.

그 순간 누군가 방향감각을 내게서 강탈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말도 안 되게 뜨겁다.’

무의식적으로 손바닥 챙을 만들어 이마를 가려야 할 정도였다.

함부로 태양을 직시했다간 시력을 잃지 않을까 걱정될 만큼의 열기. 어쩌면 이 세계의 태양은 지구의 태양보다 거리가 가깝거나 크기가 훨씬 거대한 모양이다.

그러니 이런 비상식적인 크기의 숲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건가.

동서남북. 사방팔방.

모든 지평선의 끝까지 숲이 이어져 있었다.

“저기 뭔가 있어.”

내가 뛰쳐나온 지점으로부터 5km 정도 떨어진 지점에 피라미드 대여섯 개가 솟아올라 있었다. 훌륭한 피신처가 되어줄만 했다.

야수화되지 않은 죄수들이 모여 있을지도 모르고.

‘좋아. 저길 목표로 잡아야겠다.’

방향과 거리를 재확인한 뒤 다시 내려가려는데 섬뜩한 감각이 뒷덜미를 핥고 지나갔다.

나는 현무패웅검의 손잡이를 움켜잡은 뒤 주변을 향해 기감을 펼쳤다.

‘누군가가 나를 노리고 있어.’

내 감각은 틀리지 않았다.

푸하아아아아악!

대수림의 한복판에서 붉은색 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나와의 거리는 대략 500여 미터. 기둥 주변으로 우수수 떨어지는 것은 박살난 거목들의 잔해인 듯했다.

‘그 단단한 나무를 수수깡처럼?’

쭉쭉 뻗어 올라가던 붉은색 기둥이 갑자기 휘어지기 시작했다. 그 꼭대기가 향하는 곳은 의심의 여지없이 내가 떠 있는 위치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메시지가 눈앞을 어지럽혔다.

[3층 교도관의 화신체와 마주했습니다. 화신체가 당신을 노리고 있습니다.]

기둥이 아니었다.

그것은 둘레가 수십 미터에 달하는 압도적인 크기의 뱀이었다.

그제야 나는 3층 교도관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해낼 수 있었다.

“증식하는 밀림의 뱀.”

어째서 3층에 처음 도착했을 때 교도관이 우릴 주시한다는 메시지가 들려오지 않았는가.

1층과 2층 교도관들과 이 녀석은 완전히 다른 포지션을 가진 채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진작에 화신체를 강림시켜 놓았던 거야.’

때문에 녀석은 내게 간접적인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등반죄수 슈바인 스트링거.”

이렇게나 멀리 있는데도 마치 귓가에서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

교도관 증식하는 밀림의 뱀이 내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너는 얼마나 맛있지?”

대양을 가르고 범선을 찢어발기려 헤엄치는 서펜트처럼 붉은 뱀이 아가리를 벌린 채 쇄도해 들어왔다.

개구리가 뱀을 마주하면 막대한 공포감에 짓눌려 꼼짝을 못하게 된다고 들었다.

다행히도,

나는 양서류가 아니라 용사였다.

[용사전용기 무극참월공]

[제삼식 살신참]

반사적으로 구사한 기술이지만 살신참은 강철도 쪼개버릴 수 있는 강력한 참격이었다.

하지만 증식하는 밀림의 뱀은 피할 생각도 없이 참격을 상쇄해버리더니 아가리를 쩍 벌렸다.

“먹혀줄 생각 따윈 없거든?”

이 뱀 녀석은 정직하게 뻗어오고 있었다. 3차원으로 방향을 뒤틀 수 있는 공중전에선 영리하다 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는 간발의 차로 천마어기행공을 펼쳐 교도관의 공격을 피해냈다. 섬짓하게 나를 노려보는 파충류의 샛노란 눈동자의 크기는 트럭만 했다.

“이 층에서 내 허락 없이 대수림의 영역을 빠져나올 수 있는 죄수는 없다.”

내가 간과했던 것은 이 초거대 뱀에겐 혓바닥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휘이이익!

축축하고 기다란 혀가 채찍처럼 뻗어오더니 내 허리를 휘감았다.

“이익!”

용을 써보았지만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교도관은 내뱉은 말과 달리 날 삼킬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한 번은 넘어가주지. 땅으로 돌아가라, 슈바인 스트링거. 이것이 나와 접촉하는 마지막 순간이길 바라면서 말이야.”

증식하는 밀림의 뱀은 내가 뛰쳐나온 구멍으로 정확하게 홀인원시키듯 집어던졌다.

꾸우우웅!

난폭하게 지면에 처박힌 나는 벌떡 일어나 씩씩거렸다.

“으아아아악! 개 같은 교도관 새끼가!”

화신체인 뱀은 구멍을 통해 나를 한 번 노려보고는 사라졌다. 본래 똬리를 틀고 있었던 자리로 돌아간 듯했다.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아스티나는 제르비어스와 함께 몰려드는 야수들을 격퇴하느라 헉헉대고 있었다.

하늘 한복판에서 학생주임에게 적발돼 회초리를 얻어맞은 불량학생의 꼴이 되었다는 넋두리를 할 시간이 없었다.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 잘 들어.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10분만 달리면 피신처로 쓸 수 있는 장소가 있어. 마왕을 데리고 먼저 달아나.”

“너는?”

“나는 너희가 어디에 있든 순간이동으로 찾아갈 수 있잖아. 어서!”

아스티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제르비어스와 함께 몸을 빼냈다.

그들의 뒤를 쫓으려는 야수들을 향해 거침없이 소리쳤다.

“이쪽이다! 입 냄새 지독한 것들아.”

진각을 밟은 뒤 무극파천공의 구결을 읊는다.

[천마군림보]

그러자 반경 100미터 이내의 야수들 움직임이 정지했다. 자신의 등 위에 육중한 쇳덩이를 짊어지고 있는 기분일 거다.

물론 이 상태를 계속 지속할 수는 없었다. 천마군림보는 내공을 벌컥벌컥 잡아먹는 스킬이기 때문이다.

“크르르르르르.”

게다가 몇몇 덩치 큰 야수들은 천마군림보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착실하게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동료들이 충분히 멀어졌다고 판단한 나는 천마군림보를 해제했다.

그러자 족쇄에서 해방된 야수들이 일거에 덮쳐들어왔다.

나는 스스로 지뢰가 된 것처럼 묵묵히 기다렸다.

그러다가 선두의 설표 야수가 발톱을 휘둘렀을 때 내가 가진 최강의 범위 공격을 시전했다.

[천마신교 비전 무극파천공]

[초월식(超越式)]

[아수라대멸겁(阿修羅大滅劫)]

피아를 가리지 않고 폭발하는 아수라의 매서운 칼날에 야수들이 썰려 나갔다.

야수들이 펼친 반구 형태의 포위망이 일거에 넓어졌다. 비교적 스킬의 반경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던 야수들이 의식을 잃은 녀석들을 무참히 밟으며 거리를 좁혀왔다.

“잡아볼 테면 잡아봐라!”

나는 피신처의 반대 방향으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용사전용기인 무영보를 펼쳤다면 아무리 빠른 야수라 해도 나를 붙잡긴 쉽지 않았을 테지만, 거목들이 밀집해 있는 밀림 안에서는 운신의 제약이 많았다.

그래서 3초에 한 번씩 방향을 바꿔나가며 야수들을 따돌려 나가야 했다.

물론 정면에서 달려오는 야수들이 너무 많아졌다 싶을 때면 어김없이 큰 기술을 터트려 숨 쉴 구멍을 만드는 걸 잊지 않았다.

큰 기술을 연거푸 터트린 후유증으로 내 예상보다 마력 고갈이 훨씬 빨리 찾아왔다.

[MP: 35/9,999]

원거리 공격인 축공탄도, 회피기인 워핑도 사용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한 상황이었다.

“캬아아악!”

물소의 머리를 한 야수가 짓쳐 들어왔다. 나는 녀석의 오른쪽 뿔을 덥썩 잡아 허리를 회전시키며 메쳤다.

그러나 그 와중에 도마뱀 야수의 꼬리가 발바닥을 후려치는 것을 피하지 못했다.

“윽!”

내가 지면에 넘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재규어 야수가 목을 물기 위해 덤벼들었다.

궁여지책으로 왼쪽 팔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콰아악!

불에 지지는 통증과 함께 피가 뿜어져 나왔다.

아직인가?

그때, 이제껏 보지 못했던 텔레파시가 뇌리에 직접 전달돼왔다.

- 아스티나 류: 도착했어, 슈바인.

- 제르비어스 폰타인: 따라붙은 야수는 한 마리도 없다. 서둘러.

마치 여러 명이 함께 쓰는 단톡방 같은 인터페이스. 내가 속으로 메시지를 생각하자 자동으로 텔레파시가 출력되었다.

- 슈바인 스트링거: 죽을 뻔했다. 지금 가.

답이 오는 걸 확인하지도 않고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친구 아스티나 류의 곁으로…….”

*

“……순간이동!”

나는 바닥에 쓰러진 자세 그대로 옮겨졌다.

아스티나는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던지 땅에서 솟아난 나를 보고 기겁했으나, 제르비어스는 여러 번 본 광경이라 당황하지 않고 다가왔다.

푸하악!

재규어의 이빨이 박혀 있던 왼쪽 팔뚝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급한 대로 팔뚝을 눌러 지혈을 한 다음 몸을 일으켰다.

“괜찮냐, 용사?”

“여긴 어디야?”

“네가 말했던 석조건물을 찾아 들어왔다. 하지만 여긴 텅 비어 있었어. 아무도 없었다.”

대수림의 상공에서 내가 발견했던 피라미드의 내부인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있는 회랑은 제법 널찍했고 천장 또한 뛰어서 닿기 어려울 만큼 높았다.

동서남북 네 방향에 나 있는 문이 눈에 들어왔다. 서쪽 문의 바닥에만 먼지가 닦여 있는 걸로 봐서 둘은 저길 통해 피라미드 내부에 진입한 모양이다.

“엘릭서를 쓸 거냐?”

제르비어스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력은 텅텅 비었으나 체력은 아직 절반 이상으로 쌩쌩하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겨우 4개 남은 엘릭서를 남용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팔을 이리 내봐. 지혈해주마.”

마왕은 업화의 쌍장을 피워 올린 다음 내 팔뚝의 표면을 지졌다.

“크윽!”

“참아라. 독성이 섞이진 않은 모양이니까, 곧 완전히 아물 거다. 네 몸뚱이는 어지간히 단단하니까.”

“아우, 고마워서 돌아가시겠다.”

나는 새까맣게 그을린 팔뚝을 후후 불어가며 이렇게 대꾸했다.

“슈바인, 아까는 어떻게 된 거야?”

마왕의 질문에 나는 대수림의 상공에서 증식하는 밀림의 뱀, 3층 교도관의 화신체를 마주친 일을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그놈은 죄수들이 대수림의 미로에서 헤매다가 죽는 걸 바라고 있는 모양이야. 다음번에 마주쳤을 땐 살아날 자신이 없군.”

그때, 까마득히 먼 곳에서 짐승들이 단체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사라져버린 나를 찾아대는 모양이었다.

“일단 여기는 안전해 보여서 다행이야. 야수들 중에서 후각이 극도로 발달한 녀석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이 정도 거리라면 냄새를 기억해 쫓아오긴 무리일 걸.”

그런데 아스티나가 회랑의 한쪽 구석에서 뭔가를 집어 들고 왔다.

“여기도 안전하다고 볼 순 없을 것 같아, 슈바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