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84화 (84/300)

#084. 대수림 (3)

“층장과 눈을 마주치면 알 수 있다는 설명 말이야. 그 당사자가 슈바인 네가 아니라면? 나나 제르비어스가 혼자 있을 때 층장을 발견하면 그것도 유효한 건가?”

따로 떨어져서 대수림을 탐색할 때를 상정한 질문이다.

아스티나의 통찰은 날카로웠다.

확실히 그것은 분명히 알아둬야 할 정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단탈리온을 꺼내들었다.

- 용사님과 제르비어스 폰타인, 그리고 아스티나 류 세 분은 ‘인과의 끈’으로 얽혀 있습니다. 그래서 세 분 중 누구라도 층장을 발견하게 되면 용사님의 퀘스트는 달성되게 됩니다.

“오, 다행이네. 계속 몰려다니면서 층장을 찾을 필요가 없게 됐어.”

[단탈리온이 당신의 MP를 130만큼 가져갑니다.]

“큰 기대 없이 묻는 건데, 층장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 큰 기대 없으시다니 저도 죄책감 없이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용사님께서 답변에 상응하는 대가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단탈리온이 당신의 MP를 27,000만큼 가져가려 했으나 무위로 돌아갑니다.]

확실히 치트키에 가까운 정보는 교도관장이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미련 없이 단탈리온을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

“용사야, 여기 또 하나 있다.”

우리는 제르비어스가 서 있는 물가를 향해 달려갔다.

거기엔 축축하고 부드러운 모래밭 위에 큼지막한 발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아스티나, 네가 처음 발견한 것보다 더 큰 것 같지?”

“응. 이 정도 크기의 발자국이라면 덩치가 집채만 할 것 같아.”

“생김새도 일정하지 않아. 어떤 짐승의 무리인지 몰라도 그 종이 다양한 모양이야.”

일단 탐색을 위해 물가를 찾아보자는 것은 제르비어스의 의견이었다.

이 정도의 밀림이라면 적어도 강줄기나 그 지류를 곳곳에 품고 있을 것이라는 게 마왕의 추측이었고, 3층의 죄수들이 어딘가에 모여 살고 있다면 강의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게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머지않아 우리는 폭이 10미터 정도 되는 개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후 꾸준히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지만 단 한 명의 죄수도 만나지 못했다.

다만 드문드문 남겨진 짐승의 발자국만 발견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곰보다도 크겠는데?”

제르비어스는 짐승의 발자국에 자신의 발 크기를 대어보고 있었다. 마왕의 발 사이즈 또한 결코 작지 않았으나 발자국은 녀석의 그것보다 세 배는 컸다.

“크르르르르.”

그때, 개울 상류에서 나지막한 으르릉거림이 들려왔다.

나와 아스티나는 거의 동시에 검을 뽑아들었고, 제르비어스 역시 업화의 쌍장을 양손에 만들어내며 소리의 근원지를 주시했다.

당연히 바위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거체를 일으켰다.

뒷발로만 온몸을 지탱할 수 있는 이족보행 야수였다.

우리 셋은 동시에 말했다.

“늑대다.”

“곰이군.”

“검치호랑이?”

우리 셋은 잠시 황당하다는 듯 시선을 교환했다.

“얼굴을 봐. 딱 늑대잖아.”

“앞발의 모양이 불곰의 그것인데?”

“난 백묘탑의 마수도감을 다 읽었어. 저런 이빨을 가진 건 검치호랑이뿐이야.”

우리가 난상토론을 펼치고 있을 때, 아직 정체를 판별하기가 곤란한 야수는 거침없이 도약했다.

녀석이 밟고 있던 바위가 스티로폼처럼 무참히 박살났다. 심상찮은 근력에 우리 셋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지이이잉.

현무패웅검에 푸르스름한 검기를 덧씌웠다.

“저놈이 생물학적으로 어떤 종에 가까운지는 때려잡고 나서 생각하자.”

곧 시야를 가득 메운 야수가 재앙처럼 우리를 덮쳤다.

*

야수가 휘두른 앞발을 가까스로 피해냈다. 바짝 세워진 발톱의 날은 흉기나 다름없었다. 어째서 제르비어스가 곰이라고 우겼는지 이해가 될 정도.

하지만 짐승의 앞발은 검이나 창처럼 재빨리 회수될 수 없다. 관절이 그렇게 가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훤히 드러난 녀석의 옆구리를 노리고 검을 찔렀다.

“캬아아아아악!”

그러자 녀석은 전혀 예상치 못한 대응을 했다. 허공에서 각도를 비틀어 검을 깨물어버린 것이다.

‘혓바닥이 썰려……나가지 않아?’

충격적이게도 야수는 검기가 맺힌 현무패웅검을 나무막대기처럼 깨문 채 놔주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벼락처럼 앞발을 휘둘렀다. 그냥 맞는다면 두개골이 박살날 것 같은 압박감이었다.

하지만 녀석의 앞발은 허망하게 허공을 갈랐다. 서 있던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변칙적인 중력 마법 덕분이었다.

[스탠드 워핑(Stand Warping)]

아스티나와의 대련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공간왜곡 회피기였다.

“물러서라, 용사야!”

꽈아아아아앙!

제르비어스가 내쏜 지옥파쇄포가 야수의 옆구리에 적중했다.

물고 있던 내 검을 뱉어낸 녀석은 맥없이 날아가 물가에 풍덩 빠졌다.

팽그르르 날아가던 현무패웅검이 공중에서 우뚝 멈추었다가 자석처럼 내 손에 돌아왔다.

허공섭물.

염력처럼 멋진데다가 응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스킬.

하지만 계속 남발할 수는 없는 기술이었다. 원격으로 다루려는 물건의 무게와 거리에 비례해 MP가 지속적으로 소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써야 했다.

“크르르르르.”

저 야수가 지옥파쇄포를 얻어맞고도 죽지 않고 일어나고 있었다.

내 옆으로 다가온 제르비어스가 질렸다는 듯이 말했다.

“분명 한 방에 기절시킬 요량으로 쐈는데. 정말 단단한 곰이다.”

“늑대라니까. 주둥이랑 눈빛이 딱 늑대였어.”

그때 아스티나가 그려낸 마법진에서 중력탄이 쏘아져 나갔다.

마법진이 구현될 때만 해도 고개를 갸웃하며 바라보던 녀석은 ‘그래비티 잽’이 자신을 노리고 날아오는 것에 반응하며 뛰어올랐다.

그리고 개울 하류에 착지해 몇 바퀴 구르더니 벌떡 일어섰다.

청룡패웅검을 녀석에게 겨눈 채 아스티나가 말했다.

“늑대도, 곰도 아닌 것 같아.”

아스티나의 검이 살짝 까닥거렸다. 그곳이 가리키는 것은 야수의 사지 말단이었다.

“짐승이 저런 걸 차고 있을 리 없잖아?”

풍성했던 야수의 회색 갈기가 물에 한 번 빠지고 나오니 울끈불끈한 근육의 선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갈기에 숨겨져 있었던 또 다른 존재가 시선을 강탈했다.

“족쇄잖아?”

야수의 앞발과 뒷발에는 내 것과 같은 수갑과 족쇄가 달려 있었다.

“몬스터도, 영수도…… 짐승도 아니야.”

녀석은 나와 같은 죄수였다.

*

[이름: 갈가베니온]

[종족: 라이칸스로프], [클래스: 반인반수]

[HP: 3,625/4,451], [근력: 350], [민첩: 280]

[형량: 467년]

[이 죄수는 현재 트랜스 상태라 정보 열람이 불가합니다.]

용사의 심안이 녀석의 다양한 스탯을 알려주고 있었다.

‘만만히 볼 수 없어.’

저 정도 근력 스탯이면 1층 화룡도의 방장이었던 코뿔소 다이몬 키리스의 두 배가 넘는 괴력을 갖고 있단 소리다.

트랜스 상태는 아무래도 지금의 야수화를 일컫는 말 같았다.

“다들 물러나 있어!”

동료들에게 외친 뒤 앞으로 나섰다.

우리 셋을 한꺼번에 경계하던 야수, 아니 죄수 갈가베니온의 시선이 온전히 나에게 집중되었다.

현무패웅검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천천히 양손을 들어보였다.

싸울 의사가 없다는 의미로.

몬스터가 아니라 죄수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작정 숨통을 끊어버렸다가 형량 추가나 요상한 페널티를 받게 되면 곤란해지니까.

“저기, 갈가베니온? 다짜고짜 때려서 미안해.”

게다가 3층에 막 떨어진 상황에서 처음으로 만난 죄수다. 대화가 통한다면 유용한 정보를 알아낼 수도 있다.

대수림의 특징은 무엇인지, 죄수들은 어디에 모여 있는지, 교도관은 어째서 침묵하는지.

무엇보다 층장을 본 적 있는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말야, 우리는 아래층에서 올라온 등반죄수…….”

“캬아아아아악!”

갈가베니온은 대꾸하는 대신 다리를 튕겨 낮은 태클을 걸어왔다.

영리한 태세 전환이다. 지금의 나는 엉거주춤한 상태로 하체에 대한 방비를 전혀 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이놈의 눈을 봐. 대화가 통할 리가 없잖냐!”

제르비어스가 야수의 등에 올라타 양손을 교차시켜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걸 보니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크르륵.”

갈가베니온은 앞발로 마왕의 팔뚝을 할퀴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다 상대가 떨어지지 않으려는 걸 알고 거대한 나무에 등부터 떨어지도록 돌진했다.

꾸우우웅!

충격에 팔을 풀어버리고 만 제르비어스는 곧 공격에 노출됐으나 아스티나가 맹격을 휘둘러 갈가베니온을 물러서게 했다.

“켁! 켁!”

갈가베니온은 아직 목을 졸린 통증이 남아 있는지 괴로워하더니 다시 앞발의 발톱을 치켜세웠다.

아스티나가 내게 조언했다.

“살수를 써야 해.”

“하지만 저 녀석, 괴물이나 야수가 아니야. 죄수라고.”

“모든 공격이 우리의 급소를 물어뜯는 것에 혈안이 돼 있어. 지성체의 무술이 아니야. 육식동물의 사냥법이지.”

내가 뭔가를 반박하려는데 아스티나가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야생동물이 이렇게 덤벼올 때는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하라고 했어.”

“그게 뭔데?”

“인간이 짐승의 영역을 침범했을 경우. 다른 하나는 녀석이 허기에 굶주려 있을 경우.”

우리 셋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학습했는지 갈가베니온은 자세를 낮춘 뒤 주춤주춤 물러서고 있었다. 아스티나의 검이 그를 따라가며 위협하고 있었고.

“야생의 포식자는 자신의 힘을 넘어선 상대를 집요하게 공격할 이유가 없어. 어쩌면 도망칠지도 몰라, 슈바인.”

아스티나는 묻고 있었다. 추격할 것인가, 놓아줄 것인가.

내가 그에 대해 고민을 마치기도 전에 갈가베니온이 행동에 나섰다.

“아우우우우우우우!”

갑자기 고개를 하늘로 젖히더니 거칠게 포효한 것이다.

우리 셋은 주변의 달라진 공기에 움찔했다.

사방팔방에서 온갖 종류의 포효가 터져 나오며 밀림을 진동시키고 있었다.

“젠장. 뭔가 잘못 돌아가는걸.”

사냥이 벅차다는 걸 깨달은 야수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미련을 버리고 도망치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사냥감에 대한 독식을 포기하고 동료들을 불러내기도 한다.

“키에에에에엑!”

“캬아오오오오!”

저 멀리 개울가의 상류에서 형형색색의 야수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우리 셋은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튀자.”

*

“아스티나, 머리 위다!”

내 경고에 앞서 달리던 아스티나의 고개가 튕겨져 올라갔다. 곧 그녀는 나무들에 숨어 달려오던 이족보행 하이에나를 발견하고는 청룡패웅검을 휘둘렀다.

[천마수라검]

흑청의 검기를 정통으로 후려 맞은 하이에나가 나가 떨어졌다. 그러나 녀석은 지면에 추락하기 전에 어깨가 떡 벌어진 자칼에게 걷어차이며 도약대 신세가 되어야 했다.

[용사전용기 무극참월공]

[제일식 축공탄]

동시에 세 마리의 야수를 저지하느라 마력의 소모가 극심했다.

“따라오고 있냐, 제르비어스?”

뒤를 돌아보니 마왕은 나보다 훨씬 심각한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제르비어스는 자신의 어깨를 깨문 야수의 머리통을 주먹으로 후려치며 내달리고 있었다.

그 야수는 검은색 털에 하얀 줄을 갖고 있었는데…… 그 형태가 어딘가 익숙했다.

‘설마? 아니겠지?’

연이은 꿀밤에 화가 난 야수가 제르비어스로부터 떨어졌다. 그리고 허공에서 회전하더니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뿌아아아아앙!

‘맞네. 스컹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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