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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73화 (73/300)

#073. 일대종사의 귀환 (1)

“설공이 이 층에 내려온다는 말이냐?”

천마는 머리 위에 얹어진 꼬깔모자를 벗으며 물었다.

그의 코에 달려 있는 빨강 구슬 또한 천마의 엄중함을 퇴색시키진 못했다. 복마전의 교주실을 가득 메우고 있는 무거운 분위기 때문이다.

마녀 또한 수심이 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들아, 어째서 그 이야기를 진작에 하지 않았니?”

한 시간 전까진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내가 지어낸 이야기가 미래에 정말로 현실화 되어서 이런 거대한 대가를 요구하게 될 줄 몰랐거든요.

나는 이렇게 말하는 대신 급조한 다른 이유를 둘러댔다.

“두 분의 결혼식만큼은 방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알고 계셨다면 흥이 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마녀의 은빛 머리카락에는 여전히 폭죽에서 묻은 듯한 가루가 달라붙어 있었다. 그걸 떼어낼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백묘탑의 주인은 닥쳐올 재앙에 골몰해 있는 것이다.

그때 천마가 내 뒤에 근위병처럼 서 있는 제르비어스와 아스티나를 가리켰다.

“저 둘은 너와 무슨 관계인 것이냐. 본좌의 기감에 따르면 인상 깊을 정도로 강고한 자들임에 틀림없거늘.”

“저 친구들은…… 제가 부리는 종복들입니다. 시간선을 넘나들면서 알게 된 녀석들이죠.”

종복이라는 말에 제르비어스의 이마에 혈관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흑기사의 갑옷에 투구까지 착용한 아스티나는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투구의 바이저 안에서 그녀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도무지 감이 오질 않는다.

나는 귀혼산장에 들어서기 전에 아스티나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두 분으로부터 너의 정체를 숨겨달라고?’

‘응. 내가 누구인지 비밀로 해줬으면 해.’

‘왜 그래야 하는데. 나는 두 분의 제자일 뿐, 진짜 아들은 아니야. 하지만 너는 다르잖아.’

‘난 엄마와 아빠에게 말을 건 지가…… 너무 오래되었어. 일부러 그들과 얽히는 걸 피하면서 내 자아를 지켜온 거야. 이제와 두 분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는 상상만 해도 두려워.’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가. 알겠어. 하지만 이 작전에는 네가 반드시 있어야 해. 설공이 노리는 것은 내가 아니라 너니까.’

‘갑옷을 발동시키고 네 뒤에 얌전히 있겠어.’

그것이 아스티나와 내가 나눈 대화였다.

물론 내 입장에선 입이 근질근질할 수밖에 없다.

나는 미래에서 온 천마와 마녀의 아들이 아니며, 당신들이 진짜 목숨 바쳐 지켜낸 존재는 저 갑옷 속의 여인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진실을 밝혔을 때의 충격이 어떤 후폭풍을 가져올지 모르기에 일단은 아스티나의 말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갑옷이 무거워 보이는데, 답답하지 않나요?”

마녀의 질문에 아스티나는 잠시 공백을 둔 뒤 대답했다.

“익숙합니다. 오랜 시간 입어왔거든요.”

기계음이 섞인 나직한 음성이 교주실 천장에 부딪히며 공명했다.

성별을 알 수 없는 목소리. 마녀는 뭔가를 더 묻고 싶어했으나 내가 선수를 쳤다.

“내일 삼만월의 밤에 저는 층장의 열쇠를 사용할 겁니다.”

층의 죄수인 설공이 어떤 원리로 2층인 삼월초원에 강림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수단이 등반죄수가 사용하는 포탈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아들아, 알고 있느냐. 설공은 이 아비의 철천지원수다.”

“네. 그리고 제가 있던 세계에서 단신으로 삼월초원의 죄수들을 몰살한 규격 외의 강자이지요.”

나는 아스티나가 해준 이야기를 화자만 바꿔서 그대로 전했다.

설공이 어검술을 마음껏 사용할 만큼 강고한 고수이며 필사의 각오로 펼쳐진 천라지망 또한 우습게 뚫어버리는 괴물이라는 것을.

“그래. 그자는 아마도 탈마(脫魔)에 접어든 모양이다.”

마도의 극에 달한 극마. 그런 극마조차 초월해 마기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탈마지경.

천마는 설공의 경지를 그렇게 추측하고 있었다.

“그래. 미래의 본좌는 그자를 결국 이기지 못했다는 건가.”

천마의 눈이 상념에 젖어들었다. 오래전의 일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7대 천마 설공은 실로 굉장한 녀석이었다. 그 하얀 빛, 소환광선이 녀석의 머리로 내려 꽂히던 순간이 기억나는구나. 본좌는 녀석의 목숨을 거둬갈 비장의 한 수로 동귀어진까지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중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상황이었노라. 그래서 놓치지 않을 수 있었지.”

“뭘 말입니까.”

“그놈은…… 소환광선을 한 번 피했다. 아무런 예고나 전조도 없이 하늘에서 뚫고 내려오는 그것을 피한다는 건 인간의 반사신경으로는 불가능하거늘, 그놈은 해냈어.”

소환광선을 한 번 피했다니. 그건 내가 푸르가토리움에서 만난 그 어떤 죄수에게도 일어난 적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광선은 궤적을 바꿔 설공을 추적했지. 그 가공할 속도에 녀석이 회피를 포기하고 반격하기로 마음을 바꿔먹은 순간 충돌이 일어났다. 그 뒤에 벌어진 일은 예전에 네게 말해준 대로였고.”

“…….”

“본좌는 마교도를 척살해나가면서 본좌에게도 비슷한 일이 언제고 닥쳐올 것이라 마음먹고 있었다. 살생을 거듭해나가면 본좌 역시 소환이 될 것이고, 그때 설공처럼 그 광선을 계속 피해볼 생각이었지. 하지만…….”

“피해내지 못하셨군요.”

천마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수를 따라잡기 위해 그와 같은 무공을 익히고, 같은 수라의 길을 걸었다.

하나 그 순간에 천마는 자신과 설공의 격차를 간접적으로 느꼈던 건지도 모른다.

“탈마에 대해 모든 걸 아는 건 아니지만 일설에 따르면 8갑자의 내공을 갖게 되며 중단전에서 무한에 가까운 진기를 끌어내 사용할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런 자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 것이다, 아들아. 각오는 되어 있느냐.”

천마 류운학의 눈빛은 내 존재의 심처를 꿰뚫어볼 듯이 날카로웠다.

그래서 나는 진심을 다해 답했다.

“네. 이것은 7대 천마 류운학의 복수이자, 미래에서 혈겁에 휘말렸던 삼월초원 전체의 복수이기도 합니다.”

*

[2층의 교도관이 삼만월의 밤을 알립니다.]

[열쇠를 차지한 자여, 쟁패를 준비하십시오.]

이 삼월초원에 떨어진 지 45일.

세 개의 달 아래 펼쳐진 것은 내가 45일 전에 보았던 바로 그 광경이었다.

육백 천마신교 교도들.

그리고 오백 백묘탑 마법사들.

그들이 각자 반원의 포위진을 형성한 채 쟁패의 기둥을 주시하고 있었다.

‘교도관의 멘트가 묘하게 바뀌었어.’

사흘 전 기둥이 출현함을 알릴 때에는 분명 [열쇠를 차지하려는 자, 쟁패를 준비하십시오]라고 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열쇠를 ‘차지한 자’라고 바뀌었다.

나는 그게 날 가리키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내 거짓말에 대한 대가를 치르라는 거겠지? 좋아. 네가 만든 판에 어울려 주겠어.”

내 옆에 있는 흑기사 아스티나를 바라보았다. 팔짱을 낀 채 의연한 듯 보이지만 아니다. 갑옷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아하니 감정의 동요를 애써 감추고 있는 것이다.

나는 단탈리온을 꺼내 아스티나에게 넘겨주었다.

“네가 갖고 있어.”

“……지금 나에게 이걸 준다고? 미쳤어?”

“빌려주는 거야. 설공을 쓰러트리고 나면 다시 나한테 돌려줘야 해. 알았냐.”

“단탈리온이 있으면 나는 언제든 다음 시간선으로 달아날 수 있는데도?”

사실 그러라고 주는 거다.

새벽 내내 머리를 짜내어 작전을 세워두긴 했으나, 나는 아직 설공을 만나본 적이 없다. 전해들은 이야기만으로 완벽한 작전을 수립한다는 건 지나친 오만이다.

그러니 단탈리온을 아스티나에게 넘기는 것이 옳다.

“그 마도서를 쓸지 말지는 너의 판단에 맡기겠어. 하지만 사용할 일은 없을 거야. 네가 그걸 쓴다는 건 이 싸움에서 내가 죽는다는 뜻일 테니까.”

단탈리온을 받아든 채로 굳어 있던 아스티나가 말했다.

“슈바인, 나 역시 설공을 막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었어. 하지만 그 어떤 대비도, 전략도, 함정도 소용이 없었지. 그런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자신이 넘치는 거야?”

나는 아스티나를 남겨둔 채 쟁패의 기둥을 향해 걸어갔다.

“네가 있던 미래에는 내가 없었잖아.”

*

[죄수 슈바인 스트링거가 2층의 열쇠를 쟁취했습니다.]

[2층의 교도관 ‘쟁패를 부르는 나선기둥’이 화신체를 만들어내길 거부합니다.]

[3층 대수림으로 향하는 포탈이 열립니다.]

내 손등 위의 9개 칸의 불빛이 2개로 늘어났다. 그와 동시에 메인퀘스트 달성을 알리는 효과음이 들렸다.

띠링!

[메인퀘스트 #2. ‘열쇠 수집’을 2/9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을 고를 수 있게 됩니다. 스탯 하나의 x2 효과, 혹은 스탯 하나의 한계돌파]

나는 미리 정해둔 대로 민첩 스탯을 2배로 늘리는 것을 선택했다.

[슈바인 스트링거]

[칭호: 마그마 볼의 우승자, 무한쟁패의 종결자]

[HP: 9,999], [MP: 9,999], [근력: 230], [민첩: 420]

칭호가 하나 늘어났고, 민첩 스탯이 훌쩍 뛰어올랐다.

나는 이 삼월초원에서 뛰어난 스킬을 구사하는 적을 상대로 민첩 수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하고 또 실감했다. 420으로 늘어난 민첩은 분명 여러 번 내 목숨을 지켜줄 것이다.

지이이이이잉.

물론 지금 포탈에서 내려서는 저 사내의 검 앞에서 목숨을 지켜내기란 어렵겠지만 말이다.

“이상하군. 너는 예언의 아이가 아닌 것 같은데.”

검은 무복을 입은 사내 설공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애써 웃어보려고 했지만 입 꼬리가 내 말을 제대로 듣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7대 천마 설공은 스산한 눈빛으로 나를 훑어보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흘러내린 장발과 등 뒤에서 부유하고 있는 묵빛 검. 아스티나의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설공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데 실제로 직면하니 숨을 못 쉬겠어.’

단지 눈을 마주치고 있을 뿐인데도 폐차 압축기에 끼인 것처럼 질식할 것 같다. 만약 여러 번 저주 상태에 빠져 심마를 극복해내지 못했더라면 단숨에 전의를 상실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타이밍은 지금뿐일 것이기에 나는 힘겹게 준비한 질문을 던졌다.

“천마 설공. 당신이 ‘예언의 아이’를 찾아 8층에서 내려온 걸 알고 있다. 왜 그자를 데려가려는 거지?”

“그대의 문답에 응할 이유가 없다. 목숨이 아깝다면 비켜서라.”

설공은 지금 길가의 돌멩이를 대할 때나 다름없는 정도의 관심을 내게 주고 있었다. 아마 기감을 펼쳐서 아스티나를 찾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관심을 내게 못 박히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오른손을 들어 손등을 설공 쪽으로 향했다. 두 개의 불빛이 빛나고 있는 것을 본 설공의 표정에 이채가 드러났다.

“등반죄수인가.”

“맞아. 1층에서부터 올라왔지. 당신의 것은 어디보자…… 여섯 개인가.”

설공의 손등에는 여섯 개의 불빛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와 달리 삼월초원에서 등반을 시작했으니 그가 감옥의 8층에서 내려왔다는 것은 이 순간 의심의 여지가 없어졌다.

“부리를 주둥이에 달고 있다 하여서 참새를 독수리에 비견하는 것은 우둔한 일. 그대의 경지로는 내가 돌파한 시련을 단 한 개도 돌파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등반을 포기하라, 죄수여.”

걱정해주는 듯한 내용과 달리 말투는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설공의 말을 한 귀로 들으면서 계속 용사의 심안을 발동시키는 중이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뜨지 않는다.

아무리 강고한 자라 하여도 수갑과 족쇄를 차고 있는 죄수라면 스탯을 물음표로 표시하는 한이 있어도 정보창이 떠야 하는데 말이다.

이런 경우는 지금껏 단 한 가지뿐이었다.

화룡도의 마그마 엘리게이터와 삼월초원의 현무.

7층의 그림자로 소환되는 영수들을 관찰했을 때와 동일한 상황이다.

순간 나는 한 가지 가설을 확신했다.

“당신…… 본체가 아니로군?”

설공의 고개가 미세하게 기울어졌다. 내가 그 사실을 알아챈 것이 흥미롭다는 듯이.

“그것이 어쨌다는 거지, 등반 죄수여.”

“너는 본체의 그림자에 불과해. 그래서 적어도 2층에 내려와 있는 한 본래의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 시험해볼 텐가.”

“좋다.”

나는 현무패웅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파괴력을 지닌 스킬을 시전했다.

[용사전용기 무극참월공]

[제삼식 살신참]

콰아아아아아앙!

설공이 있던 자리가 거센 폭음과 함께 썰려나갔다. 민첩 스탯이 늘어난 효과로 스킬이 시전되는 속도는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했다.

“어디 참새에게 물리는 독수리의 심정을 맛보…….”

하지만 설공은 처음 나타났을 때 모습 그대로,

내 칼끝에 올라서 있었다.

아무런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데도 분명 설공은 정면을 향해 찔러져 있는 현무패웅검의 날 위를 딛고 있었다.

투로를 전혀 쫓지 못했다. 잔상처럼 느껴지는 것을 넘어서는 신속의 보법.

본체가 아닌데도…… 이 정도란 말이야?

“방금 보여준 초식에 살신(殺神)이라는 이름은 과해 보이는군. 본좌가 진정한 천외천을 알려주도록 하지.”

설공이 맹금류의 눈빛을 터트리며 내게 육박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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