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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66화 (66/300)

#066. 우주에서 가장 찬란한 (4)

물론 나라고 해서 저 감쪽 같은 분신술을 알아챌 스킬 같은 건 갖고 있지 못했다. 무의 극에 오른 천마조차 간파해내지 못한 수준의 술법 아닌가.

하지만 대신에 이 몸은 든든한 검색 엔진을 갖고 있단 말이지.

“단탈리온.”

- 듣고 있습니다, 용사님.

“귀검신녀가 사용하는 분신술을 격파해야 돼. 본체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줄래?”

- 여덟 개의 분신 중에 귀검신녀 딜라스틴의 본체는 없습니다. 그녀의 본체는 지금 폭암도인의 뒤에 숨어 있지요.

나는 MP 2,000을 지불한 뒤 단탈리온을 덮었다.

와아. 여덟 분신 중에서 본체를 찾아내라고 해놓고. 모두 가짜였다는 거야? 실로 ‘거짓에 현혹되지 않는 눈’을 요구하는 시험답다.

- 아버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파천황의 권능인 귓속말로 천마에게 사실을 전했고, 잠깐 움찔한 그는 곧 껄껄 웃으며 신녀에게 당당히 대꾸했다.

“하마터면 본좌가 속을 뻔했구나, 신녀여. 폭암도인의 뒤에서 괜히 먼지 마시지 말고 앞으로 나오너라.”

“교주님? 어, 어떻게…….”

천마를 둘러싼 여덟 명의 엘프가 점멸하며 사라졌다. 폭암도인의 등 뒤에서 튀어나온 귀검신녀는 눈을 꿈뻑거리며 동요했다.

내가 작심하고 날린 공격에 얻어맞을 때보다 더 충격이 큰 듯 보였다.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저 기술을 간파당한 모양이다.

조금 미안해지려고 하네.

“뭐, 이 정도 반칙은 봐주십시오, 신녀님.”

내가 먼발치서 낄낄거리고 있자 제르비어스가 말했다.

“용사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저게 다 ‘투정’이라는 거지?”

“그래. 사부님의 부하들이 에둘러서 서운함과 아쉬움을 표현하는 방법이지. 투정부리는 거야. 무인들이기 때문에 저런 방식밖에 모르는 거고.”

스케일이 커서 그렇지, 결국엔 우두머리 하는 짓이 못마땅하니 툭 던지는 볼멘소리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래도 보기에 나쁘지 않군. 나는 군단을 이끌어봐서 안다. 자신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자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누구나 중심을 잃기 쉽지. 하지만 천마는 부하들의 투정을 저렇게 온몸으로 받아주는 훌륭한 군주로군.”

물론 모든 투정이 다 받아들여진 건 아니다.

“흐하하! 이번엔 이 마라혈귀의 차례요, 형니임! 우리 고향에선 하객이 신랑에게 침을 뱉습니다! 부부의 면역력 증진을 빌어주고 액운을 막아주는 풍습입지요. 자아, 이 아우의 진심을 담은 침을 받아보십…… 끄아아아악!”

마라혈귀는 간부들 중 유일하게 천마에게 걷어차이며 멀리 날아가 버렸다.

*

쿠우우우우웅.

천마는 귀혼산의 언덕을 끝까지 올라가 결국 복마전 앞에 돌을 내려놓았다. 그의 흑색 도포가 땀에 흠뻑 젖었다.

하나 비로소 내공을 쓸 수 있게 된 그가 일주천을 한 번 돌리자 마치 건조기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멀끔해졌다.

그는 당당하게 복마전 앞에 서서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가 맞이할 단 한 명의 여인을 기다리기 위해서.

“참월의 마녀가 오십니다!”

“그라비타스 도미누스!”

초원의 하늘 가득히 마법사들의 웅장한 외침이 퍼져 나갔다. 신랑 측 하객석에 자리 잡은 육백의 마교도들 또한 위풍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신부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신부 입장.

“저, 저게 대체 뭐야?”

천체를 가득 메운 거대한 ‘물체’의 등장에 좌중의 표정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결혼식에서 신부가 식장으로 입장하는 순간이야말로 하이라이트라고는 하지만,

저건 좀 너무 과격하지 않아?!

쿠오오오오오오.

“하, 항공모함인가?”

“그게 뭐냐, 용사야.”

“내가 있던 세계에서 최고로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배야. 하지만 그건 원래 바다 위에 떠 있는 건데, 저건 지금…….”

“하늘에 떠 있군.”

백색의 표면을 자랑하는 육중한 건축물이 초원에 큼지막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천천히 날아오고 있었다.

그것이 좀 더 가까이 다가오자 나는 그것이 화살표 모양을 하고 있으며, 형태는 다르지만 그 부피만큼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알겠다. 저것의 정체가 뭔지.

“미친 마법사들 같으니. 아무리 상식을 파괴하는 재미로 산다지만…….”

그것은 탑이었다.

마법사들은 백묘탑을 통째로 뜯어내 천공을 나는 웨딩마차로 개조한 것이다. 일직선으로 쌓은 레고블록을 허문 다음 새로 조립하듯이.

물론 마차라고 표현하기엔 어폐가 있을 것이다. 저 천공마차를 끌기 위해선 페가수스가 한 삼천 마리는 있어야 할 테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정한 속도로 마차는 날아오고 있었다.

마차에 탑승한 오백의 마법사들이 그려내는 오백 개의 마법진들이 허공에 만들어놓은 빛의 길 위로.

여태껏 내가 봐온 것들 중 가장 찬란한 버진 로드(Virgin Road)였다. 아니, 저건 어쩌면 우주에서 가장 찬란한 신부의 행로일 것이다.

아아아아아~. 아아아~.

하얀 날개를 단 다섯 여인들이 마차의 선두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듣는 이의 귀가 아닌 심장에 파고드는 아름다운 선율.

마법사들이 자랑했던 다섯 세이렌의 합창이었다.

천공마차가 멈춰 섰다. 아니, 사실은 진작 멈춰 섰는데 그 압도적인 크기 때문에 내가 늦게 알아차린 걸 수도 있겠다.

노래를 끝낸 세이렌들이 신속한 동작으로 물러섰다.

그러자 마차의 선두에서 딱 한 사람이 올라설 수 있는 크기의 작은 마법진이 생겨났다. 대각선으로 층층이.

그 마법 계단으로 마녀 일레인 쿠디슈가 내려왔다.

어깨가 훤히 드러난 백의의 드레스를 입은 채. 그 드레스의 뒤편에는 반투명한 날개가 기품 있게 펄럭이고 있었다. 우아하고 훌륭한 환영마법이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마녀가 땅에 내려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야 나는 한 가지 사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어? 귀혼산장 주변엔 광멸복마진이 있지 않나? 스승님이 거길 지나치는 순간 강제로 몸이 묶이고, 저번처럼 찢어지는 굉음이 울려 퍼질 텐데.’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천마는 진작 광멸복마진을 손봐둔 것이다. 하지만 침입자를 멈춰 세우는 기능과 경보음을 울리는 기능만 없앴을 뿐, 마지막 하나의 기능만큼은 남겨놓았다.

마녀가 귀혼산장의 정문 위를 지나치는 순간.

아홉 개의 붉은 빛줄기가 폭죽처럼 쏘아져 올라갔다.

불과 일주일 전엔 침입자를 판별할 수 있었던 표식에 불과하였으나, 지금은 신부의 머리 위로 터지는 영롱한 폭죽처럼 느껴졌다.

“내가 당신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나요?”

“아니오. 본좌, 123년을 이곳에서 있었노니. 그대가 내려오는 몇 분의 시간쯤이야 찰나처럼 짧게 느껴질 뿐이었다오.”

마주보는 둘의 대화는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천마군림! 만마앙복! 신녀만세!”

육백의 교도들이 부복하며 우렁차게 외쳤다.

구호에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일레인 쿠디슈는 이제 교주의 부인인 ‘일신녀(一神女)’가 된 것이다.

그 교도들의 무리를 뚫고 한 남자가 걸어들어왔다. 신랑과 신부를 가로막은 채.

그게 누구냐고?

바로 나다.

“두 분의 혼인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두 분의 결실로 존재할 수 있는 저의 감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감격적입니다.”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고 마녀는 살풋 웃어주었다.

“하지만 아들된 도리로서 저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두 분께 작은 선물을 갖고 왔습니다.”

천마의 표정이 살짝 경직되었다. 나 또한 다른 교도들처럼 해괴한 풍습으로 신랑을 괴롭히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녀는 달랐다.

“그래, 아들아. 등 뒤에 숨긴 것이 우릴 위한 것이니?”

“정확히는 어머니를 위한 것입니다.”

나는 등 뒤에 숨겨두었던 작은 꽃다발을 마녀에게 내밀었다.

오늘 새벽 마왕과 함께 온 삼월초원을 뒤지며 한 송이씩 모은 ‘달맞이 꽃’ 백 송이가 내 손에 들려 있었다.

물론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마왕의 체통이 다 무너지고 있다! 나에게 꽃을 탐지하라고 하다니.’

‘애초부터 그런 게 있긴 했냐? 이 넓은 초원에서 눈으로 찾아내기엔 너무 힘들어. 네 뿔 좀 쓰자.’

‘내가 순순히 협조할 것 같냐? ……어? 저기 몇 송이 있다.’

‘좋아. 그 기세로 계속 나가자.’

‘이걸 뭐라고 부르는데?’

‘부케라고 한다. 내가 있던 세계에선 신부가 반드시 이걸 손에 들고 결혼식을 치르거든. 그들은 날 아들로 믿고 있잖아. 그런데 어떻게 빈손으로 식에 참석하겠어?’

‘쳇. 좋다. 이제부터 범위를 넓힐 테니, 발바닥에 땀나도록 뛸 준비해라, 용사.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마.’

‘오. 왜 갑자기 적극적이야’

‘네가 심마에 빠졌을 때 말이다, 혼수상태에서 스스로의 목을 조르며 내뱉었던 말이 있다. 상희야. 돌아가서…… 꼭 꽃다발을 안겨줄게.’

‘내가, 그랬다고?’

‘그 이름은 분명 네가 남겨두고 온 동생의 이름이라 하였지. 현실에서 소중한 이에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던 네가 할 수 있는 작은 속죄라 할 수 있을 거다, 이건.’

‘……고맙다, 제르비어스.’

‘됐고. 북서쪽 200미터 앞이다. 뛰어라. 곧 식이 시작할 거야.’

그리하여 지금 내 손에는 달맞이꽃이 소담스럽게 묶여진 꽃다발이 있다. 웨딩 부케.

신부 일레인 쿠디슈가 그것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였다.

“네 마음이 전해지는구나, 아들아. 그럼 이제 이것을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이냐?”

“신랑과 신부는 이제 혼인을 약조하는 입맞춤을 하시고, 손에 든 부케를 있는 힘껏 하늘로 던지시면 됩니다. 하객 중에서 여인만이 그걸 붙잡을 자격이 있어요. 그 주인공은 곧 행운과 복을 받게 되고요.”

“알겠다.”

그렇게 마교와 마탑의 두 지배자는 내 앞에서 쑥스러운 입맞춤을 나누었다. 그리고 하객에게 등을 돌린 채 마녀가 달맞이꽃 부케를 휘익 집어던졌다.

그 다음 순간 벌어진 난장판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마교도와 마법사들이 그 부케를 차지하기 위해 그 짧은 시간 동안 장풍과 마법을 내쏘아 일대가 난장판이 되었다.

“아니, 나는 저러려고 꽃을 모은 게 아닌데.”

특히 공중에서 충돌한 귀검신녀와 록시탄의 맞대결은 실로 볼만했다. 부케를 낚아채려는 신녀의 손바닥은 얼어붙었고, 록시탄은 풍참에 뱅글뱅글 날아가 버렸다.

그래서,

결국 부케는 누가 받아갔냐고?

끼우우우우우우!

하늘을 뱅글뱅글 돌던 독수리 꼭꼭이가 물어가 버렸다. 분명 그 웨딩 부케는 귀혼산 어딘가에 있을 녀석의 둥지를 꾸미는 데 사용될 것이었다.

“저 녀석 잡아라앗!”

“그만 둬, 신성한 결혼식에서 살생을 벌일 참이냐.”

“저 독수리는 본인이 키우던 녀석인데?!”

아웅다웅 다투던 두 집단은 난데없이 날아와 부케를 낚아채 간 독수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곧 누군가의 입에서 꽃망울처럼 웃음이 터져 나왔고,

그 웃음은 진영을 가리지 않고 사방팔방 전염되었다.

“에휴.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결혼식의 아름다운 마무리 따위, 없을 줄 알았다고.”

하지만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엉망이 된 부하들의 머리카락을 보며 웃는 천마와 마녀를 보며 나도 싱긋 웃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부케가 행운과 복을 가져다준다고?

글쎄.

저들은 이미 그걸 갖고 있는 것 같은데.

*

삼월초원에 석양이 지고 있었다.

나와 제르비어스는 후련한 마음으로 풀밭에 앉아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럴 때 맥주가 하나 있으면 딱인데 말야.”

그다지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가끔 맥주가 땡길 때가 있었다.

지금 같은 순간이 바로 그러했다.

푸르가토리움의 2층 삼월초원. 이곳에 내려선 지 오늘로 정확히 44일째. 내일이면 나는 다음 스테이지인 3층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된다.

휴전 상태의 삼월초원에 떠오르는 층장의 열쇠를 무혈쟁취하면 그게 가능해진다.

“아니지. 전쟁을 멈추려고 그 개고생을 했으니, 무혈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겠네.”

그때 제르비어스가 중요한 점을 하나 지적했다.

“천마와 마녀에게는 뭐라고 둘러댄 거냐. 그들에게 있어 너는 시간여행으로 과거로 돌아온 아들인 셈인데. 무슨 핑계로 다음 층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말을 믿도록 했지?”

“후후. 궁금하냐.”

그것은 정교한 시나리오로 짜여진 내 계획의 화룡점정이 될 마지막 거짓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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