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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54화 (54/300)

#054. 폭풍 전야 (1)

“소협, 그게 무슨 소리인가. 본인을 포함한 귀혼오마조차 단신으론 저 영수들을 때려잡기 버겁다네. 만용을 부렸다가 비명횡사하려는 건가?”

폭암도인의 태도는 확고했다. 내가 단신으로 저 숲에 들어가면 오체분시가 될 것이라 확신하는 듯했다.

반면 내가 꺼낸 마검 때문에 천마에게 한 차례 치도곤을 당했던 마라혈귀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냅둬봐, 폭암. 뒈져버리면 만용이지만 때려잡는 데 성공하면 위용이 되는 게지.”

탐욕스러운 개구리의 눈동자가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건 대단한 통찰력이 없어도 가능한 일.

‘분명 내가 죽으면 시체에서 뭔가 보물을 얻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겠지.’

하지만 내가 여기서 시체가 되어도 인벤토리에 있는 레어 아이템들이 흩뿌려지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다. 아니, 그런 일이 진짜 일어나더라도 상관없다.

“죽을 생각은 없습니다. 한 번 믿어주십시오.”

폭암도인은 끈질겼다.

“우리 입장도 생각해주게나, 소협. 아니, 일공자. 교주님의 적전제자가 영수에게 잡아먹히도록 방관했다간 우리도 성치 못할 것이야. 본인과 혈귀가 곁에서 상황을 지켜보다가…….”

“아니오. 꼭 저 혼자 들어가야만 합니다. 두 분은 여기서 제가 돌아오길 기다려 주셨으면 해요.”

내가 무극참월공을 시전하는 모습을 둘에게 들켜선 곤란하다. 이 둘이 사냥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고.

화룡도에서 마그마 엘리게이터와 맞섰을 때에도 돌발 퀘스트가 떴었다. 그때 나는 그 거대 악어를 잡아내지 못했었고, 녀석을 시체로 만든 건 층장인 제르비어스의 일격이었다.

‘그래서 보상이 3분의 1로 줄었지. 이번 보상이 아이템인만큼 그런 리스크를 감수할 순 없다.’

그러니 나 혼자 싸워야만 한다. 가능할 거다. 나에겐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제가 천마님의 총애를 받아서 은근히 눈꼴 시렵다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크흠. 아니, 딱히 그런 적은…….”

“그러니 여기서 증명해 보이지요. 선배님들 앞에서.”

*

결국 두 귀혼오마를 입구에 둔 채 나는 침엽수림의 깊숙한 곳까지 걸어 들어왔다.

사위가 어둑해지고 대지에 뿌리를 박은 나무들의 크기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내 손엔 인벤토리에서 꺼낸 검은 책이 들려 있었다. 마력을 대가로 지식을 알려주는 단탈리온.

“현무라는 영수에 대해 알려줘.”

- 그것은 용사님이 알고 계신 사방신과 흡사하지만 이름만 비슷한 일종의 키메라입니다. 거북이의 등껍질에 뱀의 머리와 꼬리를 가진 괴물이지요. 절대방어를 자랑하는 등껍질에 입으론 냉기를 뿜어대기 때문에 피부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단탈리온이 당신의 MP를 50만큼 가져갑니다.]

“등껍질이 그렇게 단단하다면 약점은 어디야?”

- 뱃가죽입니다. 하지만 뱃가죽을 드러내게 만드는 방법이 무척이나 까다롭지요. 평소엔 귀검신녀가 눈을 현혹하고 폭암도인이 그 괴력으로 현무를 뒤집은 다음 마라혈귀가 치명타를 입히는 전법이 주로 채택되었습니다.

[단탈리온이 당신의 MP를 200만큼 가져갑니다.]

“내가 녀석을 사냥할 수 있는 방법이 있겠어?”

- 그것은 제 영역 밖입니다. 용사님이 과거에 현무와 싸운 기록이 없기 때문이죠. 말씀드렸듯이 미래는…….

“네 영역이 아니라는 거지. 좋아. 구체적인 공략법은 내 스스로 찾아내지 뭐.”

얄밉게도 MP를 1만큼 가져간 단탈리온을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사실 묻고 싶은 질문은 하나가 더 있었다.

‘이 감옥에 등장하는 몬스터는 왜 만들어지는 것인가.’

하지만 이 질문은 왠지 내 마력을 제법 많이 가져갈 것 같았으므로 현무를 때려잡은 후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정작 필요한 순간에 MP가 부족해 죽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으니까.

끼이이이이이!

포효가 확실히 가까이서 들려왔다.

나는 어디로든 튀어나갈 수 있도록 대비한 뒤 기감을 더 넓게 펼쳤다. 그러자 오른쪽에서 막대한 존재감을 내뿜는 녀석이 돌진해오는 것이 느껴졌다.

콰드드드드득!

허리를 뒤로 눕혀 최초의 일격을 피해냈지만 절반은 우연이었다. Lv. 3으로 오른 만전불패의 체술 덕분인지, 무극파천공 때문인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하늘이 가득 들어온 시야에 거대한 고무채찍 같은 것이 스치고 지나갔다. 자세를 바로 잡자 그것이 녀석의 기다란 꼬리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상체를 곧추세웠다. 등 뒤에선 일제히 잘려나간 침엽수들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현무.

금속광택이 나는 등껍질에 붉은 뱀의 머리를 한 영수가 혀를 낼름거리고 있었다. 꼬리는 엄청나게 많은 뼈가 분절돼 있는지 스스로의 의지를 가진 것처럼 땅을 퍽퍽 내려치고 있었다.

허락 없이 둥지를 침범해서 화가 난 모양이다.

풍겨내는 위압감이 실로 대단한 녀석이었다. 이게 게임이었다면 최소 10인 레이드의 보스몹으로 나올 것 같은 고강함.

하지만 나는 늘 그런 녀석들을 혼자 잡아왔었지.

“거북아, 거북아. 등껍질을 내놓아라.”

왼손으론 마법진을 그리고,

오른손으론 내공자락을 피워 올린다.

“내어놓지 않으면…….”

나는 녀석의 정면으로 쏘아져나가며 외쳤다.

“구워서 먹으리!”

그렇게 영수 현무와 나의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됐다.

일단은 탐색전을 펼칠 요량으로 중거리에서 빈틈을 노리려고 했다. 그런데 녀석의 꼬리는 터무니없을 만큼 길어서 한순간이라도 멈춰서면 강렬한 타격을 주었다.

[포스 필드 제너레이트]

쌍마대전에서 마녀가 천마의 맹공을 무효로 만들었던 중력장. 나는 그것을 펼쳐 현무의 꼬리를 튕겨냈다.

하지만 휘어져 있다가 펼쳐지는 꼬리의 물리적인 파괴력이 엄청나서 한 대 한 대 얻어맞을 때마다 뼈가 시릴 정도였다.

돌멩이만한 우박이 자동차 본네트를 부숴버릴 듯 때리는 양상. 중력장을 오래 지속시키는 건 무리다.

그래서 녀석이 꼬리를 회수할 때를 노려 무극파천공의 참격을 시전했다.

[혈룡굉월참]

반달 모양의 참격이 꼬리의 중간에 적중했다. 잘려나가지는 않았으나 부르르 떨리게 만들 정도는 충분했다. 녀석의 두 눈이 시뻘건 안광을 내뿜었다.

노려보면 어쩌게, 이 자식아.

나는 미리 회전시키고 있던 마법진에서 중력 마법의 술식을 전개했다.

[그래비티 블래스트]

직선상의 궤도에 있는 물체를 파괴시키는 중력포.

하지만 녀석의 등껍질은 그대로 공격을 튕겨내며 그 단단함을 자랑했다. 평범한 마법이나 참격으론 스크래치도 못 낼 수준의 강도.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영광으로 알아라. 네가 이 감옥에서 첫 번째로 용사전용기를 받아내는 생물체가 될 테니까.”

포스 필드를 해제시킨 후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내가 있던 자리에 현무의 뭉툭한 꼬리 끄트머리가 철퇴처럼 내리쳤다.

꽈아앙!

자욱한 흙먼지가 일어났으나 나는 개의치 않고 무극파천공과 중력 마법을 동시에 시전했다.

[용사전용기 무극참월공]

[제일식 축공탄]

이 융합스킬의 무서운 점은 공격이 쏘아져나가는 속도가 섬전처럼 빠르다는 점이었다. 현무의 입장에선 아리랑 볼을 던지던 투수가 갑자기 시속 160킬로미터의 강속구를 뿌리는 셈이었을 터.

꽈아아아아앙!

축공탄이 현무의 배에 깔려 있는 지면에 충돌하면서 충격파를 일으켰다. 녀석의 옆구리가 투웅 하고 들어 올려졌다.

훤히 드러나는 허연 뱃가죽! 녀석이 다시 원상태를 회복하기 전에 궤멸적인 타격을 입혀야 한다.

진각을 밟은 뒤 내가 낼 수 있는 최대 속력의 질주로 짓쳐 들어갔다. 반사적으로 날아오는 꼬리 공격은 마왕의 스킬인 [업화의 쌍장]으로 튕겨내면서.

캬아아아아아아!

그런데 현무의 뱃가죽을 공격범위에 넣기 직전, 녀석이 입에서 섬짓한 냉기를 뿜어냈다. 그것이 몸에 닿자 보법이 극히 느려지면서 내 행동이 굼떠졌다.

“크으윽!”

지독한 냉기뿐만이 아니었다. 사냥감의 움직임 자체를 옭아매는 무시무시한 입김이었다.

퍼어어어억!

나는 꼬리 끝의 철퇴에 복부를 적중당해 튕겨져 나갔다. 거목들이 우지끈 부러지는 둔중한 충격이 척추와 경추를 저릿하게 울렸다.

“이 거북이 새끼.”

아찔한 정신을 부여잡고 몸을 일으키니 나와 현무 사이에는 밑둥 위가 부러진 나무들이 즐비했다. 녀석은 제법 화가 났는지 짤막한 발을 놀려 돌진해 들어왔다.

[천마어기행공]

황급히 수직으로 비상해 현무의 육탄돌격을 피해냈다. 내가 녀석의 꼬리를 바라보며 착지한 것과 녀석이 팽이처럼 몸을 180도 회전시킨 것은 거의 동시였다.

위압적인 거체를 다루는 주제에 그 민첩함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나는 냉정하게 계산해보기 시작했다.

축공탄으로 빈틈을 만들어내는 데까진 무리가 없다. 하지만 지금 수준의 민첩함으론 근접거리까지 다가가는 게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가까이 파고들어 축공탄을 터트리면 그 파괴력 때문에 나 역시 도로 튕겨나갈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속도전.

녀석의 반응속도를 훌쩍 넘어서는 빠르기가 내게 필요한 상황이었다. 민첩 스탯이 196이 아니라 500 정도였다면 만전불패의 체술로만 접근이 가능했을 텐데.

‘괜찮아. 비장의 한 수가 있어.’

이제 더 이상 스탯이 낮다고 울고불고하던 옛날의 내가 아니다.

나는 새로운 스킬 합성을 준비했다. 어떤 스킬들을 서로 융합시킬 것인지는 이미 오래 전에 정해 놓았다. 필요한 것은 실전에서의 경험뿐.

[축공탄]

다시 한 번 300의 MP를 소진해 필살기를 작렬시켰다.

이번에 노린 곳은 현무의 가슴팍. 녀석은 충격에 밀려나 들어올려지는 바람에 앞다리를 우스꽝스럽게 파닥거렸다.

‘녀석이 익숙해지기 전에 이번 공격으로 끝낸다!’

먼저 무극파천공의 상승 보법인 [천마군림보]를 시전한다.

천지를 진동시키는 진각과 함께 천마 류운학의 속삭임이 귀에서 재생된다.

‘제자야, 무인과 무인의 대결에서 핵심은 거리 싸움이다. 상대가 원하는 거리를 지워버리고 그것을 너의 거리로 채워 넣는 것. 그것이 천마군림보의 축지(縮地)니라.’

천마는 훌륭한 선생이었다.

그런데 내겐 비슷한 가르침을 내려준 또 다른 스승이 있었다.

‘네 눈앞에 고무막대기가 있다고 생각해보렴. 그것을 구부려서 끝과 끝을 만나게 한다면? 너는 중간의 장애물을 무시하고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중력으로 공간을 휘게 만드는 [워핑(Warping)의 원리란다.]

쿠지지직.

[천마군림보]로 찢어낸 거리를,

[워핑]으로 다시 한 번 휘어지게 만든다.

축지법의 묘리에 중력장을 비틀어내 만든 가속!

[용사전용기 무극참월공]

[제이식 무영보(無影步)]

현무의 발버둥이 슬로우 장면처럼 느려졌다. 반면에 내 몸은 강제로 고무줄을 늘인 것처럼 정면을 향해 늘어났다.

그렇게 왜곡시킨 공간을, 보법을 일으켜 달려 나간다!

다음 순간 나는 훤히 드러난 녀석의 뱃가죽 앞에 나타났다.

권능이 아닌 스킬로 이뤄낸 순간 이동이었다.

키이이이이!

질겁한 현무가 이빨을 드러내며 나를 깨물려 들었다. 냉기를 뿜어낼 시간이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내가 조금 더 빨랐다.

[마왕군 폭렬마법]

[2급 오의 ‘지옥파쇄포(地獄破碎砲)’]

내가 가진 최강의 근접기술인 지옥파쇄포가 손바닥에 맺혔다. 응집된 보라색 마기가 현무의 뱃가죽을 백지장처럼 꿰뚫었다.

퍼어어어어어억!

말 그대로 지옥을 파쇄해버리는 마왕의 불길이 현무의 등껍질 속 연약한 내장을 거칠게 찢어발겼다.

“말했지? 내놓지 않으면 구워버리겠다고.”

곧, 영수의 단말마가 침엽수림 전체를 진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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