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49화 (49/300)

#049. 무극과 참월 (4)

제국은 흑마법의 존재를 철저히 숨기고 싶어했다.

대륙 전체에 강력한 위상을 떨칠 수 있는 배후에는 흑마법을 높은 수준으로 구사하는 마녀 군단이 있었음에도 그것을 철저하게 감추는 데 성공했다.

마굴(魔窟).

마녀들이 은거하는 장소에 대한 비밀도 철저하게 숨겨 왔다.

그런 마굴의 문이 열리는 순간은 언제나 제국이 피를 봐야만 하는 전쟁을 일으켰을 때다.

그날도 그러했다.

마굴에 햇빛이 들어오는 날이면 마녀들은 철제 관에 누인 몸을 일으켜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있었다.

“마녀들이여, 가라.”

“가서, 죽여라.”

“죽이고, 아무것도 남기지 마라.”

제국이 영토를 넓히기로 결정하면 그곳을 지키는 야만인 전사들이 격렬히 저항했다.

“우리는 태곳적부터 내려온 땅을 내어줄 수 없다!”

제국이 깃발을 꽃은 곳이면 어김없이 마녀들이 출동했다.

움브라 도미누스(Umbra Dominus).

그림자의 마녀가 전장의 땅을 짚으면 야만인 전사들의 그림자가 스르륵 일어나 그 주인의 목과 가슴을 찔렀다. 그것은 방패로도, 검으로도 막을 수 없는 치명적인 습격이었다.

베네눔 도미누스(Veneus Dominus).

맹독의 마녀가 허공 위에 손을 떨치면 먹구름이 몰려와 닿는 이의 피부를 부식시키는 독비를 뿌려댔다. 몸부림치던 군마들이 주인을 떨어트리고 그의 가슴을 밟았다. 기마병은 이미 독비에 시력을 잃어 말발굽이 내장을 터트리는 것을 막아내지 못했다.

“흑마법! 흑마법사다!”

간혹 야만인 중에서 마법적 지식이 있는 자들은 마녀 군단이 떨치는 위용을 보자마자 스스로 자신의 목을 찔렀다.

“나는 영혼을 빼앗기지 않아, 크으윽!”

흑마법에 당해 목숨을 잃은 자의 영혼은 윤회의 흐름에 섞여들지 못하고 영원히 소멸한다.

그런 미신이 온 대륙에 퍼져 있었다.

마도제국의 상아탑이 아무리 포교활동을 해도 그 미신만큼은 뿌리 뽑을 수 없었다. 윤회와 부활의 존재를 술식으로 밝혀낼 정도의 마법 문명을 갖고 있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윤회 불가의 소멸을 극도로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윤회를 믿는 자, 스스로 죽을 시간을 주겠노라.”

일레인 쿠디슈.

그라비타스 도미누스(Gravitās Dominus).

중력의 마녀는 언제나 마지막에 출동해 전장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존재였다.

전방위로 펼친 중력장을 일순간에 압착시켜버리는 압도적인 파괴력. 범위 안의 모든 것을 작은 점이 되도록 빨아들이는 강고한 마력 행사.

그것은 전쟁 마법이라기보단 우주가 잠시 심연의 장막을 드러내는 초현실적 광경이었다.

전사들의 육체만 점으로 압축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수족처럼 부리던 검과 방패, 자신들이 믿는 신을 칭송하는 깃발, 사랑하는 가족들이 손수 지어준 의복.

그 모든 것이 가속화된 엔트로피 속에서 사멸한다.

수천의 야만전사들이 모여 있던 주둔지는 애초에 아무 것도 없었던 듯 광막한 평야로 바뀌어 있었다. 마도제국의 정예 마법사인 원소마법사들이 총출동하더라도 엄두를 내지 못할 깔끔한 절멸.

“왜들 그렇게 다시 태어나고 싶어서 안달인 걸까?”

존재를 통째로 지워서 이뤄낸 승리 앞에서 일레인 쿠디슈는 나른하게 읊었다.

“너희는 자살이 허락돼 있지 않느냐.”

궁극에 달한 흑마법은 그 시전자를 자동적으로 보호했다. 마력 회로와 완전히 동조를 이룬 육체는 쉽사리 죽일 수도 없었다.

‘우린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다.’

중력의 마녀는 그래서 의문이었다. 윤회의 고리가 끊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다른 인간들이. 그녀에게는 영원한 안식이야말로 축복일 것 같았기 때문에.

출동이 끝나면 다시 마굴로 돌아가 등에 여덟 개의 관을 꼽고 마력 회로를 충전시켜야 하는 전투 기계로서는 그런 사고방식이 당연했다.

“짝을 만나면 생각이 달라진다고 하더군. 몸 안에 새로운 영혼을 잉태하게 되면 많은 자매들이 윤회를 믿는 쪽으로 돌아선다던데.”

맹독의 마녀는 자매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녀의 머리모양은 짧은 단발이었으나 영롱한 은발은 일레인의 그것과 완전히 똑같았다.

마력 회로가 인체의 생명력을 완전히 빨아들였다는 징후.

“그라비타스 도미누스. 너 8써클로 올라선 지 꽤 되었지? 곧 짝을 찾기 위해 세상을 나서야 할 거야.”

반면에 은발을 양 갈래로 땋아 묶은 그림자의 마녀가 반대쪽에 내려섰다. 17세 소녀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실은 230년을 살아온 마녀.

“너희도 곧 8서클이 될 수 있을 거야. 분발하면.”

“부럽긴 해. 자식을 낳으면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잖아? 잠들듯 죽을 수 있다고.”

“그래. 나도 좋은 짝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군.”

자식을 낳으면, 죽을 수 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질겁할 수밖에 없는 두 개념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어붙이는 그림자의 마녀.

그라비타스 도미누스, 일레인 쿠디슈는 두 자매를 좋아했다. 아니, 사랑했다.

그래서 자매들에게 방금 저지른 두 개의 거짓말에 대해 조금 죄책감을 가졌다.

그녀는 이미 9서클의 경지에 올라섰고,

짝을 찾아 나설 생각도 없었다.

중력의 마녀는 제국을 지도에서 지워버릴 생각이었다.

*

마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압도된 나는 찻잔이 식어가는 줄도 모르고 앉아 있었다.

“그건 마치…… 사육되는 맹수 취급 아닌가요?”

지독하게 참혹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녀의 초록색 눈동자는 평온하기만 했다.

“제자야, 기억하느냐. 내가 있던 세계에서 흑마법이 어떤 식으로 전수되는지.”

그녀가 있던 세계에서 마녀는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로 갈수록 더욱 강고해지는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자궁으로 전수되는 흑마법.

나는 그것을 용사의 심안으로 읽어낸 바 있고, 마녀의 입에서 직접 듣기도 했다.

“흑마법의 기운을 손실 없이 개체에서 개체로 넘기는 유일한 통로는 탯줄이거든.”

8클래스에 올라선 마녀는 제국의 집중 관리 대상이 된다. 그리하여 마력 회로를 물려줄 자식을 낳기 위해 1년간의 외출이 허용된다. 모계 혈통을 통해 전해지는 흑마법이기에 남자의 재능이나 능력은 상관없다.

“그렇게 마녀의 흑마법은 대를 이을수록 강해진다. 그 마력이 그대로 자식에게 전수되지.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온 마녀는 이용가치가 없어져 폐기된다.”

폐기. 그 말뜻에 숨겨진 의미에 몸서리가 쳐진다.

“반항할 수는…… 없습니까?”

“제국은 절대 멍청하지 않다. 한 마녀가 마법본부를 위협할 정도로 너무 강해지면…… 제국의 정규 마법사들에게 일제히 공격당해 제압당하고 기억이 초기화 된다.”

철저히 도구화되어 이용당하는 마녀들.

그런 가혹한 구조에 나의 스승은 놓여 있었다.

마녀가 찻잔에 손가락을 담갔다.

그러자 작은 소용돌이가 그 안에서 휘몰아쳤다.

“그런 세월이 수백 년. 한 중력의 마녀가 꾀를 내었다. 가진 힘을 조금씩 숨기기로. 천천히 눈에 뜨이지 않을 만큼.”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얼마나 많은 인내심이 필요했을까.

“그림자의 마녀는 빛의 마법사들을 당해낼 수 없다. 그래서 불가능하다. 맹독의 마녀들은 질풍 마법에 취약했다. 그렇기에 불가능했어. 오직 우리만이, 마법원소의 상성상 천적이 없는 중력의 마녀만이 반역을 꿈꿀 수 있었어.”

마녀가 찻잔에서 손가락을 빼자 그 안에는 작은 구체가 제자리에서 돌고 있었다. 하늘에 닿은 중력마법으로 찻물의 부피를 일점에 모은 것이다.

극한의 ‘압축’.

나도 흉내는 낼 수 있겠으나 찻잔을 가득 채운 찻물을 저렇게 작은 크기로 줄일 순 없을 거다. 아마 조정에 실패해 찻잔을 깨트리고 말겠지.

“그렇게 중력의 마녀들은 기억과 염원을 압축하고 또 압축했단다. 그래서 탯줄을 통해 자신의 자식에게 전수하였지. 새로이 태어나는 마녀는 이전 세대와 더 이전 세대의 재능뿐 아니라 갈망과 복수심을 함께 물려받게 되었다.”

마녀가 찻잔에서 손가락을 빼 테라스 바깥을 가리켰다.

지금 막 떠오르고 있는 달은 초승달. 그래서 무한에 가까운 숫자의 별들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달려도 저 별엔 닿지 못해. 하지만 그 자리에서 다음 사람이 바통을 이어받아 계속 달리면, 달리고 죽고, 죽은 자리에서 다음 사람이 달리면, 언젠가 우린 별에 닿을 수 있어.”

그것이 마녀의 삶.

“그렇게 강고해져 마녀에게 허용돼 있지 않은 9서클을 이룩한 중력의 마녀가 나였다. 나는 침착하게 계산하고 또 계산했다. 단신으로 제국의 군벌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겠는지. 온 세계의 선망을 받고 있는 정규 마법사들을 홀로 상대할 수 있을 것인지.”

계산을 거듭해 마법의 술식을 완성한다.

일레인 쿠디슈는 제국을 뒤엎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런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겠다고 계산해냈다.

짝을 찾기 위해 세상으로 내보내지는 8서클 마법사.

하지만 그녀는 이미 오래전에 9서클의 경지를 이룩했으며 그 외출에서 그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것이었다.

감시를 위해 따라붙은 마법사들을 일거에 참살하고 마녀는 제국의 수도로 향했다.

그 수도의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마탑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그 전투에서 나는 일곱 번 죽을 뻔했다. 하지만 실험체로서 만들어진 생명력이 연거푸 나를 구해냈지. 어쩌면 어머니들이 나를 가호한 것일 수도. 그렇게 나는 제국의 심장부를 파멸시켰다. 무수히 많은 어머니들의 뼈를 밟고 일어나 기어코 별에 당도한 거야.”

작은 구로 응축되었던 찻물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마녀는 그것을 들어 다시 한 모금 마셨다.

“제자야. 왜 냄새도, 맛도 느끼지 못하면서 꽃차를 마시느냐 물었지? 그것은 마녀로서 각인된 열망이나 나의 것은 아니다. 내 어머니, 어쩌면 그 어머니의 어머니 중에서 한 분이 갖고 있던 작은 소망이었을 것이다. 강제로 주입당하는 마법 약물이 아니라…… 대자연의 향기를 담은 꽃으로 달여 먹는 한 모금.”

수많은 중력의 마녀들이 까마득한 세월을 거쳐 단 한 여인에게 맡긴 자신들의 삶.

참월의 마녀는 그것을 마력 회로 안에 전부 품고 있었다. 그러하여 어머니들의 한을 풀어내는 데 성공했으나,

그 죄로 푸르가토리움에 불려왔다.

“아직 죽이지 못한 이들이 남아 있다. 나를 막아선 마법사들을 전부 죽였으나 그 마법사들을 지휘한 황제와 귀족들은 여전히 살아 있어. 내 안에 있는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어머니들께서 매일 꿈에 찾아와 피눈물을 흘리신다. 원한을 갚아달라고 부르짖으시며.”

천마 류운학은 죽이고 싶은 상대가 감옥에 있었다. 그래서 그를 쫓기 위해 다음 층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마녀 일레인은 죽여야 하는 상대가 바깥에 있었다. 그래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다음 층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닮았으되, 다르다.’

천마의 복수 상대는 너무나 강하다. 하지만 그래서 많은 시간이 주어져 있다.

반면 마녀의 복수 상대는 이제 지켜줄 상대가 없는 제국. 반면에 그들의 수명은 무한하지 않다.

그런데 천마와 마녀의 쌍마대전은 이미 100년을 넘겨 버렸다. 평범한 인간은 100년 넘게 살 수 없다.

어쩌면 마녀의 복수 상대는 이미 다 죽었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내가 이 지점에 의문을 던지자 마녀가 싱긋 웃었다.

“아직 내 성취엔 한 단계가 남았다. 전설 속에 존재하는 10서클의 중력 마법. 내가 믿는 건 바로 그것이다.”

“10서클에 도달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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