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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42화 (42/300)

#042. 한 명의 제자, 두 명의 스승 (2)

“하하하하. 아해야, 돌아왔구나. 내 기다림이 길어 네놈이 도망친 줄 알았느니…… 응?”

천마 류운학의 경지는 역시 가공할 수준이었다. 어깨를 들썩이며 웃던 그가 날 보자마자 깊은 눈빛이 된 것이다.

“이럴 수가. 실로 풍기는 기운이 완연히 달라졌구나. 이토록이나 충만한 내공이라니. 고작 칠 주야 만에 임독양맥을 타통하고 중단전까지 개방을 하였어?”

내가 건네준 마검 디아볼릭을 어깨에 걸친 천마가 내 명치를 쓰다듬었다. 명공이 만들어낸 도자기를 조심스레 꿰뚫어보려는 감정사처럼.

“탈태환골? 아니야. 그렇지 않아. 외양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 이미 육체가 무골의 수준으로 정순한 상태에 치달아 있어서 그러했겠지. 탈태 없는 환골이라니. 상상도 못한 위업을 이룩했구나, 아해야.”

“천마님을 놀라게 해드렸다니 솔직히 기쁘기 짝이 없네요.”

“새외사궁 중 혈궁의 낙화만마공(落花萬魔功)이 생각나는구나. 일부러 혈류를 폭주시켜 주화입마를 유도한 다음 그것을 극복해내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금단의 경지를 노리는 위험천만한 무공이었지. 마치 그 혈궁의 궁주를 만났을 때의 기분이로다.”

주화입마라.

무인이 폭주하는 내공을 이기지 못해 미쳐 돌아버리는 상태를 말한다.

나 역시 스스로 저주를 걸어 심마와 마주쳤고 결국 그것을 이겨냈으니 천마는 단박에 내가 사용한 수법을 유추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천마는 아무 미련 없다는 듯 디아볼릭의 검신을 모로 세워 내게 내밀었다.

“이걸 돌려줄 때가 되었군.”

“아이고오, 형님. 진짜로 약속을 지키실 줄은.”

천마의 등 뒤에서 마라혈귀가 자못 아쉽다는 얼굴로 나타났다. 하지만 녀석도 완전히 달라진 내 기운을 느꼈는지 전처럼 무뢰배처럼 달려들진 못했다.

내가 천마에게 물었다.

“천마님께서는 참월의 마녀라는 숙적을 두고 계시지요. 혹 이 무기가 있다면 오랜 전쟁을 끝내버릴 수 있지 않나요?”

“허허. 아해야, 본좌를 우롱하지 말거라. 자신의 것이 아닌 무기를 취해 그 할망구를 쓰러트리는 건 사내답지 못한 일이요, 본좌에게만 유리한 조건에서 생사결에 임하는 건 무인답지 못한 일이니라.”

천마의 의지는 확고했다. 나는 탄복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저는 그 무기를 들어 올리지 못합니다. 그러니 잠깐만 잡고 계셔 주세요.”

내가 속으로 ‘아이템 수납’을 중얼거리자 디아볼릭은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천마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도술인가? 실로 영특한 재주로다.”

나는 천마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무의 정점에 달한 사내의 표정 역시 진지해졌다.

“천마님, 무릇 제가 있던 세계에서 우사부일체란 말이 있사옵니다.”

“그래? 그건 무슨 뜻인지.”

“자고로 스승이란 친구이면서 사부이며 동시에 아버지란 뜻이옵니다. 단순히 제자에게 있어 가르침만을 주는 것이 아니란 뜻이옵지요. 피는 섞이지 않았으나 하해와 같은 애정을 주는 아버지요, 어긋난 길을 가지 않도록 단속하는 사부요, 무엇보다…….”

나는 내가 지어낸 다섯 글자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한 마디를 남겼다.

“피의 술잔을 나눈 ‘친구’란 뜻이옵지요.”

천마는 그 문구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으흠, 그래. 임금인 군신을 빼놓은 건 의아하다만 맞는 말이렷다. 스승은 아버지이면서 선생이면서 친구여야만 하지.”

그가 나의 어깨를 만졌다.

“그래, 본좌가 너에게 그런 존재가 되도록 하마.”

띠링!

[죄수 류운학이 새로운 친구 목록에 등록되었습니다. 이제 그의 스킬을 빌려 쓸 수 있습니다. 스킬의 위력은 시전자의 숙련도에 정비례합니다.]

천마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좋아. 사제의 연이 맺어졌으니 앞으로 널 제자라 칭하겠다.”

“네, 사부님. 숨이 끊어져라 쫓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암, 그래야지. 그렇다면 무엇부터 가르쳐야 할까. 삼재검법이나 육합권처럼 바닥부터 시작할 필욘 없을 터이고. 일단 천마신공의 기초 심법부터…….”

나는 손바닥을 들어 천마의 말을 막았다. 무척 불손한 동작으로 비춰질 수도 있을 텐데 그의 얼굴은 평온했다.

“그 전에 불초 제자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오냐. 무엇인고?”

“제가 있던 세계의 공기는 무척이나 탁했습니다. 그래서 그 세계의 주민들은 거처에 공기를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기계를 방안에 두어 기관지의 안녕을 도모했죠.”

“헌데?”

“그러다보니 이 제자 역시 공기가 텁텁한 것을 잘 참지 못합니다. 잠깐 사부님의 목검을 빌려 쓰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다만 이걸로 뭔가를 해보려는 모양이군. 좋다. 허락하마.”

나는 일주일 전 천마를 방문했었다. 그때 마검을 내기 물품으로 걸어 그의 흥미를 돋우었다. 당시 천마는 마검을 슥 휘둘러 벽에 구멍을 뚫는 위용을 선보였다.

나는 그 구멍을 등지고 섰다. 천마가 빌려준 목검을 착검했다. 발도술의 자세를 취한 뒤,

“수월한 환기를 위해서 통풍구는 양쪽에 있어야 합니다.”

스킬을 시전했다.

[친구 류운학의 스킬을 빌려옵니다.]

[천마신교 비전 무극파천공]

[천마회풍일섬(天魔會風一閃) Lv. 1]

전도체에 전류가 흐르듯 육체가 깨어난다. 단전에서 뻗어 나오는 내공의 타래가 전신에 휘몰아치고, 무극파천공의 구결이 자연스레 내 손끝을 인도한다.

내가 허공을 향해 찌른 목검은 바람을 응축해 만든 일섬이 되어 벽면을 꿰뚫었다.

퍼어어어엉!

천마가 만들었던 구멍의 절반이 좀 안 되는 크기. 하지만 형태는 똑같았다.

마라혈귀의 눈이 끔뻑였다.

“혀, 형님. 저 녀석이 지금 무극파천공을…… 쓴 거 아닙니까요?”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깔끔한 투로는 물론이거니와 초식의 운용도 나무랄 데 없었다. 제자야, 일전에 본좌가 한 번 보여준 것을 기억했다가 그대로 시전한 것이더냐?”

“아직 가야할 길이 멉니다. 미천한 재주일 뿐이지요.”

탁월한 식견을 가진 절대자 앞에선 굳이 자신을 부풀리거나 허세를 부릴 필요가 없다. 눈앞의 상대가 보여준 무위가 어느 수준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을 테니까.

천마는 ‘어디서 이런 복덩이가 굴러왔는고!’ 하는 속마음을 감추지도 않은 채 껄껄 웃었다.

“크하하하!”

그의 쩌렁쩌렁한 웃음소리는 만마전 바깥을 향해 천둥처럼 퍼져나갔다.

“듣거라, 귀혼산장에 거하는 모든 교도들이여!”

사자후(獅子吼).

그것은 천마신교의 지존이 세상을 향해 고하는 포효였다.

“오늘로 천마신교는 일대의 기린아를 거둬들이게 되었느니! 머지않아 지나치게 길었던 전쟁은 끝날 것이며, 달빛 아래 마탑은 물먹은 담벼락처럼 무너지게 될 것이다!”

*

그렇게 나는 마녀의 수제자가 되었고, 동시에 천마의 적전제자가 되어 마법과 마공을 착실히 배우게 되었다.

그들이 한 번 시범을 보여주기만 하면-사실은 시범도 필요 없었지만- 나는 파천황의 권능으로 그것을 거울처럼 흉내 낼 수 있었고 마녀와 천마는 매번 경탄과 탄복을 아끼지 않았다.

스펀지처럼 비기를 흡수하는 제자 앞에서 그들은 신명과 흥분을 마음껏 드러내기도 했다.

“벌써 약속된 여섯 시간이 다 끝났단 말이니? 슈바인 형제, 내 너의 잠재력을 더 끌어내보고 싶은데.”

“내일 또 찾아오겠습니다, 스승님. 오늘은 이만하시지요. 저 죽어요.”

마녀와의 수업 여섯 시간.

“제자야! 벌써 떠난단 말이냐. 본좌가 아직 천룡굉월참의 묘리를 다 알려주지 못했거늘!”

“헉헉. 제자가 아직 깨달음이 일천해 홀로 초식을 곱씹어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부님.”

천마와의 수련 여섯 시간.

“이게 무슨 똥개훈련이냐, 용사야! 이 몸은 마왕군의 군단장이었다고!”

“어떡하냐. 시간이 너무 모자란 걸. 내가 걸어서 두 진영을 왔다 갔다 하면 그만큼 강해질 수 있는 시간이 낭비되는 거야. 그러니 냉큼 달려라, 제르비어스 폰타인!”

“으이익! 나를 인간 포탈로 부려먹은 대가는 나중에 꼭 받아주겠다!”

“마족 포탈이겠지.”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그리고 귀혼산장에 펼쳐진 진법을 속이기 위해 제르비어스 역시 분주하게 양쪽을 뛰어다녔다.

내가 천마의 무극파천공을 익히고 있을 때엔 백묘탑에, 마녀의 중력 마법을 깨우치고 있을 때엔 귀혼산장에 미리 가 있어야 했던 것이다.

‘으어억. 정말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네. 마공의 구결 외우랴, 마법의 술식 익히랴, 죽겠다.’

문득 알파 테스터 시절에 익혔던 온갖 게임들의 시스템이 떠올랐다.

오히려 그때가 편했던 것 같다. 컨트롤러의 스틱을 적당한 각도로 꺾고, 정확한 타이밍에 버튼을 입력하면 기술이 튀어나갔던 그때가.

하지만 무공과 마법의 세계는 실제로 심오했다.

단순히 둘의 스킬을 빌려와서 뽐내는 것만으로 내 욕심은 채워지지 않았다.

스킬의 레벨.

그것을 올리기 위해서 나는 실제로 천마와 마녀가 내려주는 가르침에 사력을 다해 매달렸다.

참월의 마녀 일레인 쿠디슈는 이렇게 설명했다.

“마법의 본질은 ‘파악’과 ‘장악’이란다. 마법사는 대자연의 법칙을 파악하고 우주의 질서를 장악해야만 하지. 그 대전제에는 계산이 있어야 해. 그래서 각기 다른 세계에서도 기사나 무사에 비해 마법사의 숫자가 적은 거란다. 똑똑해야 하니까.”

“수학을 잘해야 한단 말씀이신가요, 스승님?”

“형제여, 네가 멍청하다는 뜻은 아니란다. 무척 기민하고 영특한 건 사실이야. 하지만 지나치게 직관과 통찰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구나.”

마법.

수식을 외우고 회로에 공명하는 마나의 흐름을 느낀 후 그것을 폭발시킬 좌표를 계산해 지정해야 한다는 건데.

아우씨. 나에게는 그게 너무 어려웠다.

수학이라는 걸 제대로 파본 적 없으니까.

[그래비티 봄(Gravity Bomb)!]

“또 표적에서 멀리 빗나갔다, 슈바인 형제. 내 누누이 말하지 않았니? 네가 파악하고 있는 영역 안에서 공명 주파수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유념하라고.”

“하지만 주파수를 느끼는 것과 좌표를 계산하는 걸 동시에 하려니 너무 어렵습니다, 스승님.”

내 아우성에 마녀는 곤혹스러워했다.

“희한하구나. 다른 과정은 모두 잘 해내면서, 어찌 마지막 방점인 좌표 지정만 이렇게 문외한처럼 굴꼬.”

실제로 문외한이니까요.

스킬을 빌려 쓰는 거지, 진짜 마법사가 아니라구요.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자 마녀가 방향을 바꿔보겠다는 듯 손가락을 하나 들어보였다.

“슈바인 형제, 기적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기적이요? 음…… 신이 인간에게 내려주는 행운 같은 거 아닐까요?”

“마법이란 무릇 인간의 힘으로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이들도 노력과 연구의 산물로 마법을 이뤄내곤 한다. 네가 방금 말한 정의에 부합하는 건 사제들의 신성력이겠지. 마법에서 기적은 신력(神力)의 행사가 아니야.”

“그러면요?”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상대의 말을 경청할 준비를 마쳤다. 그러자 마녀는 내게 무척 난해한 주관식 문제를 던졌다.

“내가 지금부터 전심전력으로 중력 마법을 구사해 형제의 목숨을 짓이길 거라 생각해 보렴. 전혀 봐주는 것 없이 목숨을 빼앗기 위해 구사할 것이라 가정해라. 자아, 너는 이 공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니? 그 확률이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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