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 저주가 피와 살이 될 터이니 (2)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던 나는 다음 순간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허억. 허억. 헉.”
헐떡이며 주변을 둘러보니 엄마도, 아빠도, 상희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출근길의 지하철 계단 앞에서 홀로 남겨졌다.
“어떡해. 아직 학생인 것 같은데.”
“쯧쯔. 그래도 출근 시간에 안 나오면 안 되나?”
사람들이 나를 지나치며 수군댄다.
역무원을 호출하는 버튼을 눌러보지만,
응답은 없다.
오지 않는다.
나를 도와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이게 심마? 내가 겪었던 고통의 순간들로 나를 돌려보내는 거야?’
아니었다.
용사가 만들어내는 심마는 내가 겪지 못한 순간 또한 만들어냈다.
연극의 무대 바닥이 회전하며 반대쪽 배경을 보여주듯 우주가 한 번 빙글 돌았다.
내 머리 위에는 형형색색으로 디자인된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ㅇㅇ고등학교 38회 졸업생 여러분들의 출발을 응원합니다.’
불 꺼진 대강당.
학생과 가족, 교사들까지 모두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 수백 개의 텅 빈 의자들이 도열해 있었다.
아니, 의자는 텅 비지 않았다.
한 소녀가 갈색 교복을 입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것이다.
응당 품에 안겨 있어야 할 꽃다발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상희니?”
상희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이건 내 기억이 아니다.
나는 이 강당을 모른다.
나는 상희의 졸업식에 가지 못했다.
나는…… 저렇게 무표정한 상희의 얼굴을 모른다.
“오빠는 나를 버렸어.”
“아니야! 상희야. 그건 내 의지가 아니야.”
“내 졸업식에 와 주길 계속 기다렸는데.”
나는 여전히 휠체어에 구속돼 있고,
아무도 앉지 않은 의자들을 툭툭 밀어서 쓰러트리며 상희가 내게 걸어온다.
“왜 오지 않았어, 오빠?”
“이 다리로 졸업식에 가면 네가…….”
“그건 비겁한 변명이야. 날 위해서가 아니라 오빠가 껍질을 깨고 남들 앞에 설 용기가 없었겠지.”
“내가 그럴 리 없잖아. 특별한 사정이 있었어. 정신 차려보니 푸르가어쩌구 하는 감옥이…….”
“오빠는 날 외면했고, 스스로를 기만했고, 가족을 등진 거야.”
“아니야!”
상희의 교복 재킷에서 기다란 칼이 뽑혀 나왔다.
어째서? 대체 왜?
싸늘한 얼굴로 상희가 나를 내려다본다.
“죽어버려.”
휘둘러진 칼이 내 목을 잘랐다.
*
“으아아아아악!”
“정신 차려라, 용사!”
나는 양손에 뭔가 단단한 것을 붙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내가 쥐고 흔들고 있던 것이 제르비어스의 두 뿔이라는 것, 정신없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마왕의 머리를 한참 보다가 이윽고 그걸 놓아주었다.
“켁, 어지럽군. 이제야 정신이 돌아왔나, 슈바인?”
“상희가 내 목을…… 어떻게? 상희야?”
“아직 정신이 덜 돌아왔나. 모를 소리만 내뱉는군. 상희는 누구냐? 새로운 층에서 만난 죄수 이름인가?”
죄수.
그 단어를 듣자 기억이 빠르게 돌아오면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의 몸에 들어왔는지 깨달았다.
“여긴…… 어디야?”
나는 허름한 침상에 누워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화룡도의 7번 방으로 돌아온 줄만 알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건 이상했다. 한 층을 오르는 데에 ‘클리어 불가의 퀘스트’를 내길 좋아하는 교도관장이 그걸 용납해 줄 리 없으니까. 무엇보다 화룡도 특유의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여긴 열외죄수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마교와 마탑의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죄수들이 삼월초원의 남쪽 끄트머리에 오두막을 짓고 살더군.”
한가로워 보이는 농경지에서 몇몇 죄수들이 오가는 것이 보였다. 자칫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광경이었다.
어떤 죄수는 웅덩이에 낚싯대를 드리운 채 졸고 있었다. 그의 손목에 채워진 족쇄가 아니었다면 한 폭의 수묵화처럼 느껴졌을 거다.
“내가 얼마나 누워있었어?”
“다섯 시간은 넘을 거다.”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상태창을 띄웠다.
[HP: 8,242/9,999]
[MP: 95/450]
다행이었다. MP의 한계치가 10에서 450으로 훌쩍 올라 있었던 것이다.
“효과가 있군. 잘됐어.”
“뭐가 잘됐단 말이냐. 넌 거의 죽다 살았어. 저 녀석이 아니었다면 정말로 죽었을 거다.”
“저 녀석?”
그러자 오두막의 한구석에 공손한 자세로 앉아 있는 늑대인간이 보였다. 용사의 심안이 그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이름은 슈미트. 회복 마법을 익힌 마법사였다.
“당신이 절 고쳐준 거예요?”
“그, 그렇습니다. 등반죄수 님.”
“고맙습니다. 그런데 왜 오른쪽 눈두덩은 벌겋게 부어올라 있죠?”
그러자 슈미트는 원망 섞인 시선으로 제르비어스를 힐끔 쳐다보았다.
“나는 의식을 잃은 널 들쳐 메고 이곳으로 곧장 달려왔다. 염사군이란 녀석이 해줬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이중에 사람을 고칠 수 있는 놈을 찾았어.”
내가 쓰러진 사이 마왕이 그렇게까지 했다고? 기특한 캣마왕일세.
“그러자 이 녀석이 회복 마법을 익혔다면서 손을 들더군.”
“그런데?”
“용사 널 회복시키는 중간에 다른 마법을 쓰는 낌새를 눈치챘다. 가만히 냅뒀으면 넌 좀비나 강시가 됐을 거야.”
나는 새삼 달라진 시선으로 슈미트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는 바늘에 찔린 것처럼 움츠러들었다.
“죄, 죄송합니다. 당신의 신체는 완벽한 균형과 조화의 미를 갖고 있습니다. 마치 신이 만든 조각품처럼. 그, 그렇게 완벽한 육체를 보니 저도 모르게 그만 홰까닥 돌고 말아서. 다신 안 그럴게요.”
그제야 ‘회복 마법’을 익힌 마법사가 왜 이 감옥에 잡혀 들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있던 세계에서 환자들을 회복시켜주고 무지성의 실험체를 양산했던 모양이다.
매드 사이언티스트로구만.
“괜찮습니다. 어쨌든 절 살려주신 건 맞으니까요. 대신에 부탁 하나만 드리죠.”
“부, 부탁이요?”
“앞으로도 제가 목숨이 넘어갈 정도로 약해지면 그때 또 회복 마법을 걸어 주세요.”
그러자 슈미트의 주둥이가 씨익 올라갔다.
“저, 저야 환영입니다. 당신 같은 완벽한 육체에 원기를 불어넣는 작업은 너무나 황홀…… 아, 죄송합니다. 안 그런다니까요.”
뒤를 돌아보니 제르비어스가 어느새 주먹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마왕은 충분히 겁을 줬다고 생각하는지 다시 진지한 얼굴로 날 쳐다봤다.
“설마 죽을 뻔했으면서 그 짓을 반복할 생각이냐? 네 마력 회로는 꽤 넓어졌어. 나쁘지 않은 수준까지. 내 허공분쇄마탄을 쓸 수 있을 정도로.”
“그래도 MP 수치는 아직 달성 목표의 10분의 1 정도밖에 안 돼. 나쁘지 않은 수준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계속하자.”
내가 침상에 일어나서 몸을 풀자 마왕은 진저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용사. 내가 화룡도에서 왜 공포의 대상이 되고자 했는지 넌 꿰뚫어 봤어. 그렇지 않나.”
“맞아. 무슨 이야길 하고 싶은 건데?”
“물론 화룡도에선 쳐 죽여도 마땅한 녀석들이 많았지. 그래도 난 서로가 서로를 죽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모두를 제압하기로 한 거야.”
마왕의 동공은 가라앉아 있었다.
“내 손으로 널 죽이고 싶지 않다.”
이죽거리며 받아칠 수도 있었지만 그래선 안 될 타이밍이었다. 그래서 난 내 각오를 담아 말했다.
“절대 죽지 않을 거다. 약속하지. 이겨내고 돌아오겠어.”
“후우. 고집이라면 네놈이 푸르가토리움의 전 층을 통틀어 가장 질길 거다. 준비는 됐지?”
“응. 스스로에게 휴식을 줬다간 결심만 약해질 것 같아. 바로 시작하자아아아악!”
마왕이 이번엔 다섯 개의 손톱 모두를 내 가슴에 박아 넣었다.
이전보다 더한 저주의 고통이 세포를 파고들었다. 마치 철창 속에 굶주리고 있다가 내던져진 염소의 목덜미를 덮치는 포식자처럼.
[MP가 10 올랐습니다.]
그렇게 매분 매초 내 정신은 유린되었다.
인체는 모든 고통에 내성을 갖게 마련이라던데,
[MP가 10 올랐습니다.]
저주는 그런 분류에 속하지 않았다.
언제나 새로운 형태의 고통으로 나를 몰고 갔고,
나는 매번 낯선 지옥으로 던져졌다.
[MP가 10 올랐습니다.]
밤이 되면 하나의 달이 차올랐다.
열외죄수인 마법사 슈미트는 그것이 삼월초원의 첫 번째 달이라고 하였으며, 2층의 죄수들에게 마력을 충전시켜 준다고 말했다.
그래서 바깥 세계에서와 달리 이 세계에선 마법사들이 ‘메모라이즈’를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2주일이 지날 때마다 달은 하나씩 더 생겨나며 세 개의 만월이 떠오르는 날 쌍마대전은 다시 벌어질 것이다.
[MP가 10 올랐습니다.]
그러니 포기할 수 없다.
이건 무인이 자연적인 방법으로 강해지는 것이 아닌 일종의 사도(邪道)였다. 어쩌면 마도(魔道)일 수도 있다.
괜찮다. 어차피 나는 마도를 걷기 위해 이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MP가 10 올랐습니다.]
그러니 이건 샛길로 새는 짓이 아니다.
난 최단시간의 지름길을 택한 것이다.
*
- 나는 나는 바본가 봐요
그대 그대밖에 모르는 바보
나는 또 다시 심마에 잡아먹혀 과거의 악몽 속으로 소환됐다. 조수석엔 잠들어 있는 상희. 앞자리엔 곧 덮쳐올 죽음도 모른 채 웃고 있는 엄마와 아빠.
이번엔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
소리를 쳐서 차를 멈춰 세우라고도,
제발 나를 봐달라고도 외치지 않았다.
다만 혼자 이렇게 읊조렸을 뿐이다.
“아빠, 엄마. 미안해요. 그때 두 분을 지켜 드리기에 저는 너무 어렸어요.”
산사태가 벼락처럼 우리의 차를 덮친다.
하지만 난 창 밖을 보지 않았다. 어차피 저것은 녹화된 영상에 불과하다. 티브이의 액정을 박살낸다고 해서 그 일이 없었던 일이 되진 않는다.
- 말도 못했는걸 너무 부끄러워하는 난
용기가 없는 걸까 어떡해야 좋은 걸까
아빠가 핸들을 꺾는다.
“이 각도에서 보니 알겠어요. 아빠가 핸들을 꺾을 때 망설이지 않았다는 걸. 최대한 우리가 다치지 않도록 본능과 싸우셨네요.”
나는 차체가 찌그러지는 광경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두 분 곁으로 갈 때가 아녜요. 상희를 지켜야 하니까. 절대 약해지지 않을 거예요.”
심마가 내게 보여주는 풍경을 숱하게 반복한 결과 나는 수백 번 돌려본 영화의 다음 장면을 예상하듯 다가올 순간을 기다렸다.
빠아아아아아앙.
부산스러운 출근 시간의 지하철 개찰구.
사람들은 이번에도 휠체어에 앉은 나를 보며 수군거렸다. 익숙해서 두려운 눈빛, 외면하고 싶지만 파고드는 목소리.
나는 계단을 올려다보며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그래. 그때의 나는 온 세상을 원망했다. 마음을 열고 날 받아주는 이도 없었고, 나 역시 한 줌의 온기조차 타인에게 주지 않으려 했어.”
나는 손등의 난 9개의 칸을 바라보았다.
그중 좌상단에서 오롯하게 점멸하고 있는 불빛 하나. 그것은 내가 화룡도의 마그마 볼에서 우승했다는 변치 않는 증명이다.
나는 그 마그마 볼을 혼자 옮기지 않았다.
“이 감옥에 끌려와서야 나는 제법 소중한 녀석들을 만났어. 자신들이 보기엔 터무니없이 큰 꿈을 꾸겠다는 내 등을 있는 힘껏 밀어주었지.”
7번 방의 죄수들이 보여주었던 우정.
마지막 순간에까지도 버리지 않았던 날 향한 신의.
그것들이 지금도 내 안에 있다.
“그러니 지금의 내겐 증오만 남아 있지 않아.”
그렇게 난 다시 어두운 대강당으로 던져졌다.
텅 빈 졸업식장에 혼자 앉아 있는 여동생 상희.
저것은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심마가 내 죄책감을 덥썩 씹어 먹고 내뱉은 배설물에 불과하다.
“오빠는 나를 버렸어.”
“넌 상희가 아니야. 그러니 너를 보며 죄책감을 갖진 않을 거야.”
상희가 내게 다가와 다시 칼을 뽑아든다.
“왜 오지 않았어, 오빠?”
“나는 이곳을 무조건 탈옥할 거야. 기다리고 있어.”
냉담한 궤적을 그리며 내 목을 향해 날아오는 칼을 피하지 않았다.
다만 침착하게 친구의 스킬을 빌려왔을 뿐.
[친구 제르비어스 폰타인의 스킬을 빌려옵니다.]
[마왕군 폭렬마법]
[1급 오의 ‘업화의 쌍장’]
마기를 두른 오른손이 상희가 휘두른 칼날을 잡아챘다. 물론 심마가 만들어낸 상희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이봐. 마음이 지옥에 있는 사람에게…….”
있는 힘껏 칼날을 때려 마기를 폭발시켰다.
꽈아아아아아앙!
응축되었던 점이 터져나가며 상희의 몸과 내가 앉은 휠체어, 우릴 둘러싼 대강당을 지워버렸다.
“지옥 같은 광경을 계속 보여주는 건 의미가 없어.”
*
삼라만상이 내 의식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 느껴졌다. 반대로 인간 박상식의 영혼이 다시 용사 슈바인 스트링거의 몸과 일치되는 것도.
눈을 뜨자 풍비박살 난 오두막의 지붕 아래 슈미트가 벌벌 떨고 있었다. 제르비어스 역시 저 멀리 나뒹굴고 있었다.
심마 상태에 있을 때 펼친 스킬이 현실에서도 구사되었던 모양이다.
내게 달려오는 마왕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어나 있었다.
“해내버렸구나, 용사 놈아! 진짜 괴물 같은 녀석. 일주일 만에…… 마왕군 폭렬마법의 오의를 제대로 구사해버리다니.”
나는 오른쪽 주먹을 불끈 쥐어보았다.
업화의 쌍장은 여전히 보라색 불꽃이 되어 내 손에 머무르고 있었다.
[MP: 6,491/7,510]
내기에 건 일주일.
그 마지막 날의 새벽에 나는 목표했던 수치를 달성했다.
“용사, 여기서 멈추진 아깝지 않나. 조금 더 성장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
1층 화룡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MP를 9,999로 키워내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겠지. 천마와 마녀가 보여준 정점의 수치.
“그건 곤란해. 천마와 마녀 정도로 성장한다면 날 제자로 키우겠단 욕심보다 경계심이 먼저 들 수 있거든. 아직은 이 정도가 적당해.”
아니, 사실 적당이란 단어가 터무니없을 만큼 용솟음치는 마력이 내 안에 맴돌고 있었다.
“스스로를 계속 죽음의 절벽으로 떨어트린 다음 맨 손으로 기어 올라왔는데, 이만큼은 해 줘야지.”
삼월초원의 첫 번째 달이 먼동을 피해 지평선으로 숨고 있었다. 용사의 신체는 마지막 한 터울의 달빛까지 MP로 흡수하겠다는 듯 꿈틀거렸다.
‘들이마시고 내뱉는 호흡에 마력이 담긴 게 느껴져.’
이 정도의 마력 수치라면 이 삼월초원에서 한 끗발 날릴 수 있을 정도의 크기다.
물론 아무리 큰 연료통을 달았다고 해서 도로를 질주할 순 없다.
연료를 동력으로 바꿔줄 엔진을 달아야만 한다.
“그럼 가볼까. 두 최강자의 스킬을 내 것으로 만들 시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