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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39화 (39/300)

#039. 저주가 피와 살이 될 터이니 (1)

나는 터덜터덜 제르비어스에게로 돌아왔다.

“야, 용사. 너 강령술이라도 당한 거냐. 넋이 나가 보여.”

“어, 혼이 몇 번 몸을 탈출했던 것 같아. 두 번 정도 뒈질 뻔했거든.”

나는 참월의 마녀와 무극 천마를 각각 독대하면서 벌어졌던 일을 녀석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마녀와 천마의 수족들을 도발하면서 ‘일주일 안에 마력 회로-단전을 키워오겠다’고 선포한 것도.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마왕이 이마를 짚었다.

“진짜 간덩이가 부은 놈이로군. 고작 일주일 만에 각 진영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의 도량만큼 너의 그릇을 키우겠다니. 도대체 뭘 믿고 그런 조건을 내기에 건 거냐.”

“마력 회로와 단전은 그들 세계의 용어야. 내가 살아온 세계에선 그걸 마나 포인트(Mana Point), 혹은 멘탈 포인트(Mental Point)라고 해.”

“그래서?”

“이제부터 그 MP를 강제로 키울 거다.”

일단 쌍마대전의 두 최강자에게서 가르침을 받으려면 일종의 자격증이 필요한 상황. 훔쳐서라도, 위조해서라도 그 자격증을 따낼 것이다.

제르비어스는 회의적이었다.

“쉽지 않아 보이는데. 화룡도의 방장들에게서 보고를 받은 적 있지. 네가 흙을 미친 듯 퍼먹더니 맷집이 불가사의하게 늘어났다며. 무슨 방법을 썼는진 몰라도 네놈의 집념은 인정해. 하지만 꼴을 보아하니 그 수법에 마력의 한계를 넓혀주는 효과는 없는 거 같은데.”

맞다.

내가 HP를 억지로 늘릴 수 있었던 스킬 ‘엄마 쟤 흙먹어’는 7번 방의 앙증맞은 두더지 뚠 아티르에게서 빌려왔던 것.

그 스킬은 오직 체력 수치에만 영향을 줬을 뿐더러, 이젠 뚠과 같은 층에 있지 않으므로 그 스킬조차 빌려올 수 없다.

“다른 방법을 쓸 거야. 맷집을 늘린 것과는 전혀 다른 매커니즘이지.”

“아, 그래? 듣던 중 다행이군. 근데 왜 그렇게 창백한 얼굴이냐. 뱀파이어가 네 피를 다 빨아먹고 한 방울만 남긴 것처럼.”

“으으으으. 할 수만 있다면 이것만큼은 피하고 싶었거든.”

흙을 먹는 것 역시 손에 꼽을 고역이었다. 그러나 이제부터 내가 시도할 이 방법은 그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끔찍한 고통이 수반된다.

‘하지만 해내야 해.’

결심하지 않았던가.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강해지겠다고. 그리하여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겠다고.

꼭대기 층까지 올라, 이 감옥을 탈출해 지구로 돌아가겠다고.

“엄청 아플 거야. 그러니까 내 계획은…….”

뭔가를 눈치챈 마왕이 사색이 돼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 용사야! 다시 생각해!”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아무리 탈옥도 좋고! 응? 마법도 좋고 다 좋지! 한데 그것만큼은 안 된다! 사나이로서 그걸 떼면 지옥과도 같은 삶만이 너를 기다릴 뿐. 차라리 지금이라도 1층으로 도망칠 방법을 찾자.”

“잠깐, 잠깐.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건데?”

“아프다며! ‘그거’ 떼려는 거 아니야? 그렇게 해서라도 성별(性別)을 바꾸려고.”

휘이이이이잉.

삼월초원의 청량한 바람이 마왕과 내 사이를 한 바탕 헤집고 지나갔다. 그 바람이 내 좌뇌와 우뇌 사이도 헤집어버린 듯 혼란스러웠다.

아 시바.

이 돌대가리 마왕 새끼.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야.

나는 빽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아니야!”

“아니야? 마녀가 그랬다며. 남자는 중력 마법을 못 배운다고. 여자만 배울 수 있다며.”

“그래서! ‘그거’……를 떼면! 내가 여자가 되냐. 그냥 불구만 되고 말지. 여성화랑 중성화를 헷갈리면 어떻게 하냐, 이 또라이야!”

“그런 거구나. 그럼 진작 말을 하지.”

“너 마왕 맞냐! 그딴 건 설명 안 해도 척척 알아야 할 거 아냐. 아오, 이 새끼. 마왕군 최강자 자리 포커 쳐서 딴 거 아냐? 뿔이 아깝다.”

“왜 그렇게 급흥분이냐. 뭘 좀 오해했기로서니 그렇게까지 말하고. 심했어, 너.”

녀석은 급격히 시무룩해져서는 처진 뿔을 쓰다듬는다. 그러면서 뭘 자꾸 웅얼웅얼거렸다.

후우우우.

잠시 심호흡을 하고.

평정심을 되찾았다.

삐쳐버렸는지 발가락 끝으로 애꿎은 땅을 퍽퍽 때리고 있는 마왕에게 다가간다.

“야, 너 마왕 맞지?”

“아, 맞다니까! 몇 번이나 말하게 하는 거야. 이 뿔이 네 눈엔 액세서리 같냐.”

“마왕의 특수능력 중에는 저주도 있고 말야.”

“아, 그럼. 파괴가 내 전공이라면 저주는 내 부전공이지, 암.”

내가 인벤토리에서 꺼낸 것은 액세서리 ‘항주의 귀걸이’였다.

게임 <블러디 크라운>에서 늪지대 스테이지의 지역보스인 ‘심연의 노파’를 때려잡으면 주어지는 저주 저항(Curse Resistance)의 액세서리다.

기억하기로 늪지대는 독, 저주, 출혈 효과를 한꺼번에 플레이어에게 걸어버리는 극악의 지역. 2회차를 돌 때는 좀 더 편하게 보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설계된 아이템이 ‘항주의 귀걸이’였다.

[이름: 항주의 귀걸이]

[등급: A급]

[착용자가 상태 이상 ‘저주’에 걸렸을 경우 행동 불가 제약을 풀어줍니다. 다만, 저주 상태가 10분 이상 지속되면 HP가 점점 깎여나갑니다.]

[부가기능: 항주의 효과로 HP가 1,000씩 깎여나갈 때마다 심연의 노파에 대한 맹세가 깊어져 MP의 한계치가 10씩 오릅니다.]

이 귀걸이를 착용하고 저주 상태를 일부러 풀지 않으면, MP의 한계치를 강제로 늘일 수 있다.

물론 마그마 볼에서 마왕과 접촉했을 때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을 버텨내야 할 것이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이런 변태적인 방법이 아니면 내기에서 이길 수 없어.

“마왕, 네가 가진 것 중 최강의 저주를…….”

나는 제르비어스의 앞에 서서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몽땅 나에게 걸어다오.”

*

마왕의 손톱이 눈앞을 오갔다.

“용사, 화룡도에서 내가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나.”

“네가 강물에 발을 담갔더니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 초원의 짐승들이 죽어나갔다고?”

난 땅 위에 대자로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주를 한 번 겪어보니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던 기억을 되살려 미리 드러누운 것. 그래서 지금 내겐 제르비어스의 뿔과 망토가 검은 실루엣처럼 보이고 있었다.

“그래. 마족의 신체는 그 자체로 파괴와 저주의 힘을 자연에 퍼트린다. 내 저주 능력은 마왕군에서도 손에 꼽히는 ‘고문 기술’이었다. 대륙연합군이 보낸 암살자 중에서 내 고문으로부터 한 시간 이상 생존한 녀석이 없었고. 진심으로 그걸 네놈이 이겨낼 수 있단 거냐?”

나는 대꾸 대신 줄무늬 죄수복을 거칠게 잡아 뜯었다. 용사의 흠결 없는 대흉근이 여실히 드러났다.

제르비어스는 그것을 대답이라 생각했는지 자신의 보라색 손톱을 내 왼쪽 가슴에 주사기처럼 찔러 넣었다.

푸욱.

심장에 닿지 않을 만큼만 깊숙하게.

[경고! 용사의 축복받은 신체와 상극인 존재와 접촉했습니다.]

버티자. 버터내야 한다.

[신체 접촉 시간이 1분을 넘겨 상태이상 ‘저주’에 걸립니다.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고통이 정신을 침식합니다.]

“으으으으으윽!”

눈앞에서 천 개의 벼락이 쳤다.

하얗게 변한 시야와 더불어 시신경이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이 나를 덮쳤다. 저절로 목에 핏대가 솟는다.

“끄아아아아악!”

마왕의 왼쪽 무릎이 내 복부를 짓눌렀다. 나는 그제야 나도 모르게 발작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상태 이상 저주가 깊어집니다.]

누군가가 내 정수리를 뚜껑처럼 열어 척수에 용광로의 펄펄 끓는 물을 집어넣으면 이런 느낌일까.

[액세서리 ‘항주의 귀걸이’의 착용 효과로 HP가 감소합니다.]

[HP가 1,000 깎여 나갑니다.]

[MP가 10 올랐습니다.]

혀를 깨물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뿌드득. 빠드득.

송곳니가 바깥으로 꺾이는 느낌이 들었다. 생니가 부러지는 고통이 응당 느껴져야 하는데, 잇몸에선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전신의 신경이 찢어발겨지는 아픔이 모든 감각의 집중력을 다 가져가버린 것이다.

“눈에서 피가 나온다. 멈출까, 용사?”

“아, 아니. 절대 멈추……지 마라아아악.”

[MP가 10 올랐습니다.]

효과가 있다.

교도관장이 날 이 감옥으로 끌고 왔을 때 게임 속의 용사 슈바인 스트링거를 끌고 오면서 생겨난 어떤 ‘법칙’이 내 계산대로 통하고 있는 것이다.

교도관장 이 망할 새끼.

그 자식, 지금도 어딘가에서 팝콘 먹으며 이 광경을 즐기고 있는 거 아닐까. 언젠가 반드시 그 신적인 존재에게도 내가 느끼는 고통을 돌려주리라!

나는 곰인형의 얼굴을 프라이팬으로 퍽퍽 때리는 상상을 했다. 저주의 고통에서 조금이라도 신경을 돌리기 위해서.

통하지 않았다.

[MP가 10 올랐습니다.]

제르비어스의 말은 조금도 허풍이 아니었다.

이런 고문을 버텨낼 수 있는 생명체는 있을 수 없다. 신에게 비는 기도 따위 통할 리 없다.

오히려 그 어떤 신심 깊은 사제라 하더라도 이런 저주에 걸리면 신의 이름을 진흙에 내던지고 침을 뱉었으리라.

[MP가 10 올랐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나는 이름 부를 신을 갖고 있지 않았다.

다만 가족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을 뿐이다.

‘엄마. 아빠. ……상희야.’

날 둘러싼 모든 것이 흐릿해져간다.

뒤통수와 등, 엉덩이에 느껴지던 땅의 느낌이 사라졌다. 속눈썹을 간질이는 순풍도 느껴지지 않는다.

냄새는?

비릿한 피 냄새가 희미할 뿐이다. 아마 찢어진 잇몸에서 나는 피 냄새겠지.

그러나 그것 또한 이내 날아가 버렸다.

감각들이 하나씩 잘려나가는 가운데.

암흑 속에서 오직 내 정신과 저주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그때 이상한 음성이 들려왔다.

[상태 이상 ‘저주’의 허용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지고 있습니다. 신체가 극도로 약해지면 정신 또한 온전할 수 없게 됩니다.]

[경고! 경고! 용사의 정신이 붕괴를 피하기 위해 금지된 방어 기제를 펼치려 하고 있습니다.]

뭐어? 이건 또 무슨 소린데.

[용사의 정신이 ‘심마(心魔)’를 만들어 냅니다. 주의하십시오.]

[당신의 영혼은 이제 저항할 수 없는 과거의 상흔과 직면하게 됩니다.]

어디선가 멀리서 귀에 익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

- 너무너무 멋져 눈이 눈이 부셔

숨을 못 쉬겠어 떨리는걸

십 년도 전에 유행했던 노래가 카 오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창 밖에는 울창한 수풀이 초록의 선을 그리며 지나가고 어깨는 구불구불한 길을 꺾을 때마다 위태롭게 휘청인다.

“갑자기 왜?”

나는 낯익은 승용차의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눈높이가 어색하다. 운전석의 헤드레스트가 정면이 아니라 위쪽에 자리하고 있다.

아니, 눈높이가 변한 게 아니라 내 몸이 작아졌다.

- 나는 나는 바본가 봐요

그대 그대밖에 모르는 바보

그래요 그댈 보는 난

생각났다.

아홉 살의 여름.

온 가족이 함께 바다로 떠났던 휴가.

오른쪽을 쳐다보니 상희는 곰인형을 끌어안고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조수석의 엄마는 아빠와 무언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안 돼에!”

나는 운전석의 헤드레스트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막이 조막만한 내 손을 도로 튕겨냈다.

“아빠! 멈춰요, 제발! 브레이크를…….”

전혀 듣지 못한다.

이대로 가면 산사태가 우리 가족이 탄 차를 덮치게 된다.

끼이이이이익!

이렇게.

“으아아아아악!”

아빠는 반사적으로 핸들을 돌렸지만,

차의 속도는 줄지 않았고,

엄마는 언덕을 타고 내려오는 돌무더기를 보자마자 뒷좌석으로 황급히 고개를 돌렸었다.

이렇게.

까드드드드드득!

차체를 짓누르는 암석이 어머니와 아버지의 몸을 찌그러트렸고,

압력을 이기지 못한 운전석이 뒤로 밀리며 내 무릎 아래를 작살내 버렸다.

- 너무 깜짝깜짝 놀란 나는

Oh Oh Oh Oh Oh

너무 짜릿짜릿 몸이 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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