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6. 날개와 물갈퀴 (3)
하지만 상황은 내 계획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마음껏 만찬을 포식하겠다는 내 야심찬 포부와 달리 두 곳의 식당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천마신교와 백묘탑.
2층을 지배하는 두 죄수집단은 우릴 특별히 괴롭히지도 막아서지도 않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부활절 달걀을 나눠주며 교회에 놀러 오라고 권하는 선량한 선교집단 따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친구가 될 수 없다니요? 왜요?”
나는 갈색 머리에 안경, 고깔모자를 쓴 ‘섬광의 마녀’ 유진 쿤딜리니에게 따졌다.
그녀는 백묘탑의 육망성 중 한 명으로 탑의 재정 전반을 담당하는 온화한 성품의 마법사였다.
그래서인지 무척 친절한 얼굴로 거절을 전달할 줄 아는 여인이었다.
“우리는 모두 한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형제 자매들이예요. 누구도 친구는 두지 않지요. 슈바인 군? 그 어느 곳에서 가족끼리 친구의 서약을 한단 말인가요?”
내가 유진에게 제일 먼저 ‘친구가 되지 않을래요?’ 하고 물었던 이유는 그녀가 높은 수준의 전이 마법을 이룩한 마법사였기 때문이다. 연속 ‘블링크(Blink)’ 마법으로 쌍마대전에서 동분서주하며 맹활약하는 걸 직접 목격했다.
용사의 심안은 그녀를 두고 ‘물질계와 에테르계를 오가는 순발력은 단연 최강’이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그래서 민첩 수치가 빈약한 내게 큰 도움이 될 거라 믿었는데…….
“어머니이신 참월의 마녀 아래서 우린 모두 함께 사랑받는 자식들. 아무도 서로를 친구로 부르지 않는답니다.”
찡긋.
안경 너머로 비춰지는 유진 쿤딜리니의 미소는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에테르계에서 자신도 감당 못할 괴수들을 소환해 왕국을 환란으로 몰아넣은 죄수라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어쨌든 마법사들은 이런 멘트로 나의 ‘친구 신청’을 거절했으며 마교에선,
“우리가 서로를 형님, 아우로 부른다 해서 뭔가 착각했나 보군. ‘친구’라니. 네놈과 본인이 친구가 되면 누가 위인고?”
피부가 갈색 돌로 이뤄진 거인 ‘폭암도인(暴巖道人)’이 내게 눈을 부라렸다. 그러자 그의 눈두덩에서 모래가 투툭 하고 흘러내렸다.
“그, 그런 건 없지요. 친구는 동등하고 평등한 관계 아니겠습니까.”
“동등? 평등?”
폭암도인은 삼월초원에서 제르비어스를 철산고 한 방으로 가볍게 튕겨낸 장본인.
그가 익힌 무공은 땅이 있는 곳 어디든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천지역근경(天地易筋經)’이었다. 병장기가 필요 없으며 MP 소모도 없이 근력만 있으면 습득할 수 있는 외가기공.
딱 지금의 내게 맞는 무공이었는데.
“수인거(洙引擧) 소협, 그리고 봉타인(逢打人) 소협. 잘 듣게나.”
스트링거와 폰타인이라는 우리의 성씨를 제멋대로 음차한 폭암도인이 말했다.
“우리 마교에 동등한 서열은 없다네. 서열이 비슷하면 꼬여. 무조건 싸워서 고하를 나누기 위한 결착이 필요하지. 아무리 근소한 차이라 하더라도 어느 쪽이 위인지 못 박아두는 것. 그것이 바로 강자존(强者存)의 율법이라네.”
이런 무뇌 전투머신들아!
결국 천마신교에서도 친구 사귀기 프로젝트는 헛물켜기로 돌아갔다. 폭암도인을 제외한 다른 고수들도 찾아가,
“소인과 붕우(朋友)의 정을 나누지 않겠소?”
라고 물어봤지만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지금 한 판 붙자는 겐가?”
라는 반응만 돌아왔으니까.
나는 인적 없는 대나무 숲에 들어가 애꿎은 대나무를 후려쳤다. 민첩 스탯이 70까지 올라 맨손으로 때렸는데도 빠각하며 잘려나갔다.
“죄 없는 초목을 괴롭히는 거 아니다, 수인거 소협.”
“빈정대지 마, 제르비어스.”
“어허. 이 봉타인 대협의 충의 어린 조언을 빈정거림으로 오해하지 마시게나.”
“그 이름이 꽤 마음에 드나 보다? 너 한자 못 읽지?”
폭암도인이 마왕에게 붙인 한자 중 봉타는 ‘두들겨 맞다’는 뜻이다. 즉, 봉타인(逢打人)은 두들겨 맞는 사람이란 뜻인데 저 녀석은 좋다고 히죽댄다.
“이래선 곤란해. 전략을 대폭 수정한다.”
“그래? 묘안이 있나.”
“어차피 수백 가지 잔반을 꾸역꾸역 먹어봤자 뭐하겠어? 중요한 건 메인 디쉬지. 나는 두 개의 메인 디쉬만 먹겠다.”
마왕 제르비어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소리야? 뭐가 두 개의 메인 디쉬인데?”
교도관장 녀석은 각 층마다 한 명의 죄수만 친구로 데려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한 층에서 친구를 사귀는 행위 자체를 두곤 어떤 왈가왈부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친구를 사귀는 능력은 파천황의 권능인 거니까.
즉, 등반죄수로 데려갈 친구를 결정하기 전에 여러 후보를 섭외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참월의 마녀, 무극 천마. 그 둘을 내 친구로 삼아서…… 누가 더 강한 절대자인지 확인하겠다. 지금부터 마녀와 천마를 차례대로 만날 거야. 너랑 동행하면 일이 꼬일 수 있으니까 일단 바깥에서 기다려.”
“뭐? 나도 그 층장 후보들을 만나보고 싶다. 어째서 더 강자인 내가 기다리는 역할인 거냐!”
왜긴 왜야.
그래야 뒈질 위기에 처하면 순간 이동 권능으로 도망칠 수 있으니까지.
*
천마신교는 철저한 서열 사회.
새로운 죄수가 오면 싸움을 통해 서열이 정해진다. 의견 다툼이나 분쟁이 일어날 시에도 비무(比武)를 통해 옳고 그름을 결정한다.
학원액션물에 나오는 폭력고교 같은 설정이지 않아? 그런데 알기 쉬워서 좋은 점도 있다.
흥미로운 건 한 번 정해진 서열은 어지간해선 뒤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어째서일까. 이만한 고수들의 맞대결이라면 작은 깨달음, 환경이라는 변수, 당일 컨디션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어야 하지 않나.
‘죄수들의 능력이 성장하지 않기 때문일 거다.’
화룡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방장들의 위용이 만만치 않았지만 그중에서 점점 강해지는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이 감옥에서 오직 나만이,
레벨업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감옥에 온 첫날은 능력치를 강제 다운시킨 교도관들의 처사에 무척 화가 났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능력치가 ‘가변적’이라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의 탈옥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갈 수 있다.
무극 천마와 참월의 마녀.
두 진영의 절대자들에게 지금의 내가 성에 찰 리 없다. 마교의 서열 싸움에 뛰어들면 성적이 볼품없을 것이며 마탑의 거장들과 마법을 견줄 수도 없지.
그러나 나는 스탯을 성장시킬 수 있고, 심지어 누군가의 스킬을 그대로 흉내 낼 수도 있다.
나는 그들이 이 감옥에서 얻을 수 있을 거라 상상하지 못했던 걸 선물할 생각이다.
‘불세출의 천재 제자’를 키우는 즐거움을.
*
“내게 마법을 배우겠다 했느냐?”
며칠 전의 쌍마대전.
우리가 처음 목격한 마공 마법의 대전쟁.
아침이 되자 승부를 내지 못하고 아쉬워하며 돌아갔던 두 명의 최강고수. 그중 한 명인 참월의 마녀 일레인 쿠디슈가 내게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백묘탑의 주인이시여.”
“흐음.”
하늘하늘 흘러내리는 은발. 그리고 석영처럼 투명한 눈동자. 마녀는 실로 아름다웠다.
자연스레 내뿜는 대마도사의 품격이 백묘탑 심층부의 알현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녀 뒤에는 육망성 ‘성운의 마도사’ 드라이푸스 카인과 ‘빙하의 요정’ 록시탄이 서 있었다.
마녀 일레인은 단호히 내뱉었다.
“불허한다.”
“……네?”
“내가 있던 세계에서 중력 마법은 흑마법에 속한다. 흑마법의 속성을 아느냐?”
“아니오. 잘 모릅니다.”
“마도제국의 흑마법 중 최고 난이도인 중력 마법. 그것은 오직 여인에게서 여인에게만 전수되지. 보다시피 너는 예쁘장한 얼굴을 갖고 있는 데다가 제법 내 타입이다만, 흐음. 어딜 봐도 여인으로 보이진 않는구나.”
“차, 차별하시는 건가요?”
당황한 내 물음에 마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차별이 아니다. 내가 백묘탑 안에 새 식구를 들여놓을 때 중요시 여기는 것은 성별도, 서클의 높고 낮음도 아니므로. 오직 마나를 흐르게 할 수 있는 회로의 유무만 따진다. 육망성의 마법사 중엔 형제도 둘 있고. 드라이푸스, 그렇지 않나?”
쌍마대전에서 무려 세 개의 마법진을 동시에 구사하던 성운의 마도사가 수염을 매만졌다.
“그렇습니다. 어머니께선 형제와 자매를 가리지 않고 사랑하십니다.”
으윽.
수염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젊은 여인의 얼굴을 한 마녀에게 어머니라고 하는 거, 나만 희극적이냐?
“하지만 내 제자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성별의 문제이긴 하나 차별이라 할 순 없느니라.”
“잘 이해되지 않는데요. 그렇다면 어찌하여 남자는…….”
“꼬마야, 너는 나무토막에 전기를 통하게 할 수 있겠느냐. 가능하다 하더라도 바로 옆에 순철이 있다면 어떨까. 당연히 벼락은 금속인 순철을 통해 뻗어 나가겠지. 내가 이 감옥에 오기 전에 달성했던 9서클의 중력 마법은 대(代)를 이은 출산으로 강함을 쌓는 방식. 즉 중력 마법을 배우기 위해 없어선 안 될 것은 바로 자궁(子宮)이니라.”
자궁?
출산과 출산을 거치며 마력이 강해진다고?
전혀 상상도 못했던 강화법이었다.
“너는 출산을 할 수 없는 몸. 나의 마법을 가르친다 한들 의미가 없다. 이 백묘탑의 다른 형제들을 찾아가면 남자도 쓸 수 있는 마법을 배울 수 있겠지. 하지만 적어도 내가 쓰는 마법은 너에겐 맞지 않겠구나.”
마녀의 등 뒤에 침묵하고 있던 엘프 록시탄이 입을 열었다.
“어머님, 저자의 성별이 여인이었더라도 거부하셨을 거예요. 마력 회로의 크기가 세 살 유아의 수준으로 보잘 것 없으니까요.”
얄밉다, 저 엘프. 게다가 빙결 마법사라서 그런지 말투에 차가운 기운이 절로 서려 있어.
참월의 마녀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록시탄 자매의 말이 옳다. 마법은 천재들의 영역. 너는 무재능이라고 봐야 해. 이미 성장을 마친 네가 마력 회로의 크기를 단숨에 키울 수는 없는 노릇.”
“하지만…….”
“벼락을 맞은 나무가 어찌되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터.”
이 상태에서 중력 마법을 배우면 나는 죽는다는 소리였다. 벼락을 맞아 새카맣게 타버린 벽조목처럼 된다는 거다.
더군다나 내가 그녀에게 배우려는 것은 단순한 마법도 아니고 세상을 엎고 땅을 흔드는 9서클의 마법.
자격이 없는 자가 손을 댔다가 재로 변하는 것도 말은 된다.
물론 그녀에겐 나처럼 타인의 스탯을 1점 단위로 알아내는 ‘용사의 심안’ 같은 능력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천년 제국을 무너뜨린 마녀. 당연히 나의 마법 잠재력을 꿰뚫어볼 수단이 있을 것이다. 그냥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걸 수도 있고.
내 상태창을 다시금 본다.
[HP: 9,999]
[MP: 10]
말도 안 되는 불균형.
‘반성하자.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어.’
하품하듯 집채만 한 불을 내뿜고 침을 뱉듯 폭포를 만들어내는 초마인들의 세계에 떨어지는 바람에, 용사인 나 역시 조금만 배우면 당연히 가능할 줄 알았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1층에서 나는 어떠했는가. 강해지기 위해, 층장과 싸우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악착같이. 조금의 요행도 바라지 않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이 감옥도 마찬가지다.
“알겠습니다. 마녀님의 말이 옳아요. 그렇다면 저와 내기 한 번 하실래요?”
“으응?”
지금 나는 MP가 없다고 봐도 무방한 무마력의 몸.
하지만 MP를 강제로 잡아 늘릴 수만 있다면 어떨까.
마녀의 거절을 들은 것이 내가 아니라 다른 남성 죄수였다면, 바로 여기서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믿는 구석이 있다.’
이 세계에 떨어졌을 때 나는 검사도 마법사도 아닌 용사로 왔다.
내가 만약 마법을 전혀 쓸 수 없는 인간이었다면?
그렇다면 저 상태창에 MP칸은 아예 없었을 것이다. 용사에게 정령을 부리는 힘이 없어서 SP칸이 없는 것처럼.
하지만 MP칸은 분명 존재했다.
그렇다면 저것을 강제로라도 ‘늘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눈앞의 마녀가 말하는 ‘서클’과 ‘마력 회로’가 좁쌀만큼이라도 몸에 존재한다는 것.
“내기? 무엇을 두고 내기한다는 거지?”
나는 그녀의 등 뒤를 보좌하고 있는 엘프 록시탄의 얼굴을 본다. 빙하에서 대륙 최고의 마정석을 흡수해 마법사가 된 강력한 요정.
용사의 심안을 써서 그녀의 스테이터스를 본다.
[MP: 7,340]
저 수치는 아마 록시탄의 마력 회로가 지극히 뛰어난 수준이라는 걸 수치로 보여주는 거겠지.
“키워 오겠습니다.”
“무엇을?”
“전기가 흐르는 나무토막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나무 안에 억지로 철심을 박아서라도 벼락을 맞아 살아날 수 있다는 걸 입증하겠습니다. 저 록시탄이란 자매.”
나는 손가락을 들어 빙결의 요정의 얼굴을 당당히 가리켰다.
“저 자매의 ‘마력 수치’만큼 제 마력 회로를 키워서 돌아오겠습니다. 그럼 제 소원 하나만 들어 주세요.”
“하아아. 슈바인 스트링거, 재능이 없다는 건 결코 재앙이 아니다.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지. 마법의 천재라 하더라도 록시탄의 수준까지 회로를 키우려면 최소한 칠십 년은 걸릴…….”
“일주일.”
마녀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어졌다.
건방진 용사가 손가락 일곱 개를 펴서 자신의 눈앞에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만 주세요. 그 안에 반드시 마녀님을 깜짝 놀라게 만들어 드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