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34화 (34/300)

#034. 날개와 물갈퀴 (1)

[마도제국학파 중력 마법]

[그래비티 웨이브(Gravity Wave)!]

우우우우우웅!

마녀 일레인 쿠디슈의 지팡이가 그려낸 둥그런 마법진.

그것을 중심으로 중력의 파동이 만들어졌다. 전방위의 지면을 모두 휩쓸어버리는 위력이었다.

투명한 구가 자연의 입자를 모두 밀어내는 듯 주변을 집어 삼켰다.

당연히 가까이에 있던 천마에게 그 충격파는 제일 먼저 당도했으나, 천마 류운학은 아직 검을 뽑지도 않았다.

“거력을 한 점에 집중시켜도 모자랄 판에 분산 시키다니. 어리석도다.”

[천마신교 비전 무극파천공]

[혈룡굉월참(血龍宏月斬)]

천마의 손짓 한 번에 일어나는 패도적인 초식.

달을 갈라버리는 용의 이빨.

막대한 기가 담긴 참격이 중력파를 거칠게 찢어냈다.

그를 이미 예상한 듯 마녀는 조금도 위세가 줄지 않은 혈룡굉월참을 주시하며 냉소를 흘렸다.

“참월의 마녀 앞에서 달의 이름을 붙인 기술을 쓰다니. 모욕적이야.”

[포스 필드 제너레이트(Force Field Generate)]

반구 형태의 방어막이 마녀 앞에 돌연 형성되었다.

내공으로 만들어 낸 참격과 마법진으로 형성된 방어막이 서로 충돌하면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크으으으윽!”

나는 뒤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엎드려야만 했다. 옆을 돌아보니 제르비어스 또한 주먹을 땅에 박아 넣어 압력을 버텨내고 있었다.

“더 거칠게 덤벼보라, 할망구야!”

“너야말로 검이나 뽑고 허풍 떠시지, 쭈그렁탱이!”

쌍마대전의 두 주역이 서로를 부르는 호칭은 원색적으로 변해버렸다.

둘의 외모는 30대처럼 보였으나 어쩌면 그것은 경지를 초월한 자들이 얻어낸 반로환동인 모양이다. 실제 그들의 나이가 어느 정도일지 저 언사들에서 짐작해 낼 수 있었다.

마녀의 말대로 목검을 뽑은 천마가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천마어기행공(天魔御氣行功)]

등에 부스터를 단 것처럼 호쾌하게 날아오르는 경공술. 하지만 하늘을 나는 술법은 무림인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마녀 또한 중력 조작의 달인. 마법진을 발 아래 두더니 사뿐하게 비행 마법을 펼친 것이다.

[리버스 그래비티(Reverse Gravity)]

그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기둥 주변을 날아다니며 서로에게 치명타를 먹이기 위해 박차를 가했다.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빛의 기둥을 재빠르게 날아다니는 두 불나방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저 불나방들이 날갯짓을 한 번 하면 그 여파만으로 내 오장육부가 뒤틀릴 정도라는 게 문제였다.

[HP: 7,321/9,999]

나는 팍팍 깎여나가는 내 체력을 노심초사 관찰하고 있었다.

천마와 마녀의 초월적인 맞대결에 피로써 관전료를 지불하고 있는 것은 이쪽뿐만이 아니었다.

싸움의 불똥은 피아를 식별하지 않는 법.

마교도들이 천마가 내뿜은 검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펄쩍펄쩍 뛰어다니고 있었고,

마법사들 역시 마녀가 구사하는 중력구에 빨려들어가지 않기 위해 결계를 펼치고 또 수리해야만 했다.

[호심멸룡탄(虎心滅龍彈)]

[그래비티 잽(Gravity Zap)]

둘이 펼치는 공격이 서로 비슷하게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도색 종류만 다른 두 대의 전투기가 비슷한 출력의 초전자포를 서로에게 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니다.

전투기에 비유하는 것은 저 둘에게 모욕이다.

정녕 나와 같은 살과 뼈로 이뤄진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막강한 무공과 마법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넋을 잃고 그것에 빠져들었다.

“잠자코 뒈지거라, 마녀야!”

천마가 일검을 휘둘러 마녀를 위협하면,

마녀는 아홉 개의 분신으로 늘어나 시야를 왜곡시켰다.

그러면 일제히 공격하면 그만이라는 듯 천마의 검에선 아홉 개의 검강(劍罡)이 폭산하듯 쏟아졌다.

“네놈이 먼저 혀를 깨물면 고려해보지, 천마여!”

중력을 조작하는 마녀가 천마의 어깨를 짓누르면, 천근추의 묘리를 담은 천마군림보로 마법을 되받아 쳤다.

하나의 세계를 상징하는 전투법이,

정점에 달한 고수들의 묘리(妙理)가,

세 개의 보름달 아래 마음껏 충돌하고 있었다.

“우아하다.”

실로 그것은 아름다웠다.

완연히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라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불가해의 영역 속에서도 황금률로 짜여진 이치가 숨어 있어 아름다웠다.

두 절대강자는 지금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자신을 한 필의 붓으로 삼아.

상대를 한 폭의 도화지로 삼아.

그 그림은 1초마다 완전히 다른 구성과 편집을 보여주어 꺼풀을 벗길 때마다 새로운 통찰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제르비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이해되는군. 마교도와 마법사가 육체적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진영을 지키고 서 있는 이유를. 저런 수준의 승부라면 목숨을 내놓고서라도 가까이서 관전하고 싶어지는 법.”

마왕의 말은 한 치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가까스로 내가 삼월초원에 버티고 서 있는 이유가 무(武)와 마(魔)에 대한 식견을 넓히고자 하는 것이 아니란 점을 떠올렸다.

“귓밥쟁이 마왕아. 내가 지금 저 기둥 위를 올라가서 열쇠를 훔쳐버리면 어떻게 될까.”

주변에 궤멸적인 타격을 주는 수장들의 대결 속에서도 일말의 손상 없이 빛나고 있는 열쇠.

제르비어스는 그것을 올려다보며 탄식했다.

“7초. 네가 저기 뛰어들어서 한 줌의 먼지가 되기까지 걸릴 시간을 난 7초라고 본다. 천운을 가지지 않고서야 저기에 뛰어들어서 사지 멀쩡히 나올 수 있겠냐.”

“설사 성공한다손 쳐도 대기 중인 둘의 부하들이 절대 가만있지 않겠지?”

“암. 용사 네놈이 할 수 있는 생각을 저 많은 숫자의 전사 중에서 떠올린 녀석이 없진 않을 것 같다. 다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지켜만 보고 있는 거야.”

가뜩이나 암담한데 교도관의 목소리가 또 찬물을 끼얹었다.

[2층의 교도관이 자신은 화룡도의 삵처럼 물렁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열쇠를 일시적으로 도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합니다. 쌍마대전에 참여한 죄수들을 무릎 꿇리지 않는 한 효력은 발휘되지 않을 거라 경고합니다.]

꼼수를 생각하지 말라는 말인가.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확실한 승리. 교도관은 그것이 아니면 용납하지 않을 거라 엄포를 놓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누가 이길지가 중요해진다.

천하를 거머쥐었던 천마인가.

제국을 거꾸러뜨린 마녀인가.

한데 모여 있던 세 개의 보름달이 각기 다른 지평선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곧 삼만월(三滿月)의 밤은 종막을 맞이할 것이다.

그걸 아는지 두 절대자가 기운을 모으기 시작했다.

“엇?”

마왕과 나의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잘려나간 잡초더미와 부서진 암석도 함께.

마력이 충천하게 되는 밤. MP가 저절로 차오르는 최상의 환경.

그 가운데 저들은 대체 어떤 기술을 서로에게 던지려는 걸까.

[천마신교 비전 무극파천공]

[초월식(超越式)]

[아수라대멸겁(阿修羅大滅劫)]

아수라.

얼굴이 셋이고 팔이 여덟인 악귀 세계의 왕이 천마의 등 뒤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 팔에는 각각 여덟 개의 곡도가 서슬퍼런 귀기를 내뿜고 있다.

당연히 내공의 격류가 만들어내는 일시적인 환상이겠지만 난 아수라의 곡도에 이미 내장이 관통당한 고통을 느끼며 얼굴을 찌푸렸다.

이를 꽉 깨문 천마가 가슴 앞에서 수인을 맺자, 아수라의 여덟 칼날이 허공을 갈랐다.

공간을 참하는 여덟개의 검파가 마녀를 덮쳤다.

콰콰콰콰콰콰콰콰!

하지만 그때 이미 그녀의 마법진은 세차게 회전하고 있었다.

[마도제국학파 중력 마법]

[최종영창(最終詠唱)]

[아스트로노미컬 디스트럭션(Astronomical Distruction)]

마녀의 뒤로 은하수가 펼쳐졌다.

나는 순간 방향감각을 완전히 상실했다. 위가 어디이고, 아래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으며 동서남북과 사방팔방이란 개념이 고대시절 잊어버린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그 가운데 분명한 것은 마녀의 마법진.

그 앞에서 하나의 점으로 압축되어버리는 아수라대멸겁의 검파들이었다.

화아아아아아악!

천체파괴술.

말 그대로 행성 하나를 우그러뜨릴 만큼의 압력.

욕조의 배수구처럼 상대의 비기를 빨아들이던 점은 이윽고 검은 구체로 압축되더니 사라졌다.

곧 섬멸의 후폭풍이 나를 강타했다.

세계관 최강자 둘의 혈전.

젠장, 두 번 봤다가는 저 세상 가겠다.

*

[교도관이 다음을 알립니다.]

[세 개의 달이 모두 가라앉았습니다.]

[2층의 열쇠는 소멸됩니다.]

[다음 삼만월의 밤은 45일 후. 죄수들의 무운을 빕니다.]

1층에서 지긋지긋하게 흙을 퍼먹었지만 결코 그 맛이 좋아서 삼킨 것은 아니었다.

나는 곱게 갈려진 땅에 묻힌 채 얼굴만 빠져나온 상태였다.

“괜찮냐, 용사?”

마왕이 내 뒷덜미를 잡아 농부가 무를 뽑듯 잡아 올려줬다. 고맙다고 인사하려는데 익숙한 정보창이 놀려대듯 알림을 보냈다.

[경고. 용사의 축복받은 신체와 상극인 존재와 접촉했습니다. 신체 접촉 시간이 지속될 경우 저주 상태에 접어들 수 있습니다.]

알았어. 알았다고.

하여간 이놈이랑은 어깨동무도 하면 안 되겠다.

“괘, 괜찮아. 내려줘.”

마왕의 몸뚱이도 멀쩡한 곳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엘리트 마족이라고 했으니 지금 내가 겪는 멀미보다는 상태가 나을 것이다.

“천마와 마녀는?”

“저기 서 있다.”

넝마가 된 흑포를 입은 천마가 침을 뱉었다.

마녀는 서 있는 것도 힘겨운지 지팡이를 짚은 채 부들거렸다.

“999번째 무승부로구나, 마녀여.”

“기어코 네 자릿수를 넘기다니. 끈질기기가 바퀴벌레 같은 천마 놈아.”

“본좌에겐 아직 체력이 남아 있다, 꼬우면 덤벼보시던가.”

“허풍만큼은 10서클이라니까. 사실이면 그 대단한 검기나 한 번 뽑아보거라.”

천마는 검기를 뽑지 못했다.

아수라대멸겁이라는 궁극기가 그만큼 진력을 소비시키는 기술이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세 개의 달이 모두 사라져버린 지금 ‘마력 자동 충전’이라는 사기 버프효과도 유지되지 않고 있었다.

“다, 다음엔 봐주지 않겠다, 할망구.”

“소설에서 엑스트라가 그런 대사를 내뱉으면 보통 다음 대결에서 죽는단다, 쭈그렁탱이야.”

“본좌는 잡졸이 아닌 마교의 수장이닷!”

“됐고. 난 이만 갈 거니까 너도 네 새끼들 챙겨서 돌아가라. 아오, 짜증나.”

동시에 서로에게 등을 보인 천마와 마녀는 비틀비틀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귀혼오마와 육망성이 자신들의 수장을 보필했다. 거의 인간 들것에 실려 가는 수준이었다.

“천마군림! 만마앙복! 후일을 기약하소서.”

“참월의 마녀시여. 달은 또 떠오릅니다. 저 마두의 목은 그때 잘라내면 되시옵니다.”

허무한 위로를 남기고 마교도와 마법사는 신속하게 철수했다.

그리하여 삼월초원에는 나와 제르비어스만이 남게 되었다. 기둥이 솟아올랐던 곳에는 수백의 거인이 짓밟고 간 대지처럼 엉망진창이었다.

이런 곳에서 여섯 시간을 버텨내다니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었다.

물론 교도관장의 칭찬도 이어졌고.

띠링!

[돌발 퀘스트 #3 ‘관객석 사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당신은 쌍마대전의 격전지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과제에 성공했습니다.]

[보상으로 민첩이 30 오릅니다.]

뭔가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

나는 아무렇게나 걸터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뒈지는 줄 알았네.”

“소감이 어떠냐, 용사.”

“화룡도는 튜토리얼에 불과했다는 말이 사실이었어, 젠장.”

나는 마왕에게 쌍마대전에 관해 교도관이 내려준 메인 퀘스트, 그리고 내가 파천황의 권능으로 녀석의 스킬을 빌려 썼던 것 등을 모두 설명해주었다.

뿔을 매만지던 녀석이 물어왔다.

“한 진영을 골라야 한다는 거군. 그래서 어느 쪽을 고를 거냐, 용사.”

“음, 너무 어려운 질문인데.”

무공과 마법.

내 스탯을 보면 근력 스탯이 조금 봐줄만한 정도이고 HP는 한계점인 9,999. 직관적으로 생각하면 무공의 테크트리를 타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하지만 이번 층만 깨부수는 것이 내 최종목표가 아니다.

결국엔 9층까지 올라서야 한다면 백묘탑이란 곳에 들어가서 마법을 익히는 것이 더 현명한 길이 아닐까?

‘한 번의 선택이 영구적으로 못 박히게 된다고 했지.’

그것이 주는 압박감은 실로 대단했다.

게임을 할 때 중요한 재능 중 하나는 이런 양자택일의 순간에 올바른 선택지를 고르는 것도 있다.

그리고 알파 테스터로서의 내 감은 말하고 있었다.

이 선택은 최대한 미뤄야 한다고.

나는 천천히 허리를 일으켜 세웠다.

“진영 선택을 하기에 정보가 부족해. 일단은 이 층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해야겠어.”

새로운 스테이지가 주는 긴장감.

그리고 은근한 설렘.

삼월초원에서 용사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