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29화 (29/300)

#029. 꼬리를 드러낸 삵 (3)

제르비어스는 뿔이 떨어질 정도로 기겁한 상태였다.

물론 나 역시 마찬가지.

1층의 교도관 옆에 붙여지는 괴이한 이름.

‘화염에 꼬리를 담그는 삵.’

그 삵이 이런 뜻이었단 말이야?

“화룡도 전체를 뒤져 봐도 절 찾지 못할 수밖에요. 저는 늘 당신 곁에 있었습니다, 제르비어스 폰타인. 그리고…….”

1층의 교도관은 이번엔 나를 바라보았다.

고양잇과 맹수의 쭉 찢어진 눈에는 분명 흥미가 짙게 담겨 있었다.

“죄수 슈바인 스트링거. 지난 몇 주 동안 당신이 보여준 활약상은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교도관이 설계한 그 층의 과제를 전혀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공략하더군요. 아공간에서 물건을 꺼내고, 다른 죄수들의 능력을 빌려 쓰기도 하는 등 지루할 틈이 없었지요.”

이렇게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참았던 울분을 놈에게 터트렸다.

“젠장! 너희들이 날 이 감옥으로 끌고 온 장본인이구나. 계속 날 지켜봐 왔다면 알 거 아니야? 마인학살죄라니! 나는 죄가 없어!”

그러나 밍밍이, 아니 1층의 교도관은 뒷발로 턱을 긁으며 여유롭게 대꾸했다.

“교도관장은 절대 실수하지 않는 분이시지요. 게다가 당신의 죄라면 마인학살죄 하나뿐이 아닐 텐데요?”

뭐라고?

나는 입안이 바싹 마르는 기분과 함께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감옥에 붙들려 온 첫날에 정보창이 내게 보여준 죄목은 분명 하나가 더 있긴 했다.

[당신의 형량은 ‘운명의 여신을 모욕한 죄’와 ‘마인학살죄’로 받은 100년입니다.]

그때는 마인학살죄가 너무 어이없어서 그냥 흘려 넘기고 말았는데. 거기에도 뭔가 의미가 있었다는 건가.

“운명의 여신을 모욕한 죄라니? 그게 뭔데?”

“그건 제가 대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다른 교도관 분들의 흥을 깨트릴 수야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당신은 죄수들의 왕인 ‘수왕(囚王)’이라 불렸던 르팔타커스 시온 이후로 가장 흥미로운 죄수로 취급받고 있으니까요.”

교도관들은 내가 그의 유해에 접촉해 기연을 받았다는 걸 알고 있는 걸까.

“자, 가십시오. 다음 층으로 향하는 포탈을 열어 드리지요.”

지이이이잉.

1층의 교도관이 꼬리를 휘두르자 분화구 앞 허공에 거대한 원형 포탈이 생겨났다.

제르비어스는 그 포탈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교도관,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흐음. 무엇인가요.”

“너의 의식은 계속 깨어 있었던 건가.”

“아닙니다. 교도관이 화신체를 만들어 낼 일은 그렇게 자주 있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당신과 우정을 쌓았던 짐승은 제가 아닙니다. 이 헬 판테라의 본 모습이지요.”

나는 제르비어스가 무엇을 궁금해 하고 있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자신의 침대를 공유하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는 소중한 반려동물. 언제나 옆에서 함께 했던 전우.

“밍밍이는…… 나와 함께 있어서 행복했나.”

교도관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지그시 제르비어스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러고 나서는 웃음기가 담긴 목소리로,

“그 정도라면 대답해주어도 괜찮겠지요. 죄수 제르비어스 폰타인. 당신이 배를 긁어주면 이 헬 판테라가 그릉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던가요. 지금처럼.”

“그래, 분명 그런 소리였다.”

“그 소리는 헬 판테라가 더할 나위 없이 만족했을 때 내는 소리입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게 전부이군요.”

마왕은 그 대답에 만족하는 듯했다.

코를 한 번 쓱 훔치더니 미련 없이 뒤돌아 선 것이다.

“가자, 용사.”

나는 포탈을 향해 뚜벅뚜벅 걷는 제르비어스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피식 웃고는 녀석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자 마왕은 망토를 펄럭이며 비장하게 말을 꺼냈다.

“위층에는 굉장한 녀석들이 있을 거다. 아마 수감자 전원이 나만큼, 혹은 나보다 강할 수도 있어.”

“강함의 기준이 너냐? 이 새끼, 순 자의식 과잉이네.”

“훗. 쥐뿔도 없는 주제에 질기기만 한 용사 놈만 하겠나.”

그렇게 우린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걷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이내 질주가 되었다.

분화구가 뿜어내는 열기가 강렬하다.

“간다! 2층으로.”

마인을 학살했지만 누명이라 생각하는 용사와,

용사를 학살했지만 처음으로 용사와 함께하는 마왕이 포탈 너머로 뛰어들었다.

*

하지만 포탈이 우릴 내뱉은 곳은 2층이 아니었다.

이곳은 온갖 흉악한 죄수를 모아 놓은 초차원감옥.

그 어떤 스테이지가 나오더라도 놀라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백야가 지배하는 차가운 빙설지대든,

공중에 떠있는 부유섬이든,

모든 생명을 부식시키는 끝없는 사막이든,

심지어 우주 한복판의 진공에 내던져질 각오까지 돼 있었던 것이다.

“이, 이게…… 말이 돼?”

하지만 지면에 발을 내딛는 순간에 난 까무라칠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나와 마왕 앞을 막아선 것은 하나의 커다란 액자.

“여기 그림이 하나 있군, 용사.”

망연히 멈춰선 나와 달리 제르비어스는 액자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거기에 그려진 것은 가슴에 사자문양을 달고 있는 금속의 거인.

“마도병기 메탈 골렘? 어깨에 인간을 태운 걸 보면 거신병(巨神兵)의 모습을 그린 건가. 이 그림에 붓질한 화가는 대단한 실력을 가진 모양이다.”

“그림 아니야. 컴퓨터 그래픽이라는 거다.”

“컴퓨…… 뭐?”

“기계를 통해 현상하는…… 아니, 됐고.”

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어떻게 이런 곳이 감옥 안에 있을 수 있냐.

낯선 장소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익숙한 장소라 할 수 있었다.

“넌 이 그림 속 주인공을 아는 모양인데?”

“제트카이저.”

철왕전기 제트카이저.

내가 꼬마 시절 빠져 살았던 용자물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로봇이다. 2기까지 방영했었더랬나.

이 푸르가토리움에서…… 대체 왜 제트카이저의 포스터가 나오냐고?

액자에서 시선을 돌린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비를 맞아 눅눅해진 벽지. 목재처럼 보이지만 무늬를 인쇄했을 뿐인 모노륨 장판. 앉으면 어느 정도까지 푹신해질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소파까지.

“왜 그러냐, 용사? 대체 여기가 어디길래.”

이 무슨 악독한 농담이냐.

초월적인 교도관들이 우주의 죄수를 잡아 처넣는 감옥 푸르가토리움. 마그마가 끓어오르는 1층에서 겨우 벗어나 다음 층에 도착했다 생각했더니…… 꿈에도 잊을 수 없는 공간이 나온다고?

“여긴…… 내가 살았던 집이야.”

정확히는 부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하시기 전, 여동생과 나까지 네 가족이 오순도순 살았던 이층집의 거실이었다.

“여기가 네놈의 거처라고? 그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나는 대답 대신 성큼성큼 거실을 가로질러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엔 이제는 생산되지 않는 모델의 오래된 냉장고가 있었고, 냉동 칸의 문짝에 조그만 사진이 붙어 있었다.

자석을 떼는 오른손이 파르르 떨린다.

놀이동산에서 네 가족이 웃으며 찍은 사진.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는 나. 내 어깨를 붙잡은 채 해사한 미소를 짓는 어머니. 아버지의 등에 업혀 풍선을 든 여동생 상희. 저 풍선을 사 달라고 울며 떼를 썼었지. 그 눈물자국이 양 볼에 남아 있어.

분명 내 가족사진이었다.

“설마…… 갑자기 지구로 돌아온 건가.”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아홉 살 이후로 나는 이곳에서 살았던 적이 없으며 내가 감옥에 붙잡혀 오는 시점에 이 주택이 있던 동네 전체가 재개발이 되어 지금은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즉, 여기는 내 집이 아니며…… 당연히 지구도 아닐 것이다.

“전혀 열리지 않는군.”

제르비어스가 우리 집 현관의 철문에 달린 손잡이를 붙잡은 채 낑낑거리고 있었다.

나는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현관 손잡이에 매달려 있는 우유 수거함을 본 것이다.

그래, 어릴 적엔 항상 저기에서 우유를 꺼내 여동생과 나눠 먹었더랬지.

“비켜 봐. 내가 해 볼게.”

나는 마왕의 망토를 잡아당겨 뒤로 비켜서게 했다.

집의 현관복도는 좁아터져서 녀석과 자리를 바꾸는 과정 또한 험난했다. 벽에 바짝 붙어서 서로의 위치를 뒤바꿔야 했던 것이다.

철커덕.

철제 손잡이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아예 회전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말이지.

나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선 다음 정권지르기 자세를 준비했다.

[친구 르팔타커스 시온의 스킬을 빌려옵니다.]

[만전불패의 체술 Lv. 2]

거친 풍압이 현관 벽에 걸려 있던 우산을 뒤로 날려 보냈다. 그 우산이 황급히 펼쳐지며 제르비어스의 얼굴을 뒤덮었다.

꽈아아아아앙!

묵직한 굉음이 울려 퍼졌지만 현관문은 조금도 꿈쩍하지 않았다. 마그마 볼의 격전을 치르면서 레벨이 오른 만전불패의 체술로도, 102까지 오른 근력 스탯으로도 흠집 하나 내지 못한 것이다.

내가 멍하니 내 주먹과 멀쩡한 현관문을 번갈아 쳐다보자,

“허약한 녀석 같으니. 나에게 맡겨봐라, 용사.”

마왕이 내 뒷덜미를 잡아채더니 현관문 앞에 섰다. 그러더니 양 손바닥을 마주쳐 마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건 나 역시 여러 번 본 풍경.

“이 몸이 자랑하는 업화의 쌍장으로 이 문을 베어내겠…….”

“그러지 마세요, 두 분. 소용없답니다.”

느닷없이 등 뒤에서 들려온 음성에 우리는 화들짝 놀라 소리의 진원지를 바라보았다. 아무도 앉아 있지 않는 소파에서 음성이 들려왔던 것이다.

“여기예요, 여기.”

소파 쿠션 옆에 엎드려 있던 곰인형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나와 제르비어스는 황망한 심정에 서로를 쳐다보다가 다시 곰인형을 쳐다보았다.

나는 저 곰인형을 안다.

크리스마스에 산타 변장을 한 아버지가 여동생의 방문 앞에 두었던 곰인형이다.

하지만 그때의 곰인형은 저렇게 스스로 움직이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새파란 안광을 내뿜지도 않았다.

“그 문은 여러분이 아무리 애써도 열리지 않아요. 그러니 이쪽으로 돌아오시는 걸 권합니다.”

중성적인 목소리.

그러나 묘하게 소녀의 음색이 섞여 있는 듯한 말투.

“네가…… 우릴 여기로 데려온 거야?”

우리 둘은 경계를 풀지 않은 채 천천히 녀석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곰인형의 입이 열리며 말했다.

“네, 맞아요. 제가 두 수감자를 잠시 이곳으로 모셔 왔습니다.”

내가 물었다.

“왜 그딴 모습을 하고 있는 거지?”

“제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면 여러분 필멸자의 사고체계는 그것을 감당해내지 못하거든요. 제 형태를 엿보는 것만으로도 두 분의 뇌는 녹아버리고 말 거예요. 장담할 수 있어요.”

“어째서…… 이렇게 꾸며 놓은 거야? 여기는 내가 어릴 적 살았던 집이잖아.”

“원래 이곳은 시간이 멈춘 공간. 당연히 시간이 멎어버린 곳에는 가시광선도 들어올 수 없답니다. 하지만 그래서야 두 분의 눈앞이 캄캄해질 테니 곤란하지요? 그래서 등반죄수인 당신의 기억에서 재료를 뽑아 재구성한 곳이랍니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제르비어스를 가리켰다.

“그러면 왜 하필 내 집이지? 이 녀석이 살았던 마왕성이 아니고.”

“맞다. 마왕성의 로비였다면 이곳보다 훨씬 넓고 쾌적했을 텐데.”

그러자 곰인형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당연히 등반죄수의 자격은 슈바인 스트링거 한 명에게만 주어졌기 때문이에요. 제르비어스 폰타인. 당신은 이자의 ‘친구 목록’에 올라있었기 때문에 등반처리가 된, 무척 특이한 케이스랍니다.”

그러고 보니 가장 중요한 걸 묻지 않았다.

나는 명랑한 곰인형의 말투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 날카롭게 물었다.

“잠깐만. 그런데 대체 넌 뭐하는 녀석인데? 교도관 중 한 놈이냐?”

“제겐 여러 이름이 있지요. 나는 열쇠이자 문지기이며 하나이자 전체요, 질문이자 답입니다. 시공 연속체로부터 자유로운 유일한 존재이며 우주의 창생사멸에 관한 모든 기록이 아카식 레코드의 지킴이인 저에게 있으니 열람을 원하는 자라면 그 자격을 증명하고 대가 또한 지불해야 하죠.”

뭐라는 거야?

우리가 전혀 못 알아듣는 표정을 짓자 곰인형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필멸자로서는 제가 가진 다양한 그림자의 편린만 엿볼 수 있을 뿐인데 제가 경솔했군요. 그러니까 지금 두 분께 필요한 제 호칭을 알려 드리자면…….”

묘하게 가라앉는 곰인형의 눈빛.

“푸르가토리움의 통치자. 교도관장이랍니다.”

그 순간 나는 격한 분노로 인해 시야가 흐릿해졌다.

“그럼 네놈이…… 날 여기에 가둔 장본인이란 거야?”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슈바인 스트링거. 아니, 박상식.”

“아, 그래. 그렇구나.”

나는 말없이 주방으로 걸어갔다.

기억은 이럴 때 큰 도움이 된다.

익숙한 동작으로 조리도구가 꽂혀 있는 곳으로 가서 가장 큰 프라이팬을 꺼내들었다.

온 힘을 다해 프라이팬을 역수로 쥔다.

나는 아무런 감정도 없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곰인형에게 다가가서, 프라이팬으로 그 면상을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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