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7. 꼬리를 드러낸 삵 (1)
제르비어스와 나는 녀석의 침소에 와 있었다.
바깥에는 보는 눈이 많으니 나는 그걸 배려해 어떤 죄수도 올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 침소로 자리를 옮기자 한 것이다.
“크르르르르르.”
그런데 나를 보자마자 침대 위의 표범이 허리를 곧추 세우며 이빨을 드러냈다. 고양이과 맹수 특유의 하악질.
나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는데, 제르비어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녀석에게 다가가 턱을 긁었다.
“우쭈쭈. 우리 밍밍이 형아가 보고싶었져? 괜찮아. 얘랑 잠깐 얘기만 좀 할 거야.”
마왕은 이제 내 앞에서 완전히 경계를 풀었는지 아무렇지 않게 헬 판테라와 놀아주며 우쭈쭈를 했다. 녀석은 마왕에게 배를 까뒤집고는 만져달라는 제스쳐를 보여주었다.
“걔 이름이…… 밍밍이냐?”
마그마 앨리게이터에게도 이빨을 드러내는 야수치고는 소름 끼치도록 앙증맞은 이름이군.
“그래, 이 화룡도에서 나의 유일한 위로이지.”
제르비어스가 침대 밑에 나뒹굴던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거대 악어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빨에 밧줄을 달아놓은 장난감이었다.
녀석이 그것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헬 판테…… 아니, 밍밍이는 몸을 움츠렸다가 펄쩍펄쩍 뛰면서 앞발을 휘둘렀다. 제르비어스는 능숙하게 놀아주고 있다.
“귀엽지 않냐. 덩치가 집채만 하다는 점을 빼면 영락없는 고양잇과다.”
잠깐, 고양잇과라고?
퍼뜩 든 생각에 나는 물었다.
“야, 마왕. 설마…… 헬코마타가 크면 이렇게 되는 거냐?”
“어? 어떻게 알았나. 우리 밍밍이도 한때는 헬코마타였지.”
마그마 앨리게이터의 고기를 얼마나 처먹이면 이런 덩치로 자라나는 거지.
그나저나 자꾸 밍밍이, 밍밍이 하니까 페이스를 잃는 기분이다. 나는 애초에 이 침소에 온 목적을 상기하며 녀석에게 물었다.
“제르비어스, 너도 처음엔 죄수였다면서? 층장이 된 이야기를 좀 해 봐.”
그러자 녀석의 눈에 다시 살기가 돌아왔다.
안구에 불길이 일렁인다.
“왜긴 왜냐. 나는 너희들의 뼛속에 숨은 공포를 먹고 사는 존재. 더 많은 자들에게 나를 향한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하여…….”
“그놈의 통하지도 않는 메소드 연기 관두고 진짜 목적을 말해. 이번엔 네 등에 업혀서 성검을 꺼내버리기 전에.”
“내가 이전 층장을 죽였거든.”
“왜? 포악한 놈이었나.”
“그래, 툭하면 죄수들을 핍박하고 죽였지. 마그마 볼은 원래 그 녀석이 공을 갖고 다른 죄수들을 때려죽이는 스포츠였다. 그때는 퇴장 선언이라는 룰이 없었거든. 나는 동지인 마족들을 괴롭히는 녀석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서 혼자 마그마 볼에 도전해 놈을 쓰러트리고 내가 층장이 되었지.”
“하긴. 마왕보다 강한 마인이 있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지.”
이런 내 말에 제르비어스는 노골적인 실소를 보내왔다.
“나는 마왕이라서 강한 게 아니라 강하기 때문에 마왕성의 주인이 되었다. 좀 전의 승부에서 용사 네 놈이 꼼수를 벌이지 않고 정면으로 승부했다면? 네 놈 따윈 한 주먹 거리다.”
아는데. 그거 맞는 거 아는데.
괜스레 또 울컥하네.
나도 마왕 때려잡은 게 한두 번인 줄 아나.
“이 새끼가. 어디서 내가 할 말을 하고 있어. 난 레벨이 뭉텅이로 깎여가지고 끌려 왔다고! 교도관들이 나한테 강제 디버프만 안 걸었어도 넌 나한테 3분 컷이야.”
“레벨이니, 디버프니 못 알아들을 말투성이군. 자꾸 마왕인 나를 도발하면 확 주먹으로 척추뼈를 곱게 다져준 다음 망자의 강에 뿌려줄까 보다.”
밍밍이가 바닥에서 뒹굴며 뼈를 갖고 노는 가운데 용사와 마왕의 눈싸움이 스파크를 일으켰다.
“나야말로 내가 다시 만렙, 아니 그 절반만 되찾아도 네 뿔을 절구통에 빻아서 화룡도의 용암에 뿌려줄 수 있어. 확 머리통을 떼다가 밍밍이가 갖고 놀게 던져 줘버릴까 보다.”
녀석은 흠칫 놀라며 움찔했다.
“냉혹무비한 녀석. 집사의 사체를 그 반려묘에게 던져주는 발상을 떠올릴 수 있다니. 역시 용사란 족속은 잔인하기 짝이 없구나. 밍밍아, 저 새끼한테 가까이 가지 마, 우쮸쮸.”
“……아, 아니. 말이 그렇단 거지. 네가 먼저 시작했잖아!”
잠깐.
또다시 페이스를 빼앗기고 있다.
휘말리지 말자.
“암튼 네가 집사…… 아니, 층장이 된 사연은 알겠어. 선대 층장을 죽이고 그 자리를 빼앗았다는 거지.”
“빼앗았다라. 나는 사실 층장의 열쇠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건 몰랐다. 다음 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건 뒤늦게 안 사실이지.”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서도 올라가지 않은 거잖아.”
“고민 끝에 난 1층의 교도관에게 제안했다. 손수 층장이 되어 허구한 날 골육상잔을 벌이는 화룡도를 개혁하겠다고. 그래서 1층의 규율을 새로 만들었지. 노동할 거리를 만들었고, 그 노동으로 인해 형량 증감 제도로 동기부여를 쌓았다. 학살의 탈출구였던 마그마 볼도 스포츠가 될 수 있도록 했고. 죄수들의 폭력성을 가끔 해소해줘야 하니까.”
그랬던 건가.
그래서 등반죄수가 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음에도 화룡도의 관리자로 남은 건가.
‘마인’이 살육자에게 죽임당하는 꼴을 감옥에서마저 보고 싶지 않아서.
물론 녀석의 정책에는 커다란 전제가 뒷받침 되어야만 한다.
바로 자기 자신이 ‘절대무적’의 존재로 남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원래 모습보다 훨씬 커다란 마왕의 탈을 써서 ‘복면마왕’으로 허세를 부리고 있었던 것이겠지.
그런데 내가 그것을 깨버렸다.
무패인 철권통치자의 기록에 금을 가게 한 것이다.
제르비어스도 그 점을 알고 있었다.
“젠장. 마왕 체면이 말이 아니야. 이제 방장 녀석들이 툭하면 도전하고 대들 텐데. 그럼 화룡도에 처음 입소했을 때처럼 싸우면서 제압해줘야 하나. 우리 애들 연약하기 짝이 없어서 쫌만 세게 때려버리면 죽어버릴 텐데 골치 아프군.”
어지간히 누굴 죽이는 게 싫은가보다.
이 녀석 진짜 마왕 맞나.
정말로 그 긴 시간 동안 단 한 명의 죄수도 이놈의 진면목을 몰랐던 걸까. 그 많은 죄수가 장식품 대용으로 머리를 목 위에 얹어 놓고 다니진 않았을 텐데.
순간, 다이몬이 내게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이제 화산의 폭발을 보고 싶다. 네가 이 층을 통째로 뒤집을 수 있는지 한 번 기대를 걸어보마.’
적어도 그 꽉 막힌 코뿔소 녀석만큼은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던 거 아닐까.
나는 처음 이 녀석을 봤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바로 이 자식을 내 탈옥 여정에 데려가고 싶다는 욕심.
강력한 화염 내성에 정신지배 스킬로 동물들도 다룰 수 있고. 무기를 강탈당한 푸르가토리움 내부에서도 마기로 칼날을 만들어 내는 녀석.
‘강함만이 아니지.’
올쿠레를 업은 채 달리며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을 때.
나는 평생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짜릿함을 느꼈었다.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동료를 내가 위로해주면서 동시에 나도 치유 받았었던 것이다.
살육을 꺼리면서도 용사들의 침략에 마기를 뿜어내야 했던 녀석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거미 공포증에 걸린 자에게 수천 마리의 거미가 있는 섬에 살게 하는 거 아닐까.
“야, 마왕.”
“왜, 용사.”
“……나랑 친구 할래?”
*
[본인보다 강고한 자에게 친구신청을 하였습니다.]
[용사의 심안이 상대가 가진 삶의 회한을 엿보기 합니다.]
뭘 엿보기 한다고?
나는 순식간에 캄캄해진 시야에 당황하다가 이내 침착을 되찾았다.
마치 우주가 타이머를 정지한 듯 멈추는 느낌.
이것은 르팔타커스의 유해를 만져 상태창이 격동했을 때의 감각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다시 시야가 밝아졌을 때.
내 눈에 보이는 것은 허공에 집어 던져지는 은빛 투구였다.
떨그렁.
무수한 병사들의 시체 앞에 떨궈지는 투구. 숙련된 장인의 손길에 의해 만들어진 투구에는 우아한 날개 한 쌍이 붙어 있었다.
그 날개는 이제 피로 젖어 있다.
“용사는 죽었다. 이로써 이름도 기억 안 나는 너희 왕국의 도전은 다시금 격파되었지.”
귀에 익은 목소리가 내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피로에 찌든 폭렬마왕 제르비어스 폰타인의 음성이었다.
‘이건 녀석의 기억을 내가 엿보고 있는 건가?’
용사의 투구에 무릎 꿇은 인간들이 오열했다.
“루다니오스여! 이렇게 가버리면 안 됩니다.”
“크으윽. 간악한 마왕을 대적한 유일한 사내가 이렇게 쓰러지다니.”
활을 멘 엘프와 중갑을 입은 드워프, 마도구 팔찌를 찬 여마법사와 지팡이를 든 프리스트.
게임 속 용사의 동료들을 구현한 듯한 인간들이 내 눈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돌아가라, 인간들이여. 내가 너희 왕국을 침범하여 박살내지 않는 이유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 보아라.”
“웃기지 마라, 이대로 돌아갈 것 같으냐!”
“우리의 목숨으로 루다니오스의 넋을 달래겠다!”
분연히 떨쳐 일어난 용사의 동료들이 무기를 꺼내 나를 노려본다. 그들의 눈물과 격분은 모두 진심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리고 내가 엿보고 있는 기억의 주인공인 제르비어스에게는 벌써 천 번이 넘게 보았던 희극일 뿐이었다.
“나는 너희 인간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마왕성에 침입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계속 번영할 수 있다. 나는 너희들의 금고를 탐내지 않고, 너희들의 자녀를 제물로 원하지도 않으며, 너희들의 운명에 아무런 관심조차 없다.”
처음엔 무정했던 말투에 조금씩 내리 눌렀던 분노가 차오른다.
“그런데도 계속 덤비겠다는 말이냐? 이렇게 세대를 이어 나에 대한 증오를 유지하면서.”
아리따운 눈을 가진 엘프가 화살을 활에 먹이며 응수한다.
“네가 우릴 전부 이곳에서 척살한다 해도!”
팔찌에서 마나를 흘려보내는 마법사가 그 말을 받는다.
“결국 우리는 네놈을 쓰러트릴 것이다.”
사제복을 펄럭이며 프리스트가 성력을 끌어올려 노려본다.
“네놈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우리의 희망마저 꺾을 순 없다.”
내 턱이 조금씩 위아래로 흔들린다.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알았다.”
이윽고 허리춤에서 풀려 나오는 강맹한 무기.
마왕의 뿔 색깔을 닮은 검은 채찍이었다.
채찍에 마기를 흘려보내자 마치 악마의 꼬리처럼 파르르 떠는 검은 채찍.
그것이 한 번 휘둘러졌다.
“참마의 도끼를 받…….”
응당 자신의 차례라고 생각해 외치던 드워프의 상반신이 잘려 나갔다. 그 옆에 도열해 있던 용사의 동료들 모두 마왕의 일격에 즉사해 버렸다.
하지만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조금도 통쾌하지 않았다.
해충을 죽일 때만큼의 보람도 없었다.
그저,
지독한 염증만 느껴질 뿐이다.
“결국 희망이 문제인가. 더 나은 내일이 있다고 확신하는 희망.”
툭.
마왕의 뿔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곧 그 빗방울은 곧 용사의 투구에 묻은 피를 씻어 내리기 시작한다.
내 입은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오래전에 내게서 빼앗아 간 그것을 너희는 잘도 간직하고 있구나.”
‘엿보기’ 시간이 끝난 것 같다.
마치 유체이탈을 하는 것처럼 내 영혼이 마왕의 몸 위로 빠져나왔다. 그가 땅을 딛고 선 세계 자체가 나에게서 점점 멀어진다.
“그렇다면 너희 자신을 파괴하는 희망을 거둬갈 수밖에.”
마왕의 마지막 중얼거림이 비수처럼 심장을 찔렀다.
*
“친구가 되자 했나.”
제르비어스의 기억에서 빠져나온 나는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눈 앞에는 ‘친구가 되자’는 내 충격적인 제안을 듣고 생각에 잠긴 마왕의 뿔이 흔들거리고 있다.
어느새 밍밍이의 배를 긁어주고 있던 녀석의 손짓은 멈춰 있다.
히죽거리던 얼굴의 웃음은 사라지고 진지하게 나의 눈을 응시하고 있다.
내 진심을 읽어내려는 것이다.
“네가 생각하는 친구의 정의는 뭐지.”
다짜고짜 어려운 질문이냐.
나는 7번 방의 죄수들에게 내가 해줬던 일을 떠올렸다.
“친구가 누구한테 맞고 오면 함께 찾아가서 패주는 거지.”
“웃기지 마라. 어떻게 마왕이 용사의 친구가 될 수 있단 말이냐.”
“아씨. 용사 간판 내렸다니까. 잠정 폐업 중이라고.”
“…….”
“내 동료가 돼라, 제르비어스. 책임지고 이 지긋지긋한 감옥을 탈출시켜 주겠어. 이 우주 어딘가엔 마족이라고 핍박받지 않고, 마왕이라 해서 습격당하지 않으며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세계도 있겠지. 그런 곳에 데려다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