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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24화 (24/300)

#024. 마인학살자 vs. 용사학살자 (1)

까라라랑!

비산하는 얼음과 함께 리저드맨이 기절했다.

허공에서 떨어지던 얼음들이 별무리처럼 반짝이다가 잭 프로스트의 육신으로 모여들었다. 근접전사가 아닌 마도병이 온몸을 날렸으니 녀석의 몸에 쌓인 충격도 만만치 않았을 거다.

디멜은 여전히 나를 쳐다보지 않으며 말했다.

“왜 그러고 섰어. 너한텐 끝내야 할 일이 있잖아.”

[죄수 디멜 무바크가 퇴장을 선언했습니다. 이 시간부로 그는 시련에 참가하는 죄수가 아닙니다.]

“그래, 다녀올게. 관중석에서 내 활약을 지켜봐라.”

나는 이번엔 어떤 녀석들이 내 앞을 가로막을지 기대가 되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녀석’들’이 아니었다.

나를 독대하기 위해 기다리는 녀석은 홀로 서 있었다.

“이 정도면 나를 사랑하는 거 아니냐, 식인 돼지야?”

내가 푸르가토리움에서 처음으로 만난 죄수.

차카 도기노브가 살기를 형형하게 내뿜으며 웃었다.

“일곱 번.”

“뭐?”

“이걸로 너는 나를 일곱 번 돼지라고 불렀다. 원래는 죽인 뒤 먹으려고 했는데. 이제는 산 채로 내 입에 집어넣어야 성이 차겠어.”

나는 마그마 볼을 들지 않은 왼쪽 손을 까닥거렸다.

“그래, 와라. 여기서 악연의 끝장을 보자.”

이제는 13번 방장이 된 차카 도기노브.

엘프포식자라는 별명이 붙은 비만 고블린이 있는 대로 근육을 부풀렸다. 그리고 특유의 저돌적인 돌진으로 짓쳐들어왔다.

녀석이 우악스런 주먹으로 나를 후려치는 그 순간.

뻐어어억!

내 고개는 한 뼘 정도 옆으로 움직였을 뿐이다.

당연히 내가 멀찍이 날아가 버릴 거라 예상했는지 차카는 입을 쩍 벌렸다.

“뭐야? 네가 어떻게…….”

“이렇게 강해진 거냐고? 사람 먹는 네놈이 알 리가 있나. 우리가 딛고 선 흙의 소중함을.”

“말도 안 돼, 웃기지 마라!”

차카의 큼지막한 주먹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녀석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내게 주먹을 날리고 발로 걷어찼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스킬을 발동하지 않고 그냥 맞아줘도 전혀 타격이 없었다.

퍽! 퍼억!

물론 근소하게나마 HP가 깎이고 있었기 때문에 체술로 피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럼에도 불과 몇 주 만에 우리의 위치가 이만큼이나 역전됐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싶었다. 다름 아닌 녀석의 주먹과 발차기를 통해서.

“그러면 이걸로 여덟 번째인가?”

“뭐?”

“미안, 돼지. 나는 이제 너랑 놀아줄 급이 아니야.”

나는 차카의 얼굴을 향해 있는 힘껏 마그마 볼을 집어 던졌다.

마그마 볼은 녀석의 콧대에 적중한 뒤 허공에 붕 떠올랐다. 홉고블린의 코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끄허억!”

볼을 지켜야 할 시련의 주인공이 덤벼드는 방해꾼을 향해 마그마 볼을 던진다?

당연히 미리 경계할 수 없는 공격법이다.

이 파격적인 전술은 오직 한 번만 써먹을 수 있는 것.

“너를 위해 아껴놓은 거야, 차카. 영광으로 생각해라.”

맨몸이 된 나는 사뿐하게 도약했다.

갈 곳 없이 떨어지던 마그마 볼을 낚아챈 다음 곧바로 세심하게 착지할 곳을 살폈다. 바로 바닥에 쓰러져 코를 붙잡고 있는 차카의 목이었다.

“큭!”

목을 밟힌 녀석은 고통스러운지 내 발목을 붙잡고 용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아랑곳없이 자유로운 한 손으로 폭약 주머니를 꺼내 차카의 얼굴 위에 솔솔솔 뿌렸다.

“읏퉤. 뭐, 뭐야? 뭘 뿌려대는 거냐!”

뭐긴 뭐겠어.

돼지를 익혀 먹으려면 허브 솔트를 빼 먹으면 안 되는 법.

“네가 나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이유를 생각해봤어. 내가 돼지라고 불렀던 이유 때문만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았거든.”

기이할 정도로 끈질긴 집착.

그것은 부자연스럽다.

“그래서 기억을 더듬어봤지. 너는 나를 처음 발견했을 때 비명을 지르고 있었어.”

생전 처음 보는 감옥에 갇혀서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을 때. 이 식인 돼지는 분명 힘없는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겁을 먹었던 것이다.

“너는 공포에 질려 있었던 거야. 하필 나는 그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했던 거고. 교도관이 통역 권능을 쓰기 전엔 알아듣지 못했지만 아마도 너는…… 살려달라고 했겠지? 제발, 누군가 있으면 도와달라고 했을 거야.”

그리고 그런 나약한 자신을 용납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목격한 나를 볼 때마다 겁에 질렸던 추한 자신이 계속 떠올랐을 거고.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냐, 이 빌어먹을 자식아!”

나 역시 그랬다.

평생 일어나 걸을 수 없을 만큼 다리가 박살났다는 사실을 직면하기가 너무 두려웠다. 타인들의 동정 어린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도 지독히 무서웠다.

그래서 주변 모두에게 닥치는 대로 화를 냈었지. 재활을 도와주겠다는 여동생에게도 저리 가라며 소리를 지르기까지 했고.

하지만 공포와 분노의 단계는 지나간다.

체념하고 적응하게 되지.

“차카. 언젠간 너도 분노를 죽이는 법을 배우게 될 거야. 물론 나는 이제 네가 넘보지도 못할 2층으로 갈 테니 그 꼴을 못 보겠지만 말야. 이건 내 작별 선물이다.”

나는 폭약이 뿌려져 있는 차카의 얼굴을 향해 마그마 볼을 있는 힘껏 내려쳤다.

꽈아아아아앙!

폭발과 함께 식인 돼지의 머리가 땅속 깊이 처박혔다.

분명 화룡도의 흙 한 움큼이 입 속으로 파고들었겠지.

“거기서 식인 습관에 대해 반성하고 있어. 흙도 익숙해지면 제법 먹을 만해.”

*

“다이몬 키리스.”

“슈바인 스트링거.”

감옥에 온 첫날.

그때는 꿈도 꾸지 못할 만큼 강하게 느껴졌던 2번 방장 다이몬 키리스가 나를 막아서고 있었다.

그의 등 뒤에는 그만큼이나 강력한 죄수들이 삼엄한 눈빛을 발하고 있었다.

“내 마그마 볼을 빼앗을 거야? 너 같은 사내에게도 노동 면제는 탐이 나나 보지.”

“원칙이니까. 등반죄수에게 시련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등반죄수를 제외한 모든 죄수를 지배하는 원칙.”

“그래, 당신은 원칙주의자였지.”

보안관이란 별명이 있는 다이몬.

화룡도 안에서 죄수끼리 싸움이 벌어지면 보통 그가 나서서 말린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 감옥에서 중재자를 자처한다는 것은, 일견 말랑말랑한 평화주의자처럼 들리겠지만 실은 정반대다. 본인의 원칙을 타인에게 강요하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힘이 필수다.

싸움을 말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둘 이상의 죄수를 동시에 상대할 실력과 배짱을 갖춘 강자라는 뜻이다.

이 녀석만큼은 절대 얕봐선 안 된다.

“좋아. 덤벼.”

나는 마그마 볼을 꽉 붙잡고 싸울 태세를 마쳤다.

다행히 다이몬은 물리력에 비해 민첩성이 빠른 죄수는 아니었다. 맞서 싸우지 않고 몇 번 피하는 건 가능할 것이다.

변수라면 다이몬이 진심으로 온 힘을 다하는 모습을 내가 아직 보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그를 호위하는 2번 방 죄수들의 능력이 미지수라는 점이었다.

“그래. 네 말대로 나는 원칙주의자다. 그러나…….”

그런데 다이몬은 전혀 예상 밖의 행동을 했다.

양팔을 하늘로 든 채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선 것이다.

달리 오해하기 힘든 제스처.

“처음으로 이 감옥의 원칙을 어기겠다, 가라.”

“뭐? 이건 또 무슨 종류의 함정이야?”

나뿐만 아니라 다이몬의 2번 방 동료들까지도 그게 무슨 소리냐며 당황하고 있었다.

“바, 방장? 진짜 보내주려는 겁니까.”

“왜 이러시는 거예요?”

미리 얘기되어 있지 않은 그의 독단이라는 소리.

나는 그 모습을 면밀히 관찰하며 생각했다.

‘방심하게 해 놓고 뒤통수를 치려는 작전일까. 아니야. 다이몬 키리스. 이 감옥에서 속임수를 싫어하는 녀석을 줄 세우면 제일 앞줄에 서 있을 친구인데.’

강직한 화룡도의 보안관은 마치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인 양 중얼거렸다.

“오랫동안 화룡도는 층장의 통치 아래 안정된 구조를 갖고 있었지. 하지만 그건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용암처럼 부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해.”

모든 방장들이 층장의 무력 앞에 절대복종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건가.

“나는 이제 화산의 폭발을 보고 싶다. 네가 이 층을 통째로 뒤집을 수 있는지 한 번 기대를 걸어보마.”

다이몬이 코를 긁적였다. 녀석이 감정의 동요를 드러내고 싶지 않을 때 하는 동작인 걸 이제 알 수 있었다.

“그게…… 이 층에 막 들어온 널 용암에 던져서 없애려 했던 나의 사과라고 생각해도 좋다.”

“…….”

“그때는 네가 너무나 약해 보여서 이 감옥에서 계속 시달리다가 죽어갈 것이 뻔하다고 생각했지. 그 고통을 겪게 하느니 차라리 내 손으로 안식을 베풀어주는 게 자비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거군.”

“나 역시 등반죄수의 꿈을 품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화룡도 전체를 상대해서 이길 순 없다고 생각하고 포기했지. 나뿐만 아니라 누구도 통과할 수 없는 시련이라 생각하며 자위했어.”

뿔 뒤에서 엿보이는 그의 눈동자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내 착각일까.

“그 길을 시도하는 너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보낸다. 어디, 끝까지 가봐라 7번 방장.”

“그래, 관중석에서 지켜 봐. 이 마그마 볼이 분화구로 골인하는 모습을.”

다이몬은 내가 그를 달려서 지나칠 때까지 정말로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물론 그의 말을 철석같이 따르는 죄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저 멀리 꼭대기가 까진 과일처럼 용암즙을 흘리고 있는 화산이 보였다.

드디어 최정상의 분화구까지 다다른 것이다.

이제 저곳에 마그마 볼을 던져 넣기만 하면 나의 승리.

[방금 1층의 교도관이 긴급 건의를 받아들였습니다. 새로운 방해꾼이 경기장에 입장합니다.]

뭐라고?

이제 와서 누가 이 시련에 방해꾼으로 참전한다는 말이야?

*

파아앗.

두 개의 뿔.

고풍스럽게 흩날리는 칠흑의 망토.

화산의 분화구 앞을 막고 서 있는 사내는 마왕 제르비어스 폰타인이었다.

“너를 얕본 것이 실수였다는 걸 인정하마. 당연히 내 앞까지는 오지 못할 거라 생각했거든.”

“1층장. 너도 경기에 참여할 수 있는 거냐?”

“잊었나 보군. 나 역시 이 감옥에 잡혀 들어온 죄수라는 걸.”

그렇다. 그의 양손에도 나처럼 묵직한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당연히 방해꾼의 자격이 된다.

그가 망토를 풀어 등 뒤로 날려 보냈다.

그러자 매끈한 마갑 사이로 흘러나오는 흉흉한 마기가 주변을 감싸 안았다.

“내가 아는 다른 방장이었다면 결승점까지 순순히 보내줬을 것이다. 다이몬이나 야불타, 심지어 코제트가 마그마 볼에 도전했다 하더라도 그 용기를 가상하게 생각해서 굳이 앞을 막지 않았을 거야.”

나 역시 마그마 볼을 바닥에 내려놓고 임전 태세로 들어갔다.

인벤토리에서 ‘체력 회복약’을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이렇게 떨어진 체력으로 마왕을 상대하는 건 말도 안 되니까.

꾸우웅.

제르비어스가 진각을 밟자 그의 등 뒤에 있는 화산이 수직으로 용암을 분출했다.

“하지만 너만큼은 안 된다. 용사들에게만은 도저히 자비를 베풀 수 없어.”

그가 손을 내게 내민다.

“오너라. 내 모든 걸 걸고 널 다음 층으로 보내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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