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 켄타와 우로스 (2)
나는 그저 달리기만 하면 됐다.
어떻게 땅을 박차야 하는지,
누군가 앞을 막아설 때는 언제 방향을 틀어야 하는지,
전력 질주 상태에서의 호흡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크하하하하! 길을 비켜라, 이 잡것들아!”
그건 모두 내 등에 업힌 올쿠레 켄타가 하고 있었으니까.
퍼억! 퍼어억!
그의 무쇠 같은 주먹이 죄수들의 육체를 하늘로 날려 보내고 있었다.
원래부터 그의 근력과 민첩은 이 화룡도 내 최강급이었다. 타고난 육체가 지난한 단련을 거쳤기에 잘 벼려진 무기와 같았다.
다만 ‘그걸 얹고 달려줄 다리’만이 없었을 뿐이다.
“잡아라!”
“저걸 어떻게 잡아!”
“그럼 매달려서라도 막아!”
“네가 해 봐. 광마(狂馬)처럼 날뛰는 녀석을 어떻게 막나!”
“다리를 노려. 다리를…… 이쪽으로 온다, 끄아아아악!”
죄수들은 추풍낙엽처럼 우리 앞에서 쓰러지고 있었다. 눈앞의 풍경이 휙휙 바뀌는 속도에 나조차도 적응하기 힘든데, 우릴 붙잡아야 하는 죄수들의 입장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노전사의 노랫가락이 귓가에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켄타의 눈은 지평선을 끌어안고,
우로스의 발굽은 바람을 희롱하니.
켄타와 우로스는 한날한시에 태어나지 않았으나
한날한시에 죽을 것이다!”
목소리는 걸걸하게 웃고 있었지만 나는 안다.
지금 올쿠레는 보이지 않는 피를 토하고 있었다.
우로스와 함께 죽지 못하고 혼자서 이 지옥에 떨어진 처지에 절망하길 수백 년.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만큼이나 긍지를 품고 있던 마음도 하얗게 타버렸겠지.
“이어붙인 척추는 우리의 운명을 봉합하는 사슬이요,
두 개의 심장은 매일 서로의 잔에 피를 채워주니.
우리는 둘이었으나 하나요, 둘을 넘어서는 하나일지라!”
올쿠레가 두 명의 죄수를 한 손씩 잡아서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녀석들의 머리를 서로 부딪쳐 기절시킨 다음, 덤벼드는 다른 죄수들에게 투포환처럼 집어 던졌다.
그때, 만만찮은 녀석이 우리 앞을 막아섰다.
“너희 두 놈, 한꺼번에 태워버리겠다!”
정령의 피를 이어받은 혼혈오크 이자나르가 볼을 부풀렸다. 그러곤 부채꼴을 그리며 엄청난 불길을 우리 앞에 쏟아냈다.
화르르르르륵!
땅바닥에는 나와 올쿠레를 가로막는 화염의 장막이 생성되었다. 거리가 꽤 있는데도 숨이 막힐 것 같은 열기.
마그마보다 뜨거운 것을 가르쳐주겠다던 이자나르의 엄포는 결코 허풍이 아니었다.
“어르신, 괜찮겠습니까?”
“나를 믿고 가라. 저런 불티로 막아보겠다는 건 수인병단에 대한 모욕!”
그래. 천년명마에게 이깟 불더미는 전혀 장애물이 되지 못한다.
나는 더할 나위 없는 신뢰를 담아 도약했다.
타아아앗!
그러자 올쿠레의 오른손이 권풍을 내질러 정면의 불길을 두 갈래로 찢어버렸다.
“뭐, 뭣이?”
거센 도움닫기로 불의 강을 뛰어 넘으니 경악한 이자나르의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곧 그는 올쿠레의 철권에 안면이 함몰된 채 나뒹굴었다.
믿고 있던 우두머리가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것을 본 죄수들이 질겁했다.
‘이제 알겠어. 전장이란 매순간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생물과도 같아.’
한 몸이 되어 달려보니 그의 순간이 마치 나의 삶처럼 느껴진다.
그래, 당신의 전성기는 이렇게나 강했구나.
영혼의 단짝과 함께 전장을 호령하는 진정한 기마병이었구나.
끓어오르는 전장의 열락이 모든 세포에 일일이 반응했다.
이번에는 내가 선창을 했다.
“비키거라!”
그러자 잠깐 움찔하던 올쿠레가 노래를 받았다.
“감히 켄타우로스의 앞을 막아서는 자!”
“우로스의 발굽이 그의 혼을 부술 것이오!”
“켄타의 도끼가 그의 넋을 받아 가리라!”
나는 한 손으로 들고 있던 마그마 볼을 올쿠레에게 넘겼다. 족쇄는 그 자체로 극강의 견고함을 가진 철구. 이걸 무기로 쓰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이어붙인 척추는 우리의 운명을 봉합하는 사슬이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올쿠레는 자연스레 내 동작에 맞춰주었다. 그는 곧 큼지막한 손으로 마그마 볼을 움켜쥔 뒤 맹폭하게 휘둘렀다.
“두 개의 심장은 매일 서로의 잔에 피를 채워주니.”
죄수들의 머리가 속절없이 터져나갔다.
“우리는 둘이었으나 하나요, 둘을 넘어서는 하나일지라!”
아무도 우리의 앞을 막지 못했다.
*
[친구의 체력이 모두 닳아 스킬 ‘천년명마의 질주 Lv. 3’가 해제됩니다.]
갑자기 느려진 속도에 나는 무릎을 땅에 박아 두 명 분의 체중을 멈춰 세웠다.
발바닥 끝을 따라 두 줄의 스키드마크가 생겨났다.
나는 조심스레 업고 있던 올쿠레의 몸을 내려놓았다.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자세로.
“여기까지입니다, 어르신.”
노전사의 하얀 머리카락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 그의 피는 단 한 방울도 없었다.
“더 달릴 수 있었는데.”
“압니다.”
다만 체력이 문제였을 뿐이다.
이 스킬은 무서운 속도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기술이었고, [HP 9,999]로 출발했던 나와 달리 내 체력의 10분의 1이었던 올쿠레는 탈진하고 만 것이다.
“끄으으으으으.”
“미친 새끼들.”
우리 주변에는 마그마 볼에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된 죄수들이 신음하고 있었다.
위로 가는 길은 활짝 열렸다.
올쿠레가 머리에 달라붙은 핏방울을 거칠게 털어냈다.
“고마웠네, 슈바인 스트링거. 우리의 7번 방장. 자네 덕분에…… 다시는 이루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 꿈을 이뤘어.”
“저도 감사합니다, 올쿠레 켄타. 어르신이 없었더라면 저 역시 이 시련을 감히 넘보지 못했을 거예요.”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들어 내게 흔들었다.
서둘러 떠나라는 손동작.
“아직 남아 있는 죄수들이 있어. 어서 위로 올라가게.”
[죄수 올쿠레 켄타가 퇴장을 선언했습니다. 이 시간부로 그는 시련에 참가하는 죄수가 아닙니다.]
노전사의 몸에서 밝은 빛이 나더니 그의 형체가 사라졌다.
나는 그 빛을 뒤로하고 마그마 볼을 주워들었다.
그런데 내 그림자가 이상하게 보였다.
어째서 일직선이어야 할 내 그림자가 꾸불꾸불하게 느껴지는 거지?
“이때를 노렸다, 멍청아!”
내 그림자가 번쩍 눈을 떴다.
위장스킬로 몸을 숨기고 있던 리저드맨 녀석이 바람을 후욱 빨아들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보는 놈이야. 싸움 시작 때부터 계속 위장을 하고 있었다고?’
실로 나만큼이나 집요한 녀석이었다.
모두가 쓰러지고 올쿠레가 경기장에서 완전히 퇴장하고 난 뒤에야 위장색을 풀만큼 대단한 인내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후우우우우욱!
녀석이 내뿜은 강력한 바람이 나를 강타했다.
내 다리가 땅 위에 두 줄의 고랑을 만들며 밀려났다. 그러다가 갑자기 체중이 사라진 것처럼 발밑이 허전했다.
고원의 끄트머리까지 날려 보내진 것이다.
“크윽!”
큰일이다.
나에겐 비행스킬이 없었다.
7번 방의 첫 번째 친구였던 뚠 아티르는 물론 올쿠레와 비르카도 이 난관을 빠져나갈 스킬은 갖고 있지 않았다.
이대로 추락하는 것밖에는 답이 없는 상황.
‘하지만 아직 희망이 있어.’
나는 절벽 끄트머리에서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7번 방의 죄수이며 나를 방장이란 호칭으로 부르긴 하지만, 끝끝내 내 친구목록에 들어와 주지 않았던 녀석.
디멜 무바크.
‘친구 따윈 하지 않아. 그건 이제 내 사전에 없는 단어다.’
감옥뿐 아니라 세계를 미워하게 된 잭 프로스트.
그는 나와 함께 목숨을 건 싸움을 할 각오는 했으면서도, 절대 친구만큼은 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비르카가 이야기해줬다.
‘그는 원래 다른 방장들의 괴롭힘에 절대 굴하지 않는 강직한 사내였다. 목숨을 빼앗기 전에는 결코 무릎 꿇릴 수 없는 녀석이었다고. 하지만 콩파스가 그의 가장 친한 친구를 마그마에 빠트려 죽였어.’
그 후로 디멜은 겁을 먹은 채로 살아왔다.
감옥에서 유일하게 의지를 했던 친구를 폭력으로 잃었기에 다시는 폭력에 저항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디멜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그래서 조건을 걸었다.
‘만약 내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너의 마음을 들여다봐.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다면 아무것도 하지 마라.’
나는 도박을 걸었다.
하지만 내가 도박을 걸 때는 늘 승리할 확신이 절반 이상 있을 때였다.
‘그런데 내 죽음이 너에게 짐이 될 것 같다면? 그러면 난 이미 너의 친구인 거야. 네가 아무리 부정한다 해도 말이지.’
추락하는 나의 시야를 위로 솟구치는 금발의 머리카락이 자꾸만 가린다. 하지만 나는 절대 눈을 감지 않았다.
저 녀석도 나의 눈을 피하지 않고 있으니까.
‘그땐 내 이름을 불러줘라, 친구를 붙여서.’
목숨을 버릴 기개로 자존심을 꺾지 않았던 남자.
하지만 그 대가로 친구의 죽음을 목격해야만 했던 잭 프로스트.
씨발. 7번 방 녀석들은 왜 다 이 모양이야.
도무지 미워하려야 할 수가 없잖아.
나는 너를 믿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네 녀석에게 내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생은 아니었으리라.
디멜이 결국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새된 목소리로 외쳤다.
“젠장! 내 친구, 슈바인. 죽지 마라!”
등의 죄수복이 다 녹아버렸는지 피부가 익는 냄새가 코를 찌를 정도다.
하지만 늦지 않았다.
나는 추락의 순간부터 준비하고 있던 말을 외쳤다.
“친구 디멜 무바크의 곁으로 순간이동!”
갑자기 온몸이 서늘해졌다.
마그마의 바다에 빠지기 직전 건져 올려진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바로 옆에 이 녀석이 버티고 서 있기 때문이다.
“고맙다, 디멜. 덕분에 살았어.”
녀석은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걸어 내려갔다.
“빨리 가라. 오래는 못 버티니까.”
“무슨 소리야? 버티다니. 나는 여기서 달려가면 되니까 너는 그만 퇴장해야지.”
디멜은 언덕의 위가 아닌 아래를 향해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퇴장하기 전에 저 자식만큼은 밟아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이제 같은 죄수를 마그마에 빠트리는 녀석은 가만둘 수가 없어.”
바람의 힘으로 나를 밀어내 죽였다고 생각하던 리저드맨.
녀석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오, 오지 마!”
녀석은 서슬 퍼런 기세를 내뿜는 잭 프로스트의 접근에 헐레벌떡 보호색으로 피부를 변형시켜 숨었다.
그에 코웃음 한 번 친 뒤 양손의 마법진을 전개하는 디멜.
“나쁜 선택이다. 마도병 앞에서 위장마법 따위 하책이지.”
디멜 무바크가 양손을 앞으로 펼쳐 갑자기 국지적인 눈보라 폭풍을 만들었다.
얼음 칼날이 휘몰아치는 폭풍이 그를 중심으로 점점 넓어지며 위세를 자랑했다.
[제국마도병 귀속냉마법 발동]
[제3식 ‘빙마의 울부짖음’]
후우우우웅!
지켜보는 내가 오싹할 만큼 막대한 빙결마법의 기운.
저 멍청이가!
왜 그렇게 큰 마법을 쓰는 거야.
기력이 떨어져서 죽을 수도 있는데!
쿠드드득!
리저드맨이 사라졌던 곳에서 한참 떨어진 위치에 얼음이 딱딱하게 뭉쳤다.
그 얼음 기둥 속엔 리저드맨이 꼼짝도 못한 채 굳어 있었다.
온몸이 녹아내리고 있는 마도병이, 그를 향해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똑똑히 봐 둬라. 이게 바로…….”
점점 빠르게 달리던 디멜은 꽁꽁 얼어붙어 눈알만 굴리고 있던 리저드맨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눈빛을 번쩍 빛내더니 온몸을 날려 박치기를 가했다.
“잭 프로스트의 복수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