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 켄타와 우로스 (1)
“어디서 요사스러운 사술(邪術)을 펼치느냐!”
만성 관절염의 보유자이자 웃음이 헤픈 7번 방의 죄수.
스켈레톤 비르카가 5번 방장 코제트의 안면에 플라잉 니킥을 날렸다.
“꺄아아아악!”
서큐버스의 여왕은 피를 쏟아내며 땅에 나동그라졌고 그제야 나는 매료마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나는 호흡조차 멈춘 채 멍해 있었다.
“허억! 마, 마그마 볼! 내 마그마 볼?”
다행히 마그마 볼은 멀리 굴러가지 못했다.
나는 허겁지겁 달려가 마그마 볼을 집어 들었다. 그다음 나처럼 머리를 홰홰 젓고 있는 죄수들을 추슬렀다.
“우리 7번 방 죄수들의 의지를 농락하지 말라!”
“꺄아아아아아악!”
그 와중에서 비르카는 사이렌들의 날개를 잡아 바닥에 패대기치고, 눈을 찔러 비명을 지르게 하는 등 압도적인 폭력을 선사하고 있었다.
“사, 살려줘어!”
결국 다섯 서큐버스들은 경찰서의 담을 넘었다가 혼쭐이 난 좀도둑처럼 달아나 버렸다.
나는 팔짱을 낀 채 키득거리고 있는 비르카에게 다가갔다.
“너는…… 괜찮은 거냐? 해골이라서?”
“아니. 스켈레톤에게도 매료 마법은 통한다.”
“그럼 어째서 멀쩡한 건데!”
대마도사의 실험 생명체라서 몽마와 요마를 상대할 수 있는 건가 추리하고 있었을 때.
비르카는 엄청나게 충격적인 한마디를 던졌다.
“성별 때문에 안 통하는 거야. 나 여자거든.”
*
응?
뭐라고?
이 해골바가지가 방금 자기를 여자라고 한 건가?
아니야. 잘못 들었을 거야.
화룡도에 오래 있었더니 열기에 내 달팽이관이 녹아버렸나 봐.
천천히 이성이 마비되려고 할 때 디멜이 절규하듯 소리쳤다.
“너 여자였냐아?!”
“응. 우리 세계에서 ‘카’ 발음으로 끝나는 이름은 여성에게만 주어진다. 지누카, 스이카처럼.”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설명할래? 어떻게 여자라는 걸 지금까지 숨길 수 있어!”
“켈켈. 무슨 소리냐. 니네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잖나.”
할 말이 없어진다.
아니.
일단 ‘켈켈켈’거리며 웃는 데다가 항구에서 삼백 년 구른 선원 같은 말투를 갖고 있으면 진성 마초남일 거라 생각하는 게 당연하잖아.
‘아니지. 말투는 말투일 뿐. 어쩌면 그릇된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던 건 내 쪽인가.’
그러고 보니 녀석은 스켈레톤. 뼈만 남아서 움직이는 존재. 골상학자가 아닌 다음에야 뼈만 보고 성별을 알아채기는 어려운 법이다.
정말 엉뚱한 상황에서 낡은 고정관념에 집착하면 안 된다고 반성하게 되었다.
역정을 내는 건 뚠도 마찬가지였다.
“이 음흉한 해골! 너 우리 알몸까지 다 봤으면서!”
“두더지라서 볼 것도 없는 주제에 째째하게 굴지 마라. 켈켈켈. 고추 떨어진다.”
정신을 차린 우리는 다시 기암산의 정상을 향해 달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직 중턱에도 가지 못했는데, 아래에서 추격해 오는 죄수들과 위에서 내려오는 죄수들까지 숫자가 더욱더 많아지고 있었다.
이번엔 그 악명 높은 오르콰이움이 앞장서고 있었다.
검은 안개 속에 떠오른 백색의 가면. 놈이 풍기는 사악한 아우라가 주변을 자욱하게 만들고 있었다.
성검을 잘못 꺼냈던 일화 때문에 저 레이스는 우리 방을 몹시도 혐오하고 있었다.
“냄새나는 7번 방 놈들. 오늘에야말로 그 목을 거둬주마.”
단순한 보병들보다 훨씬 강력한 놈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충돌하기 직전에 손가락 두 개를 펴서 쳐들었다.
“두 번째 패스(Pass) 작전으로 갑니다!”
오르콰이움의 음침한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지금 무슨 작전이라고?”
“자, 받아. 디멜 무바크!”
디멜이 내가 던진 공을 받아 달렸다.
설마 7번 방의 다른 죄수들에게 내가 마그마 볼을 넘길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죄수들은 황급히 디멜의 뒤를 쫓았다.
“저놈을 잡아라!”
물론 허벅지와 발목이 천천히 녹아가고 있던 디멜의 질주 속도는 느리기 짝이 없었고.
“안 되겠다. 받아줘, 비르카!”
공은 다시 비르카에게로 넘어갔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죄수들이 비르카를 포위했다.
강제로 술래잡기 놀이를 하는 것이 굴욕적인지 다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오르콰이움이 스켈레톤 사내, 아니 여인에게 얼굴을 들이대며 협박했다.
“우리를 놀리는 거냐! 그 대가는 비싸게 치르게 해주마. 도망칠 생각은 버려라.”
좀비 군단에 둘러싸인 스켈레톤은 당황스럽다는 듯 고개를 긁적였다.
“미안한데, 애초에 도망칠 생각이 없다. 켈켈켈.”
그제야 오르콰이움은 비르카가 들고 있는 것이 마그마 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너…… 뭘 들고 있는 거지?”
“뭐긴 뭐냐. 네놈을 이곳에서 날려버릴 폭죽이지.”
비르카가 소중히 품에 안고 있던 것은 내가 하스록에게 넘기지 않았던 마지막 폭탄이었다. 분해하지 않은 크기의 온전한 폭탄. 딱 우리의 족쇄 크기만 한 폭탄.
“피해라아아아아!”
좀비 군단들은 황급히 몸을 날리려 했지만 상대의 동작이 훨씬 빨랐다.
입을 쩍 벌린 스켈레톤이 폭탄의 심지를 따악! 하고 깨물었다.
꽈아아아아앙!
격한 폭발과 함께 오르콰이움의 몸뚱이에 뻥 하고 구멍이 뚫렸다. 그가 자랑하는 좀비 군단 역시 사지가 부서지며 날아갔다.
물론 폭탄을 들고 있던 비르카 역시 멀쩡할 수 없는 법. 모든 관절과 뼈가 분리되어 언덕 이곳저곳에 나동그라졌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놀라거나 걱정하는 7번 방의 죄수는 한 명도 없었다. 늘상 보아온 풍경이기 때문이다.
바닥을 구르던 비르카의 두개골이 바위에 부딪혀 멈췄고 그의 시선과 나의 시선이 마주쳤다.
“잘했어, 비르카!”
“난 여기까지야, 방장. 꼭 정상까지 달려가라고. 켈켈켈.”
[죄수 비르카 리케우톤이 퇴장을 선언했습니다. 이 시간부로 그는 시련에 참가하는 죄수가 아닙니다.]
비르카의 뼈다귀(?)들이 빛을 내뿜으며 사라졌다.
마그마 볼의 또 하나의 룰.
죄수가 스스로 퇴장을 선언하면 그는 경기장에서 자동 아웃돼 관중석으로 옮겨진다.
지나치게 큰 상처를 입은 죄수를 위해 만들어진 룰이겠지.
‘하지만 마그마 볼에서 나만은 퇴장을 선언할 수 없다.’
이 몸은 시련의 도전자. 때문에 성공하거나 방해꾼에게 죽거나.
두 개의 결말 중 하나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
“어서 오거라, 7번 방장!”
“우린 여기에서 널 기다리고 있었다.”
9번 방장 하스록과 12번 방장 이자나르.
그 외에도 상위 서열의 강력한 방장들과 그 밑의 죄수들이 널찍한 고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내쉬었다.
“이제 본게임이군.”
지금까지 우리가 돌파해 온 죄수들은 적지 않은 숫자였다. 그러나 공통점이라고 하면 모조리 약체들이었다는 점이다.
강자들 옆에 서면 콩고물을 얻어먹을 자신이 없다고 판단해 먼저 덤벼든 쩌리들. 물론 오르콰이움 녀석처럼 급한 제 성질을 못 이기고 선두 그룹에 낀 예외도 있지만.
휘우우우우웅.
후끈한 바람이 분다.
나는 발걸음을 멈춰 세운 채 주변을 재빨리 파악하기 시작했다.
코스의 중턱에 있는 널찍한 고원.
절대다수의 죄수들이 바로 이곳에서 마그마 볼의 시련을 통과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고 들었다.
거의 평지나 다름없는 지형.
언덕의 높낮이를 이용할 수도 없고 몸을 숨길 바위나 나무도 없다.
정면에는 빠르면서도 강한 파괴력을 지닌 적수들이 잔뜩 도열해 있다.
“도망칠 생각이라면 접어둬라, 7번 방장.”
이자나르의 쩌렁쩌렁한 포효에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안다.
비록 내 맷집은 굉장하지만, 형편없는 속도 때문에 여기선 아무리 꾀를 낸다 해도 저들을 모두 따돌릴 수 없다는 걸.
그래서 나는 여기서 내 비장의 카드를 쓰기로 했다.
“지금이야, 디멜. 나에게 어르신을 넘겨줘.”
금방 죽을 듯이 헥헥대는 디멜이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끄응. 안 그래도 한계인 참이었어.”
그리고 올쿠레 켄타는 내 등에 업히게 됐다.
르팔타커스의 유해에도 지지 않을 만큼 우람한 노전사의 근육이 등 뒤로 느껴졌다.
“자네 말대로 업혔네. 하지만 도무지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군.”
어젯밤.
나는 올쿠레에게 하나의 부탁을 했다.
바로 ‘친구’가 되어달라고.
물론 그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와 나의 나이는 수백 년의 차이가 있었지만 우정에 나이는 상관없으니까.
“어르신, 이 감옥에서 나갈 생각이 없다 했죠? 나간다 하더라도 어르신의 다리가 되어주었던 반려가 없으니까. 올쿠레는 우로스를 잃어버린 켄타니까.”
“그렇다네.”
압도적인 무력을 자랑하는 죄수들이 우리를 둘러쌌다.
그것도 한 겹이 아니라 여러 겹이었다.
뒤에서 우릴 추격해 온 죄수들까지 합세한 것이다.
초반에 우리에게 골탕을 먹은 죄수들도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달아날 생각은 일절 말라는 듯.
달아나지 않는다.
우린 이곳에 억류된 게 아니다.
이 고원을 전장(戰場)으로 선택한 것이다.
“오늘 하루만 켄타우로스로 돌아와 주실래요? 제가 어르신의 우로스가 되어드릴 테니까.”
지그시 눈을 감는다.
나는 경의를 바쳐 노전사의 스킬을 빌려왔다.
[올쿠레 켄타의 스킬을 빌려옵니다.]
[‘천년명마의 질주 Lv. 3’]
[친구와의 동조 효과로 스킬 레벨이 소폭 향상되었습니다.]
콰아아아아아!
그와 나의 주변으로 강력한 바람이 솟구쳐 돌멩이들을 쳐날려 보냈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올쿠레 켄타가 얼마나 놀랐는지 나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내가 우로스와 함께 달릴 때의 느낌. 겨우 두 개의 다리를 가진 자네가 무슨 수로 이런 기세를 뿜어낼 수 있단 말인가?”
“방법이 중요합니까. 제게 말씀하셨잖아요. 단 한 번. 단 한 번만이라도 그때의 백사장 위에서처럼 달려보고 싶다고.”
올쿠레 켄타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초조해질 지경이었지만 나는 잠자코 기다렸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할 사내가 아니다.
다만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할 뿐.
두근.
잠시 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양쪽 어깨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올쿠레 켄타가 상반신 전체로 웃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죄수들은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내 이름은!”
그의 함성이 나의 몸을 타고 울려 퍼지는 이 일체감.
단순히 스킬을 빌려오는 것을 넘어서는 짜릿한 공명감.
긴긴 세월 이 불타는 감옥에서 자신을 고문하고 있던 늙은 맹수가 사자후를 터트리고 있다.
“수인병단의 기마단장 올쿠레 켄타!”
그래요.
어르신의 발굽이 멈춰 설 곳은 그 쓸쓸한 언덕 따위가 아닙니다.
“내가 전성기 때는 그 누구도 나의 질주를 따라오지 못했었다. 슈바인, 자네가 할 수 있겠는가?”
믿어보세요.
다리를 잃었기에 달리지 못했던 고통.
그것만큼은 저 역시 어르신에게 지지 않을 겁니다.
“네.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 화룡도에서 완전체 켄타우로스가 부활했다.
나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내 눈앞에서 바람이 길을 비켜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