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 화룡반점 오늘의 요리 (2)
퍼억! 퍼억!
“사, 살려줘. 이제 그만해.”
야불타와 다이몬이 현장에 뛰어왔을 때 나는 콩파스의 등에 올라타 녀석의 뒤통수를 연신 후려갈기고 있었다.
내 주변에는 급소를 공격당한 16번 방 죄수들이 신음소리와 함께 뒹굴고 있었고.
“멈추지 못할까, 7번 방장!”
격노한 다이몬이 땅을 박찼다.
나는 육박해 들어오는 다이몬의 코에 들이받혀 공중을 날다가 처박혔다. 다이몬은 이윽고 히죽히죽 웃으며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어나는 내 모습에 질린 듯했다.
“생각보다 굼뜨네, 다이몬. 더 늦었으면 이놈들 전부 다진 고기가 됐을 텐데.”
“기어코 일을 저질렀구나, 7번 방장 슈바인 스트링거. 네놈의 만행을 교도관에게 보고하고 처분을 기다리겠다!”
응. 제발 그래 줘.
그걸 위해 이 소동을 벌인 거니까.
물론 교도관은 나를 특별취급하거나 편애하지 않았다.
[1층의 교도관이 죄수 슈바인 스트링거를 일주일간 독방형에 처합니다.]
*
그런고로 지금 나는 화룡도의 전역이 내려다보이는 까마득한 탑에 홀로 누워 있었다. 주위는 적막했고 용암이 거품을 내뱉는 소리만이 아득히 들려올 뿐이었다.
저녁이 된 것이다.
노역을 마친 죄수들이 저마다의 방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고 있을 시각.
나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그래, 이 독방을 절망의 탑이라고 부른다고?”
인벤토리를 열었다.
거기에는 내가 16번 방 녀석들과 혈투를 벌일 때 몰래 꿍쳐두었던 곡괭이 하나가 다소곳이 들어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 곡괭이를 밖으로 꺼냈다.
독방의 바닥엔 하스록이 만들어준 화약 가루가 곱게 발라져 있었다.
곡괭이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꾸웅.
둔중한 폭음과 함께 독방 바닥이 무참하게 부서졌다.
바깥을 슬쩍 내다본다.
뚠의 말대로 침묵 마법이 걸려 있는 모양인지 죄수들이 소란을 깨닫는 기미는 없었다.
“이렇게나 완벽한 식사 환경이라니.”
게의 속살 같은 흙더미가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 탑은 흙으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손바닥에 그러모아 쥐는 부드러운 흙의 감촉.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이토록 곱게 갈아진 흙 주먹밥(?)을 보니 가슴이 두근댄다.
화룡반점 오늘의 요리.
이름하여 ‘절망의 탑’.
“그럼 잘 먹겠습니다.”
곡괭이로 흙을 파내고.
주먹밥을 먹어 삼킨다.
흙이 다 떨어지면,
다시 곡괭이를 든다.
꾸웅. 꾸웅.
나는 안쪽에서부터 바나나를 파먹는 벌레처럼 아래로 아래로 파고 내려갔다.
‘그래도 힘든 척은 해줘야겠지?’
죄수들이 활동하는 아침이 되면 다시 기어 올라와 몇 번 절규하는 시늉을 해줬다.
“젠장! 꺼내 줘. 독방은 너무하잖아.”
죄수들은 나를 올려다보며 혀를 찼다.
하지만 뭐라고 중얼거리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물론, 들린다고 해서 귀에 담을 생각도 없었지만.
그렇게 저녁이 되어 죄수들이 통행이 금지되면 다시 구멍으로 내려가 흙을 파먹었다.
그렇게 독방형이 끝나기 하루 전의 자정.
띠링!
[스킬 ‘엄마 쟤 흙 먹어’의 효과로 HP가 1 올랐습니다.]
[HP 6,264/9,999]
[HP가 한계치에 도달하였습니다. 더 이상 스킬의 효과를 받지 못합니다.]
그토록 기다렸던 순간이 왔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HP 수치를 달성하게 되는 순간.
“후우우우우우. 정말 길었다.”
온몸이 강철이 된 기분이었다.
얼마나 자신감이 충만했는지 마그마에 한쪽 발을 담가 용사의 내구력을 시험해보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일단 미친 짓은 나중에 해도 되니 미루고.”
나는 자유의 몸이 되어 지면에 발을 딛고 서 있었다.
등 뒤에는 벌레가 파먹고 남은 고목처럼 절망의 탑이 볼품없이 무너져 있었다.
“내일 아침이면 누군가에게 발각되겠지.”
하지만 상관없다.
모든 일은 아침이 되기 전에 끝나 있을 테니까.
“그럼 놈이 있는 곳으로 가자.”
절망의 탑 꼭대기 독방에서 화룡도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었던 일주일. 나는 이제 이 섬의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훤히 꿰뚫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발걸음을 옮기는 곳은 7번 방의 죄수들이 잠들어 있을 거주 구역이 아니었다.
바로 화룡도의 최북단에 위치한 깎아지른 기암 구조물.
층장 제르비어스 폰타인이 묵고 있는 독채였다.
‘2층으로 가는 열쇠, 훔쳐 주마.’
처음부터 도둑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즉, 용사도 얼마든지 도둑으로 전직할 수 있다는 소리.
오늘 밤.
용사는 마왕의 침소에 몰래 숨어 들어갈 것이다.
*
화룡도의 한복판을 조심스럽게 걸었다.
삼엄한 시야로 탈주자를 포착해 발각시키려는 서치라이트는 없었다.
다급하게 호루라기를 부는 간수도 없었다.
‘여기는 현실의 교도소가 아니니까.’
이곳의 교도관인 ‘화염에 꼬리를 담그는 삵’이란 녀석도 감시자보다는 관찰자에 가까운 듯했다. 분명 지금도 어디선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겠지.
“이렇게 층장의 침소까지 프리패스인 건가.”
마력탄을 내뿜는 포탑이나 바닥이 꺼지면 철 가시들이 침입자의 몸을 꿰뚫는 함정도 보이지 않았다. 잘못 들어설 경우 길을 잃게 하는 특수한 결계도 없는 것 같고.
물론 이것이 꼭 반가운 신호라고 할 수만은 없다.
‘오직 사자만이 초원 한복판에서 낮잠을 잘 수 있지.’
층장의 침소로 가는 길이 탄탄대로라는 것은 그만큼 화룡도에서 그를 위협할 수 있는 것이 전무하다는 방증이었다.
하지만 탄탄대로라고 해서,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냐아옹?”
극도로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어디선가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을 때 화들짝 놀라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다섯 마리 남짓의 고양이들이 바위들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름: 헬코마타]
[화룡도에 서식하는 짐승입니다. 해가 지면 움직이는 야행성 동물로서 호기심이 많고 민첩합니다. 경계심이 약한 이유는 빠른 도주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적인가?
언제든 스킬을 발동할 준비를 하고 기다려 보았지만, 녀석들을 포획하거나 토벌하라는 돌발 퀘스트 같은 건 뜨지 않았다.
“공격 의사는 전혀 없어 보이는데.”
보통 게임 속에서 배경으로 깔아두는 NPC 같은 녀석들인 것 같았다. 헬코마타들은 무드등처럼 은은히 빛을 내뿜는 꼬리를 살랑이며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짜식들, 은근히 귀엽잖아. 이것 좀 먹어볼래?”
나는 인벤토리에서 죄수들에게 지급되는 빵을 하나 꺼냈다.
인벤토리에 아이템을 넣었을 때 그 안에서 시간이 흐르는지 시험하려고 넣어두었던 평범한 빵이었다.
인벤토리 안에서 곰팡이는 퍼지지 않았고 시험 결과 내부에서는 아무것도 썩지 않는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냐아아옹.”
헬코마타 중 한 녀석이 내게 다가와 빵에 코를 가져다 대고 킁킁댔다. 하지만 곧 흥미가 동하지 않는다는 듯 꼬리를 보이며 무리에게 돌아갔다.
“쳇. 고기 아니면 안 먹는다 이거냐. 도도하기는.”
이쪽도 너희들에게 시간 낭비할 여유는 없다 이거야.
나는 먼 발치서 나를 지켜보는 헬코마타들을 뒤로 하고 층장 제르비어스의 침소로 향했다.
마왕의 거처.
그곳은 검은 화산암으로 만들어진 이글루 같은 저택이었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액세서리 ‘대도의 마스크’를 꺼내 얼굴에 맸다.
[이름: 대도의 마스크]
[등급: C급]
[착용자의 기척과 발소리를 없애줍니다. 제한 시간은 5분이며 이후 재발동에 1시간이 소요됩니다.]
온몸을 투명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대도의 망토’를 둘렀다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 내 MP 스탯으로는 그 액세서리를 장착할 수가 없었다.
나는 창문처럼 둥그렇게 뚫려 있는 구멍 안으로 들어가 사뿐히 착지했다.
꽤 높은 곳에서 바닥까지 착지 했는데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 걸 보니 액세서리의 효과는 틀림없었다.
‘마왕은 침대 위인가.’
일반 죄수의 침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대형 사이즈의 돌침대 위에서 검은 몸체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보였다.
‘열쇠를 찾아보자.’
남아 있는 시간은 불과 4분 20초.
허투루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층장의 침소를 재빨리 눈으로 훑으며 돌아다녔다.
내게는 용사의 심안이 있다. ‘다음 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열쇠’처럼 중요한 등급의 아이템이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설명이 뜰 것이다.
그저 제한시간 내에 눈으로 ‘포착’하기만 하면 내 쪽의 승리인 것이다.
‘젠장. 없잖아?’
하지만 침소 어디에도 열쇠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이름만 열쇠일 뿐, 마정석 같은 보석이나 스크롤 같은 형태일 수도 있어.’
나는 조금이라도 여상하지 않아 보이는 것들이 눈에 뜨이면 살그머니 손으로 건드려보기까지 했다. 허나 역시 그 어떤 물체도 반응이 없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1분 10초.
나는 마지막 수색 장소로 남겨두었던 층장의 침대로 다가갔다.
마왕 제르비어스는 의외로 얌전한 잠버릇을 갖고 있었다. 일정한 높낮이로 호흡하는 걸 보니 말이다.
‘잠들어 있는 게 확실하군. 저 기다란 수염이 축 처져 있으니…… 잠깐만. 수염이라고?’
나는 눈을 비빈 다음 다시 층장의 침대에 곯아떨어져 있는 존재를 쳐다보았다. 몸을 둥그렇게 말아 단잠에 빠져 있는 것은 층장이 아니었다.
‘헬 판테라?’
그가 사냥할 때 데리고 다닌다던 커다란 표범이었다.
층장은 침소 안에 없었다.
마왕이 누워있어야 할 침대 위에 애꿎은 반려동물만이 잠들어 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을 때.
퍼어어어어엉!
좌측 내벽을 뚫으며 날아온 시커먼 마력포가 내 옆구리를 강타했다.
“끄허억!”
습격에 적중당한 내 몸뚱아리는 반대쪽 벽을 부수고 튕겨져 나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야만 했다.
“으으윽. 뼛속까지 울리는 것 같아.”
아니나 다를까.
비틀비틀 일어나 옆구리를 확인해보았더니 죄수복에 동그랗게 구멍이 나 있었다. 한계치까지 올려놓은 HP 스탯이 아니었다면 과연 생존할 수 있었을지 의아할 정도의 공격이었다.
검은 형체가 구멍 난 벽에서 뛰쳐나왔다.
1층장 제르비어스가 망토를 펄럭이며 내 앞에 착지했다.
“분명히 내 눈앞에 띄지 말라 했는데.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모양이군.”
녀석은 손바닥을 내 쪽으로 펴더니,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말했다.
“폭력 사태를 일으켜 화룡도의 기강을 어지럽힌 죄, 제멋대로 독방을 탈출한 죄, 층장의 침소에 기어들어 온 죄, 마지막으로 감히 마왕의 반려동물을 해치려 한 죄.”
제르비어스의 입가에는 웃음이 걸려 있었다.
용사학살자라는 죄명에 걸맞은 광마의 미소.
“즉결처분감이다. 이렇게 용사께서 친히 마왕에게 척살의 빌미를 제공해주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
“……마지막은 빼 줘. 헬 판테라를 어찌할 생각은 없었거든. 뭐, 나머지 죄목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1층장이 천천히 보라색 투기를 내뿜으면서 다가왔다.
나는 르팔타커스의 스킬 ‘만전불패의 체술’을 발동할 준비를 하며 그가 어떤 식으로 공격해올지 머릿속으로 예상해보았다.
내 눈빛을 읽어서일까.
“호오. 맞서 싸우겠다는 건가?”
“다른 건 몰라도 일격사만큼은 안 당할 자신이 있어서.”
그러자 제르비어스의 입 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