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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18화 (18/300)

#018. 화룡반점 오늘의 요리 (1)

“뭐? 작업 구역을 완전히 재배치했다고?”

7번 방의 작업 구역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야불타는 어이가 없다는 내 질문에 집게를 딱 부딪치며 말했다.

“그래, 지진 때문에 채석장의 지형이 크게 변했으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또 끄트머리인 게 말이 되냐! 바꾸려면 전체 방을 순환시키던가. 이건 농간이야.”

“불만이 있으면 층장에게 말해. 하지만 추천하고 싶진 않군. 어제 층장이 다이몬에게 그간의 보고를 받았거든. 네가 사고를 많이 일으켰다는 걸 알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터벅터벅 7번 방의 작업 구역으로 돌아왔다. 이미 모래 한 톨까지 긁어먹어 먹을 수 있는 흙이 남아 있지 않은 채석장의 구석으로.

“협상이 잘 안 됐나봐, 방장?”

뚠의 물음에 나는 이를 북북 갈았다.

“응. 저 재수 없는 사슴벌레 녀석의 집게를 뽑아다가 한약재로 달여 먹어 버리고 싶다.”

올쿠레는 일 년에 한 번 교도관이 권능을 발휘해 채석장을 원상복귀 시켜준다고 말해줬다. 마치 게임 속 몬스터나 채집 아이템들이 처음 상태로 돌아오는 리스폰(Respawn)처럼.

우리 구역의 흙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건 8개월이나 뒤의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는 안 돼요. 8개월이나 넋 놓고 있을 순 없어. 하루라도 빨리 탈옥을 해야 됩니다.”

내 말에 담긴 조급함을 읽었던 걸까. 풍미 좋은 수염을 쓰다듬던 올쿠레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왜 그렇게 서두르는 건가, 슈바인. 나는 긴 시간 동안 여러 등반죄수들을 보아왔네. 그들은 모두 1층에서 오래 단련하고 철저하게 준비해서 다음 층으로 올라갔어. 그런데 자네는 뭔가에 쫓기는 듯 초조해 보인단 말이야.”

“그건 제게 보통의 죄수들과 다른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바깥에 두고 온 사람이 있다.

느닷없이 홀로 남게 된 여동생.

‘졸업식 전날이었는데. 꽃다발을 줬어야 했는데.’

물론 화룡도의 죄수들 중에서는 아무리 흉악범일지라도 가족이나 연인이 바깥 세상에 남아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죄수들은 육체와 영혼이 함께 이곳에 왔다. 아마도 그들은 원래 세계에서 갑자기 실종되어 몇 백 년 뒤에도 찾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잊혀져가겠지.

‘하지만 나는 박상식의 영혼에 게임 캐릭터 슈바인 스트링거의 육체로 이 감옥에 끌려왔다. 그렇다면 인간 박상식의 육체는? 어떻게 되었을까.’

차라리 오빠가 실종되었다면 언젠가 다시 살아 돌아올 거라고 믿을 수 있다. 시체가 발견되지 않는 한 최소한의 희망은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내 영혼이 빠진 육신만 고시원 방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면?

상희는 자신의 눈으로 내 시체를 보게 되는 것이다. 모든 가족을 잃은 채 홀로 세상에 버려졌다고 생각할 거다.

내 장례식에서 여동생은 상주가 될 텐데. 아직 성인도 되지 못한 그 애가 내 장례식 영정사진 앞에서 얼마나 오열할지 생각하면…….

감옥에서 1초를 낭비할 때마다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진다.

내 목표는 단순히 탈옥을 한다는 것이 아니야. 상희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가지기 전에 하루 속히 돌아가야 한다.

“멍하니 때가 오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어요.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찾을 겁니다.”

나는 화룡도 전체를 둘러보았다.

흙이라는 것이 반드시 채석장에만 있으란 법은 없으니까.

이윽고 내 눈을 사로잡는 지형이 하나 있었다.

“뚠, 이리 와봐. 저기 저 높은 탑은 뭐야?”

화룡도에서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 있는 지형은 대부분 기암 봉우리였다. 물론 흙이 생길 수 없는 바위 덩어리들뿐.

그런데 그 가운데 분명한 인공물로 보이는 탑이 있었다.

길게 솟아올라 있는 탑은 마치 바닷가의 등대를 길게 늘여 뽑아 올린 듯한 모양새였다.

게다가 딱 사람 한 명만이 들어갈 것 같은 좁은 폭.

“으으으. 나라면 저쪽은 쳐다보지도 않겠어.”

“왜?”

“저긴 독방이니까.”

“독방? 죄수 단 한 명만 가두는 곳이라는 거지? 누가 저기에 들어가는데?”

“음. 그야 교도관이 허용하지 않는 심각한 분란 행위를 저지른 죄수가 들어가지. 내부에 침묵 마법이 걸려 있어서 갇힌 죄수가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러도 아무도 듣지 못해.”

뚠의 설명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전구가 켜지듯 발칙한 계획이 하나 떠올랐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저거다.

저것이야말로 내 다음 목표물.

나는 내 발로 독방에 들어간다.

*

교도관이 싫어할 만한 분란 행위.

그 방법을 찾아내는 것의 난이도는 내게 있어 ‘계란을 삶는 방법’과 같은 열에 놓여 있었다.

너무나도 간단하다는 얘기지.

게다가 나는 그것을 즐길 준비마저 되어있다.

“콩파스가 어떤 새끼냐!”

16번 방의 작업 구역.

그곳에 난데없이 쳐들어와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인간의 등장에 죄수들이 술렁였다.

망할 놈의 자식들.

이렇게나 안락한 곳에서 편하게 작업을 하고 있었구나.

그랬으면서 우리 7번 방이 더 빨리 할당량을 끝내니까 열폭과 발광에 미쳐 돌았다 이거지.

“뭐야, 저놈?”

질서정연하게 곡괭이질을 하던 코볼트들이 작업을 멈추고 모두 나를 돌아보았다. 그중에는 당연히 나를 알아보는 녀석도 있었고.

“어? 그 반쪽 쭈그렁탱이네 방장 아니야?”

“맞네. 신입으로 들어온 7번 방의 방장.”

“아니, 근데 저 새끼가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기어 들어왔어.”

“대장! 일어나 봐.”

진즉에 자신의 할당량을 끝냈는지 광석이 쌓인 수레에 기대 낮잠을 즐기던 코볼트 하나가 천천히 일어났다.

다른 녀석들보다 머리 하나는 크고 험악한 인상의 주인공.

“내가 콩파스다. 무슨 볼 일이지.”

이놈이란 말이지.

내가 오기 전부터 우리 7번 방의 죄수들을 집요하게 괴롭혀온 녀석. 부하들을 시켜 올쿠레를 조롱하고 디멜로 하여금 패배자의 근성을 주입시키고야 만 무뢰배들.

나는 녀석의 안면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답했다.

“볼일은 무슨 볼일. 이 끓여먹어도 시원찮은 버러지들아.”

“뭐? 버러지?”

“그래, 버러지. 눈치도 더럽게 없는 자식들 같으니. 허락 없이 다른 방의 구역에 성큼 쳐들어온 게 무슨 의미겠냐? 설마 꽃꽂이라도 같이 하자고 온 거겠어?”

나는 등 뒤에 숨겨 놓았던 기다란 무기를 꺼내 양손으로 쥐었다. 코볼트들은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손에 든 게 뭔지 자세히 보려고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있었다.

나는 용사의 복식호흡으로 일갈(一喝)했다.

“전쟁이다, 이 덜 자란 스머프 새끼들아! 용사님께서 너희 잡몹들을 한데 모아 참교육을 시켜주시겠다는 거다!”

*

성검 아론다이트의 손잡이를 붙잡고 다시 인벤토리에 넣으려고 낑낑댔을 때의 일이다.

당시에는 급박해서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지만, 그때 분명 내 스킬목록에 못 보던 항목이 깜빡거리는 걸 보았다.

[만전불패의 검술 Lv. 1]

그것은 내가 파천황 르팔타커스에게 빌려올 수 있는 두 번째 스킬이었다.

검의 손잡이를 쥐어보고서야 목록에 떠오른 것을 보면 무기가 손에 있어야 발동이 가능한 것 같았다.

문제는 내 인벤토리에 당장 사용가능한 검이 없었다는 점이다. 최소한 50센티는 넘는 기다란 막대기가 있어야 검술을 펼칠 수 있는데.

다행히도 내겐 아주 독특한 감방 동료가 한 명 있었다.

‘우리 방장 슈바인! 아까부터 뭘 그렇게 두리번거리고 있어?’

‘비르카, 너 다리가 아주 늘씬하고 각선미가 좋구나. 특히 골반 밑에 대퇴골이 아주 훌륭해.’

‘켈켈켈켈! 우리 방장이 제법 보는 눈이 있구나. 대마도사의 밑에 있던 시절에는 대륙 최고의 준족(俊足)이라던 군단장 녀석과 달리기 대결을 펼치기도 했지. 제법 빠른 늑대인간이었다면 내가 이겼다, 켈켈.’

‘응, 그래. 혹시 뼈가 부러져 본 적은 없어? 그렇게 자주 분해되는데 높은 곳에서 떨궜다가 금 가거나 한 적은?’

‘전혀! 결합마법이 약해져서 이 모양 이 꼴이지만 경도(硬度)만큼은 누구에게도 져 본 적이 없다. 한 번은 아이언 골렘의 대가리를 플라잉 니킥으로 쪼개버리기도 했다는 거 아니겠어?’

‘찾았다, 나의 막대기.’

‘응? 뭐를 찾았다고??’

*

인체를 구성하는 206개의 뼈 중에서 가장 긴 뼈.

그 이름하야 대퇴골.

내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비르카의 길고 아름다운 대퇴골이었다. 반강제로 소중한 뼈를 적출당한 스켈레톤 친구를 위해 묵념하고 싶었지만 그건 나중으로 미룬다.

나는 비르카의 대퇴골을 들어 뼈머리 쪽을 콩파스에게 향했다.

홈런을 예고하는 4번 타자처럼.

“니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우리 방 아가들을 건드린 걸 죽도록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다짜고짜 전쟁이라니. 그것도 너 혼자서? 7번 방장의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소문은 사실이었…….”

잡몹의 대사를 끝까지 들어줄 이유는 없다.

나는 스프린터처럼 다리를 구부렸다가, 벼락처럼 콩파스를 향해 짓쳐 들어갔다.

놈은 갑자기 내가 달려들 줄 몰랐는지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콩파스가 옆에 놓인 곡괭이를 슬쩍 쳐다보던 그 순간.

놈의 턱이 대퇴골의 사정거리에 들어왔다.

[친구 르팔타커스 시온의 스킬을 빌려옵니다.]

[만전불패의 발도술 Lv. 1]

나는 최강의 검투사가 갖고 있던 발도술로 콩파스의 아래턱에 일격을 가했다.

빠가악!

코볼트의 아랫턱이 부숴지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누런 이빨들이 채석장의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한참을 날아간 녀석이 땅을 두 바퀴나 뒹군 다음에야 16번 방의 다른 죄수들이 상황을 알아챘다.

“이 새끼가 우리 방장을 쳤어!”

“죽여 버려!”

놈들은 곡괭이를 각목처럼 들고 내 주변을 빙 둘러쌌다.

역시 다구리를 전문으로 하는 놈들이라서 제법 모양새가 잡혀 있다. 허약한 놈들이 정면에서 내 시선을 빼앗고 배후에는 힘 좀 쓰게 생긴 놈을 배치해 놓았다.

놈들은 내가 위축되길 바랐겠지만, 나는 이제 막 흥이 나고 있었다.

‘짜릿하군.’

층장 제르비어스가 악어를 때려잡아준 덕분에 생긴 +10의 근력 스탯, 그리고 아이언 골렘의 머리를 쪼갰다는 허풍을 믿어줘도 될 만큼 단단한 비르카의 대퇴골, 게다가 만전불패의 검술까지.

이 정도라면 칼춤을 춰볼만 하다.

“하루 종일 그렇게 구경할래? 안 덤벼?”

“이 자식이!”

내 도발에 코볼트 하나가 내 옆구리를 노리고 곡괭이를 휘둘러 왔다.

하지만 무게중심이 끄트머리에 있는 곡괭이는 결코 속도전에 적합한 무기가 아니다. 속검술도, 쾌검술도 펼칠 수 없을 걸.

“느려.”

나는 뒤로 슬쩍 물러나 곡괭이를 피한 다음 섬전과도 같은 찌르기를 돌려주었다.

“쿠엑!”

코가 박살나는 느낌이 짜릿하게 뼈를 통해 전해져 온다.

아, 물론 내 뼈 말고 비르카의 뼈.

“젠장! 다 같이 족쳐.”

놈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한 다음 작전을 바꿨는지 한꺼번에 덤벼들어왔다. 나는 포위되지 않도록 사이드 스텝을 밟으며 한 놈 한 놈씩 격파했다.

놈들의 급소만 골라 가격하면서.

“느리다니까. 니네가 나한테 닿는 것보다 병아리가 닭이 되는 게 빠르겠어.”

녀석들의 민첩 스탯으로 내 동작을 붙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우두머리인 콩파스라면 가능했을지도 모르나 내 선빵으로 인해 놈은 아직도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콩파스는 분한 듯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으나 출혈 때문에 시야가 흐릿할 것이다.

‘급습의 기본은 적장부터 제압하는 거지.’

나는 올려치기로 코볼트 한 놈의 사타구니를 사정없이 가격한 다음 외쳤다.

“꾸아아악!”

“네놈들 실은 패거리로 다닌다면서? 7, 8번 방 녀석들도 불러와라. 한 번에 다 패줄 테니까!”

하지만 대사를 치느라 한 녀석이 오른쪽 어깨를 곡괭이로 내려친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빠악!

“내가 잡았다! 이제 이 자식 오른쪽 손은 못 쓰는…… 어라?”

HP 3.

방금 내가 입은 피해량이다.

“잘만 쓰고 있는데?”

놈은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오른손의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려주니 크게 당황했다.

네놈들의 허접한 공격력 따위 내게는 간지러울 뿐이다.

“이젠 내가 갚아줄 차례지?”

다시 진각을 내밟아 허리를 회전시킨다.

‘만전불패의 검술’이 아름다운 궤적을 허공에 그렸다. 놈의 이마에서 분출되는 선혈이 화룡도의 암석에 흩뿌려졌다.

“대, 대체 뭐야. 이 새끼는!”

녀석들의 눈에 비로소 공포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자의 폭력을 막아 설 힘이 없다는 걸 실감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안 돼.

이걸로는 내 분노가 가라앉지 않아.

그러니까 이리 와.

퍼억!

코볼트의 코가 짓뭉개지는 건 아름다운 풍경이다. 계속 봐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말이지.

“두 번 다시 7번 방을 무시하지 마라!”

그렇게 잡몹을 박살내는 용사의 호쾌한 일검은 멈출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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