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 용사학살자 (3)
‘저건 또 뭐야?’
급습을 당한 거대 악어는 머리를 휘휘 내저어 고통스러워했다.
녀석의 목을 깨문 짐승의 턱 악력은 대단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몸부림칠 것을 대비해 발톱을 악어의 가죽에 박아넣어 단단히 고정시키고 있었다.
“크오오오오오!”
이대로는 떨쳐낼 수 없다는 걸 알았는지 앨리게이터가 짤막한 다리에 힘을 주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수직으로 껑충 뛰어오른 다음 허공에서 배를 까뒤집었다.
자신의 무게로 달라붙은 짐승을 압살하려는 것.
그때, 붉은 짐승이 타이밍 좋게 악어의 목을 놓고 점프했다. 땅을 딛고 선 짐승은 붉은 털에 검은 줄무늬를 가진 집채만 한 표범이었다.
녀석의 정체를 알아본 죄수들이 소리쳤다.
“헬 판테라(Hell Panthera)다!”
“층장의 애완동물이잖아? 그렇다면…….”
“제르비어스가 돌아왔다. 층장이 사냥에서 복귀한 거야!”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 변화에 나는 당황했다.
층장?
그러고 보니 다이몬과 코제트가 얘기했었다. 층장이 사냥을 나가 있는 기간에 내가 입소한 것이라고.
저 용맹한 표범은 그 층장이 데리고 다니는 펫(Pet)인 건가.
“층장이다!”
나는 대부분의 죄수들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천공에서 쏘아진 화살처럼 검은 물체가 빠른 속도로 낙하하고 있었다. 그것이 검은 망토를 수직으로 흩날리며 떨어지는 인영(人影)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퍼어어어억!
한 사내가 오른발로 앨리게이터의 머리를 짓밟으며 해식절벽 전체를 진동시켰다.
그러고는 훌쩍 뛰어올라 상대의 반응을 살폈다.
“끄르르르르르.”
땅 속에 머리를 처박힌 앨리게이터의 앞발이 터질 듯이 팽창했다.
곧 쑤욱! 하고 머리를 뽑아낸 거대 악어가 고개를 털었다. 그러곤 자신을 습격한 상대를 발견하자 전에 없던 흉폭한 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망토의 사내가 양팔을 펼쳤다. 그러자 보라색 기운이 그의 두 주먹으로 몰려들었다.
용사의 축복받은 신체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사내가 사용하는 이질적인 기운의 맹폭한 위력을 직감하고 있는 것이다.
‘저 녀석이 화룡도의 층장.’
마그마 앨리게이터가 급발진하는 레이싱 카처럼 돌진해왔다. 망토의 사내는 쩍 벌려진 녀석의 턱을 위아래로 잡더니 악어의 질주를 힘으로 멈춰 세웠다.
그의 두 발 앞에는 깊은 고랑이 만들어졌다.
“흐아아아아압!”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졌다. 망토의 사내가 앨리게이터를 거꾸로 들어올린 뒤, 무지막지한 괴력으로 내다꽂은 것이다.
휘익!
다시 한 번 높이 뛰어오른 사내가 허공에서 양손을 모았다. 그러자 보라색 기운이 합쳐지며 날카로운 칼날을 뽑아내었다.
그 칼날이 앨리게이터의 뱃가죽을 뚫었다.
푸우우욱!
뱃속에 구멍이 뚫려버린 거대 악어는 혀를 쭈욱 내민 상태로 숨을 거두었다.
의심의 여지없는 즉사.
몇 초의 정적 이후 악어의 위턱이 스르륵 열렸다.
설마 머리가 터졌는데도 살아 있는 건가 싶었다. 그러나 망토의 사내가 악어의 입천장을 밀어내고 있던 거였다.
곧 아무렇지도 않은 듯 휘적휘적 걸어 나온 그가 망토를 한 번 털었다.
띠링!
[돌발 퀘스트 #2. ‘악어 사냥’을 완료했습니다.]
[당신의 기여도가 현저히 낮아 보상이 조정됩니다.]
[근력이 10 오릅니다.]
퀘스트의 대상을 내가 죽이지 않아도 완료가 된다는 것, 대신 보상이 3분의 1로 줄어든다는 것 등 중요한 정보를 새로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엔 사소한 것들이다.
내 신경은 온통 거대 악어를 한 방에 끝장낸 사내에게 쏠려 있었다.
죄수들이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1층장 제르비어스가 귀환했다!”
“폭렬마왕(爆裂魔王)이 돌아왔다!”
그가 내게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보라색 피부에 칠흑의 머리카락. 머리 양쪽에는 버팔로의 그것처럼 정면을 향해 휘어진 굵은 뿔이 두 개 돋아나 있다.
겉모습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내뿜고 있는데 그것도 모자라, 용사의 심안이 믿을 수 없는 수치의 정보를 띄웠다.
[이름: 제르비어스 폰타인]
[종족: 마인], [클래스: 마왕]
[칭호: 용사학살자, 폭렬마왕, 푸르가토리움 1층장]
[HP: 3,500], [MP: 2,300], [근력: 376], [민첩: 180]
[형량: 950년]
[999명의 용사를 죽인 마왕성의 주인입니다. 충분히 다음 층으로 올라갈 수 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는 1층 화룡도의 지배자로 남는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강력한 정신지배 마법을 구사하며 더불어 화염내성까지 갖춘 엘리트 마족입니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이런 놈이 1층에 머무르는 죄수라는 거야.
마인도 아니고 마왕(魔王)이라고?
그가 나를 발견하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못 보던 얼굴이군. 신입 죄수인가.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엔 어지간하면 인원 추가를 삼가 달라고 했는데. 여전히 말을 안 들어 처먹는 교도관 새끼들.”
마왕 제르비어스는 다른 죄수와 달리 교도관을 향해 거침없는 폭언을 퍼부었다.
그리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메시지가 또 하나 떴다.
띠링!
[메인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메인 퀘스트 #2. ‘열쇠 수집’]
[용사는 등반죄수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층에 존재하는 층장이 보관하고 있는 ‘열쇠’를 획득해 다음 층으로 가는 문을 열어야 합니다. 보통 층장은 한 층에서 압도적인 무력을 자랑하는 강자일 확률이 높습니다. 당신이 얻어내야 하는 열쇠는 총 9개입니다.]
[0/9]
[기한: 100년]
[보상: 열쇠 1개마다 원하는 스탯 x2배, 또는 스탯 하나의 한계 돌파]
[실패 시: 윤회불가의 소멸]
그토록 궁금했던 방법을 알아냈다.
바로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방법.
어딘가에 숨은 계단을 통하는 것도, 땅굴을 발견해야 하는 것도, 교도관의 눈을 피해 담벼락을 넘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바로 ‘층장’을 상대해 ‘열쇠’를 받아내야 하는 것이었다.
‘잠깐. 그렇다면 층장한테 잘 보여서 그냥 열쇠를 건네받을 수도 있다는 거잖아?’
그렇게 터무니없는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을 때,
1층장 제르비어스 폰타인이 내게 뚜벅뚜벅 걸어왔다.
내 코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마왕.
기운에 압도돼서 거대하게 느꼈지만 가까이서 보니 그의 키는 나와 거의 비슷했다.
[1층의 교도관 ‘화염에 꼬리를 담그는 삵’이 1층장에게 속삭입니다.]
이놈의 교도관이 얘한테 속삭인다고?
뭘?
그 순간 제르비어스의 붉은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666? 어떻게 666명이나 죽일 수 있다는 거지. 이렇게 약해빠져 보이는 녀석이?”
“응? 그게 무슨 소린데. 내가 뭘 666명이나…… 우욱!”
마왕이 내 목을 틀어쥔 채 한 손으로 가뿐히 들어 올렸다.
숨이 턱 막혀왔다.
[경고. 용사의 축복받은 신체와 상극인 존재와 접촉했습니다. 신체 접촉 시간이 지속될 경우 저주 상태에 접어들 수 있습니다.]
목을 부러뜨릴 것 같은 그의 손아귀 힘도 힘이었지만, 더욱 강렬한 것은 그의 동공에서 이글거리는 해일 같은 분노였다.
“마왕. 네놈이 죽인 마왕의 숫자다.”
뭐? 층장에게 잘 보여서 열쇠를 얻으면 될 것 같다고?
적어도 이번 층에서는 절대 불가한 일이다.
제르비어스는 나를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일족의 원수를 찾아낸 것처럼 나를 노려보고 있잖아.
나는 그의 칭호를 그냥 흘려 넘겨선 안 됐다.
[용사학살자.]
그것이 이자가 쌓아온 업보이자 대표성이었기 때문에.
마그마의 파도가 철썩이는 화룡도의 해식절벽에서,
마인학살자 슈바인 스트링거와 용사학살자 제르비어스 폰타인은 처음 마주쳤다.
*
1층장 제르비어스 폰타인은 아마도 간단히 날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스탯을 세세하게 따지지 않더라도 피부로 힘의 차이를 절감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예고 없이 내 목을 붙잡은 손아귀를 툭 놓았다. 그러자 뜨겁게 데워진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왔다.
“허어어억.”
“죽이진 않겠다. 여기는 내가 있던 세상이 아니니까. 너를 화룡도의 먼지로 만드는 건 굳이 내 손을 쓰지 않더라도 가능한 일.”
그냥 내버려두어도 화룡도에서 내가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마왕은 헬 판테라에 올라탔다.
그리고 오만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덧붙였다.
“최대한 내 눈에 띄지 마라. 용사라는 족속을 보면 나도 모르게 심장을 짓이겨버리고 싶어지거든.”
헬 판테라가 한 번 웅크리더니 언덕 위를 짓쳐 올라갔다. 그 질주에 치이지 않도록 비켜서 있던 7번 방의 죄수들이 우르르 내게 몰려왔다.
비르카가 해골을 딱딱 부딪쳤다.
“괜찮나, 슈바인! 우리 방장이 걱정돼서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잖아!”
“너 내려앉을 심장 없잖아. 뼈밖에 없으면서 무슨.”
“그럼 골반이 내려앉을 뻔했다고 하지 뭐! 켈켈켈!”
디멜이 내 몰골을 보더니 잔소리할 기운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악운에 강한 놈이군. 어이가 없는 놈이야. 그냥 마그마에 떨어져 죽어버리지 그랬냐.”
싸늘하게 내뱉지만 나는 서운하거나 상처받지 않았다. 이젠 잭 프로스트에게 있어 냉소라는 건 그냥 기본 장착된 옵션이라는 걸 파악할 때도 되었으니까.
그보다 내 신경은 온통 층장의 존재에 집중돼 있었다.
나는 올쿠레 켄타에게 물었다.
“어르신, 어떻게 된 겁니까. 저런 규격 외의 괴물이 이 층에 있다고는 얘기하지 않았잖아요.”
“미안하네. 층장이 한 번 사냥에 나가면 열흘 이상은 돌아오지 않거든. 그리고 나는 자네가…….”
“열흘이나 버틸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셨군요.”
“끄흠, 면목이 없군.”
화룡도의 정점에 마왕이 있고,
그 마왕이 용사를 끔찍하게 증오하며,
독보적인 무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래도 나는 ‘이 층의 왕이 되어주마!’ 하고 소리칠 수 있었을까.
“돌아가자. 할 일이 생각났어.”
내가 말하자 뚠이 걱정된다는 듯 말했다.
“무슨 할 일이 있다는 거냐, 슈바인. 지금은 일단 쉬어야 하지 않아?”
“아니. 저런 놈이 화룡도에 있다는 걸 안 이상 1초도 쉴 수 없어, 나는.”
수많은 운동선수들이 말했다.
불안을 잠재우는 유일한 방법은 훈련이라고.
그럼 용사의 불안을 잠재우는 방법은 무엇일까.
‘닥치고 레벨업이지.’
나는 평생 단 한 번도 가진 적 없었고, 가질 거라 상상하지도 못했던 욕망에 완전 사로잡혔다.
흙이 먹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