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16화 (16/300)

#016. 용사학살자 (2)

그건 내가 친구 목록에 올라간 자들의 스킬을 빌려 쓸 수 있는 걸 알게 된 날이었다.

‘르팔타커스, 당신이 준 축복이 친구를 사귀는 능력이란 건 알겠어요. 그런데 스킬을 빌리는 것 말고 다른 건 없어요?’

그러자 어떤 일이 벌어졌더라.

그래, 마치 사용설명서처럼 긴 메시지 창이 눈앞에 띄워졌지.

[당신에게는 친구가 생겼습니다.

친구 목록이 생기면서 발동되는 권능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1.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친구의 스킬 중 하나를 선택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위력은 시전자의 숙련도에 정비례합니다. 단, 친구와 같은 층에 있지 않다면 기술은 봉인됩니다.

2.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해’: 친구와 귓속말 텔레파시 소통이 가능해집니다. 이 권능은 친구와 다른 층에 떨어져 있어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3. ‘반갑다, 친구야’: 친구의 바로 옆으로 순간이동할 수 있습니다. 이때 친구의 의식은 깨어 있어야 하며 1회 사용하면 24시간 동안 권능이 봉인됩니다.]

*

뚠 아티르의 작별 인사가 텔레파시로 들려오는 것은 르팔타커스의 권능 2번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3번 권능의 존재였다.

친구 곁으로 순간이동할 수 있는 권능.

나는 지체 없이 하늘을 향해 외쳤다.

“친구 뚠 아티르의 곁으로 순간이동!”

그러자 온몸이 광채로 휩싸이더니 빛이 사라졌을 때 나는 화들짝 놀라는 두더지 토인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으악, 슈바인! 어떻게 여길 날아온 거야?”

“설명할 시간이 없어. 일단 업혀!”

뚠은 내 죄수복 바짓단을 잡더니 엉금엉금 등 위로 기어올랐다.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피신할 곳을 찾기 위해서였다.

귓가에 바로 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텔레파시가 아닌 육성으로.

“방금 나한테 날아온 거로 다시 돌아가면 안 돼?”

“어. 그거 하루에 한 번밖에 못 쓴대.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해.”

나는 천천히 마그마의 바다를 유영하는 땅덩어리 위를 뱅글뱅글 헤맸다. 화룡도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이곳에서 가장 높은 지대를 고르기 위해서였다.

결국 내가 작은 둔덕을 찾아내 그곳으로 달려가자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지 뚠이 앞발의 긴 발톱으로 내 어깨를 긁었다.

“저기 친애하는 방장.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걸 할 건 아니지?”

“맞아. 그 수밖에 없잖아? 바다로 떠밀려 가면 천천히 가라앉아 죽게 된다고.”

“하, 하루가 지나면 다시 날 수 있다며! 바다 위를 떠돌다가 우리 방 동료들한테 돌아가면 되잖아?”

두더지 녀석이 머리를 돌린 것 치고는 제법 그럴싸하다만,

“안 돼. 나는 네 옆으로만 날아갈 수 있거든. 너는 이 층에서 나의 유일한 친구니까.”

“……그거 지금 상황만 아니었으면 참 감동적인 말이었을 텐데.”

나는 뚠의 엉덩이를 꼬집듯 붙잡으며 외쳤다.

“시끄럽고, 지금 뛴다!”

“으아아아악!”

나는 뚠을 업은 채로 화룡도의 튀어나온 해식절벽을 향해 뛰어내렸다. 마그마가 내뿜는 열기가 초점을 흐트러트릴 정도다.

저 멀리서 우릴 지켜보고 있는 7번 방 동료들과 다른 죄수들이 숨을 멈추는 게 느껴지는 듯하다.

물론 ‘만전불패의 체술 Lv. 1’은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난 스킬이다. 그러나 시전자인 내 근력 수치가 터무니없이 낮아 점프 거리를 늘려주는 건 불가능했다.

게다가 지금은 두더지 토인 하나를 업고 있기까지 했고.

그래서 우리의 점프는 경쾌한 포물선을 그리다가 점점 자유낙하에 가까운 무엇으로 변해 있었다.

‘이렇게 죽진 않는다!’

나는 인벤토리를 열어 우릴 살려 줄 ‘구명품’을 붙잡아 꺼냈다. 그 구명품은 사과만 한 사이즈의 폭탄이었다.

“그걸 왜 꺼내는 거야아아악!”

“비명 지르지 말고 꽉 잡아!”

나는 폭탄에 달려 있는 엄지 가량의 심지를 이빨로 물어뜯어 극단적으로 짧게 만들었다.

티익.

마그마에 가까이 가면 폭탄의 심지에 불이 붙을 것이다. 그 폭발의 힘으로 우린 해식절벽까지 날아가야만 한다.

그것이 내 계획이었다.

그런데 얼굴의 피부가 치이이익 벗겨질 만큼 마그마의 수면이 가까워졌는데도 폭탄은 터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젠장. 심지를 더 짧게 끊었어야 했나?’

하고 후회하는 순간,

콰아아아아앙!

수면 바로 위에서 폭탄이 터지며 마그마를 후욱 밀어냈다. 물론 뚠을 업은 나의 몸도 방출된 운동에너지를 직격으로 받아 날아갔다.

몸을 폭발시켜 억지로 만들어낸 2단 점프.

그게 우릴 살렸다.

“크허억!”

얼굴로 지면을 긁으며 불시착하는 고통이 이렇게 반가울 줄 몰랐다. 엄청난 맷집 덕분인지 정신을 잃지 않은 나는 벌떡 일어나 뚠을 찾았다.

“뚠! 뚠!”

저기 있다.

꿈틀거리는 갈색 털 뭉치.

“……으어어어어. 우리 방장은 제대로 미쳤어.”

다행히도 녀석은 내게서 멀지 않은 곳을 뒹굴고 있었다. 나는 뚠 아티르를 일으켜 세워 엉덩이를 털어주며 웃었다.

“역시! 안 죽을 줄 알았어. 적어도 맷집 면에서 너와 난 화룡도 최강이니까.”

“나 엉덩이 그을리지 않았어? 털이 뻣뻣해진 느낌이야. 히잉.”

“매일 신체의 절반이 녹아내리는 디멜도 있는데 우는소리 하지 마, 방에서 하룻밤만 자면 돌아올 거야.”

호랑이도 제가 말하면 온다더니 눈사람도 마찬가지인가.

그렇게 우리가 시시덕대고 있는데 저 멀리 언덕 너머에서 디멜이 손을 흔들며 내려오고 있었다.

“우린 무사하다! 걱정하지 마.”

내가 마주 손을 흔들어주며 씨익 웃고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디멜의 손짓이 우리의 생존을 반기는 축하의 그것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보통 반가워하는 환영의 손짓은 양옆으로 흔들지 않나?

저 자식, 왜 앞뒤로 손을 흔들고 있지?

어서 이곳에서 빠져나오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보다 화룡도에 대해서 훨씬 잘 알고 있는 뚠 아티르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사색이 되어 떨었다.

“어, 큰일이야 방장. 여기…… 우린 여기 있으면 안 돼!”

“왜? 아무것도 없는 모래사장이잖아. 마그마가 갑자기 덮쳐오는 것도 아니고.”

그러자 뚠이 내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기며 외쳤다.

“마그마보다 백배는 무서운 놈이 올 거야, 어서 도망치자!”

내가 엉거주춤 녀석이 이끄는 대로 언덕을 향해 올라가려는데, 시야 왼쪽의 바다가 갑자기 분수처럼 솟구쳤다.

좌우로 마그마를 흩뿌리며 모습을 드러낸 건 트럭 크기만 한 어떤 괴수였다.

녀석이 기다란 몸을 놀려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우르르르르르!”

마그마 속에서 이런 놈이 살고 있었다고?!

입을 쩍 벌린 채 덮쳐오는 괴수의 정체는 검은 가죽의 대형 악어였다.

터어업!

악어가 뚠을 삼키기 직전.

나는 순간적으로 뚠을 걷어찼다. 그리고 그 반동을 이용해 덤블링으로 몸을 빼냈다.

‘만전불패의 체술’ 발동이 익숙해진 시점이 아니었더라면 악어의 이빨에 짓이겨져 고기조각이 됐을 것이다.

데굴데굴 구르다가 벌떡 일어나자,

띠링!

[돌발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돌발 퀘스트 #2. ‘악어 사냥’]

[화룡도의 바다에서 서식하는 거대괴수 마그마 앨리게이터를 만났습니다. 움직이는 것은 모두 잡아먹는 흉포한 녀석으로 죄수들에게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입니다. 용사여, 마그마 앨리게이터를 죽여 화룡도를 지켜내십시오.]

[기한: 30분]

[보상: 근력 +30]

[실패 시: 처벌 없음]

나는 마그마 앨리게이터의 주둥이 끝을 주시하며, 동시에 돌발 퀘스트 창을 힐끔힐끔 파악했다.

엄청난 보상.

이 빌어먹을 시스템이 비로소 제대로 된 보상을 내건 퀘스트를 주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내가 도통 그것을 해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점이다.

“이런 괴물을 무슨 수로 죽이라는 거야!”

텁! 터업!

녀석이 주둥이를 옆으로 세워 본격적으로 나를 삼키려 몸부림쳤다. 그때마다 가까스로 몸을 굴러 피해내고는 있었지만 아슬아슬한 수준이었다.

여기서 내 체력이 더욱 떨어진다면 분명 저 칼날 같은 이빨이 피부를 뚫고 박힐 것이다.

‘장기전은 무리다.’

그러니 체력이 방전되기 전에 승부를 본다.

슬라이딩으로 놈의 이빨을 피해내며 인벤토리에서 또 하나의 소형 폭탄을 꺼냈다.

“제기랄. 이런 데에 쓰려고 만든 게 아닌데!”

작전의 성공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접근해야 한다.

지금껏 봐온 녀석의 움직임을 분석해보자. 땅에 배를 깔고 이동하기에 분명 수직적인 변화에 둔하고 수평적인 반응에는 무척 재빨랐다.

타닷.

나는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꼬리를 내려치는 공격을 피해냈다. 득점을 노리는 농구선수처럼.

급기야 놈의 오른쪽 앞발에 근접했다.

관찰한 결과 얼굴에 가까워지면 놈은 꼬리 공격을 멈춘 다음 비로소 턱을 벌려 나를 집어 삼키려 했다.

쩌어어어억.

대각선으로 크게 벌려지는 녀석의 입에서 뜨거운 악취가 풍겨 나왔다. 위턱과 아래턱의 거리가 최대치까지 벌려진 그 순간,

나는 수직으로 높게 점프했다.

소중하게 안고 있던 폭탄은 허공에 놓은 채.

골대에 공을 두고 오는 레이업 슛!

녀석의 이빨이 내 왼쪽 다리의 죄수복에 걸리면서 찢어졌으나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터어어어업!

굳게 다물어진 앨리게이터의 입.

혓바닥에 감긴 폭탄을 녀석이 목 안으로 넘기는 것이 보였다. 회색 뱃가죽이 소화를 위해 꿀렁인다.

나는 몇 걸음 물러서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두우우웅!

폭탄이 앨리게이터의 뱃속에서 터졌고 배가 부풀어 오른 놈은 지면에서 2미터나 훌쩍 뛰어올랐다.

“그렇지. 맛이 어떠냐!”

그리고 일어난 사태는 어이없기 짝이 없었다.

[마그마 앨리게이터의 HP를 100 회복시켰습니다. 화염계나 폭발계 공격은 이 괴수에게 피해를 주지 못합니다.]

“꺼어억.”

녀석이 호쾌하게 트림을 하자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젠장.

아무래도 녀석이 좋아하는 맛이었던 모양이다. 하긴 마그마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놈을 폭탄으로 잡으려 했던 내 생각이 짧았다.

‘안 되겠다. 내빼자.’

게임 속에서 아무리 강고한 몬스터를 만나도 후퇴했던 법이 없는 알파 테스터의 자존심에 금이 갔지만,

여기는 게임이 아닌 현실. 놈에게 씹어 먹히는 순간 리스타트(Restart) 따위 없이 죽어버리는 무자비한 세계다.

하지만 놈은 내가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경로인 언덕으로의 루트를 막아선 채 으르렁거릴 뿐이었다.

휘이익!

무언가가 날아와 나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끄으으윽!”

바닥을 딛고 선 발이 주르륵 뒤로 밀렸다. 하마터면 마그마에 발목이 잠길 뻔할 정도의 압력이었다. 나를 때린 것은 녀석의 꼬리였다.

‘사각(死角)에서의 공격은 만전불패의 체술로도 완벽히 피할 수 없는 건가.’

입에서 뭔가 흘러나와 닦았더니 피였다. 꼬리 후리기 한 방에 체력도 뭉텅이로 깎인 것이다.

어떻게든 놈의 시선을 피해 도망칠 시간을 벌어야 한다.

내가 그 방도에 대해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크아아아앙!”

하늘에서 붉은 짐승이 후욱 날아와 마그마 앨리게이터의 목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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