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 용사학살자 (1)
“글쎄. 아마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놈들이 날 죽여주길 바란 걸 수도.”
왜 곡괭이를 들지 않느냐 물었을 때 올쿠레는 얘기했었다.
다른 죄수들과 달리 잔여형량이 늘어나도 상관없다고. 이 감옥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다면서.
나는 그때 그냥 이 화룡도가 마음에 들어서 그런 줄만 알았다. 하지만 감옥에서 영원히 살고 싶어 하는 죄수가 죽임당하길 바란다는 건 모순 아닌가.
“뚠이 얘기해줬어요. 이 화룡도에서 마그마로 뛰어들어 자살한 죄수도 꽤 많다고.”
“그렇다네. 저걸 좀 봐. 저토록 불길하게 일렁이는 것이 꼭 죄수들을 유혹하는 것 같지 않나. 뛰어들면 편해진다. 해방될 수 있다. 매일 그렇게 속삭이는 듯하지.”
“그런데 어째서 그 선택을 하지는 않은 거죠?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갈 욕심도 없다면서요.”
그러자 내 질문에 올쿠레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우로스와 함께 했던 시절, 온전한 켄타우로스로서 전장을 누볐던 한때를 생각하는 듯 보였다.
“아는가. 우로스를 잃은 켄타는 살 수 있어. 두 피조물이 합체하는 순간 우로스의 심장은 정지하고 오직 켄타의 심장이 주도권을 쥐기 때문일세. 하지만 켄타를 잃은 우로스는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해. 피가 돌지 못하고 굳어버리거든.”
전쟁터에서 갑자기 몸의 반쪽을 잃어버린 우로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온몸에서 빠져나가는 피에 당황하면서 반려수를 애타게 부르짖지 않았을까.
“그래서 감옥에 끌려오고 대기실에서 망연자실해 있다가 교도관에게 물었다네. 내가 끌려온 차원의 시간은 어떻게 되는지. 멈춰 있느냐고, 아니면 흘러가느냐고.”
그래.
그건 나 역시도 궁금해 하고 있는 지점이었다.
형량을 다 채웠을 때 죄수는 원래 있던 시간대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인가.
내게 탈옥을 부추긴 첫 번째 메인 퀘스트의 보상에는 분명 [원하는 공간으로 이주할 수 있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원하는 공간.
원하는 ‘시공간’이 아니다.
그 다섯 글자는 불길한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공간만 고를 수 있고 시간은 고를 수 없다면 감옥 바깥의 세계엔 그대로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뜻 아닐까.
그것이 내 추리였고 올쿠레의 대답은 그것을 확인 사살해 주었다.
“이곳과 바깥의 시간은 동일하게 흘러간다는군. 그리고 세 시간 뒤에 나는 느꼈어. 나의 우로스가 숨을 거두고 전사의 영면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그 순간 나는 비통하게 울부짖었다네. 우로스는 갑자기 사라진 반려가 돌아올 것이라 믿으며 무려 세 시간을 버틴 거야. 악독한 고통을 참아내면서.”
그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었다.
아직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죄수들이 광석을 때리는 소리만이 덧없이 용암 위를 헤맨다.
“그래서 나는 원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거네. 형량을 마쳐 반려가 없는 세계로 돌아간다 한들 내 고향과 이 지옥이 뭐가 다르겠나.”
“…….”
“그렇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치욕을 보일 수도 없네. 최후의 1초까지 살기 위해 버틴 나의 우로스를 생각하면 하루에 백번씩 마그마에 뛰어들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거든.”
그는 이 감옥이 소멸될 때까지 ‘그냥 숨쉬고’ 있을 생각이었다. 만물에는 끝이 있다. 이 감옥이 있는 우주의 수명도 끝이 있을 것이다.
눈에 잡히듯 그려진다.
푸르가토리움이 우주의 종말을 맞이해 함께 소멸하고 있다. 그리고 가라앉는 화룡도의 절벽에는 하반신이 없는 한 사내가 섬과 함께 침몰할 것이다.
“나는 어쩌면 우주에서 가장 오래 걸리는 방법의 자살을 택한 것인지도 모르겠군.”
자조 섞인 그의 웃음에 대체 무슨 위로를 던져야 할지 모르겠다.
“이 감옥이 좋은 점이 있다면 꿈을 꿀 수 있다는 것 정도지. 그래서 가끔 우로스와 함께 해변가를 달리는 꿈을 꾼다네. 발굽에 모래가 끼어 한참을 고생할 거면서도 녀석은 그렇게 백사장을 좋아했거든.”
올쿠레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나는 차마 볼 수 없어 언덕을 내려왔다.
등 뒤로 꿈결 같은 그의 탄식만이 나를 배웅했다.
“한 번만. 다시 한 번만 그렇게 달려볼 수 있다면.”
*
나는 뚠과 비르카, 디멜을 다시 불러 모았다.
여전히 내 작전에는 이 세 명의 도움이 필요했으니까.
첫 주자는 의심쟁이 잭 프로스트.
“디멜, 나는 너를 비난하진 않아. 나도 알거든. 약자들에겐 그들만의 생존법이 있다는 걸.”
그는 내가 주문한 경로대로 채석장을 둥글게 둥글게 배회하고 있었다. 그냥 걷기만 하면 된다. 그게 내 계획의 초석이었다.
디멜로 하여금 채석장의 흙을 맨발로 밟게 한다. 그러면 조금씩 녹는 잭 프로스트의 수분을 받아 흙이 점성이 생기며 촉촉해질 것이다.
마치 밀가루에 물을 부으면 반죽이 되는 것처럼.
두 번째는 화룡도 최강 쫄보 뚠 아티르.
“뚠. 죄를 짓지도 않고 잡혀 들어온 너에게 공감해. 사실 나 역시 가상 캐릭터가 지은 마인학살죄로 들어온 거니까. 어쩌면 우리 둘은 이 화룡도에서 가장 닮은꼴일지도 몰라.”
뚠은 그 큼지막한 앞발로 반죽이 된 흙을 긁어모아 준다. 그러면 주먹밥처럼 삼키기 좋은 사이즈로 탄생.
흙의 크기와 모양을 자유자재로 만드는 분야에서 녀석은 드워프 못지않은 장인이다.
흙의 파티쉐라고나 할까.
“비르카, 별로 유쾌한 상황도 아닌데 네가 ‘켈켈켈’ 웃는 것이 꼭 널 만든 대마도사의 웃음을 따라 해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해. 너에겐 표정을 만들어 낼 얼굴 근육이 없으니까 일부러 과장된 소리로 상대의 긴장을 풀어주는 거지. 그런 배려심을 보면 넌 분명 좋은 녀석이야.”
마지막으로 스켈레톤 비르카가 흙의 주먹밥을 내 입에 넣어준다.
나는 뭘 하냐고?
가부좌를 튼 채 그저 씹어 삼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스킬 ‘엄마 쟤 흙 먹어’의 효과로 HP가 1 올랐습니다.]
[HP 3,894/4,923]
내가 인간 박상식이었다면,
휠체어에 앉아 있는 내 몸 그대로 이곳에 끌려 왔다면 나는 아마 디멜보다 더욱 굴종하는 죄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약자로 남아선 안 돼. 이 감옥을 탈출해야 하니까.”
비록 지옥에 떨어졌다 해도 이건 엄연한 내 두 번째 생(生)이다.
조롱당하기 싫어서 어둠 속으로만 다녔던 청년이 아니다.
흙을 퍼먹어 병이 났음에도 그걸 시킨 녀석에게 맞는 게 두려워 입을 다물었던 소년도 아니다.
“단순히 탈옥이란 단어에만 집착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이 엿 같은 화룡도가 힘의 논리로 이뤄져 있다면, 내가 그 힘의 정점이 되어주겠어.”
지켜봐라.
흙 먹는 용사가 어떻게 폭력의 밀림을 뿌리부터 뒤엎는지.
최강의 알파 테스터가 이 감옥을 어떻게 공략하는지.
“나는 이 층의 왕이 될 거야.”
이 말을 꺼내는 순간,
7번 방의 죄수들이 일제히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너무 멋지게 선포해서 감동을 한 걸까 생각했지만,
“어?”
아니었다.
갑자기 화룡도 전체가 거대하게 진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쿠르르르르릉!
채석장의 붉은 토대 위, 누군가 검은 색연필로 거칠게 금을 긋는 것 같다. 그 검은 균열은 7번 방 작업 구역의 한복판을 가로 질렀고, 그 안에서 압도적인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우리가 발 딛고 있던 땅덩어리가 화룡도에서 갈라져 나오며 마그마의 바다를 향해 곤두박질쳤다.
*
한겨울 전자레인지에서 갓 꺼낸 단팥 호빵을 양손으로 당기면 어떻게 되는가. 호빵이 두 조각으로 갈라지면서 안에 있던 단팥이 먹음직스러운 김을 내뿜는다.
우르르르르릉!
우리가 있던 채석장이 바로 그 꼴이 되고 있었다.
첫 번째로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처지가 갈라지는 단팥빵 위의 참깨들에 불과하다는 점이었고,
두 번째로 안타까운 것은 안에서 열기를 뿜는 내용물이 단팥 고물이 아니라 빠지면 녹아내리는 마그마라는 점이었다.
화룡도가 천천히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이리로 건너와라, 어서!”
맞은편에서 올쿠레가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나는 침몰하는 배의 갑판 위를 거슬러 올라가는 선원처럼 뛰었다. 그리고 끄트머리에 닿았을 땐 ‘만전불패의 체술 Lv. 1’을 발동해 멀리뛰기 선수처럼 도약했다.
촤아아아악.
맨땅에 발이 닿았을 때 느껴지는 안도감.
내 뒤를 바짝 붙어 따라온 디멜 무바크 또한 아슬아슬하게 착지하는 데 성공했다,
허나 비르카는 화룡도와 무너지는 채석장 지반 사이의 허공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아마도 뼈가 끊어질 것이 무서워 전력으로 뛰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대로 가면 마그마의 바다로 떨어진다.
뼈째로 녹아버리는 스켈레톤이 될 것이다.
그때, 디멜이 앞으로 나서며 손을 뻗었다.
[제국마도병 귀속냉마법]
[제3식 ‘빙결의 나뭇가지’]
디멜의 펼친 손바닥에서 얼음조각이 흘러나와 동그란 마법진을 그렸다.
“이거 잡아, 비르카!”
쿠드드득!
마법진에서 얼음의 나뭇가지가 뻗어 나가 스켈레톤의 허리를 휘감았다. 그리고 홰액 잡아당겨 안전한 땅으로 비르카를 내동댕이쳤다.
‘그래, 이 녀석은 마도병(魔道兵)이었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가, 아직 한 명의 죄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뚠! 어디 있어, 뚠!”
그때, 마그마의 바다로 침몰하고 있는 땅덩어리의 절벽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두더지 토인이 눈에 들어왔다.
비르카가 비명을 질렀다.
“저 멍청이! 뭐 하고 있었던 거야.”
이제 균열이 만들어낸 거리는 5미터가 넘어가고 있었다.
뚠의 짧은 다리로 이 먼 거리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나는 디멜을 황급히 쳐다보았다.
“야, 얼음 마도병! 방금 그거 한 번 더 쓰면 안 돼?”
힘을 쓴 대가로 볼이 움푹 팬 디멜은 침통하게 고개를 저었다.
“방금 힘을 전부 소진했어. 여긴 내 마법을 사용하기 최악의 환경이야. 그리고…… 뚠과의 거리도 너무 멀어.”
제기랄. 무리인가.
나는 구경을 위해서 몰려든 다른 죄수들에게 다가가 부탁했다.
“아무나 좋으니까, 제발! 우리 방의 동료를 구해줘. 어?”
하지만 모든 죄수들이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먼발치에 둥둥 떠 있는 4번 방장 오르콰이움과 눈이 마주쳤다.
“오르콰이움! 너는 날 수 있잖아. 뚠을 저기에서 건져 줄 수 없겠어?”
“무리다. 그랬다가는 나도 마그마에 휘말릴 위험이 있어. 그게 만약 쉬운 일이라 해도 왜 너희 냄새나는 녀석들을 구해줘야 하지?”
다른 방장들도,
“그럼 그럼. 화룡도에 지진은 자주 일어나. 피신하지 못한 놈이 잘못이야.”
“그래, 저 두더지 녀석은 원래 진작 뒈졌어야 할 몸인데 오래 버틴 거지. 낄낄.”
이 악마 뺨을 후려칠 사악한 새끼들아!
나는 다시 절벽 끄트머리로 다가가 뚠을 쳐다보았다. 녀석은 처음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뭔가를 포기했는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녀석의 음성이 귓속말처럼 들려왔다.
- 고마워, 우리 방장. 나를 살리려고 애쓴 것만으로도 충분해. 이게 내 운명인가 봐.
“웃기지 마! 이렇게 어이없이 죽는 게 무슨 운명!”
- 비르카와 디멜, 그리고 할배한테도 인사를 전해 줘.
나는 주먹을 부들부들 떨다가, 어떻게 자연스럽게 음성통신을 하는 것처럼 뚠과 대화할 수 있게 되었는지에 생각이 미쳤다.
게임에서 친구와 속닥이는 것처럼 텔레파시를 나누는 권능.
르팔타커스가 내게 준 선물 중 하나.
그리고 그 선물은 하나가 아니었다.
‘그래, 나라면 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