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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14화 (14/300)

#014. 노역 해방의 왈츠 (2)

“이제 쉬어도 되지?”

야불타는 올쿠레의 것을 제외한 네 개의 수레를 보고 말문이 막혀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통과다. 대체 무슨 수로 정오가 되기도 전에 할당량을 채운 거지? 그것도 불량 노역자들만 모인 너희…… 7번 방이?”

“내일은 더 빨리 올 테니까 놀라는 건 오늘만 해둬.”

사실은 더 빨리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헌데 뚠과 비르카가 계속 서로 얼싸안고 춤을 추느라 광석을 수레에 집어 담는 게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말았다.

지금도 내 뒤에서 격한 왈츠를 추고 있는 저 녀석들 말이다.

“믿겨져, 비르카? 나 할당량을 채운 게 30년 만이야.”

“나는 93년 만이다, 켈켈켈!”

디멜 역시 거의 녹지 않아 잘생긴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며 어색해하고 있었다.

“뭔가 반칙을 쓴 기분이야.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닐까, 슈바인.”

“반칙이면 어때. 교도관이 제지하지 않으면 다 허용되는 게 화룡도의 규율이라며.”

“그,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감사인사는 미뤄 둬. 너희들한테 시킬 게 있으니까.”

우뚝.

두더지 토인과 스켈레톤의 춤이 멈췄다.

흠칫 겁을 먹은 얼굴이다.

“뭐, 뭘 시킬 건데?”

“일단 우리는 이 채석장을 떠나지 않아. 다시 7번 방의 채광 구역으로 돌아가서 할 일이 있어.”

분명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7번 방의 죄수들에 대한 희미한 전우애와 미약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방장으로서 말이다.

하지만 느닷없이 자애로운 마음이 흘러 넘쳐서 7번 방을 노역으로부터 해방시켜 준 것은 아니었다.

‘흙을 퍼먹는 공정을 가속화시켜야 돼.’

적어도 세 배.

스탯업의 시간을 단축시킨다.

그것이 내 계획이었고 거기에는 뚠, 비르카, 디멜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물론 녀석들이 채우지도 못할 할당량에 매달리고 있을 때는 불가능한 이야기이기에 폭탄 아이템의 가격으로 ‘셋의 시간’을 구매한 것이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내 스탯업 속도는 어마무시하게 빨라질 것이었다.

그런데 채광 구역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광경이었다.

퍼억. 퍽.

“어? 저건 뭐야.”

처음엔 우리 구역에서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더 가까이 가보니 그것은 수많은 죄수들에 둘러싸여 얻어맞고 있는 올쿠레 켄타의 모습이었다.

“뭘 숨기고 있는 거냐니까! 네놈들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할당량을 채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아까 굉장한 소리가 여기에서 났어. 이 자식들이 더러운 꼼수로 죄수들을 우롱하고 있다고!”

두 죄수가 각각 올쿠레의 양팔에 매달려 움직임을 봉쇄한 뒤 다른 죄수가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치고 있었다.

“크윽! 꺼져라, 이 자식들아. 나는 말해줄 수 없다.”

죄수의 주먹이 올쿠레의 턱에 작렬하자 그의 치렁치렁한 장발에 묻은 피와 땀이 허공으로 비산했다.

순간 나는 다시 지구로 돌아온 줄 알았다.

제 힘으로 일어날 수 없는 자에게 가해지는 일방적인 폭력.

분풀이 대상이 될 먹잇감을 찾는 승냥이 떼들.

그건 나를 다시 무력한 인간 박상식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트리거 같은 광경이었다.

“이 빌어먹을 잡놈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나는 주먹을 꽉 쥔 채 땅을 박차 올랐다.

차오르는 분노와 함께 스킬이 발동되었다.

[친구 르팔타커스 시온의 스킬을 빌려옵니다.]

[만전불패의 체술 Lv. 1]

“어르신한테서 떨어져, 이 개새끼들아!”

붕 하고 날아오른 용사의 두 다리.

나는 올쿠레를 둘러싸고 있던 죄수 셋의 머리를 한 동작으로 걷어찼다.

탁, 탁, 탁.

그리고 축으로 사용한 왼발로 사뿐히 착지해 올쿠레의 앞을 막아섰다.

“큭. 뭐야? 네놈이 7번 방장이냐?”

혼신의 힘을 실었고 불의의 습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놈들은 잠깐 비틀거리기만 했을 뿐 쓰러지거나 비명을 지르진 않았다.

“잘 걸렸다. 이 자식을 족치면 불겠지. 뭘 숨기고 있는지.”

때려 놓고 보니 놈들의 정체는 코볼트 세 마리였다.

내가 아는 그 코볼트가 맞다면 어두운 던전 곳곳에서 약해진 모험가들의 배후를 습격하는 비겁한 족속들이다.

나는 가슴을 들이밀며 으르렁거렸다.

“때려 봐라. 이 버러지 같은 잡몹들아.”

“후후후. 그러면 못 때릴 줄 아냐.”

한 코볼트 녀석이 내 정강이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퍼어억!

하지만 녀석은 도로 튕겨져 나온 다리에 당황하며 물러섰다.

“끄아악. 뭐야, 이 새끼. 무슨 놈의 다리가…….”

놈의 공격은 내게 HP 수치 5를 빼앗아가는 데 그칠 뿐이었다. 어쩌면 내 펀치를 맞고도 멀쩡했던 차카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하지만 벌레처럼 놈들을 다 짓밟을 수 있을 것 같은 심정과는 달리 내게는 ‘공격력’이 부족했다. 비대해진 HP 스탯과 달리 근력 스탯은 여전히 11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아이언골렘의 방어력과 슬라임의 공격력을 한 몸에 가진 불균형의 용사였다.

‘하지만 화약을 바른 곡괭이를 쓴다면 어떨까.’

이 자식들은 차카보다도 더 혐오스러운 놈들이다. 적어도 차카는 나와 정당한 조건 하에 싸워서 잡아먹고 싶어 했다. 이렇게 떼로 몰려와 저항도 못 하는 노인에게 린치를 가할 정도의 쓰레기는 아니었단 말이다.

“덤벼. 우리가 무슨 수로 할당량을 채웠는지 궁금하다며. 알려줄게. 대신 목숨은 여기 두고 가라.”

“뭘 믿고 그렇게 오만 방자한지 모르겠군. 네놈이 13번 방장 차카에게 죽다 살아난 걸 우리 모두 봤는데 말이지.”

놈들은 나를 얕보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숨기지도 않았다.

맞다.

하지만 그건 HP가 100에 불과했던 때의 나.

“그 말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해 주마.”

놈들을 때려죽이고 싶다는 열망이 치솟아 오른다. 죄수 살해로 얻게 될 형량 100년이 가볍게 느껴질 정도로.

그리고 이놈들에게 남은 폭약가루를 사용하면 스탯 업 속도를 올리겠다는 계획이 무용지물이 된다는 마음속의 경고도 무시하고 싶을 만큼.

그때, 허겁지겁 디멜이 달려와 소리쳤다.

“그만해! 더 이상 소란을 피우면 야불타나 다이몬을 부르겠어.”

코볼트들은 천천히 물러났지만 얼굴에 담긴 조롱과 멸시의 웃음은 여전했다.

“쪼르르 일러 바치기밖에 못하는 패배자 놈들. 퉤!”

한 놈은 입으로 손나팔을 만들어 노래를 불러댔다.

“비키거라! 감히 켄타우로스의 앞을 막아서는 자. 우로스의 발굽이 그의 혼을 부술 것이오, 켄타의 도끼가 그의 넋을 받아 가리라.”

“크크크크. 아주 대단하신 맹장 납셨어. 7번 방 놈들을 괴롭히는 건 질리지가 않는다니까.”

나는 쓰러져 있는 올쿠레를 일으켜 세웠다. 워낙 단단한 근육 때문에 뼈가 부러진 곳은 없는 것 같았지만 꼴이 말이 아니었다. 온몸이 흙투성이였다.

“괜찮으십니까, 어르신. 죄송합니다. 저런 놈들이 옆 구역에 있는 줄도 모르고 자리를 비웠어요.”

“신경 쓰지 말게. 하루이틀 있는 일은 아니니까. 그냥 우리 7번 방이 화룡도에서 관심을 받는 게 못마땅한 녀석들일 뿐이야.”

또 한 번 멀리서 조롱의 노래가 한 소절 들려왔다.

“켄타와 우로스는 한날한시에 태어나지 않았으나, 한날한시에 죽을 것이다!”

“캬하하하. 불쌍해서 어떡하나. 반으로 뚝 잘라서 감옥에 갇혀 버렸으니.”

괜찮다는 올쿠레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조롱의 노래가 귓가에 파고들수록 그의 더럽혀진 수염이 미세하게 꿈틀대고 있었으니까.

나는 벌떡 일어나 멀어져가는 코볼트들에게 응수했다.

“언제든 찾아와라, 겁쟁이들아! 네놈들의 머리와 다리도 둘로 분리시켜줄 테니까아!”

그러자 디멜이 내 팔을 붙잡으며 만류했다. 차가운 잭 프로스트의 손길이 저릿저릿했다.

“그만 도발해라, 방장.”

“뭐라고? 너는 감방 식구가 이 굴욕을 당했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거냐. 잭 프로스트는 혈관 속에도 얼음만 흐르는 거야?”

“저 녀석들의 대장은 16번 방장 콩파스야. 높은 서열의 방장은 아니지만 대신에 한 번 물면 놔주지 않는 악랄한 놈이지.”

“그래서 뭐? 내가 그놈의 입 안에 폭탄을 쑤셔 넣어주지. 그래도 놔주지 않는지 볼까.”

하지만 디멜은 씁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콩파스는 8번 방, 11번 방 녀석들과 한 패야. 밉보이면 그 녀석들도 린치에 가담할 테지. 반면에 우리 7번 방의 편에 서줄 녀석들은 한 놈도 없고. 너는 신참이라 모르겠지만 뭉쳐 있는 놈들에겐 무조건 수그리는 게 답이야. 화룡도란 그런 곳이라고.”

강한 방은 혼자서도 오롯하고.

약한 방은 여럿이서 뭉쳐 서로를 비호한다.

나는 얼음 결정으로 만들어진 디멜의 동공을 마주보았다.

‘이미 폭력에 길들여져 버렸구나.’

도저히 더 화를 낼 수 없었다. 디멜의 표정이 너무나도 낯익었기 때문에. 내가 플레이한 게임들 속이 아니라…… 게임 바깥의 사람들에게서 늘 보아왔던 표정.

강자에게 반항하기를 진작 포기해버린 약자.

“네가 방장 셋을 한꺼번에 쓰러트릴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면 바닥을 기는 게 안온하게 사는 법이야.”

“너 역시 분하잖아, 디멜. 모두가 우리 방을 비웃는데 화도 나지 않는 거냐. 생쥐도 고양이를 물 수 있다고.”

“그래서 뭐! 고양이가 잠깐 기겁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건 화가 난 고양이의 지속적인 괴롭힘뿐이야.”

싸늘한 말만을 남기고 디멜은 돌아섰다.

내가 녀석을 붙잡으려 하는데 뭔가가 왼쪽 무릎을 간지럽혔다. 시무룩한 뚠의 얼굴이었다.

“이해해줘. 디멜은 원래 우리 방에서도 가장 의지가 강한 녀석이었어. 하지만 그러다가…… 가장 가까운 친구를 잃었거든.”

“친구? 어쩌다가?”

그때 먼발치서 디멜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쓸데없는 소리하면 얼려버릴 테다, 뚠 아티르!”

뚠은 쟁기 같은 두 개의 앞발로 자신의 입을 황급히 틀어막았다. 매사에 부정적이기만 한 잭 프로스트에게 사실 아픈 과거가 있었던 걸까.

그때 올쿠레가 나를 불렀다.

“방장. 나를 저기 위에 좀 올려줄 수 있겠나.”

나는 올쿠레의 등 뒤에서 양 어깨를 들어 올려 업었다. 그러곤 언덕 끝에 올라가 내려주었다.

“고맙네. 오늘 추태를 보였구만.”

“……이런 걸 물어도 될지 모르겠지만, 아까 코볼트들이 부른 노래는 뭐 였지요? 어르신의 얘길 알고 있는 것 같던데.”

그의 뒷모습이 들썩였다.

야생의 근육에서 자조 섞인 웃음이 전달된다.

“수인병단이 출병할 때 일족의 군악대들이 불러주는 전쟁가(戰爭歌)일세. 놈들이 그 가사를 아는 이유는 내 잠꼬대를 훔쳐 들었기 때문이지. 비르카의 증언에 따르면 잠결에 가끔 그렇게 울부짖는다고 하더군.”

“어째서 반격하지 않고 맞고만 있었죠? 원리는 설명 드리기 어렵지만 저는 죄수의 신체 능력을 대강…… 알 수 있습니다. 뚠이나 비르카와 달리 어르신의 주먹은 강하잖아요. 왜 한 번도 휘두르지 않았습니까.”

물기가 하나도 없는 웃음.

반려수를 잃어버린 늙은 노병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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