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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8화 (8/300)

#008. 성검에선 냄새가 난다 (2)

떠나가는 차카를 보며 올쿠레가 휘파람을 불었다.

“근수가 많이 나가는 스토커를 두었군, 슈바인.”

“그러게요. 이 감옥에 접근 불가조치 같은 건 없겠죠?”

“그럴 리가. 여기는 죄수들의 구역.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화룡도일세. 굴복시키는 쪽과 굴복 당하는 쪽이 있을 뿐이지.”

콧날이 반으로 깎인 눈사람 디멜이 끼어들었다.

“할배의 말이 맞아. 저놈은 너를 찍었어. 네가 설설 기지 않는 한 끝장을 보려 들 거야.”

“설설 길 생각은 없어. 앞을 막아서는 게 있으면 치워낼 뿐이다.”

“당연히 치워지는 쪽은 네 쪽 아니야?”

“그건 두고 봐야지. 야, 근데…… 너 얼굴이 그렇게 조금씩 녹는 거냐? 쫌만 물러서줄래. 오싹하단 말야.”

“……시끄러워. 걷기나 해.”

화룡도의 하늘에는 놀랍게도 태양이 떠 있었다.

섬을 둘러싼 마그마의 바다에서 불의 공이 솟구쳐 오르는 것 같았다. 어제는 어두워서 몰랐는데 이곳 화룡도는 지하세계가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가 1층이라고 하니까 당연히 천장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럼 2층으로는 어떻게 올라가는 거야?”

“이곳 푸르가토리움에서 층이라는 개념은 바깥세상과 조금 다르다네. 보통의 건물이나 탑처럼 한 층 한 층을 이어주는 계단 같은 건 없어.”

올쿠레가 대꾸했다. 그의 대답을 들으려면 자꾸 아래를 내려다보며 눈을 마주쳐야 하는 게 어색했지만 나는 꼭 노인의 눈을 마주 보며 대화하고 싶었다. 내가 휠체어에서 비장애인들과 대화할 때 느꼈던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럼요? 계단이 없는데 왜 층이라고 부르는 거죠?”

“편의상 붙여진 이름이지. 사실상 층과 층은 서로 다른 차원이나 다름이 없다고 하네. 그러니까 탑보다는 양파 쪽에 더 가까운 구조랄까. 높은 층이 낮은 층의 표면을 둘러싸며 겹겹이 만들어진 세계. 그것이 이 푸르가토리움이라고 하더군.”

죄수들이 도착한 곳은 화룡도의 낮은 지면에 있는 광석 지대였다. 울퉁불퉁한 화산암들의 봉우리 사이로 죄수들이 지나다니는 길이 개미굴처럼 나 있었다.

그 입구에서 사슴벌레의 머리를 한 충인족이 곡괭이를 나눠주고 있었다. 3번 방장 야불타란 놈이었다.

“명심해라! 이 감옥에서 영원히 살고 싶은 녀석이 아니라면 하루에 궤짝 하나를 채워야 한다는 걸.”

이족보행을 하는 사슴벌레라.

이제 저 정도의 비주얼로는 그닥 놀라지도 않고 자연스레 곡괭이를 받아드는 내가 있었다.

“7번 방이냐! 불량노역자 놈들. 너희는 내가 특별히 지켜본다는 걸 잊지 말도록.”

야불타는 채석장의 끄트머리로 우리를 밀어냈다.

마그마의 바다와 가장 가까운 곳이었고 끔찍한 열기의 피해를 직통으로 받아내는 곳이었다.

7번 방의 죄수들은 익숙한 동작으로 곡괭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묵직한 곡괭이네.’

난감했다.

내가 테스트했던 게임들 중에서 이런 상황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플레이어의 레벨이 낮을 땐 무기를 강화하거나 수주받은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해서 광석을 채집하는 것이 게임 속 일상이니까. 다만 나 같은 경우 매번 노가다를 건너뛰었을 뿐이다.

‘컨트롤로 작살내면 그만이었으니까.’

플레이어였을 때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곡괭이질을 용사로 전생한 뒤 하게 되다니 아이러니하다.

까아앙.

예상외로 암석은 쉽사리 부숴지지 않았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다이아몬드나 사파이어가 우르르 떨어지는 게임 속 세상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문제는 약하디약한 내 근력이었다.

대략 여섯 번이나 일곱 번 정도 내려쳐야 주먹만 한 돌멩이가 바스러질 뿐이었다.

딸그랑.

돌멩이를 수레에 담아두는 순간 나는 이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짜증나네. 이걸 어느 세월에 채우라는 말이야.

나는 옆에서 낑낑대며 곡괭이질을 하는 두더지에게 물었다.

“뚠, 할당량을 못 채우면 어떻게 되는 거지?”

대답은 엉뚱한 곳에서 먼저 들려왔다.

띠링!

소리와 함께 새로운 퀘스트창이 생긴 것이다.

[일일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일일퀘스트 #1. ‘수레를 채워라.’]

[화룡도의 죄수는 광석을 캐내 수레에 담는 노역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것은 교도관 ‘불꽃에 꼬리를 담그는 삵’이 만들어낸 율법. 화룡도의 해가 지기 전까지 할당량을 채워 채석장의 감독관에게 제출하십시오.]

[기한: 12시간]

[보상: 없음]

[실패 시: 형량 24시간 추가]

보상은 개코딱지도 없으면서 실패 리스크가 왜 이리 커?

예상대로 퀘스트 창은 내게만 보이는 모양이었다. 뚠은 내 정신이 딴 데 팔린 줄도 모르고 설명을 읊고 있었다.

“……그래서 못 채우면 형량이 하루씩 늘어나.”

“노동을 거부하면 영원히 이 감옥에서 나가지 못한다는 소리네.”

“응. 그래서 우리 모두 울며 겨자 먹기로 곡괭이질에 투입되는 거야.”

그래서 그 흔한 감독관이 없었군. 채찍질을 하면서 죄수들을 독려하는 감독관이. 그냥 곡괭이랑 수레를 나눠주기만 하면 되는 거야. 처벌은 감옥의 시스템이 대신해주니까.

잠시 후.

채석장을 담당하는 3번 방장 야불타가 우리를 가리켜 불량 노역자들이라 했던 이유를 나는 직접 목격했다.

“흐아아. 졸려.”

잠이 많은 뚠 아티르는 곡괭이질을 하다가 자꾸만 졸았고,

“켈켈켈! 슈바인. 내 엉치뼈 못 봤나? 그쪽으로 굴러 갔는데.”

비르카는 곡괭이질의 충격을 못 이기고 자꾸만 와르르 해체되는 뼈를 주워 다니느라 바빴으며,

“젠장. 여기는 너무 뜨거워. 옮겨야겠어.”

속도가 가장 좋았던 디멜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얼음이 녹아내려 힘이 떨어지고 있었다.

가장 어이없는 죄수는 올쿠레 켄타였다.

그는 아예 시작부터 곡괭이를 베고 누운 뒤 휘파람을 불고 있었던 것이다.

“어르신, 일 안 하십니까?”

“응, 나는 안 한다네.”

“어째서요?”

그러자 근육질의 늙은 무사는 자신의 비어버린 허리 아래를 보며 자조했다.

“이 감옥을 나가고 싶지 않으니까. 나는 형량이 늘어나는 걸 오히려 반기는 쪽이거든. 우리 방 식구들의 형량까지 내가 대신 떠안는 것이 허용됐다면 이미 오래전에 그렇게 했을 거야.”

그의 하얀 눈썹 아래 쌓여 있는 회한을 엿보았기에 더는 사연을 캐물을 수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올쿠레는 이곳 화룡도에서 죽을 생각인 듯했다. 자발적으로 노역을 거부한다는 면에서 올쿠레 켄타야말로 불량 노역자라는 이름에 딱 맞는 죄수였던 것이다.

‘이러니 다들 형량이 어마무시했던 거군.’

약해빠진 우리 방의 죄수들이 형량만큼은 다른 방의 죄수들에 비해 비약적으로 높은 이유가 있었다. 지은 죄의 무거움이라기보다는 할당량을 못 채워 형량이 늘어나 버리는 악순환의 늪에 빠진 것이다.

그 사악한 늪은 이제 나를 집어삼키려고 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

“탈옥을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우뚝.

7번 방의 죄수들이 일제히 작업을 멈추고 멀뚱히 나를 쳐다보았다. 비르카의 갈비뼈 하나가 바닥을 데구르르 구르는 소리만이 정적을 간지럽힌다.

뭐지, 이 반응은?

목장의 염소들에게 사자의 생간을 뜯어 먹으러 가자고 말을 꺼낸 기분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재차 물었다.

“형량이 백년이든, 백만 년이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곳에서 벗어나면 그만 아니냐고요.”

밑 빠진 독에 계속 물을 붓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차라리 그걸 부숴버리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게 현명하다.

디멜이 곡괭이를 격하게 내리치며 짜증을 냈다.

“너 말야, 이 화룡도만 탈출하면 된다고 믿는 거냐?”

그의 눈빛엔 아득한 피로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우리가 약해 빠져서 얌전히 죄수의 처지로 만족하며 남아 있다고 생각할 테지. 신참이란 놈들은 그래서 짜증이 나. 모두 자기 자신만큼은 특별하다고, 나만큼은 뭔가 해낼 수 있다고 착각하니까.”

샤르르르.

잭 프로스트답게 디멜이 한 마디 내뱉을 때마다 입에서는 서리가 뿜어져 나왔다. 이 화룡도의 열기 때문에 서리는 공중에서 아스라이 흩날렸고, 그래서 그의 분노가 입김이 돼 뿜어져 나오는 것으로 보였다.

“푸르가토리움에서 존재가 드러난 건 총 아홉 층이야. 네가 있는 곳은 그중에서도 가장 낮은 최하급 죄수들이 있는 화룡도이고. 기껏해야 보잘것없는 마인들.”

디멜은 그런 화룡도에서도 최약체로 만들어진 집단이 7번 방이라는 건 말하지 않았다. 그도 알고 나도 아는 사실이니까.

“다음 층으로만 올라가도 초마인(超魔人)들의 구역이야. 그 위로는 반인반수, 불사자, 거인, 환수, 용…… 그리고 꼭대기 층에 가까이 가면 신격인 존재들까지 붙잡혀 으르렁대고 있다고 해.”

대기실에서 나는 아홉 교도관이 모두 소집된 일을 떠올렸다. 죄수들의 등급을 판단해 배정하는 연옥의 문이 교도관들의 도움을 요청했었지.

그때 내 감각은 어떠했던가.

악귀들의 만찬에 음식으로 올라간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었다.

“한 층 한 층 올라갈 때마다 이전 층보다 몇 배는 무시무시한 녀석들과 마주해야 하는 거지. 알겠어? 탈옥을 꿈꾼다는 건 그런 거야. 이 푸르가토리움의 탈옥은 바깥세상에서의 그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단어라고.”

그냥 듣고만 있자니 좀이 쑤신다.

이번에는 내가 곡괭이를 땅에 콱! 찍으며 대꾸했다.

“얼만큼 무겁든 나는 말하겠어. 탈옥하겠다고. 9층이든 99층이든 올라주겠다고.”

“오르지 못할 빙산은 쳐다도 보지 말라 했어.”

아마도 디멜이 있던 얼음세계에 전해져 내려오는 속담인 모양이다. 저런 부류의 속담은 모든 차원 공통인가.

나는 코웃음을 쳤다.

“열 번 찍어 안 쓰러지는 빙산은 없다, 그런 속담은 없었어? 나는 빙산이 녹길 기다리는 사람처럼 만기 출소를 기다리는 죄수는 되지 않겠어. 빙산을 때려 부수고 기어오르는 탈옥수가 되겠다.”

절망에 갇혀 사는 건 지난 생으로 충분하니까.

내 기세에 움찔한 디멜은 발산하던 냉기를 물리고는 나를 외면했다.

“흥. 입을 나불대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 그 오만함이 어디까지 가나 보자고, 신입 방장.”

내 말을 들은 올쿠레의 눈이 가늘어졌다.

“자네. 등반죄수(登攀罪囚)가 되겠다는 건가?”

“등반죄수요?”

“탈옥을 꿈꾸며 아래층으로부터 최종층까지 등반을 하려는 죄수를 말한다네. 아주 가끔 그런 미친 죄수들이 나오기 마련이거든. 이 화룡도에서는 백년이 넘게 나오지 않았지만.”

등반죄수.

일단 나는 내가 되려고 하는 직종에 이미 이름이 붙여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고 보니 르팔타커스의 유해를 만졌을 때 시작된 메인퀘스트 설명에도 그런 내용이 있었다.

[방법은 최종층의 문에 열쇠를 꽂는 것입니다.]

올쿠레의 입에서 낯익은 이름이 연이어 흘러나왔다.

“아주 오래전, 밝혀진 층 중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른 등반죄수가 있었지. 1층 화룡도에서부터 파죽지세로 감옥을 오른 죄수. 파천황 르팔타커스 시온.”

“르팔타커스를 아세요?”

이번엔 올쿠레가 놀라며 되물었다.

“응? 어제 잡혀 들어온 자네야말로 무슨 수로 르팔타커스를 아는가. 그건 나를 비롯한 붙박이 죄수들 말고는 잘 모르는 이름인데.”

어떡하지. 대기실에서 르팔타커스의 유해를 만지는 바람에 그의 유지를 잇게 되었다고 말할 순 없었다. 나 역시도 아직 르팔타커스의 축복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고, 다른 죄수들이 내 능력을 알게 되는 것 역시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나는 적당히 얼버무리기로 했다.

“대기실의 교도관이 말이 많더라고요. 제가 탈옥을 하겠다고 하니 르팔타커스의 이름을 말해줬어요.”

오른손에 새겨진 문신을 바라봤다.

용을 죽이는 사자의 그림.

이것은 가장 높은 층의 감옥까지 오른 죄수의 유산이었다.

“어르신, 르팔타커스에 대해 더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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