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일류의 싸움법 (3)
“당연히 오빠가 죽을 줄 알았는데 제법이네?”
손바닥만 한 박쥐 날개가 나비의 그것처럼 잔망스럽게 살랑인다. 그녀의 이름은 코제트. 자신을 5번 방장이라고 밝힌 매혹적인 서큐버스였다.
“얼마나 조마조마했다고. 우리 5번 방은 모두 오빠가 이기길 응원했거든.”
나는 지금 화룡도의 죄수 거주 구역까지 그녀의 안내를 받고 있다. 화룡도 중앙의 큼지막한 기암산에 여러 개의 굴이 뚫려 있었고, 죄수들은 그곳을 ‘수감방’ 삼아 지내는 모양이었다. 각 굴의 위쪽에는 번호를 가리키는 숫자가 양각돼 있었다.
“흥. 살만 뒤룩뒤룩 찐 비만 고블린한테 질 수야 없지.”
“허세는. 엄청 두들겨 맞는 거 다 봤거든? 물론 우리야 오빠가 안 죽어서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화룡도에는 사지 멀쩡한 미남이 드물단 말야.”
고양이의 눈동자처럼 세로로 쭉 찢어진 동공이 나를 뚫어져라 본다. 괜스레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기분이다. 큼큼. 입고 있는 죄수복은 일부러 여기저기 찢어놓은 것 같은데.
다이몬이 우리한테 미풍양속 어쩌고 하더니, 저런 옷차림이야말로 감옥의 미풍양속을 심각하게 해치는 거 아닌가.
“슈바인이라고 했지? 나중에 우리 방에 놀러 와. 잘해 줄게. 응?”
코제트의 보라색 손톱이 내 목덜미에 닿았다. 손톱은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용사의 가슴 근육을 향해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우리 방을 찾는 건 쉬워. 지금 지도를 그려주고 있는 거야.”
‘아니, 이건…….’
숱한 게임에서 서큐버스들을 구현해낸 것을 보았지만 실제 눈앞에 있는 몽마의 아름다움은 차원이 달랐다. 고작 눈 한 번 마주쳤을 뿐인데, 당장 내 심장의 소유권을 가져가지 않고 뭐하시냐고 애원하고 싶어졌다.
‘위험하다. 다른 의미로 얘도 정말 위험해.’
코제트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진다.
용사의 본능은 이것이 아름다운 전갈 한 마리가 꼬리를 세운 채 내 가슴 위를 기어 다니는 상황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지만 좀처럼 제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그녀의 나른한 숨결이…….
“또냐, 코제트.”
“꺄아아악!”
거대 코뿔소가 내뿜은 콧김이 서큐버스의 앞머리를 붕 떠오르게 만들었다.
“그냥 얘기만 한 거야, 얘기. 잡아먹을 생각은 아니었다고.”
“일단 슈바인에게서 두 발짝 물러서라.”
“네네, 알겠습니당.”
다이몬이 파리를 쫓는 코뿔소처럼 코제트에게 손짓하자 서큐버스는 입맛을 다시면서 물러났다. 다이몬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신참 놀리기는 나중에 해. 헛수작 부리지 말고 7번 방까지 잘 안내해줘야 한다. 응? 난 이 녀석을 데리고 가야 해서 이만 실례하지.”
다이몬은 씩씩거리는 차카의 뒷덜미를 붙잡고 우리와는 반대편 언덕 쪽으로 올라갔다.
“놔, 빌어먹을!”
그 광경을 본 나는 한 마디 중얼거렸다.
“코뿔소가 돼지를 끌고 가네.”
하지만 그냥 우스꽝스러운 장면으로 치부할 순 없었다. 차카의 완력은 내가 겪어봐서 안다. 실로 무지막지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한 손만 사용하고 있는 저 다이몬에게 꼼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지금 내가 다이몬과 맞붙는다면 몇 분이나 버틸 수 있을까.
‘엿 같은 감옥.’
다시 생각해도 열 받는다. 기껏 만렙 용사의 몸으로 전생시켜 놓고 너무 강하다느니 뭐하다느니 하면서 레벨을 깎아버린 이 푸르가토리움의 만행에 대해서.
그때 코제트가 다시 뒤돌아보며 묻는다.
“슈바인 오빠. 근데 왜 잡혀 온 거야?”
“마인학살죄래.”
“학살죄? 어, 혹시 위어울프야? 아니면 뱀파이어? 그것도 아니면 설마 용인족?”
“응? 아닌데. 인간이야. 변신 같은 거 안 해.”
“정말? 이상하네. 엄청 약해 보이길래 위급할 때 변신하는 류인 줄 알았어. 아! 알겠다. 그쪽 차원에서는 오빠가 거인이구나? 그래서 소인들을 으랏차차 쾅쾅 짓밟아 죽여서 여기 온 거지?”
“……아니. 그것도 아닌데.”
내 대꾸에 아리따운 서큐버스는 더더욱 의아해하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엔 ‘이딴 약골이 어떻게 흉악범들의 수용소에 잡혀 온 거지?’라는 물음이 떠올라 있었다.
자연스레 등골을 스치는 섬짓한 의문.
나는 그것을 확인해보기 위해 코제트에게 물었다.
“처음부터 이 지경은 아니었어. 여기 잡혀 오자마자 교도관이 내 힘을 빼앗아 갔거든. 너희들은 아니야?”
“응? 교도관이 그런 짓을 왜 해? 걔네는 그냥 우릴 감옥에 던져놓고 방치하는 게 특긴데.”
“그럼 교도관 새끼들. 설마 나한테만 이런 거야?”
내가 울분에 차 먹구름이 낀 하늘을 노려보는데 코제트의 말이 이어졌다.
“대신 무기는 아무도 못 갖고 들어와. 대기실에서 그 쥐새끼 만났지? 그놈이 다 빼앗아가 버리거든. 그래서 나 같은 타입이 고생이지. 지팡이가 없으면 마법의 위력이 확 쪼그라드니까.”
“그럼 모두가 빈 손인 거야?”
“당연하지. 상식적으로 감옥에 무기반입이 되겠어?”
나는 전설급 장비와 무기들로 가득한 내 인벤토리를 떠올렸다. 생각할수록 이상한 놈들이다. 레벨은 깎았으면서 무기는 남겨뒀다?
다른 죄수들과는 정반대잖아.
이 시발, 약 올리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나만 특별 취급하는 어떤 이유가 있는 걸지도.’
나는 이 사실을 유념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뉴스에서 봐 온 죄수들은 대부분 흉악범들이었지만 세상에는 운이 나빠서 지은 죄보다 높은 형벌에 처해지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불쌍한 것은 바로, 누군가의 치밀한 계획 하에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경우일 것이다.
‘그게 바로 나 같은 놈이겠지.’
교도관 녀석들.
알파 테스터 박상식의 정신과 게임 속 용사 슈바인 스트링거의 육체를 ‘반반씩 섞어서’ 불러온 것부터 일 처리가 개떡 같았는데. 이게 음모라면 단순한 착오가 아닐 수도 있겠다.
‘0층 대기실에서 만났던 그 나태 어쩌구 했던 쥐새끼. 그 녀석이 그랬지. 모든 교도관들이 모인 것이 몇 백 년 만의 일이라 했어.’
층 배정 당시 모든 교도관들이 내 존재에 대해 호들갑을 떨었던 점, 이곳 화룡도에 떨어졌을 때 결원이 1명인데 어째서 2명이 왔냐며 다이몬이 갸웃했던 점 등을 모두 생각하면 석연찮은 구석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목표를 추가한다.’
나는 이곳에 갇혔다는 걸 안 순간부터 오직 하나만의 목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자연스레 두 번째 목표가 생겨났다.
첫 번째.
이 감옥을 탈출해 지구로 돌아간다.
두 번째.
내가 이 세계에 불려온 이유를 찾는다.
‘어떤 녀석인지 몰라도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어.’
나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코제트의 뒤를 따라갔다. 천연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작은 둔덕에 굴이 나 있었다.
그 앞에서 서큐버스는 멈춰 섰다.
“다 왔어, 슈바인 오빠.”
어느덧 7번 방 앞에 도착한 건가.
그때 문득 등 뒤가 소란스러웠다.
7번 방의 맞은편 언덕에 지어진 굴. 차카가 들어간 13번 방에서는 찢어지는 고함과 비명, 포효가 연이어 흘러나왔다. 물론 주먹과 발이 살을 때리는 맹포한 타격음은 덤.
방금 전엔 누군가의 두개골이 지면을 강타하는 묵직한 소리였다. 타격으로 인한 뇌진탕이겠군.
“다 덤벼, 이 새끼들아! 내가 도기노브 인신매매단의 두령 차카 님이시다!”
코제트는 귀가 따갑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저래서 이 층의 죄수들을 딱 싫어해. 하여간 머릿속에 싸움이랑 전쟁밖에 없는 놈들.”
“저거 괜찮나. 방 안에서 폭력 사태가 일어나도 상관없는 거야?”
“응. 다이몬도 신입이 방에 들어갔을 때의 신고식은 어지간하면 건드리지 않아. 죽이지만 않으면.”
“죄수 간의 서열이 정해져야 하는 필요성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거군.”
“눈치 빠른데? 신고식 때 신입이 방장을 꺾어서 그가 바로 방장이 되는 경우도 있어.”
그렇군.
여러 개의 함성과 비명이 섞여서 들려오다가 곧 차카의 웃음소리만이 남았다.
“이게 끝이냐! 크하하하.”
눈치로 봐선 녀석이 13번 방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휘어잡은 모양이다.
나는 눈앞의 7번 방 앞에 섰다.
코제트는 내 어깨를 툭 치며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공교롭다. 7번 방이라니. 오빠에게 잘 어울릴 것 같으면서도…… 하필 7번 방에 배정받아서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고.”
“왜? 여기가 어떤 곳인데?”
그러자 코제트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섰다. 이런 순간일 때마다 나는 내가 게임 캐릭터의 몸속에 들어왔지만, 결코 게임 속으로 들어온 것은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뭔가를 알려주고 싶지만 그건 자연스레 알게 될 테니 지금은 행운만을 빈다’라는 저런 복잡 미묘한 표정을 어떤 프로그램이 구현할 수 있겠는가.
“힘내. 우리랑 놀아줘야 하니까, 부디 금방 죽지 말아줘.”
*
[밤이 되었습니다. 죄수들은 이제 자신의 수감방 바깥을 통행할 수 없습니다.]
지구에서 살던 시절.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는 이야기는 꽤 많았던 거로 기억한다.
그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언제나 흉악범들이 들어선 감방 안에 들어섰을 때 여러 죄수에게 둘러싸여 압박당하곤 했다.
꿇으라는 둥, 발을 핥으라는 둥, 어깨를 주무르라는 둥 기선제압으로 고생하곤 했지.
나는 그런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고난을 겪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기선제압이 있어야 한다면 그 출사표는 이쪽에서 던져주마.
그래서 나는 7번 방의 철문이 등 뒤에서 쾅! 닫혔을 때 이렇게 외친 것이다.
“이곳의 방장은 내 앞으로 텨 나와라! 만전불패의 용사 슈바인 스트링거가 상대해 주겠드아!”
그런데 내가 기대했던 광경은 눈에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온몸에 문신을 한 방장도,
그런 방장 옆에서 간신처럼 붙어 나를 노려보는 2인자도,
드디어 먹이사슬의 밑바닥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며 비열하게 웃는 막내도 없었다.
‘뭐지, 얘네…….’
다만 네 명의 죄수들이 단정하게 이불이 접힌 침대 위에서 눈만 끔뻑거리며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내 선전포고는 금세 데시벨이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방장은…… 튀어나오라니까?”
내게 먼저 다가온 녀석은 키가 1미터가 조금 안 돼 보이는 두더지였다. 이렇게 설명하면 믿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이족보행을 하는 두더지였다. 보드라워 보이는 검은 털에 앙증맞은 분홍색 코.
“반가워, 슈바인. 네 침대는 이쪽이야. 물어볼 게 있으면 내가 알려줄게. 나는 뚠이라고 해.”
“옳다, 뚠! 네 녀석이 방장이구나! 결투를 원한다면…….”
“응? 아니. 방장은 오늘 죽었는데.”
죽었다고? 7번 방의 방장이?
그것도 하필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