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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176화 (176/183)

공작이 회귀함 176화

지축을 뒤흔들던 병사들의 함성이 서서히 멎어가기 시작했다.

서문으로 이동하던 발타자르는 남문에서 조반니가 아이린을 내세우며 겁박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의 얼굴이 와락 찌푸려진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발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그 광경을 두 눈에 담기만 할 뿐이었다.

“조반니 메디치…….”

이름 한 글자, 한 글자를 씹어먹듯 읊조렸다.

지금 당장 아이린에게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그래서야 그녀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었다.

다급해진 조반니가 아이린에게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으니까.

따라서 기존의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이 옳았다.

발타자르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가까워지기 시작한 서문을 바라보았다.

북문과 남문으로 병력을 집중시킨 탓인지 이곳저곳에서 틈이 보였다. 경계가 느슨해진 지금이 기회였다.

꾸욱-

걸쳐 입은 로브의 후드로 얼굴을 가린 발타자르는 재빠르게 땅을 박차고 수비의 공백 부근을 향해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성벽 위로 치달은 발타자르는 성벽을 발판 삼아 재차 뛰어오르며 성벽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 일련의 과정이 벌어지는 것에는 정말 눈 한 번 깜빡할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발타자르가 제도에 침입했음에도 성벽 위의 수비병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발타자르가 워낙 날래게 움직인 것도 있지만 그가 걸친 로브에 인식 장애 마법이 새겨져 있던 탓이었다.

그렇게 제도에 잠입한 발타자르는 곧장 골목길 사이로 스며들었다.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골목길이지만 발타자르는 익숙하다는 듯이 이리저리 방향을 틀어가며 이동했다.

드문드문 골목길 너머로 거리의 모습이 보였다.

전운을 감지한 탓인지 거리는 무척이나 한산했다.

무심한 눈길로 그것들을 스쳐 지나가던 발타자르의 귓가에 문득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발타자르의 발목을 붙잡았다.

시간적 여유가 충분했기에 잠시 걸음을 멈춘 발타자르는 벽에 등을 기대며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보다 선명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그거 들었어요? 글쎄 발타자르 공작 각하께서 반역을 일으키셨대요.”

“정말요?”

한 아낙네의 말에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자 말을 꺼낸 아낙네는 시선을 즐기는 듯한 표정으로 한껏 으스대더니 괜히 한 번 주변을 둘러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제 큰아들이 수비대의 조장으로 일하고 있는 건 다들 알고 있죠?”

중요한 이야기를 꺼낼 것처럼 분위기를 잡더니 결국 꺼낸 이야기가 제 아들 자랑이자 주변 사람들이 흥미가 사라졌다는 듯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분위기를 눈치챈 아낙네가 괜히 헛기침을 했다.

“흠흠. 그 아들이 저만 알라고 해준 말인데요. 발타자르 공작 각하가 황제 폐하의 자리를 노리고 군사를 끌고 왔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제도의 성문이 통제되고 병사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도 다 그것 때문이래요.”

“어머. 어머. 그게 정말이에요? 발타자르 공작 각하께서 대체 왜 그러시는 걸까요? 제국을 위해 가장 노력하시는 분이 바로 그분이시잖아요.”

한 아가씨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묻자 아낙네가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으로 답했다.

“그거야 뻔한 것 아니겠어요? 지금 제국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이 발타자르 공작 각하이니 이참에 황제 폐하를 밀어내고 황제가 되려는 거겠죠. 권력이라는 게 다 그렇잖아요. 손에 쥐고 있으면 더 큰 게 가지고 싶고. 뭐 그런 거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정보 확실한 거예요?”

아가씨가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말하자 아낙네가 코웃음을 쳤다.

“그럼 공작 각하의 군대가 제도를 포위하고 있는 것은 뭘로 설명할 건데요?”

“그건…….”

아가씨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듯 말꼬리를 흐렸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조반니가 레오노플을 황궁을 점령하고 제도를 손아귀에 넣은 것은 일반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정보였으니 현재 발타자르가 군을 이끌고 제도를 포위한 것이 황위를 노리기 위한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대화는 제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대화를 나누는 이들은 그 누구도 의심하지 못했다.

소문을 퍼뜨린 것이 바로 조반니라는 것을.

* * *

중요한 이야기는 다 들은 것 같자 발타자르는 재차 발걸음을 움직였다.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며 발타자르는 생각했다.

‘조반니가 민심을 흔들고 있다’라고.

이러한 짓을 벌이는 이유는 뻔했다.

민심이 발타자르에게서 등을 돌리게 만든 후 자신의 행동들을 모두 정당화시키려는 것이 분명했다.

‘욕심이 많구나. 조반니.’

조반니의 꿍꿍이를 훤히 꿰뚫어 본 발타자르가 조소했다.

마왕과 손을 잡고 이종족들을 끌어들였다.

거기에 대해 민심을 자신의 편으로 돌리는 작업까지 진행하고 있으니 일이 잘 풀린다면 조반니가 제국 최고의 권력자로 떠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린의 신병만 확보하면 다 부질없는 짓이 될 것이었다.

아이린을 구출하는 그 순간.

발타자르의 군대는 일제히 제도의 성벽을 넘을 것이고 바싸고가 돕는다 한들 그것을 막지는 못할 테니까.

‘덕분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으니 제국의 역사에 이름 하나 남기지 못하게 지워주마.’

발타자르의 눈동자가 서늘한 빛을 띠었다.

아이린을 인질로 잡은 것은 결코 용서하지 못할 일이지만 그 덕분에 바알을 쓰러뜨린 이후의 행보에 대해 확실한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니 그에 대한 보답으로 그의 존재 자체를 역사에서 지워줄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린을 구출하는 것이 우선이겠지.’

* * *

한참을 걸어간 끝에 발타자르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건장한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은 골목길.

그리고 그 끝에 보이는 자그마한 문.

바로 저곳이 발타자르의 목적지였다.

[망자의 요람]

발타자르는 문 위에 내걸린 명패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이곳은 한때 제국 최고의 정보단체로 불리던 집단의 은신처였다.

신시아가 망자의 요람을 합병한 이후에는 별의 구도자의 안가安家로 사용되고 있었다.

쿵- 쿵-

마나를 휘감은 주먹으로 가볍게 문을 두드리자 마나에 반응하며 문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 균열을 향해 손을 내뻗자 손이 쑥- 하고 빨려 들어갔다.

문이 정상 작동하는 것을 확인한 발타자르는 망설임 없이 균열 안으로 몸을 움직였다.

순식간에 주변 풍경이 변화하더니 이내 바와 테이블들이 비치된 주점의 모습이 두 눈 가득 들어왔다.

테이블 위에는 서류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는데 주점 안의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발타자르에게 한 여인이 다가왔다.

“안내하겠습니다.”

마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말을 걸어온 여인은 발타자르를 어디론가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뒤따라간 끝에 도착한 곳은 신시아의 집무실이었다.

“오셨어요?”

바깥에서와 마찬가지로 업무를 보고 있던 신시아가 보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곤 발타자르에게로 다가왔다.

“앉으세요. 소란이 끝날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까 그동안은 여기서 쉬고 계세요.”

그 말에 발타자르가 그녀를 응시하며 물었다.

“눈치채고 있었나?”

“그럼요. 아저씨가 사그레모 백작에게 밀서를 보낸 순간 직감했죠. 아. 아저씨가 소란을 일으켜서 제도에 잠입하려 하는구나 하고 말이에요. 그래서 저도 한 손 거들었죠. 참고로 북쪽은 제 작품이에요.”

말하며 신시아가 발타자르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마치 부모님께 칭찬을 바라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군. 고맙네.”

발타자르가 말하자 신시아가 배시시 웃으며 차를 내왔다.

“아저씨 계획대로 소란이 끝나면 조반니는 안심하겠죠. 발타자르 공작이 나름대로 수를 썼지만, 성공적으로 막아냈다고 말이에요. 거기다 이번 소란으로 요제프 프리드리히에게서 주도권을 뺏어 오기까지 했으니 한껏 마음이 풀어지겠죠. 아저씨는 그 틈을 노리고 린 아가씨를 구출할 생각이구요. 맞죠?”

신시아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신시아가 품에서 서찰을 하나 꺼내어 테이블 위에 펼쳤다.

“여긴 린 아가씨가 감금된 저택의 위치예요. 여기 적혀 있다시피 일반 병사가 아니라 기사들이 삼중으로 경비를 서고 있고 저택의 중심부에는 로열 랭크 급의 기사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죠. 심지어 저택의 인근에는 바싸고의 거처가 있으니 소란이 일어나면 즉시 바싸고가 찾아올 거예요.”

말하며, 신시아는 지도에서 세 지점을 손가락으로 찍었다.

“그래서 아저씨가 움직이는 시간에 맞춰 저희 측에서도 소란을 일으킬 거에요.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서요.”

그녀가 가리키는 지점은 저택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였다.

또한, 하나같이 조반니의 주요 가신들이 머무는 저택들이었다.

“아닐세. 그 계획은 취소하게.”

“…왜요?”

신시아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발타자르를 바라보았다.

이에 발타자르가 차의 향을 음미하며 말했다.

“다시 소란을 일으키면 조반니가 내 의도를 눈치챌 수도 있을 걸세. 그게 아니더라도 저택의 경비를 강화할 것이 분명하니 더 이상의 소란은 불필요하네.”

뭐든지 과하면 모자람만 못했다.

지금까지 벌어진 소란이야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지만 추가로 또다시 소란을 일으킨다면, 그것도 조반니의 저택 인근에서 소란이 일어난다면 그 누구라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지금이 딱 적당했다.

“내가 린을 구출하면 바로 신호를 보내겠네. 그때 자네는 거리 곳곳에 불을 지르고 황제 폐하를 구출할 수 있도록 준비하게.”

발타자르의 말에 신시아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어진 뒷말에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리할 필요는 없네. 안 되겠다 싶으면 바로 포기해도 좋네.”

여차하면 황제의 목숨을 포기하겠다는 뜻이었으니까.

“이참에 황제를 교체할 생각이세요? 누구인가요? 5황자? 7황자? 그것도 아니면 칼 프란츠 대공?”

신시아가 짐작 가는 이들을 거론하며 물었다.

그러나 발타자르는 대답 대신 차를 마시기만 할 뿐이었다.

대답할 생각이 없다는 듯한 그 모습에 신시아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차라리 아저씨가 황위에 오르는 것은 어떠세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발타자르는 고개를 내저었다.

황위에 욕심이 있었다면 진작에 올랐을 것이었다.

그럴 기회는 몇 번이고 있었으니까.

“생각 없네.”

“왜요? 다른 사람들은 다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게 황제인데요. 솔직히 아저씨 가신들은 다들 아저씨가 황위에 오르기를 내심 바라고 있을걸요? 지금도 봐요. 아저씨가 이인자의 자리를 고집하니까 별 시답잖은 인간들이 뒤통수를 치고 난리를 치고 있잖아요. 아저씨가 황위에 오르지 않고 계속 이인자의 자리를 고집하면 이런 일은 몇 번이고 계속 일어날 거예요.”

신시아의 말에 발타자르가 들고 있던 찻잔을 탁- 하고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그러자 신시아가 몸을 흠칫거리며 입을 꾹 다물었다.

“그것에 대해선 이미 생각해둔 것이 있네.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조치할 생각이니 앞으로 황위에 관한 이야기는 다시는 하지 않도록 하게.”

발타자르의 경고에 신시아는 더는 황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저 아쉬움이 담긴 눈길로 발타자르를 응시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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