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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173화 (173/183)

공작이 회귀함 173화

레오노플의 치세하에 권력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제도 대신들과 네 개의 공작가, 그리고 칼 프란츠 대공 가를 짓누르고 새로운 권력자로 떠오른 발타자르가 제국 최고의 실력자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막강한 힘과 권력을 손에 넣었음에도 칼 프란츠 대공 가를 비롯한 두 공작가를 완전히 몰아내지는 못했다.

수백 년 동안 제국의 실력자로 군림해온 그들은 제국 정계 곳곳에 그 영향력이 뿌리 뻗고 있었고 따라서 그들을 대대적으로 몰아낸다면 적잖은 반발과 혼란이 벌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여 발타자르는 빌 헬름 공작 가의 몰락 이후 이전세대의 권력자들을 몰아내기보다는 세력을 축소시키고 끌어안는 방향으로 노선을 선회하였다.

더 이상의 시간 낭비를 원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제국은 발타자르의 주도 아래 하나로 단결하여 다가올 위협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마신의 강림에만 집중한 탓일까?

발타자르는 자신이 죽는 그 순간까지 손에 쥔 권력을 놓지 않으려 하는 권력자의 습성을 너무 관과 해 버렸다.

비록 지금은 발타자르의 위세에 짓눌려 숨죽이며 순순히 그의 말을 따르고 있지만, 조금의 틈만 보인다면 당장 반기를 들어 올릴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후방을 맡겼다면 최소한 그들이 경거망동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해 두었어야 함이 옳았지만 앞서 언급했듯 마신의 강림에 집중한 까닭인지 최소한의 대비만을 한 채 전선으로 떠나 버렸다.

그리고 그 실수로 인해 조반니 메디치가 주도한 반역의 불길이 제도를 집어삼켜 버렸다.

* * *

발타자르는 가만히 제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검게 눌어붙은 핏자국과 반파된 갑옷은 사내가 격전을 치르고 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죽여주십시오.”

사내, 아그라베인은 발타자르에게 자신의 죄를 고했다.

“속하가 무능하여 공녀님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고개 숙인 아그라베인의 이마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며 땅을 붉게 적셨다. 상처를 치료할 겨를도 없이 곧장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 분명했다.

아그라베인을 말없이 응시하던 발타자르가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그래. 폐하가 유폐되고 제도는 조반니의 수중에 떨어졌다 이 말인가?”

“그렇습니다.”

아그라베인이 침중한 목소리로 답했다.

“칼 프란츠 대공은? 그가 이 상황을 마냥 방관하지만은 않았을 터인데?”

발타자르로부터 황제의 자리를 약속받은 그였다. 따라서 조반니의 반역을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 저지할 이가 바로 그였다.

아무렴.

가만히 있기만 하면 제국의 권좌가 제 발로 찾아오는 상황이니만큼 조반니의 반역을 마냥 두고 볼 리가 없었다.

“각하의 짐작대로 대공 전하께옵선 역모가 벌어질 것을 미리 알아차리시고 황제 폐하와 함께 사전에 역모를 차단하려 하셨습니다만…….”

아그라베인은 차마 뒷말을 모두 끝맺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어떤 말을 하려 했는지는 충분히 짐작되었다.

발타자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사전에 조반니의 음모를 알아차렸음에도 그것을 막지 못했다는 것은 어떠한 변수가 작용했음을 뜻했다. 그리고 현재 상황에서 가장 유력한 변수는 조반니가 바싸고와 손을 잡았을 경우였다.

“제도에 마왕이 잠입한 것인가?”

발타자르의 물음에 아그라베인이 홱-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것을 어찌…….”

“그 정도 패가 아니고서야 조반니가 쉬이 역모를 작당하지는 못했을 테니까.”

비록 발타자르가 대부분의 고위 전력을 이끌고 왔다고는 하지만 일부분은 제도에 잔류시켜두었다. 이는 바싸고를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마스터 하나와 아크 메이지 둘.

이들은 모두 레오노플과 칼 프란츠의 통제하에 있었다.

이만한 전력을 쓰러뜨릴 만한 이는 마왕 바싸고 뿐이었으니 손쉬운 추론이었다.

“아무리 칼 프란츠라도 마왕과 손을 잡는 것까지는 예상했어도 마왕이 전선을 이탈하고 아군의 눈을 피해 제도에 잠입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겠지. 확실히 속수무책으로 당할 만해.”

전선에 있었음에도 제도에서 벌어진 일을 훤히 꿰고 있는 발타자르의 모습에 아그라베인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역시 각하시다.’

발타자르를 향한 아그라베인의 신앙심이 더욱 굳건해지는 가운데 발타자르의 찌푸려진 미간은 펴질 줄 몰랐다.

사실 제도가 바싸고에 의해 함락되던, 조반니가 반역을 일으켰던 이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빼앗긴 것은 되찾으면 될 뿐인 문제였다.

바알의 변덕으로 병력을 온전할 수 있었기에 현재 발타자르가 이끄는 군세라면 충분히 제도를 탈환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 레오노플이 사망할 수도 있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그를 살리고자 저들의 뜻대로 움직여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럼에도 발타자르의 미간이 펴지지 않는 이유.

그것은 아이린이 인질로 잡혔다는 것이었다.

비비안과 넵튠을 비롯해 여러 안전장치를 해두었음에도 그녀가 인질로 잡혔다는 것은 역모를 꾀한 조반니가 아이린을 인질로 잡는 것을 가장 우선시했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아이린을 인질로 잡은 이유는 뻔했다.

발타자르가 섣불리 제도 탈환을 시도하지 못하게 하려는 수작이었다.

‘시간을 끌 생각인가 본데…….’

남부는 바싸고의 수중에 떨어졌고 동부와 중앙은 반역자들의 통제하에 있으니 북부만으로 대군을 유지 시켜야 하는데 북부의 식량 생산량만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었다.

조반니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것일 것이었다.

장기전을 유도하여 발타자르가 이끄는 군세가 붕괴하는 것 말이다.

발타자르와의 전면전을 일으킬 경우 승산이 낮다고 판단하여 벌인 계획이겠지만 조반니가 예상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

현재 북부에는 서부의 대기근을 대비하여 대량의 식량을 비축해 둔 상태였다. 따라서 군을 유지하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똑- 똑-

발타자르가 검지로 검집을 두드리며 고민했다.

제도 탈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린을 어떻게 제도에서 안전히 탈출시킬 수 있는지였다.

이 문제가 선결되지 않는 한 제도 탈환은 시도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해결책이 쉬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부의 조력을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인 데다 마왕과 손을 잡으면서까지 일을 벌인 것으로 보아 단단히 작정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니 설득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정 방법이 없다면 발타자르가 직접 제도에 잠입하는 방법도 있었다.

다만 이것에는 한가지 문제가 있는데, 구출 도중에 린이 크게 다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었다.

‘이건 제도에 도착한 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겠지.’

생각을 정리한 발타자르가 가웨인을 불렀다.

“가웨인.”

“예. 장군.”

“로키와 에리스에게 일러 기병대와 함께 제도 인근의 방어선으로 향하라 전하게.”

지금쯤 방어선 일대가 혼란에 빠졌을 것이었다.

그리고 바싸고의 군대는 그 틈을 놓치지 않을 테지.

혼란에 빠진 제국군이 바싸고의 군대에게 집어 삼켜지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였다. 그러니 서둘러 사람을 보내 제국군을 추스르고 방어선을 재구축해야만 했다.

“그리고 전군에 출진령을 내리게.”

“제도로 향하시려는 겁니까?”

“그렇네.”

발타자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가웨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의 신병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저들을 자극하는 행동은 최대한 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웨인의 말이 옳았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저들이 원하는 바였다.

발타자르는 결코 저들의 뜻대로 휘둘려줄 생각이 없었다.

따라서 제도를 포위하고 저들에게 알려줄 생각이었다.

자신들이 누구에게 칼날을 들이밀었는지 말이다.

“저들도 린이 자신들의 목숨줄인 것을 모르지는 않을 테니 쉬이 손대지는 못할 걸세.”

반드시 그래야 할 것이다.

만약 아이의 몸에 작은 상처라도 났다간.

제도를 불살라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놈들을 쓸어버릴 테니까.

* * *

“조반니 공! 이게 무슨 짓이오!”

조반니를 찾아온 요제프는 다짜고짜 성을 내었다.

마침 티타임을 즐기고 있던 조반니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엇 때문에 그리 성이 나셨습니까?”

영문을 모르겠다는 그 물음에 요제프가 쿵-쿵- 거리며 요제프를 향해 다가갔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이오? 마왕을 끌어들이다니요. 대체 무슨 생각인 것이오!”

“아아…… 그것 때문이었습니까?”

고작 그거 때문에 이리 언성을 높였냐는 투에 요제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내게 한마디 언질도 주지 않고 멋대로 마왕을 끌어들인 일을 잘했다고 말하는 것이오?”

“잘했지요. 몇 번을 생각해도 현명한 판단이었습니다.”

“하.”

요제프가 답답하다는 듯이 제 가슴을 두드렸다.

그것을 바라보던 조반니가 피식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솔직히 짐작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잖습니까.”

“……뭐?”

“툭 터놓고 말해서 우리의 힘만으로는 이번 거사를 성공시키기 힘들 것이란 걸 정녕 몰랐다고 하지는 않으시겠지요?”

“…….”

요제프는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었으니까.

칼 프란츠가 자신들과 함께하는 것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데도 시종일관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이는 조반니의 행동에서 혹시 하고 예상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정말로 마왕과 손을 잡을 줄은 몰랐다.

마왕이 무엇이던가.

제국의 주적이 아니던가.

그 발타자르조차 바르바토스와의 동맹을 대외적으론 비밀리에 부칠 정도로 마왕에 대한 제국민의 적개심은 드높았다.

한데 자신들이 마왕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제국의 민심은 자신들에게 등을 돌릴 것이 뻔했다.

그리고 민심이 등을 돌린 위정자들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요제프로서는 현재 상황이 한없이 불안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민심이…….”

“민심? 그런 것은 간단한 선동만으로도 충분히 해결 가능한 문제입니다.”

조반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요제프에게 다가섰다.

그러곤 그의 어깨를 두어 번 토닥이며 말했다.

“우리 결과만 놓고 봅시다. 결론적으로 봤을 때 아주 옳은 선택이었지 않습니까. 요제프 공도 보지 않았습니까. 대공이 발타자르 공작의 편에 선 것을. 마왕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번 거사가 실패로 돌아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발타자르 공작에 의해 우리 목이 달아났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거사를 벌이기 직전에 칼 프란츠 대공과 황제의 병사들이 자신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움직였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만약 바싸고가 제때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번 거사는 실패로 돌아갔을 것이었다.

이렇듯 결과만 놓고 보면 옳은 선택임이 분명했지만, 조반니가 한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통제할 수 없는 적을 끌어들이는 것은 현명한 것이 아닌 우둔한 것이라는 것을.

“감당하실 수 있겠소?”

요제프가 침중한 어조로 묻자 조반니가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의 두 눈동자는 야망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뭔가 착각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아직 거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쯤 상황을 파악한 발타자르 공작이 군을 이끌고 제도로 진격하고 있을 겁니다. 그를 상대하기 위해서라도 마왕의 협조는 필수입니다. 감당하는 것은 그 후의 문제지요.”

요제프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진창 속에 몸이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 발을 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기엔 너무 먼 길을 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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