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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172화 (172/183)

공작이 회귀함 172화

최소 수십만의 희생자가 발생할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전투는 허무하리만치 손쉽게 끝이 났다.

제2관문에서 농성하던 마왕들은 발타자르가 전투에 참전함과 동시에 그 목이 달아났으며, 우두머리를 잃은 마왕 군은 오합지졸이 되어 몰려드는 연합군의 손에 목숨을 잃거나 도망쳤다.

이 모든 것이 바알이 전장을 이탈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로써 가장 우려하던 마신의 강림은 막을 수 있게 되었지만…….’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져 버렸다.

마신의 강림을 주도하던 아가레스와의 연합이라니.

회귀 전이었다면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발타자르에겐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답답하군.’

마신의 강림을 저지하기 위한 준비를 할 당시에는 발타자르가 일을 주도했다면 최근 벌어진 사건들은 발타자르가 상황에 이끌려 다니는 느낌이 강했다.

‘상황을 뒤바꿀 필요가 있어.’

계속 이대로 바알에게 주도권을 빼앗길 수는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든 빼앗긴 주도권을 되찾아 와야만 했다.

그래야만 그를 이길 수 있었다.

“장군. 출정 준비가 끝났습니다.”

사색에 잠겨 있는 발타자르에게 붉은 피를 흠뻑 뒤집어쓴 가웨인이 다가와 말했다.

“장군. 괜찮으십니까? 장군?”

답이 없는 발타자르의 모습에 가웨인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재차 불렀지만 어딘가를 빤히 응시하고 있을 뿐 여전히 답은 없었다.

“온다.”

“예? 뭐가 온다는…….”

가웨인이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눈보라를 뚫고 까마귀 한 마리가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까아악- 까아악-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성벽 위에 내려앉은 까마귀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새까만 눈동자로 발타자르를 빤히 응시했다.

순간 까마귀에게서 미약한 마기가 흘러나왔다. 그것을 감지한 발타자르가 재빠르게 손을 뻗어 까마귀의 목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까마귀는 당황하지 않고 기분 나쁜 울음소리를 몇 번 토해내더니 축- 하고 늘어졌다.

그것을 발타자르가 툭- 하고 던져버리자 땅바닥에 늘어져 몸을 간헐적으로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우드득-

까마귀의 목이 기이한 각도로 꺾였다.

목만이 아니었다.

까마귀의 두 날개 또한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부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참을 이리저리 뒤틀리던 몸은 이내 검은 깃털로 뒤덮인 스켈레톤으로 변했다.

텅 빈 두 눈에서 푸른 불길이 치솟았다.

[이렇게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것은 처음이로군.]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였지만 발타자르는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아가레스.”

불사왕, 그가 분명했다.

“무슨 목적이지?”

[그리 경계할 것 없네. 자네에게 제안할 것이 있어 찾아온 것이니.]

말하며 성벽에 걸터앉은 아가레스는 딱딱- 턱을 부딪치며 웃었다.

현 상황에서 아가레스가 발타자르에게 제안할 것은 뻔했다.

“휴전을 생각하고 있나?”

[그렇네. 정확히는 협정을 맺기 위해 찾아온 것이라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대만 사라지면 마신의 위협은 사실상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말이야.”

발타자르의 말에 아가레스가 웃음을 뚝- 그치고는 푸른 불길에 휩싸인 눈으로 발타자르를 빤히 응시했다.

[바알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 도움이 필요할 테니까.]

말하는 아가레스는 발타자르가 자신과 손을 잡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아 하는 눈치였다.

[자네의 강력한 동맹이었던 바르바토스는 바알의 손에 명을 달리했지. 그녀의 수하들이 제법 남아 있다고는 하나 바알과의 일전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은 자네가 잘 알고 있을 터.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지. 나와 손을 잡는 것. 아니 그런가?]

아가레스의 말대로였다.

사망한 바르바토스가 앞서 언급했듯이 바알과의 일전을 생각한다면 아가레스와 손을 잡는 것이 최선이었다.

마왕 중 유일하게 마신의 강림의식을 진행할 수 있는 마왕이기에 살려둔다면 큰 후환거리가 될 것이 분명하지만 충분히 그것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대비책 없이 손을 잡을 생각은 아니었다.

“좋네. 그대와 손을 잡지. 단, 조건이 하나 있네.”

[그게 무엇인가?]

“라이프 베슬 그대가 불사왕이라 불릴 수 있었던 생명의 근원을 내놓게.”

발타자르의 말에 아가레스의 몸에서 강렬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거절한다면?]

“그렇다면…….”

아가레스의 목에 검이 겨누어졌다.

“죽어야지.”

일체의 타협도 없다는 듯 단호한 눈빛에 아가레스가 이를 악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발타자르가 웃었다.

“살아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는 법이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 * *

북부에서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던 무렵.

제도에서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음모가 벌어지고 있었다.

조반니 메디치와 요제프 프리드리히의 주도 아래 귀족들을 포섭해 나가기 시작했다.

발타자르의 위세를 두려워한 탓인지 처음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던 귀족들은 칼 프란츠 또한 자신들과 뜻을 함께한다는 허언과 황실에 대한 충성심을 자극하는 언변에 설득되어 하나둘씩 가담하기 시작했다.

“조반니 공. 정말 이대로 공표할 생각이시오?”

“그렇습니다만.”

조반니의 대답에 요제프는 심각한 안색으로 두루마리를 흔들며 소리쳤다.

“발타자르 공작이 역모를 꾸미고 있다니! 누가 이런 허언을 믿겠소! 발타자르 공작은 제국의 영웅이오. 그런 이를 함부로 모함했다간 자칫 역풍이 불지도 모를 일이란 말이오.”

요제프의 흔들고 있는 두루마리.

거기에는 발타자르가 역모를 꾸미고 있으며 그것을 증명하는 조작된 정황들과 증거들이 빼곡히 나열되어 있었다.

“판을 뒤집으려면 그만한 패를 꺼내야 하니 어쩔 수 없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허황된…….”

차마 말을 끝맺지 못하고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긴 한숨을 내쉬자 그런 요제프의 어깨를 토닥이며 조반니가 말했다.

“모함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이지만, 그 모함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반박하는 수많은 증거와 노력이 필요한 법입니다. 그런데 그 모함에 타당한 증거가 있다면? 그것을 많은 이들이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모함이 아닌 진실로 둔갑하게 되는 법이지요.”

발타자르가 제도에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시도조차 하지 못할 수작질이었지만 현재 발타자르는 북부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 사이 조반니가 준비한 모함은 빠르게 제국 전역으로 퍼져나갈 것이었다.

뒤늦게 발타자르가 이것을 알아차리고 조치하려고 한다 한들 그때는 이미 모함이 진실로 둔갑한 후일 터.

“백성들은 어리석습니다. 허황된 소문이라 할지라도 여러 사람이 그것을 말한다면 그것이 진실인 줄 알고 착각해 버리지요. 제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점입니다. 민심이 그에게서 등을 돌린 사이 제도를 점거한다면. 발타자르는 쉬이 제도를 탈환할 시도를 벌이지 못할 것입니다.”

물론 이것에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했다.

그것은 바로 제국의 황제, 레오노플의 협력이었다.

“하지만 황제 폐하께서 이를 묵인하시겠소? 황제 폐하는 발타자르 공작의 강력한 지지자요. 폐하께서는 이 일을 결코, 묵과하시지 않을 것이오.”

“그거야 폐하께옵서 저희에게 협조할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만들면 될 일이지요.”

자신만만 해하는 조반니를 바라보며 요제프가 걱정스레 물었다.

“다 좋다 이겁니다. 하지만 발타자르 공작이 미친 척하고 군을 이끌고 제도 탈환을 시도한다면요? 그땐 어찌 대처하시려고 그러시오?”

요제프의 물음에 조반니가 피식 웃었다.

민심이 등을 돌리고, 황제마저 그에게서 등을 돌린 상황에서 발타자르가 제도 탈환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제 발로 파멸의 길을 걷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비록 북부 원정을 통해 대군이 투입되었고 발타자르가 그들을 지휘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원정이 끝날 무렵에는 적잖은 피해를 입었을 것입니다. 그런 병력으로 제도를 탈환하기는 힘들 것이고 설령 병력이 온전하다고 해도 북부의 생산량만으로는 그만한 병력을 그리 오래 유지할 수는 없을 테지요. 따라서 저희는 이곳 제도에서 시간만 끌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단순히 예측만으로 일을 진행하려 했다면 애당초 이만한 일을 벌이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지금쯤이면 제도 인근에 도착했겠군.’

조반니는 제도를 향해 진군 중인 바싸고를 떠올리며 작게 미소 지었다.

요제프에게는 알리지 않았지만, 조반니는 바싸고와 밀약을 맺은 상태였다. 발타자르를 견제하기 위해 바싸고와 한시적인 동맹을 맺은 것이었다.

다른 이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힐난하겠지만 상관없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되는 순간은 이미 조반니가 제도를 장악하고 제국의 실권을 장악한 후일 테니까.

‘그날이 기다려지는군.’

이렇듯 조반니는 여러 가지 변수들을 상정하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치밀하게 준비해 두었다. 그렇기에 이리 자신할 수 있는 것이었다.

“판은 제가 다 깔아두겠습니다. 요제프 공께서는 제 계획에 따라줄 것인지 아닌지만 결정해 주시면 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중도 포기하시겠습니까?”

조반니의 자신만만한 모습에 요제프는 불현듯 불안감이 엄습해 왔지만 이제 와 발을 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먼 길을 걸어왔으므로.

* * *

‘이것이 라이프 베슬. 죽은 자도 되살린다는 생명의 근원인가.’

발타자르는 손에 쥔 라이프 베슬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붉은빛을 띠는 작은 보석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딱히 특별한 점이나 이렇다 할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기에 이것이 어째서 생명의 근원이라 불리는지 의아하기만 했다.

문득 이것을 내어주던 아가레스의 얼굴이 떠오른 발타자르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몸을 부르르 떨며 라이프 베슬을 끝까지 손에서 놓치지 않으려던 아가레스의 모습이란.

‘잘 보관하고 있어야겠어.’

아가레스의 목줄인 것은 둘째 치고서라도 죽은 자를 되살린다는 점은 바알과의 일전에서 큰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컸다.

한참을 그렇게 라이프 베슬을 살펴보던 발타자르는 이내 그것을 품 안에 갈무리하고는 성벽 아래를 바라보았다.

아가레스가 소환한 망자의 군세와 전투를 벌이는 용사들의 모습이 두 눈 가득 들어왔다.

[고작 이 정도가 끝이더냐! 여신의 종들이여! 좀 더 분발해 보아라!]

끊임없이 망자의 군세를 소환하며, 동시에 각종 저주마법을 퍼붓는 아가레스는 바르바토스와는 확연히 다른 전투방식을 선보이고 있었다.

실전을 통해 빠르게 강해지는 용사들의 특성상 아가레스는 더할 나위 없는 상대였다.

이대로 실전을 반복하며 성장한다면 빠른 시일 내로 강력한 전력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전력은 바알과의 일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기다려라. 바알. 반드시 네놈의 목을 따 주마.’

자신을 조롱하던 바알의 모습을 떠올리며 발타자르가 복수를 다짐하던 그때.

가웨인이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왔다.

“장군! 큰일 났습니다!”

본능적으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한 순간.

가웨인의 입에서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조반니 메디치가 제도를 장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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