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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170화 (170/183)

공작이 회귀함 170화

전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적군, 아군 가릴 것 없이 한데 엉켜 필사적으로 싸웠다.

종전이 코앞임에도 몸을 사리기는커녕 마지막 불씨를 태우려는 듯 격렬하게 맞붙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바르바토스가 이끄는 선봉이었다.

본 모습으로 현신하여 날뛰는 바르바토스와 그녀의 세 맹장이 선봉에 서서 파죽지세로 밀고 나갔다.

그 살벌한 기세에 적들의 전열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바르바토스 진영의 활약으로 승기가 조금씩 연합군 측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에 맞서 상위 서열의 마족들이 참전을 개시하며 전황을 뒤집고자 하였으나 등장하는 족족 바르바토스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다.

「나와라! 바알! 어디 있느냐!」

일격에 최상위 서열 마족 다섯을 베어버린 바르바토스가 포효했다.

그녀의 외침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그러나 바알은 여전히 진영의 중심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도발하는 바르바토스를 바라보며 조롱의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

“무식한 년. 변한 게 하나도 없어.”

초반의 승기를 잡았다고 기세등등 해하는 꼴이라니.

바알이 손을 내뻗으며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 그의 손끝으로 검은 연기가 물줄기처럼 쏟아져 내리더니 빠른 속도로 전장 일대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이변이 발생했다.

사망했던 이들이 적군, 아군 가리지 않고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눈동자에서 붉은빛을 내뿜고 있다는 점이었다.

크와아아악─

바르바토스 진영의 후미에 대규모 언데드 군단이 등장하자 바르바토스 진영은 순식간에 적군에 의해 포위된 형국이 되어버렸다.

그 광경을 목격한 발타자르가 트리스탄을 향해 내뻗은 손을 아래로 내리며 신호를 보냈다.

트리스탄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활짝 웃었다.

전투를 앞둔 이 답지 않은 해맑은 미소였다.

“우리 차례가 왔다! 가자!”

다이어 울프를 탄 트리스탄이 연합군 진영을 벗어나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 연합군의 기병들이 일제히 말을 몰아 돌격했다.

횡대로 길게 늘어선 기병들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순식간에 언데드 무리와 기병들의 거리가 좁혀지기 시작했다.

[차징 준비이이─!!]

충돌이 임박해 오자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 지휘관들이 일제히 한목소리로 소리쳤다.

수만에 달하는 기병들이 언데드 무리를 향해 일제히 창을 겨누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장면이 연출되었다.

이윽고 충돌이 시작되자.

꽈과과광──!

언데드 무리가 일거에 무너져 내렸다.

* * *

“신났군요.”

언데드 무리를 휩쓰는 트리스탄을 지켜보던 갤러해드가 짧게 평을 내렸다.

그의 말대로였다.

트리스탄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뛰고 있었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는 언데드들의 시체로 가득했다.

한차례 언데드 무리를 휩쓴 기마대는 크게 선회하며 양익으로 갈라졌는데 움직임으로 보아 적의 진영을 뚫고 선회하여 적의 후미를 급습할 생각인 듯했다.

이에 갤러해드는 아군 기마대가 온전히 제 임무에 집중할 수 보병 지휘관들에게 돌격 명령을 내렸다. 보병들로 하여금 적의 이목을 집중시키려는 의도였다.

“좀 더 상황을 지켜보시겠습니까?”

한차례 지시를 내린 갤러해드가 발타자르에게로 다가와 물었다.

그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말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전선을 응시했다.

후미에선 마법사들이 쉴 새 없이 마법을 퍼붓고 선두에선 바르바토스와 그녀의 수하들이 길을 열고 있었다.

또한, 전선의 양 끝에는 기병들이 쐐기 진형으로 적진을 돌파하며 적의 후미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무척이나 순조로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바알이 방관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참전한다면 전황은 순식간에 뒤집힐 가능성이 컸다.

아니, 분명 그리될 것이었다.

바알의 힘은 전장의 판도를 뒤바꿀 정도로 강력했으니까.

따라서 발타자르가 취할 행동은 하나였다.

“길을 열 준비를 하게.”

발타자르의 말에 갤러해드가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군타낙스 기사단! 정렬하라!”

지시가 떨어지자 군타낙스 기사단이 쐐기 진형을 갖추었다.

갤러해드는 말을 몰아 기사단의 선두에 자리를 잡곤 등에 멘 대검을 뽑아 들었다.

“뒤처지는 녀석은 없을 거라고 믿겠다.”

대검에서 푸른 오러의 불길이 치솟았다.

동시에 군타낙스 기사단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자 갤러해드의 대검에서 시작된 오러의 바람이 순식간에 군타낙스 기사단을 집어삼켰다.

“돌진!”

갤러해드의 외침을 시작으로 군타낙스 기사단이 일제히 돌진을 시작했다. 오러의 폭풍을 휘감은 그들의 앞을 막아설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 *

외눈의 거인 큅클로스의 어깨 위에 걸터앉아 전황을 지켜보던 바알은 눈을 빛냈다. 자신의 수하들을 도살하는 바르바토스 진영의 너머로 오러의 파편이 흩날리는 광경이 보였다.

“드디어 오는군.”

바알의 입꼬리가 양옆으로 길게 찢어졌다.

톱의 날과 흡사한 그의 이빨이 딱- 딱- 소리를 내며 맞물렸다.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는 그들의 앞을 막아설 수 있는 존재는 바알의 휘하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럴 만한 힘을 가진 자들은 다른 전선에 투입되었거나 혹은 바알의 유희를 위해 광대놀음을 하다 죽어버렸으니까.

“호오? 저 무식한 년도 오는군.”

상황을 눈치챈 바르바토스가 발타자르에게 합류하는 광경이 목격되었다.

발타자르와 바르바토스.

둘의 협공은 모든 마왕들이 두려워할 만한 것이었지만 바알 만큼은 예외였다.

그는 희열에 찬 눈동자로 다가오는 적들을 응시했다.

군타낙스 기사단을 앞세운 발타자르와 바르바토스는 정확히 바알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그래도 너무 쉽게 오는 것은 아무래도 재미가 없지.”

바알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원형의 마법진 수십 개가 그려졌다.

“어디. 실력 좀 볼까?”

그가 딱- 하고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하늘을 뒤덮은 마법진에서 마기의 창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 * *

꽈과과광──

재앙은 전조도 없이 갑작스레 찾아왔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검은 창.

강력한 마기를 품은 그것은 적아를 구분하지 않고 전장을 휩쓸었다.

운이 좋아 피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그것은 정면으로 막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수천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것은 군타낙스 기사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과반수 이상이 전사하거나 전투 불능에 가까운 중상을 입으며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갤러해드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가 맡은 임무는 오롯이 적의 수장, 바알에게로 향하는 길을 만드는 것이었다.

꽈앙─ 꽈앙─

막아서는 대형 마수들을 거침없이 베어 넘기며 나아갔다.

놈들의 거대한 몸집은 아무런 장애도 되지 못했다.

갤러해드의 대검에 베이고, 오러의 폭풍에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그가 이끄는 군타낙스 기사단이 지나간 자리로 짙은 피 안개가 맴돌았다.

꽈앙─ 꽈앙─

멀쩡하던 땅이 갑작스레 터져 나갔다.

마른하늘에 벼락이 내리꽂히고 붉은 화염이 모든 것을 태워 버릴 기세로 넘실거렸다. 그에 따라 군타낙스 기사단의 숫자도 점점 줄어 들어갔다.

일백 명에 달하던 기사들은 이제 삼십이 채 남지 않았다.

오러의 폭풍 역시 처음의 기세는 오간데 없이 사라지고 미약한 산들바람이 되어 군타낙스 기사단의 곁을 맴돌았다.

[네놈들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그런 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외눈의 거인들이 앞을 막아섰다.

여태까지 쓰러뜨려 온 마물들과는 차원이 다른 기세를 내뿜고 있는 그들은 제 몸집만 한 몽둥이를 휘둘러왔다.

얼마 남지 않은 기사들로는 저 일격을 막아낼 수 없다고 판단한 갤러해드가 황급히 소리쳤다.

“산개하라!”

그의 지시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군타낙스 기사단이 넓게 퍼져 나갔다.

그들이 사라진 빈 공간에 외눈 거인들의 일격이 날아왔다.

꽈아앙─

거친 폭음과 함께 땅이 움푹 파였다.

그것만으로도 외눈 거인들이 휘두른 일격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각하. 송구스럽게도 저희가 안내할 수 있는 길은 여기까진 것 같습니다.”

갤러해드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어두웠다.

제 수하들을 잃은 것에 대한 슬픔이 아닌 주어진 임무를 온전히 완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수하들의 희생이 무의미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닐세. 수고했네.”

발타자르가 그런 갤러해드를 위로하듯 스쳐 지나가며 가볍게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곤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검에서 붉은 오러 블레이드가 치솟았다.

“지금부턴 내게 맡기게.”

막아서는 외눈의 거인들 너머에 미소짓는 바알이 있었다.

* * *

바알은 눈앞에서 붉은빛이 번쩍이자 본능적으로 두 팔을 교차하며 앞을 막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충격이 밀려왔다.

꽈아아앙─!

외눈 거인의 어깨 위에 앉아 있던 바알이 땅바닥을 굴렀다.

그가 자세를 잡으며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었다.

“이야. 인사가 너무 거친 거 아니야?”

말하며 바알이 힐끗- 자신이 방금 전까지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상반신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거인의 시체가 쓰러져 있었다.

두 팔이 저릿한 것이 아무래도 작정하고 전력을 다해 휘두른 일격 같았다.

“시간도 많은데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있는 거야?”

바알의 물음에 돌아온 것은 답변이 아닌 오러 블레이드를 두른 발타자르의 검이었다.

그의 목을 노리고 날아드는 일격을 간발의 차이로 피해낸 바알의 손을 내뻗었다.

파앙─

가볍게 내뻗은 바알의 주먹에 발타자르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동시에 바르바토스가 거대한 낫을 휘둘러 왔지만 바알은 손가락 하나로 가볍게 막아내었다.

“오랜만이지? 바알.”

바르바토스가 미소 짓자 바알 역시 그녀를 마주 보며 미소 지었다.

“고작 한다는 것이 인간의 손을 빌리는 것이냐? 바르바토스.”

바알의 비아냥거림에 바르바토스가 낫을 거두곤 어깨에 걸쳐 메며 말했다.

“무얼. 네놈의 목을 따기 위해서라면 누군들 손을 못 잡을까.”

“하하하. 네가 그래서 안 되는 것이다. 바르바토스.”

바알이 두 팔을 활짝 펼쳐 보이며 소리쳤다.

“마왕이란! 만물의 두려움을 한몸에 받는 자. 고로, 마왕은 고독하고 그러하기에 마왕은 강하다. 한데 지금 네 모습은 어떠하지? 홀로 날 상대하기가 두려워 인간과 손을 잡고 이 몸을 타도하려는 넌. 결코 이 몸을 이길 수 없다.”

“지랄하네.”

바르바토스가 머리 위로 낫을 들어 올리며 회전시켰다.

빠르게 회전한 낫은 거센 돌풍과 함께 바알을 향해 휘둘러졌다.

카앙- 카앙- 카앙-

폭풍처럼 몰아치는 바르바토스의 공세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바알은 시종일관 여유로운 표정으로 바르바토스의 일격을 가볍게 피해내거나 맞받아쳤다.

“보아라! 바르바토스! 격의 차이를!”

“시끄러워!”

바르바토스의 낫이 강맹한 기운을 머금었다.

검은 기류가 낫을 휘감고 그것이 휘둘러졌을 때 바알 역시 힘을 끌어올리며 두 주먹을 내뻗었다.

콰아아아앙─

두 마왕이 격돌하자 일대에 거센 폭풍과 함께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힘과 힘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바르바토스는 한 걸음도 밀리지 않고 바알을 짓눌렀다.

바알의 두 발이 조금씩 지면 아래로 파묻히기 시작했다.

“공격이 너무 단조로워. 무식하다 못해 천박하군.”

바알이 오른팔을 뒤로 내뻗더니 이내 짓누르는 바르바토스의 낫을 올려쳤다.

콰앙-!

낫이 뒤로 튕겨 나가며 바르바토스의 몸이 크게 기울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바알이 땅을 박차고 바르바토스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의 두 주먹이 강대한 마기를 휘감으며 내뻗어지는 순간.

섬광이 번쩍임과 동시에 바알의 몸이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이쪽을 잊으면 곤란하지.”

자신을 향해 검을 겨누고 있는 발타자르를 바라보며 바알이 미소 지었다.

“아아, 그래. 네놈도 있었지.”

자리에서 일어난 바알이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와라. 한꺼번에 상대해 주마.”

까딱-

바알의 도발과도 같은 손놀림을 신호로 발타자르와 바르바토스가 일제히 바알을 향해 공세를 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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