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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168화 (168/183)

공작이 회귀함 168화

콰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눈이 아릴 정도로 밝은 빛이 주변 일대를 뒤덮었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뒤흔들렸다.

곧이어 돌풍이 휘몰아치고 빛이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그러자 드러난 것은 폐허가 된 대지였다.

대지의 곳곳에는 움푹 파인 흔적이 가득했고, 인근의 산들은 하나같이 구멍이 뻥 뚫리거나 산봉우리가 사라졌다.

두 존재의 격돌로 인해 벌어진 풍경이었다.

“쿨럭…….”

거대한 체구의 양인족羊人族이 붉은 피를 토해내었다.

위태롭게 몸을 비틀거리던 양인족은 이내 제 자리에 드러누웠다.

그러한 양인족의 모습은 처참했다.

이마에 길쭉이 자라난 산양의 뿔은 반으로 부러져 있었고 산양의 것을 닮은 두 다리는 불에 탄 것처럼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제법이었어. 발타자르.”

제 자리에 드러누운 양인족, 바르바토스는 눈동자만 떼구르르 굴려 거친 숨을 몰아쉬는 발타자르를 바라보았다.

이틀 밤낮을 쉴새 없이 싸워댄 결과 그녀의 전신은 넝마 조각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처참한 몰골이 되었다. 본 모습으로 현신現身까지 했음에도 말이다.

그런 그녀와 달리 발타자르는 호흡이 거칠다뿐이지 작은 생채기조차 나지 않은 말끔한 모습이었다.

‘예상 이상인데…….’

발타자르가 벽을 넘을 것이라는 건 바르바토스도 예상하던 일이었다.

강력한 마기의 소유자인 그녀와 신성을 보유한 신검들이 그의 성장을 도왔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벽을 넘음으로써 발타자르가 얻게 된 힘은 그녀의 예상을 한참 벗어난 것이었다.

‘확실히 난놈은 난놈이란 말이지.’

첫 만남의 발타자르는 분명 그녀와 비견될 힘을 지니긴 했지만, 반수 정도 뒤처져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발타자르에 대한 그녀의 인식은 바알과의 결전에서 쓸 만한 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발타자르는 꾸준히 성장했고 최근의 만남에서의 그는 그녀와 동등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때, 바르바토스는 깨달았다.

발타자르는 바알과 같은 선택받은 녀석이라는 것을.

“이 정도면 한번 해볼 만하겠는데?”

바르바토스가 저도 모르게 제 속마음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 말에 발타자르가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이제 바로 북부로 갈 거야?”

바르바토스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지금쯤이면 제도에서도 출정 준비를 끝내고 발타자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따라서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북부로의 진군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그래? 그렇다면 나도 준비를 해야겠네.”

말과 동시에 바르바토스의 몸이 점점 작아지더니, 작은 소녀의 모습으로 변했다.

“우리 애들과 함께 먼저 비프로스트로 갈 테니 너도 늦지 않게 오라고.”

그녀의 말에 발타자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제도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바르바토스의 머릿속에 한 광경이 떠올랐다. 하여 그녀는 발타자르의 등을 향해 소리쳐 물었다.

“아 참! 마지막의 그 검. 이름이 뭐야?”

그녀의 물음에 발타자르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선 방금 전 있었던 격돌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찰나의 깨달음을 얻어 바르바토스의 맹격을 분쇄했던 그 검은 분명 푸르른 하늘을 닮아 있었다. 그러니 검의 이름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에테르 블레이드(Ether Blade).”

새로이 얻은 검의 이름을 읊조리며 발타자르는 저 멀리 북쪽을 향해 시선을 두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그러니 이제 바알을 타도할 시간이었다.

* * *

발타자르가 제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다.

황궁에 입궁하기엔 늦은 시각이기에 저택으로 돌아가 아이린과 시간을 보내던 발타자르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오랜만이네요. 아저씨.”

담벼락 위에 걸터앉아 손을 흔드는 그녀, 신시아의 등장에 발타자르는 아이린을 방으로 돌려보내곤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그녀는 날렵한 움직임으로 담벼락에서 뛰어내리곤 그의 앞에 다가섰다.

“제가 방해한 건 아니죠?”

힐끗- 발타자르의 등 너머로 떠나가는 아이린을 바라보던 신시아가 묻자 발타자르는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닐세.”

“그럼 다행이구요.”

신시아가 빤히 발타자르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일전에 봤을 때보다 조금 더 젊어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요즘 제도 서문 쪽의 평원이 시끄럽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어떻게 되셨어요?”

그녀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대답 대신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자 신시아는 그가 벽을 뛰어넘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마스터 다음의 경지라…….’

아직 마스터의 경지는커녕 로열 랭크의 경지조차 밟지 못한 그녀에게는 한없이 까마득한 경지였다.

지금의 발타자르가 얼마나 강할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발타자르가 난적이라 칭할 정도의 마왕은 또 얼마나 강할지.

“일단 보고가 먼저겠죠? 아저씨가 가장 궁금해할 것부터 말씀드릴게요. 현재 중앙과 북부에서 동원된 병력은 70만이에요. 거기에 남부와 동부가 30만을 지원해 주었어요. 그러니까 북부 원정군에 동원될 병력은 총 100만이죠.”

이는 전투에 투입할 병력만 보고한 것으로 보급선을 담당할 병력까지 포함한다면 실질적으로 동원된 병력은 120만에 달했다. 근래 들어 제국이 움직인 병력 중 최대규모였다.

하지만 동원된 병력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또한, 이종족 연합에서 50만을 지원해 주었고 경무청 또한 용사 5천을 동원했어요. 출정 준비는 이미 모두 끝마친 상태이고 아저씨만 준비되면 곧바로 출정식을 치르고 북부를 향해 진격할 예정이에요.”

제국으로부터 서부의 영토 일부를 할양받은 이종족들은 자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병력을 지원하였으며, 경무청은 지금까지 포섭한 용사들을 모두 투입하였다.

사실상 이 대륙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총동원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남부 쪽 상황은 어떠한가?”

“그쪽은…….”

신시아가 답을 하다 말고 미간을 찌푸렸다.

발타자르 가의 저택으로 향하기 직전에 남부의 전황에 대해 보고를 받았던 그녀였다. 보고받은 남부의 상황은 지옥 그 자체였다.

“바로 어제 남부방어선이 뚫렸고 주변 일대에 대대적인 약탈이 시작되었어요. 3개 영지가 초토화되었고 생존자는 없어요. 마물들이 재화를 탐낼 리는 없을 테니 식량 보급이 목적이겠죠.”

비록 남부의 주력들이 제도에 주둔 중이라고는 하나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남부방어선이 뚫려 버렸다.

물론 제도를 중심으로 방어선이 구축하고 있기에 바싸고가 이끄는 군대가 제도에 도착할 즘이면 방어선이 모두 구축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국의 주력은 북부 원정에 동원되어 있을 것이기에 그리 긴 시간을 버티지는 못할 것이었다.

“황궁으로 가야겠군.”

시간이 더 촉박해진 것을 깨달은 발타자르가 출정을 서두르려 하자 신시아가 그런 그를 제지했다.

“그렇게 서두르지 않으셔도 돼요. 글루스 경께서 황제 폐하와 칼 프란츠 대공을 설득하여 남부에 동원령을 내렸거든요. 그리고 오늘 낮에 칼 프란츠 대공이 직접 군을 이끌고 남부로 향했어요.”

“대공이?”

발타자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칼 프란츠가 움직인 것은 의외이긴 하지만 그라면 무리하지 않고 적절한 선에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줄 것이었다.

“네. 그러니까 서두르지 마시고 오늘은 푹 쉬시는 것에 집중하세요. 내일부터는 쉬고 싶으셔도 쉬시지 못할 테니까요. 내일 바로 출정하실 수 있도록 궁에는 제가 따로 보고드릴게요.”

신시아의 말대로였다.

바알과의 일전을 앞둔 지금.

가장 중요시해야 할 것은 몸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야 할 때였다.

바알을 무찌르고 마신의 강림을 저지할 수만 있다면 그다음의 일은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알겠네.”

발타자르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자 신시아는 복잡한 심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최근 조반니와 요제프가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캐러독과 로키를 비롯하여 발타자르 휘하의 무장들은 물론 제도의 신료들부터 연합의 수장에 이르기까지 여러 실력자와 접촉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발타자르에게 이 일을 보고했겠지만 오늘 만난 그는 묘하게 조급해하고 있었다. 신시아가 짐작하기로 이번 북부 원정에 대해 무척이나 부담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앞으로 그가 치러야 할 싸움은 대륙의 운명을 결정짓는 싸움이었다.

달리 말해 대륙의 운명이 그에게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부담이 되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여 그녀는 이 일에 대해 보고하는 것을 뒤로 미루기로 결정했다. 중요한 대업을 앞둔 지금 지저분한 정치 문제로 그의 심경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일은 글루스 경과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신시아가 작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밤이 늦었네요. 전 이만 가 볼게요.”

그러곤 담벼락 너머로 사라졌다.

* * *

신시아가 떠나가고 정원에 홀로 남은 발타자르는 적막한 정원을 둘러보았다.

저택 곳곳에 놓인 화로의 불길이 은은하게 시위를 밝히고 있었다.

찌르르─ 찌르르─

가만히 두 눈을 감으니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없이 평화로운 광경.

발타자르가 바라 마지않는 것이었다.

“이제 마지막인가…….”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과거로의 회귀를 시작으로 북부를 장악하고 나아가 제국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다.

하루하루를 시간에 쫓기며 쉼 없이 달려왔다. 이는 모두 같은 결말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회귀 전의 세상은 무척이나 처참했다.

마왕과 권력자들이 욕망에 가득 차 날뛰는 세계였다.

땅에는 하루도 피가 마를 날이 없었고, 백성들은 비탄에 가득 찬 비명을 내질렀다.

그 광경에서 발타자르는 깨달을 수 있었다.

마신이 강림하고, 마왕들이 통치하는 세계.

그 세상에 인간이 살아갈 자리는 없었다는 것을.

그렇기에 노력했다.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하여.

스르릉─

발타자르가 검을 뽑아 들었다.

매끄러운 검신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동시에 붉은 오러가 아닌 푸르스름한 기운이 검신을 휘감으며 솟구치기 시작했다.

휘이익─

발타자르가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이변이 일어났다.

새하얀 보름달이 휘영청 떠오른 밤하늘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하늘이.

갈라졌다.

창공을 닮은 검.

에테르 블레이드.

발타자르가 새로이 손에 쥐게 된 힘이었다.

이것이 있다면 바알과도 능히 일전을 치를 수 있으리라.

회귀 전과 달리 철저히 준비했고 그만한 군세가 준비되었다.

물론 여러모로 불안한 점은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확신할 수 있었다.

하나로 단결된 이 제국은.

반드시 이 거대한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하리라는.

착-

발타자르는 검을 거두곤 감았던 눈을 떠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언제 갈라졌냐는 듯이 하늘을 빽빽이 수놓은 별들과 은은하게 빛나는 달이 미소 짓고 있었다. 그 광경을 두 눈 가득 담으며 발타자르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반드시…….”

반드시 이겨내리라.

그리고 쟁취하리라.

평화로운 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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