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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160화 (160/183)

공작이 회귀함 160화

황태자가 마왕을 끌어들인 것은 예상 밖의 사태였지만 그것뿐이었다.

현재의 발타자르는 마왕이 몇 달려든다고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콰앙-!

지면 아래에서부터 거대한 입이 솟구쳐 오르며 발타자르를 집어삼키려 했다. 그것을 뛰어오르며 피해내자 이번에는 각기 청색과 적색의 괴물이 발타자르를 향해 가시몽둥이를 휘둘렀다.

“죽어라! 발타자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마왕들의 연계.

마스터라도 제법 피해를 감수해야만 막아낼 수 있는 공격이었지만.

발타자르가 피식 웃으며 허리를 곧게 펴고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하체는 낮게…….’

허공에서 고꾸라진 자세에서 두 다리를 넓게 벌리며 두 무릎을 구부린다.

‘시선은 전방으로…….’

허리를 살며시 숙이며 검집을 등 뒤로 옮긴다.

‘휘두르는 검은…….’

손을 검의 손잡이에 부드럽게 얹고는 달려드는 적들을 주시한다.

붉은 기류가 스멀스멀 발타자르의 손등부터 시작하여 검집을 휘감기 시작한다.

‘바람과도 같이.’

마왕들의 포효와 함께 놈들의 일격이 코앞까지 닥쳐들고 동시에 발타자르의 검이 검집을 벗어나 붉은 선을 그린다.

적광이 번쩍이고.

일격을 인지하기도 전에 오러 블레이드가 녀석들을 베어버렸다.

“무…… 슨…….”

가슴이 길게 베인 치명상을 입은 붉은 피부의 마왕이 피를 흘리며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주변에는 머리가 반으로 갈라지거나 목이 달아난 시체들이 서서히 잿빛 가루가 되어 흩날리고 있었다.

“후우…….”

숨을 길게 내뱉으며 검을 휘둘러 검신에 묻은 피를 대지에 흩뿌린 발타자르가 서서히 기울기 시작하는 마왕을 발로 툭 하고 찼다.

그러자 놈은 허공에 두어번 손을 휘젓더니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나가떨어졌다.

“날 죽이고자 했다면 바알이라도 끌고 왔어야지.”

마계의 최강자.

바알을 거론하는 발타자르의 태도는 무척이나 오만했으나 실로 그에 걸맞는 무위를 갖추고 있었다.

쓰러진 마왕은 입에서 울컥울컥 검은 피를 뱉어내더니 이내 앞서 다른 마왕들이 그랬듯 잿빛 가루로 변하며 흩어져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왕을 넷이나 동원했다…….’

발타자르가 주도하여 지속적으로 마왕 토벌을 시행한 결과 대륙에 남은 마왕은 몇 되지 않았다. 그런 만큼 마왕을 넷이나 투입할 수 있는 파벌은 딱 하나뿐이었다.

‘아가레스가 시간을 끌려고 하는군.’

발타자르가 그를 노리고 원정군을 꾸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도 없을 텐데 이렇게 무리를 한 것을 보니 확실했다.

‘그렇다면 원하는 대로 해주어야겠지.’

준비는 모두 끝난 상태였고 발타자르의 신호 한 번이면 제국 전역에서 발타자르가 준비한 것들이 몰려오리라.

‘그전에…… 판을 만들어야겠군.’

발타자르의 서늘한 눈동자가 황궁을 향했다.

* * *

으득-

황태자의 침소.

야심한 시각임에도 잠에 들지 못한 아르세우스는 애꿎은 제 손톱을 씹어대며 방안을 이리저리 오갔다.

눈 밑은 검었고, 피부는 창백하다 못해 파리했다.

극도로 불안해 보이는 모습.

무엇이 그를 이렇게 불안에 떨게 만드는 것일까?

그 해답은 아르세우스의 침소에 찾아든 복면인에 의해 해결되었다.

“어, 어찌 되었는가!”

한걸음에 복면인에게 다가간 아르세우스가 그의 양팔을 붙잡으며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에 복면인은 아르세우스를 잠시간 바라보더니 무겁게 고개를 내저었다.

“이, 이럴 수가…….”

제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아르세우스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닥만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이내 홱- 하고 고개를 치켜들더니 벌떡 일어나 복면인의 멱살을 잡았다.

“확실하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무엇 때문에…… 무엇 때문에!”

붉게 충혈된 눈동자로 복면인을 향해 소리치는 아르세우스의 모습은 광인을 연상케 했다. 복면인은 그런 아르세우스의 손길을 가볍게 툭 쳐내며 말했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뭐라?”

“제도 한복판에서 발타자르 가가 마왕의 습격을 받았지. 그렇다면 발타자르는 이번 일의 범인을 단순히 마왕들의 소행이라고 생각할까?”

복면인의 말에 아르세우스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발타자르 가家가 습격을 받았음에도 중앙군은 황태자가 미리 언질을 준 탓에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발타자르가 모를 리는 없을 터. 그렇다면 이번 일에 아르세우스 자신이 연관된 것까지 빠르게 추론해 낼 것은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모두 동원하게. 이러나저러나 일은 이미 벌어졌고 발타자르는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물을 테지. 멍청하게 손 놓고 당할 수는 없으니 차라리 먼저 선수를 치는 방법밖에 없지 않겠나? 만약 내 제안에 따르겠다면 우리 조직도 사활을 걸고 돕도록 하지. 어찌하겠는가?”

아르세우스는 복면인의 목소리가 마치 악마의 속삭임과 같다고 느껴졌다. 그로 인해 일이 이 지경까지 치달았음에도 그의 제안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의 말대로 손 놓고 당할 수만은 없으니까.

“……게 누구 없느냐?”

아르세우스가 체념의 한숨을 내쉬며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시종을 부르자 복면인이 그의 어깨를 두어 번 토닥이곤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 최악의 상황이 온다고 해도 설마 자네의 목을 치기야 하겠는가? 제국의 충신인 그 발타자르가?”

복면인의 말은 아르세우스를 현혹하기 위한 것일 뿐 사실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아르세우스도 잘 알고 있었다.

발타자르라면 자신의 목을 치고도 남았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 아르세우스는 그가 남긴 말에 완전히 결정을 굳혔다.

“황태자 전하. 부르셨습니까?”

시종이 들어오자 아르세우스가 방이 떠나가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금 당장 제도에 전시상황을 선포하고 근위군과 황실기사단 그리고 중앙군까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병력을 동원하고 대신들에게 전령을 보내 신속히 입궁하라 전하거라!”

* * *

마왕 셋이 발타자르의 일 검에 목이 달아났다.

실로 압도적인 무위.

그것을 지켜본 습격자들은 일이 틀어졌음을 깨닫고 황급히 도망치려 했지만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밖에서는 귀신같이 피 냄새를 맡은 트리스탄이 북부군을 이끌고 발타자르 가의 저택을 물샐틈없이 포위했으며, 안에서는 가웨인을 위시한 군타낙스 기사단이 습격자들을 차례차례 제압하고 있었다.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이에 도망칠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습격자들은 투항하기보다는 저항하기를 선택했다.

“하나라도 더 길동무로 삼고 가겠다!”

습격자들의 격렬한 저항을 시작했으나 마왕 셋을 압살한 발타자르까지 전투에 참전하자 놈들이 무너지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다 마무리된 것 같네요.”

뺨에 묻은 피를 엄지로 닦아내며 가웨인이 말하자 발타자르가 고개를 내저었다. 숨이 거친 것으로 보아 제법 고전한 듯 보였다.

마스터인 가웨인이 고전할 정도였으니 습격자들은 이 일을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해왔음이 분명했다.

“밤이 늦었으니 이만 들어가서 쉬시죠. 아가씨께서도 많이 놀라셨을 텐데 달래주셔야죠. 뒷정리랑 배후를 캐내는 것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일이 끝났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가웨인의 말에 발타자르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닐세.”

“더 남은 일이 있습니까?”

“자넨 지금 즉시 군타낙스 기사단을 이끌고 황궁을 포위하게. 그리고 트리스탄에게 일러 중앙군을 제압하라 전하게.”

발타자르의 지시에 가웨인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파였다.

“그 말씀은 이번 일을 주도한 것이 황태자라는 뜻입니까?”

“하지만 그럴 확률이 높네.”

발타자르의 대답에 가웨인이 눈빛이 옅게 떨렸다.

“황태자가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야 모를 일이지.”

가웨인은 말하는 발타자르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은 것을 눈치챘다. 그가 저런 눈빛을 할 때면 항상 큰일이 벌어지곤 했음을 깨달은 가웨인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황태자를 쳐낼 생각이십니까?”

발타자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웨인은 그가 이미 결심을 굳혔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안책은 있으십니까?”

“……한 달 전에 레오나스에 사람을 보내두었네. 하니 지금쯤이면 제도 인근에 도착했을 걸세.”

“설마 장군은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고 계셨습니까?”

가웨인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 역시도 황태자가 마왕까지 끌어들인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리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일이 그가 계획하는 일에 차질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만약 황태자가 이번 일을 꾸민 것이라면. 실로 멍청하군요. 가만히만 있었으면 자연스레 황위에 오르고 그에 걸맞은 권력까지 쥐어졌을 텐데 말입니다.”

속으로는 여전히 황태자가 일을 꾸몄을까 싶었지만, 발타자르의 행동으로 미루어 볼 때 그는 이번 일의 주동자가 황태자임을 확신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확신할 정도니 아마 사실이겠지.

가웨인은 속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한동안 제도에 피바람이 불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가웨인은 길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자신은 그저 발타자르의 검으로서 그 역할에 충실하기만 하면 될 일이었으니까.

* * *

“오라버니!”

아이린이 단박에 달려와 품에 안겨들었다.

발타자르는 그런 아이린을 번쩍 안아 들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잘 참아주었구나. 장하다. 내 동생.”

“으응…… 아니에요.”

발타자르의 목에 얼굴을 파묻고 고개를 내저으며 아이가 어리광을 부렸다.

“고생했네.”

발타자르는 미소 지으며 자신과 아이린을 바라보는 비비안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에 비비안이 활짝 웃으며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며 대답했다.

“나중에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하게. 가능한 선에서 무엇이든 들어줄 터이니.”

그 말에 비비안이 눈을 반짝였다.

“정말이죠?”

“물론일세.”

비록 그녀가 아이를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마왕들의 개입 때문이었으니 불가항력이었다.

거기다 아이의 위급상황에 신속히 나타나 아이를 지키고자 하였으니 그 답례를 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그것을 지켜보던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저도 소원 들어주세요. 오라버니.”

“무언가 갖고 싶은 거라도 있느냐?”

발타자르의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들어 반짝이는 눈빛으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오늘 같이 자면 안 돼요?”

당황하여 순간 말문이 막혔는데 옆에서 엘이 거들었다.

“저…… 아가씨 처소가 무너져서 오늘 주무실 곳이 없습니다.”

발타자르가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기대로 가득한 두 눈빛이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힘든 일을 겪었으니 이번만 허락해 주기로 했다.

“그리하자꾸나.”

승낙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가 목을 꼭 끌어 안아왔다.

“그게 그렇게 좋으냐?”

“네!”

고민할 가치도 없다는 듯 바로 답하는 아이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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