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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157화 (157/183)

공작이 회귀함 157화

한 줄기 달빛만이 어둠을 밝혀주는 어느 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밤의 숲속을 한 사내가 질주하고 있었다.

사내는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죽어라 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던지 부지런히 움직이던 두 다리를 멈춰 세우고는 허리 숙여 숨을 헐떡였다.

“허억…… 허억…… 이제 안 되겠어.”

그렇게 있기를 잠시.

사내는 이내 무언가 결심한 얼굴로 허리띠에 꽂혀 있던 손도끼를 뽑아 양손으로 쥐고는 자신이 달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짙게 내리깔린 수풀 너머로 붉은 안광이 번쩍였다.

사내는 긴장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너무 열심히 달려서인지 모를 이유로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핥았다.

“와라. 더 이상은 나도 힘드니 여기서 결판을 내자!”

사내가 소리쳤다.

동시에 산짐승인지 뭔지 모를 무언가가 포효하며 사내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제도가 술렁였다.

얼마 전부터 제도 인근의 숲속에 들어갔던 사람들이 하나둘 시체로 발견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산짐승에게 당한 것으로 생각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피해자가 속출하기 시작하더니 현재에 이르러서는 벌써 3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약초꾼부터 시작하여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숲속에 들어가는 이는 목숨을 잃었고 이에 중앙에서 조사관을 파견하였다.

그런데 그 조사관마저 사망하자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중앙에서는 기사가 포함된 군병력을 투입 시키기에 이르렀다.

* * *

“살인사건?”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던 것인지 아침 일찍부터 찾아온 가웨인이 근래에 제도를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을 이야기했다.

“예. 요즘 그것 때문에 제도 분위기가 뒤숭숭합니다. 사건 발생 장소가 제도 인근의 숲속이라 금방 해결될 줄 알았는데 파견된 조사관은 물론이고 이번에 투입한 군병력까지 당했다고 하더군요.”

이야기하는 가웨인을 힐끗 바라본 발타자르는 이내 피식 웃고 말았다.

“많이 심심한가 보지?”

“조금은요.”

말하며 가웨인이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발타자르의 지시로 한동안 외출을 삼간 채 저택에만 머물렀으니 말이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게.”

“아, 예. 듣기로는 시신들은 하나같이 내장이 파먹힌 모습으로 발견되었는데 이게 산짐승 소행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더군요.”

“마물의 소행이로군.”

“마물…… 말입니까?”

가웨인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군병력을 쓰러뜨릴 힘에 심장을 파먹은 흔적까지. 산짐승이나 기이한 취향을 가진 살인마의 소행이라고 보기는 힘들지.”

발타자르가 품에서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후우…… 그렇다면 추론할 수 있는 것은 마물이나 마족이지만, 이렇게 보란 듯이 일을 벌인 것을 보면 아무래도 마물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지. 그것도 제법 강력한 녀석이 말일세.”

“그렇다면 큰일 아닙니까? 기사단 정도는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거야 관료들이 알아서 할 문제지.”

그렇게 말하곤 돌연 발타자르가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욱여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발 준비해 놓게나.”

발타자르의 말에 가웨인이 눈을 빛내더니 혹시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직접 가시려는 겁니까?”

“지루해하는 것 같으니 간만에 바람도 쐴 겸 현장에 가보세나.”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가웨인이 집무실을 들뜬 기색으로 집무실을 나서자 발타자르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고는 뒤따라 방을 나섰다.

* * *

사건 현장에 가보니 아직 시체를 치우지 않은 듯 까마귀나 쥐가 몇 마리 있기는 했지만, 내장이 파먹힌 모습 그대로 유지되어 있었다.

“이자. 용병이라고 했나?”

“예. 길을 안내해 준 병사의 말로는 그렇다더군요. 중앙에서 내 걸은 현상금을 노리고 숲에 들어 왔다가 당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가웨인의 대답에 발타자르가 시체를 살펴보았다.

보기 드문 흑발에 기묘한 옷차림.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딱 하나였다.

“용사로군.”

용사들 중 집단에 속하지 않은 이들은 용병으로 활동한다고 전해 들었는데 이자가 그런 경우인듯했다.

한데 한 가지 의문인 것은 용사씩이나 되는 자가 한낱 마물 따위에게 당했을까 하는 점이었다.

마물이 마족급으로 강하거나 아니면 용사가 형편없이 약하거나.

두 가지 중 하나에 해당하지 않고야 이런 일이 발생할 리가 없었다.

“장군.”

생각에 잠겨 있는 발타자르에게 가웨인이 무언가를 손에 들고선 다가왔다.

바라보니 무언가의 손이었다.

한데 회색빛에 피부가 바짝 말라 있는 것이 한눈에 보기에도 인간의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리 줘보게.”

발타자르가 그것을 받아들며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절단된 단면에서 희미한 마기가 느껴졌다.

‘마족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이 팔이 마족의 것이었다면 진작에 재로 변해 있었을 것이었다.

‘흠. 희미하게나마 마기가 느껴지는 것을 보면 마족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확실한데…….’

발타자르는 제도 인근에서 무언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산책 삼아 나온 것인데. 일이 묘하게 돌아가는군.’

따로 조사해 볼 필요성을 느낀 발타자르가 손을 다시 가웨인에게 건네고는 말했다.

“저택에 돌아가는 대로 자네는 신시아에게로 가서 이번 사건에 대해 조사하라고 말을 전해주게.”

“무언가 짐작 가시는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가웨인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고개를 내저었다.

“딱히. 하지만 석연찮은 구석이 있으니 조사 정도는 해봐야 할 것 같네.”

발타자르의 말에 가웨인이 제 손에 들린 팔과 시신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딱히 이상한 점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것을 보았기에 신경 쓰는 것이라 생각하고는 깊게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이만 돌아가세나.”

“이제 다 살펴보신 겁니까?”

“그래. 필요한 것은 다 살펴보았으니 이만 가세나.”

가웨인과 함께 돌아가려는데 수풀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늑대 가죽을 뒤집어쓰고 연분홍 머리칼이 인상적인 여인.

트리스탄이었다.

“대장?”

아침부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싶더니 피 냄새를 맡고 인근을 돌아다니던 중이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발타자르야말로 묻고 싶은 말이었다.

“자네야말로 어찌 이곳에 있는 것인가? 내 분명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저택을 벗어나지 말라고 지시했을 터인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트리스탄의 등 뒤로 그녀의 수하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제도에서 살인사건으로 떠들썩하길래 궁금해서 그만…….”

트리스탄이 배시시 웃으며 발타자르의 눈길을 피했다.

“뭔가 알아낸 것은 있는가?”

“아뇨. 저기 근처에서 다수의 시신이 발견돼서 흔적을 따라 여기까지 온 건데…… 어?”

말하던 트리스탄이 발타자르의 등 너머로 보이는 시신을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혹시 자네가 본 시신들도 저런 모습이던가?”

“네. 맞아요. 하나같이 저렇게 심장이 헤집어져 있더라구요.”

트리스탄의 대답에 발타자르가 가만히 제 턱을 쓰다듬었다.

심장. 심장이라…….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연관되는 것을 떠올려 보았다.

마침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변절자 무리 중 적의 심장을 섭취하여 힘을 쌓는 기괴한 능력의 소유자.

심장 포식자. 예니첼린.

물론 이번 사건의 범인이 그녀가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발타자르의 감각이 그녀가 범인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가능성 없는 의심은 아니긴 하지.’

황태자와 접촉하고 있는 인물 중에는 변절자 무리로 추정되는 녀석도 있었다. 그런 만큼 제도 근처에서 그녀가 활동하고 있다고 한들 이상할 것이 없었다.

‘뭐. 그거야 차차 알아내면 될 문제겠지.’

마침 발타자르의 눈앞에 일을 맡길 적임자가 있었다.

“가웨인. 그걸 트리스탄에게 건네주게.”

발타자르의 말에 가웨인이 들고 있던 팔을 건네자 그것을 얼떨결에 받아든 트리스탄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게 뭐예요?”

“범인의 흔적일세.”

순간 트리스탄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 팔의 주인을 찾을 수 있게나?”

발타자르의 물음에 그녀가 손에 쥔 팔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이내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음…… 확신은 못 하겠지만. 아마도요?”

말은 저렇게 해도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럴 만도 했다.

그녀는 바이칸의 수많은 일족 중 하나인 푸른 나비 일족이었는데 이 일족은 표적이 숨은 곳이 세상의 끝이라고 해도 기어코 찾아내고야 만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추적술에 능했다.

그리고 트리스탄은 그 푸른 나비 일족을 대표하는 대전사였다. 그런 만큼 시간이 얼마가 걸리던지 결국엔 범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 주의 시간을 주겠네. 그때까지 범인을 찾아내게. 필요하다면 신시아에게 협조 요청을 해도 좋네.”

발타자르의 지시에 트리스탄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게요.”

답하곤 그녀가 수하들을 이끌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며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발타자르가 가웨인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시간을 지체했군. 우리도 이만 가세.”

“예. 장군.”

* * *

저택으로 돌아오니 해가 저물고 있었다.

아이린이 단박에 쪼르르 달려와 반겨주었다.

사소한 것이었지만 가슴 한구석이 간질거렸다.

발타자르가 웃으며 아이를 번쩍 안아 들자 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일은 다 끝나신 거예요?”

그녀의 물음에 발타자르는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품에서 내려놓았다.

“오늘은 수업은 어땠니?”

“재밌었어요!”

아이린이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이 즉답했다.

최근 그녀는 엘룬 자매로부터 상급 정령술과 마력을 다루는 법에 대해 배우고 있었다.

그쪽 방면에 제법 재능이 있는지 하루가 다르게 부쩍 실력이 늘어 발타자르도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힘들지는 않았고?”

“아뇨. 정령들이 다들 착해서 즐겁기만 했어요.”

아이가 팔을 이리저리 내저으며 정령들을 흉내 내는데 그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마력을 다루는 것이 어찌 보면 무척이나 위험한 것이었기에 내심 걱정이 되었었는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즐거웠다고 다행이구나. 기왕 배우기로 한 것이니 열심히 배워 보려무나.”

“네! 그럴게요! 열심히 배워서 나중에는 제가 오라버니를 지켜드릴 거에요!”

두 손을 꼭 쥐며 말하는 아이가 기특하여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것이 좋았는지 아이린이 두 눈을 감고 배시시 웃기만 했다.

“저녁은. 먹었니?”

“아뇨. 오라버니랑 먹으려고 기다렸어요.”

“그럼 같이 가자꾸나.”

“좋아요!”

아이에게 손을 뻗자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발타자르의 손을 꼭 쥐었다. 손끝 너머로 아이의 온기가 느껴졌다.

“가요. 오라버니!”

아이가 팔을 잡아끌며 앞장섰다.

못 이기는 척 끌려가며 발타자르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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