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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151화 (151/183)

공작이 회귀함 151화

북부 비프로스트 요새.

얼음으로 뒤덮인 거대한 성벽 위로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맞으며 경계근무를 서고 있던 알렉은 저 멀리 눈보라 사이로 검은 점 하나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모습에 알렉은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이봐! 이리로 와봐!”

알렉이 황급히 주변의 동료를 부르며 소리치자 동료가 황급히 달려왔다.

“알렉! 무슨 일이야?”

“저기 좀 봐.”

“뭔데 그렇게 호들갑이야?”

동료 병사는 알렉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사람으로 추정되는 인영이 눈보라를 헤치며 요새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저거 사람 같은데?”

요새 너머의 동토에 거주하는 인간은 오직 바이칸뿐이었다.

만약 저것이 정말 바이칸이라면 바이칸의 여러 부족 중 유일하게 제국으로의 이주를 거부했던 애시르족이 분명했다.

“아. 쓰러졌다.”

요새를 향해 다가오던 이가 새하얀 설원에 몸을 누였다.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난 바로 저 사람을 데려올 테니 넌 지휘관님께 이 사실을 알려.”

말하며 동료 병사가 성벽 아래로 달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잠시간 지켜보던 알렉은 자신의 두 뺨을 가볍게 두드리곤 서둘러 사령관의 집무실을 향해 달려갔다.

* * *

“맹수에게 당한 건가?”

비프로스트 요새 사령관 베디비어는 애시르족으로 추정되는 바이칸의 시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

목에는 무언가에게 물어뜯긴 상처가 선명했다.

전신을 샅샅이 살펴보아도 상처는 그것뿐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소형 맹수에게 당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바이칸의 얼굴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그가 전사 계급이라는 뜻이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바이칸의 전사가 고작 소형 맹수에게 당했다고는 믿기 힘들었다.

“그냥 모른 척 넘어가기는…… 힘들겠지.”

비록 로키의 뜻에 반대하며 동토에 잔류하기를 선택한 애시르족이었지만 그들 역시 로키가 다스리고 지켜야 할 바이칸이었다. 그리고 바이칸의 통치자 로키는 발타자르의 강력한 동맹이었다.

따라서 이 바이칸이 누구에게 당했는지, 어째서 애시르족의 거처가 아닌 비프로스트 요새로 향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조사해 볼 필요가 있었다.

댕댕댕-

베디비어가 막 휘하 기사에게 지시를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갑작스레 긴급 상황을 알리는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병영에서 휴식을 취하던 병사들이 무장을 갖춘 채 황급히 성벽 위로 향했다.

“사령관님!”

기사 하나가 다급히 베디비어를 향해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

“애시르족으로 추정되는 바이칸 다수가 요새를 향해 접근 중입니다.”

기사의 보고에 베디비어는 바이칸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정황상 이자 때문에 찾아오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베디비어의 추측이 틀렸다는 듯 기사가 뒤이어 말을 덧붙였다.

“한데 그들의 외형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그것이…… 아무래도 직접 보시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습니다.”

기사의 대답에 베디비어는 망설임 없이 성벽 위로 향했다.

그러자 그 아래.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뚫고 족히 수천은 되어 보이는 인영人影들이 몸을 이리저리 휘청거리며 요새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두 눈에 마나를 집중시켜 그들을 살펴본 베디비어는 크게 기함했다.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

초점을 잃은 동공.

새하얗게 탈색된 머리칼까지.

저러한 특징을 가진 존재는 딱 하나였다.

“언데드. 언데드다! 서둘러 기름과 불화살을 준비해라!”

안식을 허락받지 못한 저주받은 망자들.

언데드 군단이 비프로스트 요새를 향해 진격을 시작했다.

* * *

삐이이익-

매 한 마리가 하늘 위로 치솟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을 한 바퀴 선회하던 매는 이내 힘찬 날갯짓과 함께 북쪽을 향해 날아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가웨인이 발타자르에게 시선을 옮겼다.

“무슨 안 좋은 소식이라도 온 것입니까? 표정이 좋지 않으신데요.”

“북부에 언데드가 나타났다는군.”

발타자르의 말에 가웨인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발타자르가 그 어느 곳보다 신경 써서 마왕을 토벌한 지역이 바로 북부였다.

북부가 발타자르 진영의 본거지이기도 하지만 회귀 전 가장 많은 마왕이 터를 잡은 지역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 증거로 북부에서 토벌한 마왕의 수가 지금까지 토벌한 마왕의 절반에 달했다.

“지난번에 토벌한 마왕이 마지막 아니었습니까?”

“아무래도 캐러독이 마무리를 확실하게 하지 못한 듯하네.”

북부에 등장한 언데드가 그 증거였다.

무수히 많은 마왕 중 언데드를 부리는 마왕은 딱 하나뿐이었다.

서열 4위.

망령군주亡靈君主 가미긴.

발타자르를 대신하여 북부의 마왕 토벌을 지휘했던 캐러독의 손에 의해 토벌되었다고 보고되었기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는데 그것이 실책이었던 듯했다.

“그렇다면 제도로 복귀할 것이 아니라 당장 북부로 향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가웨인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고개를 내저었다.

만약 가미긴이 북부의 동토가 아닌 대륙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면 최우선으로 토벌해야만 했다.

그가 부리는 언데드의 특성상 내버려 두었다가는 제국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의 대군세를 이룰 것이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보고에 따르면 언데드들은 동토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고 하였다.

바이칸들이 제국으로 전향한 이후 동토에 거주하는 생명체라고는 극소수의 바이칸들과 맹수들이 전부였으니, 그것들을 모두 집어삼키고 군세로 부린다고 해도 결코 비프로스트 요새의 성벽을 넘지 못할 것이었다.

발타자르가 마신의 강림을 저지하는 것을 실패했을 경우를 상정하고 최후의 보루로써 준비한 곳이 바로 비프로스트 요새였으니까.

“가미긴의 토벌은 마신의 강림을 저지하고 난 후에 해도 늦지 않네.”

발타자르가 고개를 돌려 언덕 아래를 바라보았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네 개의 첨탑과 푸른 빛을 띠는 막으로 뒤덮인 도시가 보였다.

제도 탈라브하임이었다.

* * *

제도에서 성대한 전승식이 열렸다.

입성과 동시에 보인 것은 거대한 환영 인파였다.

제도의 시민들이 모두 몰려나온 듯 사람들의 환호성만으로도 땅이 울릴 정도였다.

하늘에선 건물 위에서 흩뿌리는 꽃잎들이 하늘거리며 떨어져 내렸고, 길의 양옆으로 늘어선 여인들은 꽃다발이나 화관 등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흔들어 대었다.

사내들은 양팔을 높이 치켜들고 연신 함성을 내지르고 있었으며 아이들은 제 부모의 어깨 위에 올라타 행렬을 구경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바로 황궁으로 향하실 겁니까?”

환영 인파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던 가웨인이 말을 몰아 발타자르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물었다.

“우선 저택으로 갈 생각이라네.”

본래라면 곧장 황태자를 알현한 이후 저택으로 가는 것이 옳았지만 아이린을 마지막으로 본 지가 벌써 몇 달째였다.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아이를 만나 회포를 푼 후 입궁할 생각이었다. 이번에 입궁하게 된다면 또다시 장기간 떠나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혹시나 뒷말이 나올 텐데요.”

가웨인이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발타자르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이 제국에 그 누가 있어 나를 비난한단 말인가?”

그 권세와 위명이 제국의 황제에 비견될 정도의 발타자르였다. 예법에 어긋난 일이지만 이를 비난하거나 힐난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긴 합니다만.”

제도에 입성하기 전 슈텔리앙 후작으로부터 황태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전언을 받았던 가웨인이기에 최대한 황궁을 먼저 들르는 것으로 방향을 잡아보려 했지만 언제 그가 발타자르의 결정을 바꾼 적이 있던가.

결국, 끄응 하고 신음성을 토해낸 가웨인은 이내 ‘에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빠르게 포기했다.

* * *

“아가씨. 공작 각하께서 입성하셨대요.”

정원을 가꾸고 있던 아이린에게 엘이 다가와 말했다.

그러자 아이린이 번쩍 고개를 들더니 반짝이는 눈동자로 엘을 응시하며 물었다.

“오라버니가요? 정말요?”

“네, 황궁에 입궁하신 후에 오실듯하니 저택에 오시는 것은 저녁 무렵이 되어야겠지만요.”

엘의 말에 아이린이 손에 쥔 곡괭이를 내팽개치곤 쪼르르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럼 빨리 준비해야겠어요. 이번에 연습한 파이를 오라버니께 대접해 드릴 거예요.”

아이린이 조막만 한 손을 꼭 움켜쥐며 무언가를 결심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엘이 그 모습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더니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그러려면 우선 씻으셔야겠지요?”

엘의 말에 아이린이 제 옷차림을 내려다보았다.

흙먼지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발타자르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얼른 씻어야겠어요!”

“바로 준비할게요.”

엘이 손을 내밀자 아이린이 그 손을 맞잡았다.

그때였다.

엘은 정원의 입구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이에 그녀가 그곳을 바라보자 무척이나 낯익은 사내가 정원에 들어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가씨.”

엘의 부름에 아이린이 왜 부르냐는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씻으시는 것은 조금 뒤로 미루셔야겠는데요?”

“왜요? 저 찬물로 씻어도 괜찮아요. 아니면 아큐네에게 부탁해도 되고요. 오라버니에게 예쁜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단 말이에요.”

투정부리듯 칭얼거리는 아이린의 말에 엘이 여전히 웃는 낯으로 정원의 입구를 가리켰다.

“그게 아니라 저기 좀 보시겠어요?”

엘의 말에 아이린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이윽고 그녀의 시선이 정원의 입구에 닿자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점점 차오르는 눈물.

“공작 각하께서도 무척이나 아가씨를 뵙고 싶었나 봐요.”

그 말이 신호였다.

아이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타자르를 향해 달려갔다.

“오라버니!”

아이린이 단숨에 발타자르의 품으로 안겨들었다.

발타자르가 그녀를 번쩍 안아 들자 그녀가 발타자르의 목을 와락 끌어안으며 칭얼거렸다.

“보고 싶었어요.”

“나도 그렇단다.”

말하며 발타자르가 아이린의 등을 조심스럽게 토닥였다.

그러자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미안하구나.”

발타자르가 사과하자 아이린이 고개를 격하게 내저었다.

“으응…… 아니에요. 오라버니도 무척 바쁘셨을 텐데 투정부려서 죄송해요.”

그러면서 발타자르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다친 곳 하나 없이 헤어질 때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것에 안도하며 아이린이 재차 발타자르의 목을 끌어안았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감사해요.”

발타자르는 가슴 깊숙한 곳에서 따듯한 무언가가 차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품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

그가 손가락을 움직여 아이린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웃어주지 않으련?”

아이린이 꽃처럼 활짝 웃었다.

그 미소를 바라보며 발타자르는 다시 한번 결심했다.

이 온기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마신의 강림을 저지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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