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이 회귀함-149화 (149/183)

공작이 회귀함 149화

“이럴 수가…….”

“아아…… 세계수여…….”

세계수로 보냈던 정찰대가 복귀하고 세계수의 상황이 전해지자 연합의 수장들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정말…… 정말 세계수가…… 아아…….”

요정왕 로렐라이는 차마 말을 끝맺지 못했다.

세계수가 어떤 존재던가.

수 세기를 살아왔기에 불멸의 상징이었으며.

이 땅을 비옥의 축복을 선사하였기에 신목神木이었고.

늘 그 자리에서 이 땅의 백성들을 굽어살피는 정신적 지주였다.

그러한 존재의 죽음을 로렐라이는 감히 언급할 수가 없었다.

“일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 최대한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만 생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직접 세계수의 상태를 살펴본 멜리오트는 깨달았다.

세계수의 죽음은 돌이킬 수 없노라고.

강력하게 뿜어져 나오는 마기와 서서히 번져 나가는 균열이 그 증거였다.

“에, 엘릭서! 엘릭서라면 세계수를 살릴 수 있을 걸세.”

“그래, 엘릭서가 있었구나! 엘릭서라면 충분하지!”

현실을 외면하려는 것인지 만델로프와 붉은 수염이 헛된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죽은 자도 다시 일으켜 세운다는 지고의 비약 엘릭서라면 세계수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실로 멍청한 소리였다.

아무리 엘릭서라도 만능은 아니었다.

엘릭서로 소생시킬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숨이 붙어 있을 때나 해당되는 것이지 완전히 숨을 거두었을 때는 엘릭서로도 되살릴 수 없었다.

“……가능하다고 보는가?”

저들끼리 희망에 차 이야기를 진행하는 멘델로프와 붉은 수염을 바라보던 케르크가 멜리오트에게 물었다.

이에 멜리오트가 조용히 고개를 내젓자 그가 ‘역시나……’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안색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니 그도 저 둘처럼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듯했다.

“아즈라엘 님께는 혹시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알고 계시나요?”

로렐라이의 물음에 드래고니안들의 수장 아즈라엘이 고개를 내저었다.

“나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오.”

“그런가요…….”

대대로 일족의 수장에게 선조들의 지식을 계승하는 드래고니안이라면 혹시나 방법이 있을까 싶었지만, 역시나 부정적인 답변이 들려오자 로렐라이의 날개가 축 늘어졌다.

이에 로렐라이를 힐끗 바라본 아즈라엘이 툭 한마디를 내뱉었다.

“다만.”

무언가를 암시하는 그 말에 로렐라이는 물론 리자드맨의 수장 케르크 역시 이어질 아즈라엘의 말에 집중했다.

“점괘를 보니 귀인이 찾아올 것이라 하였소.”

“귀인…… 이요?”

드래고니안의 점괘라면 예언에 필적하는 것이니 확실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귀인이 어떤 귀인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렇소. 점괘에 따르면 그 귀인이 새로운 빛을 품고 온다 하였소이다.”

“그 빛이란 것이 혹시 세계수를 살릴 방도일까요?”

“글쎄……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 점괘나 예언이란 것은 직면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니 말이오.”

그때 병사 하나가 회의장 안으로 들어왔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제국 측에서 전령이 왔습니다. 연합의 수장들을 뵙고 싶다고 합니다.”

병사의 말에 붉은 수염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흥. 그들과는 할 말이 없으니 물러가라 전해라.”

그의 말에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세계수의 문제로 머리가 아픈 통에 제국 쪽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물론 연합의 영토에 주둔하고 있는 제국군에 대한 조치 역시 중요한 문제이기는 했지만, 연합의 생존과 직결된 사안인 세계수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시급했다.

한데, 이쯤에서 물러가야만 할 병사가 물러가지 않고 어물쩍거리고 있었다. 이에 의아함을 느낀 로렐라이가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더 할 말이 남으셨나요?”

“저 그것이…… 제국 측에서 세계수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확실한 것은 아니옵고 그냥 저들끼리 말하는 것을 엿들은 것입니다만 아무래도 알고 계셔야 할 듯하여…….”

회의장에 큰 파문이 일었다.

* * *

“연합 측에서 협상에 응할까요? 저희가 벌레 무리를 물리쳤다고 해도 그들이 먼저 도움을 요청한 것도 아닌 데다, 빌 헬름 공작의 건도 있고 하니…… 인간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어서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 들것 같습니다만.”

“글쎄……. 내 생각은 다르네만.”

연합의 요새를 응시하던 가웨인이 발타자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미미하게 올라간 입꼬리.

그것을 본 가웨인은 문득 깨닫는 것이 있었다.

“무언가 조치를 해두셨군요.”

가웨인이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자 발타자르가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오는군. 기대해도 좋을 걸세. 제법 재밌는 일이 벌어질 테니.”

발타자르의 말에 가웨인이 시선을 연합의 요새로 향하자 그곳에는 성문이 열리며 일각수一角獸 유니콘을 탄 기마 무리가 요새로 보낸 전령들과 함께 제국군 진영으로 향하고 있었다.

종족에 상관없이 선별하여 전원이 로열 랭크 급의 강자들로 구성된 연합이 자랑하는 최정예 기사단.

세계수의 수호자.

샹그릴라 기사단이었다.

그러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샹그릴라 기사단만이 아니었다.

기사단의 뒤를 이어 연합의 대표 격인 일곱 종족을 상징하는 깃발이 나부끼며 기간테스와 로드리고의 성가대 등 연합의 주력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말을 전하셨기에…….”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가웨인이 발타자르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중얼거리자 발타자르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연합의 수뇌부들이 무거운 엉덩이를 떼고 득달같이 달려오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도 안달이 난 모양이로군.”

발타자르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반길 만한 상황이었다.

정보의 진위를 판단할 생각조차 없이 움직였다는 것은 그만큼 세계수의 씨앗이 그들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고, 이는 앞으로 있을 협상에서 발타자르의 입맛대로 연합을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 * *

“반갑네. 최초의 정원사, 엔딜레아의 후손이자 조화의 상징, 7왕국 연합의 의장직을 맡고 있는 만델로프라고 하네.”

샹그릴라 기사단의 호위를 받으며 모습을 드러낸 만델로프가 인사를 건네자 각 종족의 수장들이 뒤이어 자신들을 소개했다.

그러나 단 한 명.

드워프들의 수장 붉은 수염은 뭐가 그리도 불만인지 시종일관 뚱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선 발타자르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위대한 철의 제국, 프락시온 제국의 공작, 알레한드로 발타자르일세.”

발타자르가 자신을 소개하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긴말 필요 없이 본론만 말하겠네. 제국의 그늘로 들어오게.”

발타자르의 말에 붉은 수염이 노성을 터뜨렸다.

“그게 무슨 헛소리냐!”

붉게 달아오른 얼굴.

붉은 수염이 당장이라도 발타자르에게 덤벼들 것처럼 굴자 케르크가 그를 제지했다.

“섣불리 움직이지 마시오. 여기서 싸웠다간 연합의 필패요.”

말하며 케르크가 턱짓으로 제국군 진영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궁수들과 마법사들이 언제라도 연합을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이익……! 내가 이래서 인간 놈들과 대화하길 거부한 것이다!”

버럭 소리를 내지른 붉은 수염이 병사들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로렐라이가 작은 한숨을 내쉬더니 일곱 빛깔로 반짝이는 날개를 펄럭이며 말했다.

“저희가 왜 그래야 하는지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생긋 웃으며 말하는 그녀였지만 목소리는 무척이나 차가웠다.

그녀 역시 발타자르의 무례한 언사에 무척이나 기분이 상한 상태였다.

“설명이라…….”

발타자르가 중얼거리며 연합의 수장들을 바라보았다.

아즈라엘을 제외하면 하나같이 불쾌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도발한 것이니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이 당연했다.

“이것이면 설명이 되겠는가?”

발타자르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을 본 연합의 수장들이 기함했다.

“저, 저건!”

“세계수의 씨앗이에요!”

로렐라이가 발타자르의 손에서 세계수의 씨앗을 낚아챌 기세로 다가오자 발타자르가 세계수의 씨앗을 다시 품에 넣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들려왔다.

“그, 그걸 그렇게 아무렇게나……. 아니, 대체 어떻게 손에 넣으신 건가요?”

로렐라이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한심하단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이유를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인가?”

발타자르의 물음에 그녀가 입을 꾹 다물었다.

정황상 세계수를 잠식했던 마왕을 물리치고 손에 넣은 것이 분명했다.

연합의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인간들이 해낸 것이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착잡한 표정으로 발타자르를 바라보던 만델로프가 물었다.

“앞서 말하지 않았나. 제국의 아래로 들어오라고.”

“그걸 말이라고!”

순간 만델로프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나 차마 노성을 터뜨리진 못하고 몸을 부들부들 떨며 노기를 참아내었다.

발타자르가 세계수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이상 그가 무슨 말을 하던지 굽힐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것을 인지한 까닭이었다.

“그건 너무 무리한 요구일세. 우리 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말해주게.”

그 도도한 하이엘프가 화 한 번 내지 못하고 억지웃음을 짓는 모습은 한 편의 희극을 보는 것만 같았다.

“아직 자신들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했나 보군.”

발타자르가 연합의 수장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눈을 마주쳤다.

시종일관 무표정을 고수하는 아즈라엘을 제외한다면 딱히 쓸 만해 보이는 이는 없었다.

“연합의 수장들이 모두 모여 있으니 이 자리에서 말하지. 앞으로 세계수의 씨앗은 제국에서 관리한다.”

발타자르의 충격적인 발언에 바로 반발이 튀어나왔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세계수는 우리 연합의 품에 있어야 하오! 그것이 세계수의 의지이며 이 땅의 뜻이요!”

케르크의 발언에 발타자르가 서늘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키지 못했지 않나.”

발타자르의 말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수장들의 심장을 난도질했다.

이것에 반박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이 사실이었으니까.

“그대들이 마왕에게 세계수를 빼앗긴 순간, 그대들은 세계수를 관리할 자격을 잃은 것일세. 그리고 마왕을 물리치고 세계수의 씨앗이나마 살릴 수 있었던 제국에 그 관리 자격이 돌아온 것은 당연한 이치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윽.”

말을 꺼내려던 만델로프의 목을 향해 검이 겨누어졌다.

이에 샹그릴라 기사단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자 군타낙스 기사단 역시 검을 뽑아 들며 그들과 대치했다.

당장에라도 일전을 치를 듯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더 이상 그대들과 언쟁을 벌일 생각은 없다.”

세계수는 그 상징성은 제쳐 두더라도 그 존재 자체가 이 땅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었다. 이 땅 그 어디에도 세계수의 뿌리가 닿지 못한 곳은 없었으니까.

따라서 마기로 물든 세계수를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이 땅은 마기에 잠식되어 중간계의 생명체가 살 수 없는 대지가 되어버릴 것이었다.

“그러니 세계수의 은총을 받고 싶다면 제국에 충성하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인 세계수의 씨앗을 발타자르가 손에 쥐고 뒤흔들고 있으니 이것은 인질극이나 마찬가지였다.

연합 그 자체의 목숨을 손에 쥐고 뒤흔드는 아주 강력한 인질극.

“그것이 싫다면 선택지를 주지.”

발타자르가 검을 쥔 손을 비틀었다.

그러자 만델로프의 목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죽거나.”

이 땅에 고립되어 고사하거나.

“충성하거나.”

제국의 신민이 되어 살아가거나.

“선택하라, 이종족들이여.”

그들은 선택해야만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