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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147화 (147/183)

공작이 회귀함 147화

“베어라. 수르트의 검이여.”

“심판의 망치.”

레티시아와 간다르바가 동시에 영창하자 불의 거인이 휘두른 불의 검이 대지를 불사르고 거대한 망치가 지면을 강타하며 땅이 갈라졌다.

두 아크메이지가 본격적으로 전투에 임하자 천재지변과도 같은 마법들이 벌레 무리를 휩쓸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수백에 달하는 마법사들과 수만의 궁수들이 일제히 불화살과 마법을 쏘아내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 따로 없었다. 물론 벌레들의 입장에서야 재앙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꽈과과광-

제국군의 화력에 벌레 무리는 감히 접근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병력의 태반이 죽어 나갔다.

아니, 죽어 나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차례의 원거리 공격이 끝난 직후 보이는 벌레들의 숫자는 그 화려했던 공격에 비해 많은 수가 생존해 있었다.

“……항마력을 갖춘 개체들이로군.”

살아남은 벌레들을 살펴보며 발타자르가 미간을 찌푸렸다.

저것은 이제 벌레들이 어느 정도 항마력을 갖추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이는 벌레 군주의 세계수 잠식이 그 끝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가웨인!”

발타자르의 부름에 일선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던 가웨인이 서둘러 말을 몰아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부르셨습니까?”

“이곳을 맡기겠네.”

“그 말씀은…… 설마 적진에 홀로 가시겠다는 뜻입니까?”

가웨인이 화들짝 놀라며 묻자 발타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군이 진격을 개시하고 하루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앞서 보냈던 정찰대로부터 수십만의 벌레 무리가 진격을 시작했다는 보고를 접했다. 그리고 놈들이 향하는 방향은 정확히 제국군의 진격로와 일치했다.

실제로 보고를 접한 지 반나절이 지나던 시점에 벌레 무리가 제국군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고 현재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이는 벌레 군주가 제국군의 동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현재 적들의 전력은 연합과 대치 중일세. 한데 이렇게나 많은 숫자를 또다시 투입했다는 것은 세계수를 잠식하고 있을 벌레 군주의 호위들까지 모두 동원되었다는 뜻이지.”

“설령 그렇다고 해도 너무 위험합니다. 어떤 변수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곳을 장군 홀로 가신다는 것은 반대입니다.”

그러나 가웨인은 말하면서도 자신이 발타자르의 결정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종종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발타자르지만 항상 그 결과는 최선의 선택으로 돌아왔다.

그러하기에 발타자르군에게 있어 그의 결정은 절대적이었고 한번 결정한 것이 번복되는 일은 결코 없었다.

“가웨인. 언제 빌 헬름의 군대가 말머리를 돌려 이곳으로 향할지 모르네. 아그라베인에게 최대한 시간을 끌도록 지시하긴 했지만, 그에게 주어진 병력은 고작 2만. 최대한 분투한다고 해도 낙관적으로 생각하기는 힘들다네. 만약 빌 헬름의 군대가 당도한다면 우리 군은 앞뒤로 포위되는 형국이 될걸세.”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렇게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지 그것이 실제로 일어날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전쟁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걷는 것과 같으니까.

“전 이해되지 않습니다. 저희에게 시간이 부족한 것은 알겠지만 그것이 장군께서 무리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미래를 바꾸시려는 장군의 노력은 잘 알지만, 이럴 때마다 이해되지 않습니다.”

발타자르는 불퉁한 표정을 짓는 가웨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 늘 그랬듯이 우리는 승리할 테니까.”

그렇게 발타자르가 떠나갔다.

늘 그랬듯이 가웨인은 그를 말릴 수 없었다.

* * *

치익-

언덕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세계수를 바라보며 발타자르가 입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순식간에 매캐한 담배 연기가 폐부를 들쑤셨다.

그것을 단숨에 뿜어내자 눈앞이 새하얀 담배 연기로 뒤덮였다.

“예상대로군.”

세계수 근처에는 벌레들의 숫자가 얼마 되지 않았다.

눈대중으로 파악해 볼 때 대략 1만가량.

저 정도 숫자는 발타자르에게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다.

스르르릉-

발타자르의 검이 청아한 검명劍鳴을 토해내며 검집을 벗어나 모습을 드러내었다.

태양 빛을 받아 반짝이는 검신.

보는 것만으로도 베여 버릴 것만 같은 날카로운 예기는 검 스스로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뽐내는 것만 같았다.

“빌 헬름. 그가 말했던 딱 그 모습이로군.”

발타자르의 시선은 정확히 세계수를 뒤덮은 발레포르를 향해 있었다.

박동하는 분홍빛 살덩어리.

표면을 뒤덮은 수백, 수천 개의 눈동자가 쉴 새 없이 꿈틀거렸다.

“놈만 쓰러뜨린다면 이제 남은 것은…….”

남부 대수림.

그곳에서 마신의 강림을 준비하는 불사왕 아가레스뿐이었다.

길고 길었던 발타자르의 싸움도 이제 그 끝이 보이려 하고 있었다.

툭-

발타자르의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지면으로 추락했다.

동시에.

그의 몸이 꺼지듯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다.

* * *

키에에엑-

와아아아-

벌레들이 내지르는 괴성과 연합의 병사들이 내지르는 함성이 뒤섞인 전장.

끊임없이 성벽을 향해 진격하는 벌레들과 그것을 막으려는 연합의 사투를 지켜보던 빌 헬름이 지휘관들에게 끊임없이 지휘를 내리고 있는 슬로덴을 바라보며 물었다.

“웜의 준비는 끝났는가?”

“예. 성벽을 둘러싼 방어 마법으로 인해 조금 난항을 겪기는 하였지만 이제 곧 성벽이 일제히 무너져 내릴 겁니다.”

슬로덴의 대답에 빌 헬름이 물끄러미 연합의 성벽을 바라보았다.

저것이 무너진다면 이제 연합은 끝이었다.

연합과의 전투가 끝이 나면 다음 상대는 제국군이었다.

“복수의 시간이 도래하는구나.”

빌 헬름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맺혔다.

이날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혈육과도 같았던 의형제들의 죽음을 접했던 그 날.

심장이 도려내지는 고통을 참아내며 복수를 다짐했다.

수많은 고난 속에 결국 복수를 위한 힘을 손에 쥘 수 있었고 이제 복수를 목전에 두게 되었다.

빌 헬름은 차오르는 희열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서둘러라. 날이 지기 전에 연합을 끝장내고 발타자르. 놈의 면상을 직접 보아야겠으니.”

빌 헬름의 서슬 퍼런 목소리에 슬로덴을 비롯한 지휘관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눈을 빛냈다.

그러한 그들의 눈동자에는 어두운 마기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 * *

키이이잉-

검신을 휘감은 붉은 오러블레이드가 거칠게 격동했다.

회전하고 회전하며 순식간에 몸집을 불려 나갔다.

족히 3m에 달하는 오러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꽈르르릉─

벌떼처럼 달려들던 벌레 무리를 향해 휘둘러졌다.

아무리 항마력을 보유하게 된 벌레들이라고 해도 몰아치는 오러의 폭풍에는 속절없이 갈려 나갔다.

사방으로 녹색 액체와 검은 살덩어리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순식간에 수백에 달하는 벌레들이 사망했지만, 벌레들은 두려움이 결여된 듯 사나운 기세로 발타자르를 향해 달려들었다.

[연합을 미끼로 삼을 때까지만 해도 혹시나 했건만. 실로 무모하기 그지없구나. 용의 일족이여.]

발타자르와 벌레들이 격돌하려는 순간.

발레포르의 음성이 하늘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그의 의지에 따라 벌레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추자 발타자르는 그의 코앞까지 치달은 벌레의 머리통을 베어버리곤 발레포르를 응시했다.

“네놈도 날 용의 일족이라 칭하는 것을 보니 아몬이 영 헛소리를 한 것은 아니로군.”

발타자르의 말에 그를 응시하던 수천 개의 눈알이 동시에 반원을 그리며 휘어졌다.

[이제야 이해가 되는구나. 어째서 이리 무모한 짓을 하는가 했더니. 아몬 그 녀석이 쓸데없는 말을 지껄였나 보구나.]

땅속에서 세계수의 뿌리가 솟구치더니 일제히 발타자르를 향해 겨누어졌다.

[그래. 이 땅의 의지가 네놈과 함께한다고 하여 운명이 항상 그대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했더냐?]

쉬이익-

바람을 가르며 뿌리가 발타자르를 향해 쏘아지듯 뻗어 나갔다.

그러나 발타자르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발레포르를 응시할 뿐이었다.

[재밌구나.]

뿌리가 뚝- 하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법한 작은 공간을 사이에 두고 발타자르와 뿌리가 대치했다.

[죽음이 두렵지 않더냐?]

스르륵- 뿌리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발레포르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입을 열었다.

“시답잖은 짓을 하는군.”

그 말에 발레포르의 눈동자들이 일제히 사나운 빛을 띠었다.

[감히! 인간…….]

발레포르가 노성을 터뜨리려는 순간.

붉은 섬광이 번뜩이며 뿌리들을 베어버렸다.

뿌리의 잔해들이 떨어져 내리며 지면과 충돌했다.

“시간을 끌 생각인 것 같다만. 소용없다.”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동시에 검신에서 솟아난 붉은 오러 블레이드가 더욱 선명해지며 강렬한 기운을 내뿜었다.

“네 녀석이 세계수를 완전히 집어삼키기 전에 죽여주마.”

발타자르가 발레포르의 죽음을 선언하자 그가 노성을 터뜨렸다.

[실로 오만하구나!]

천지가 두려움에 몸을 떨고 하늘에 어둠이 드리웠다.

벌레들의 괴성이 울려 퍼지고, 세계수의 뿌리가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인가. 아니면 그대에게 부여된 힘에 취한 것인가.]

뿌리의 표면으로 녹색 액체가 스며 나왔다.

뚝뚝- 떨어져 내린 액체가 지면과 맞닿자 작은 연기와 함께 지면이 녹아내리며 움푹 파였다.

산성에 가까운 독액이 분명했다.

발타자르가 자신의 몸을 향해 떨어지는 독액을 쳐내며 발레포르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그거야 이 싸움이 끝나면 알게 되겠지.”

순간.

뿌리가 발타자르를 향해 휘둘러졌다.

재빠르게 지면을 박차고 뛰어오르자 아래에서부터 튀어 오르는 독액이 두 눈 가득 들어왔다.

일일이 쳐내기에는 그 수가 너무 많았다.

키이이잉─

다시 한번 오러의 폭풍이 검신을 휘감았다.

그것이 튀어 오르는 독액을 향해 휘둘러지자 주변 일대가 오러의 폭풍에 휩쓸렸다.

콰아아아앙─

벌레들 수백이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쓸려 나갔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뿌리들이 일제히 발타자르를 향해 쏘아졌다.

쾅- 쾅- 쾅-

발타자르가 뿌리의 공격을 피해낼 때마다 대지에 깊은 상처가 생겨났다.

자연스레 주변에 밀집해 있던 벌레들이 그 여파에 휘말려 죽어 나갔다.

하지만 벌레 따위는 금방 보충할 수 있는 소모품이기에 발레포르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죽여라!]

휘둘러지는 뿌리와 함께 벌레들이 일제히 발타자르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에 맞서 발타자르가 비비안을 소환하자 그녀가 허공에 물의 발판을 만드는 것과 동시에 몰려드는 벌레들을 물의 파도를 일으켜 쓸어버렸다.

팟- 팟-

발타자르가 비비안이 만들어낸 물의 발판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상공으로 치솟은 발타자르는 아래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비비안이 전력을 다해 일으킨 물의 파도가 벌레들과 뿌리들을 휩쓸고 있었다.

발레포르가 밀려드는 파도를 막기 위해 뿌리와 벌레들로 거대한 장벽을 만들며 수비에 몰두했다.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작은 틈을 만들었다.

발레포르에게로 향하는 길을 열리자 발타자르는 있는 힘껏 허공을 박차고 발레포르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붉은 오러의 폭풍이 칼날의 끝부터 시작하여 발타자르의 전신을 휘감았다.

꽈아아앙-

막아서는 뿌리의 방벽을 한순간에 박살 내며 발레포르의 몸 위에 착지했다.

붉은 오러 블레이드가 발레포르의 눈동자를 향해 겨누어졌다.

그러자 발레포르의 눈동자가 일순간 커졌지만 이내 웃는 낯을 띠며 소리쳤다.

[멍청한 놈! 마나의 힘에 의지하는 네놈은 결코 이 몸을 해하지 못하느니라!]

발레포르의 자신만만한 목소리에 발타자르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 정도는 알고 있다네.”

웃고있는 발레포르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발타자르는 빌 헬름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가 말하길.

발레포르를 쓰러뜨린 것은 두 마스터라고 하였다.

하지만 여기서 발타자르는 의문을 품었다.

마스터의 힘은 아크메이지와 마찬가지로 마나에 근간한다.

따라서 마스터의 숫자가 몇이 던 간에 강력한 항마력을 지닌 발레포르를 쓰러뜨릴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변수가 되어 그들이 발레포르를 무찌를 수 있었는가?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7대 신검神劍.

찬란한 태양.

가라틴Garatain.

강력한 신성神聖을 품은 이 검이 변수로 작용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발타자르는 세계수로 향하며 가웨인에게서 가라틴을 빌렸다.

물론 준비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발타자르가 품에서 성군의 구를 꺼내어 들었다.

천사들을 소환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만큼 이것 역시 강력한 신성을 품고 있었다.

가라틴을 이용해 성군의 구를 터뜨린다면.

발레포르는 결코 살아남지 못하리라.

툭-

성군의 구가 떨어져 내리고.

그것을 향해 가라틴이 휘둘러지는 순간.

파아아앗-

찬란한 서광이 세상을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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