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이 회귀함 139화
“회귀…… 말씀이십니까?”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가웨인이 물었다.
믿기지 않는다기보다는 너무 허황된 이야기라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하는 눈치였다.
“믿기진 않겠지만 사실일세.”
발타자르는 목이 타는지 와인이 담긴 잔을 단숨에 비워냈다.
사실 이렇게 직접적으로 회귀를 했다고 말하지 않고 적당히 둘러 말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가웨인이었다.
회귀 전 어긋났던 아이린과의 관계를 개선해 주기 위해 노력했던.
어중간한 태도로 결국 도태되어 죽음을 맞이하던 마지막 순간까지도 함께했던.
바로 그 가웨인이었다.
따라서 발타자르는 가웨인에게 만큼은 사실 그대로를 말해줄 의무가 있었다.
“나도 내가 어떤 이유로 회귀를 경험하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른다네. 다만…….”
그렇게 발타자르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 *
회귀 전의 발타자르.
그는 몹시도 못난 사람이었다.
군을 이끄는 장군으로서는 뛰어날지 모르지만, 그 외 영주로서나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는 무척이나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복수를 위해서나, 그를 믿고 따르는 가신들을 위해서라도 기회가 있다면 세력을 키우는 것에 열중함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는 오물투성이인 정치는 진절머리가 난다며 혼자만 고고한척하며 북부를 지키는 일에만 몰두하였기에 영주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하나뿐인 혈육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심지어 연락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기에 가장으로서 자격 미달이었다.
그런 못난 사람이었지만 가웨인은 때로는 형제처럼, 때로는 엄격한 선생님처럼 곁에서 발타자르를 다잡아주며 중심을 잡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게 가웨인의 헌신 아래 숱한 위기를 헤쳐나갔고 결국 발타자르는 복수를 이루고 황제파의 거두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가웨인에게는 평생을 바쳐 갚아도 모자랄 만큼 크나큰 은혜를 입었다.
하지만 그 결말은 그리 좋지만은 못했다.
황제의 뜻을 거스르고서라도 칼 프란츠 대공을 쳐내든지 혹은 황제와 결별하고 독자적인 노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가웨인의 충언에도, 그 당시의 발타자르는 두 귀를 막고 두 눈을 감았다.
복수를 이룰 수 있게 도와준 황제를 배신하지도, 그렇다고 그의 뜻을 거스를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제국은 사분오열하며 몰락의 길을 걸었고, 평생을 바쳐 헌신해온 가웨인은 발타자르와 함께 제도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것이…….
두 사람의 최후였다.
* * *
“그래서 말해주기를 망설였다네.”
미안해서.
가웨인에게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그래서 말하기를 망설였다.
“내가 어찌 감히 말할 수 있었겠는가. 헌신의 대가가 그런 허무한 결말이었다는 것을.”
말하며 발타자르가 고개를 숙였다.
가웨인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였다.
“…….”
가웨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저 잔을 이리저리 기울이며 그 안에 담긴 와인을 찰랑거릴 뿐이었다.
어색한 침묵이 한동안 맴돌았다.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침묵을 깨고 가웨인이 입을 열었다.
그러나 발타자르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우선 고개 드세요. 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시던 장군답지 않게 왜 그러십니까.”
가웨인의 말에 그제야 발타자르가 고개를 들었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평상시와 다름없는 모습에 발타자르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보기 드문 발타자르의 당황한 모습에 가웨인이 작게 미소 지었다.
“……화내거나 원망하지 않는가?”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정말로 이유를 모르겠다는 표정에 발타자르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자네가 알고 있는 내가. 자네가 믿고 따르기에 무척이나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이. 현재의 나는 거짓된 것이라는 것이…….”
“잠시, 잠시만요. 지금 장군이 어떤 심정인지는 대충 짐작이 갑니다만 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부족한 사람? 거짓된 것이라고요?”
가웨인은 무척이나 답답하다는 듯이 제 가슴을 두어 번 두드리더니 이내 와인 잔을 비워냈다.
“후. 대체 장군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그리 미안해하십니까? 어떠한 결말을 맞이했던 그것은 오롯이 제 선택에 의한 것이었을 테니 그 책임도 제게 있는 것이 맞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장군을 원망하거나 그럴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또한, 장군이 지금까지 이룩한 것을 생각해 보세요.”
가웨인의 올곧은 눈동자가 발타자르를 응시했다.
그의 기세에 압도당한 발타자르가 말없이 그의 말을 경청했다.
“바이칸들의 침공 당시 모두가 자살행위라며 의무를 저버리고 도망쳤던 그 순간에. 한 줌밖에 되지 않는 병력으로 결국 수십만에 달하는 바이칸들을 무찌른 이가 누구였습니까? 북부의 패자였던 로마노프 공작가를 몰아내고 북부의 패권을 장악한 것은 또 누구였습니까? 혼란스러운 정국을 평정하고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제국의 안위를 위해 헌신하고 노력하는 이는 또 누구입니까?”
가웨인이 발타자르의 두 손을 맞잡았다.
“장군이십니다.”
이야기를 모두 전해 들었음에도 여전히 굳건한 믿음을 내비치는 가웨인의 모습에 목이 메어왔다.
“회귀를 경험하기 이전의 장군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장군입니다. 지금까지 장군이 이룩한 일들이 그저 요행으로 이루어진 것입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회귀 전의 기억이 있다고는 하나 부단한 노력이 더해졌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떨리는 눈길로 그를 바라보는 발타자르에게 가웨인이 웃어 보였다.
“또한, 그러한 일들을 겪으셨기에 지금의 장군이 계신 것 아닙니까.”
말하며 가웨인이 발타자르의 빈 잔에 와인을 따라주었다.
붉은 와인이 넘치기 직전까지 차올랐다.
“자, 한잔하시죠. 이걸로 이 대화는 여기서 끝인 겁니다.”
“……고맙네.”
그렇게 밤은 깊어져만 갔다.
* * *
제국 서부의 끝.
이종족의 영토와 제국의 경계.
국경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새는커녕 변변한 목책 하나 없는 허허로운 대지가 불현듯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진이라도 난 듯이 거센 흔들림과 함께 땅에서 균열이 일어나더니 이내 푸른 빛을 띠는 비늘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구구구궁-
푸른 비늘을 가진 ‘무언가’는 물결치듯 유려하게 움직이며 땅에서 완전히 벗어나더니 몸을 곧추세우곤, 꽃잎이 떨어지듯 팔랑거리며 내려오는 검은 나비를 응시했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느냐?”
서열 17위.
태고의 뱀 보티스의 물음에 검은 나비가 그의 눈앞에서 날개를 펄럭이며 답했다.
나비의 색도 색이지만 그 몸집이 황소만큼이나 거대했다.
“그렇습니다. 아몬 님이 당하셨습니다.”
나비의 대답에 보티스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발레포르는? 그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느냐?”
“물론입니다. 그래서 제가 찾아온 것이지요.”
말과 동시에 나비의 날개에서 검은 가루들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면에 내려앉은 가루들은 이내 수백, 수천 마리의 벌레들로 변화했다.
보티스가 그런 벌레들을 잠시 바라보다 나비에게로 시선을 옮기자 나비가 말했다.
“발레포르 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직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세계수로 향하는 인간들을 막아달라는 부탁을 전하셨습니다.”
나비의 말에 보티스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 강력한 아몬조차 막지 못한 인간들을 자신이 무슨 수로 막으라는 말인가!
그렇다고 거절할 수도 없었다. 만약 그랬다가는 자신의 심장에 박혀 든 기생충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몰랐다.
‘젠장! 그때 세계수의 열매에 혹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수개월 전.
당시 힘을 회복하는 것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던 보티스에게 발레포르가 선물이라며 세계수의 열매를 보내왔다.
평소의 그라면 의심하여 돌려보냈겠지만, 당시의 그는 전력을 다함에도 더디기만 한 회복 속도에 조바심을 느끼고 있었고 그로 인해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보티스는 발레포르에게 목숨을 저당 잡힌 꼭두각시 신세가 되어버렸다.
“얼마나…….”
보티스가 어두운 낯빛으로 입을 열었다.
“얼마나 시간을 벌어주면 되겠느냐?”
“한 달. 한 달입니다.”
나비의 말에 보티스가 끄응- 하고 신음을 토해내었다.
과연 자신이 아몬을 쓰러뜨린 인간들을 상대로 한 달씩이나 버틸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답은 부정적이었다.
오래 버텨 봐야 사나흘이 고작이겠지.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보티스 님 홀로 그들을 막으라는 뜻은 아니었으니까요. 3일 내로 발레포르 님께서 지원을 보내주실 겁니다. 최근 쓸 만한 패를 손에 넣으셨거든요. 보시면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말하며, 나비가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보티스 님은 딱 7일만 시간을 버시면 됩니다. 인간들이 이곳까지 오기에는 4일 정도가 소요될 테니 실질적으로는 3일만 버티시면 되겠군요. 그 이후는 곧 도착할 지원군이 처리할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나비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 * *
나비가 떠나고 정확히 4일째 되던 날.
토벌대가 도착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보티스가 땅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소리쳤다.
[인간들이여! 네놈들은 이 앞으로 지나갈 수 없느니라!]
태양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뱀.
그리고 수십만으로 늘어난 벌레무리가 등장했음에도 토벌대는 긴장한 기색을 일절 내비치지 않았다.
말을 몰아 군의 선두로 나선 발타자르는 입에 담배를 꼬나물고선, 손에 낀 건틀릿을 손가락으로 튕기며 불꽃을 일으켰다.
틱-
담배에 불이 붙으며 새하얀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후우…….”
발타자르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보티스를 바라보았다.
“어디에 몸을 숨겼나 했더니 이곳에 있었구나.”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태연하게 담배를 태우는 발타자르의 모습에 보티스가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네놈이 겁을 상실했구나!]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은 기색이었지만 섣부르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본능적으로 아몬을 쓰러뜨린 자가 발타자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한 아몬의 기색을 눈치챈 발타자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말만 그렇게 하지 말고 덤벼보지 그러나?”
비꼬는 기색이 다분한 발타자르의 도발에 보티스가 거대한 몸을 움찔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몇 번이고 찢어 죽이고 싶지만, 그 무엇보다 제 안위를 우선시하는 보티스로서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았다.
[……정 그렇게 죽는 것이 소원이라면.]
보티스가 마기를 뿜어내자 그의 주변으로 득실거리던 벌레 무리가 일제히 앞으로 쏟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발타자르가 얼마 남지 않은 담배를 앞으로 툭 내던졌다.
그와 동시에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일제히 마법을 발현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환한 빛무리와 함께 가지각색의 마법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꽈과과광-
거대한 폭음과 함께 마법들이 작렬하며 수십만에 달하는 벌레 무리를 일거에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보티스는 무언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 피해야…….’
보티스가 도망치기를 결심한 순간.
어느샌가 그의 머리 위에 도착한 발타자르가 보티스의 미간에 검을 꽂아 넣었다.
이것만으로는 보티스의 숨통을 끊어 놓을 수 없었지만, 진짜는 그다음이었다.
검신을 휘감은 오러 블레이드가 폭풍처럼 휘몰아치더니 순식간에 보티스의 머리통을 폭사시켰다.
퍼엉-
보티스의 살점과 핏물이 후드둑 떨어져 내리며 그의 거체가 서서히 땅을 향해 쓰러지기 시작했다.
쿠웅-
이윽고 보티스의 몸이 대지 위에 몸을 누이고 그의 시체 위에 서 있던 발타자르가 차가운 안광을 번뜩이며 입을 열었다.
“전군. 진격한다.”
진격령과 함께 수십만에 달하는 제국군이 일제히 진격을 개시했다.
수백 년 만에 이종족의 영토에 발을 들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