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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137화 (137/183)

공작이 회귀함 137화

“아몬 님!”

아몬이 쓰러지는 광경을 목격한 시트리가 다급히 그를 부르며 그에게로 날아가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레 나타나 앞을 막아서는 이들로 인해 그녀는 얼마 가지 못하고 멈추어야만 했다.

“이 앞으로는 갈 수 없소.”

브락서스를 위시한 두 아크 메이지와 가웨인이 시트리를 막아서자 구시온 역시 그녀의 곁으로 날아와 이들과 대치했다.

“인간 따위가 감히 누구의 앞을 막아서는 것이냐!”

시트리가 뾰족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동시에 그녀의 등에서 돋아나는 세 쌍의 날개.

이마에는 검은빛을 띠는 뿔이 돋아났으며 손톱은 채찍처럼 길게 늘어났다.

본 모습을 드러낸 시트리의 연분홍빛 눈동자가 요사스러운 빛을 띠었다.

“비켜라.”

매혹안이 발동되자 단순히 시선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브락서스의 몸이 일순간 통제를 벗어났다.

눈동자에 초점이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옆으로 비켜나는 브락서스의 행동에 메디슨이 어깨를 붙잡고 그의 몸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정신 차리십시오.”

메디슨이 주입한 마나 덕분에 정신을 차린 브락서스가 감사의 눈빛을 보내곤 마력을 이용해 두 눈을 감싸며 시트리를 바라보았다.

매혹안에 대한 대처를 해두었음에도 한 번 당했던 탓인지 쉬이 그녀의 눈동자를 마주치지는 못했다.

“내 인내심을 시험할 참이냐?”

시트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데일리의 도움을 받아 허공에 떠 있던 가웨인이 앞으로 나섰다.

“대지의 마탑주께서 말씀하셨다시피 두 분께선 이곳에 계셔주셔야겠습니다.”

말하며, 가웨인이 푸른 오러블레이드가 솟구친 검을 겨누자 시트리가 마기를 거침없이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비키지 못하겠다?”

신경질적인 그녀의 물음에 가웨인이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 행동에 시트리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네놈들이 죽음을 재촉하는구나!”

시트리의 성난 외침과 동시에 구시온이 본 모습을 드러내었다.

기이할 정도로 거대한 뇌와 그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왜소한 체구.

두 마왕이 전투태세를 갖추자 가웨인 측 역시 그에 맞설 준비를 했다.

잠시간의 침묵이 맴돌았다.

서로를 응시하던 이들 중 침묵을 깬 것은 바로 시트리였다.

“오냐. 죽는 것이 소원이라니 내 직접 네놈들을 도륙 내고 아몬 님께로 가겠다!”

채찍처럼 늘어난 손톱을 휘두르는 시트리의 선공을 시작으로 이들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탓-

지면에 착지한 발타자르는 쓰러진 아몬을 바라보았다.

미동조차 없는 모습에 그가 혼절했다고 여긴 발타자르가 그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아몬의 몸을 휘감은 불길이 몸집을 불려 나가더니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흡-”

발타자르가 재빠르게 검을 대지에 꽂아 넣으며 오러로 몸을 감쌌다.

뒤이어 비비안이 물의 장벽을 층층이 쌓아 올려 다가올 충격에 대비했다.

쿠웅- 푸시시시-

수십 겹으로 쌓아 올린 물의 장벽이 뿌연 수증기와 빠른 속도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다섯, 넷, 셋, 둘…….

마지막 하나만을 남겨놓고 불길이 사라졌다.

“대단하군.”

발타자르가 감탄했다.

이만한 위력의 일격을 연달아 펼쳤음에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이번 일격은 제법이었다.]

아몬이 우그러진 상처 부위를 매만지며 씨익 웃었다.

[그러나 이것이 네 최선이라면 그대는 결코 이 몸을 쓰러뜨릴 수 없으리라!]

아몬이 주먹을 내질렀다.

거대한 몸집의 움직임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빠른 주먹이었다.

쐐애액-

대기가 비명을 내질렀다.

발타자르는 비비안의 도움을 받아 허공에 생성된 물웅덩이를 박차며 아몬의 주먹을 피해내었다.

화르르륵-

간발의 차로 조금 전까지 발타자르가 있던 자리에 아몬의 주먹이 지나갔다.

뒤이어 밀려오는 강렬한 열기.

그것에 아주 잠시 노출되었을 뿐인데 방어 마법이 덕지덕지 발린 건틀릿이 녹아내렸다.

발타자르는 미련 없이 양손에 낀 건틀릿을 벗어 던지곤 재차 물웅덩이를 박차 지면으로 향했다.

[놓칠 것 같으냐!]

화염이 소나기처럼 떨어져 내리며 발타자르의 뒤를 추격했다.

검을 휘두르며 그것들을 쳐낸 발타자르가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제압은 무리로군.’

답을 듣기 위해 최대한 제압하는 방향으로 싸웠지만 저만한 강자를 상대로 손속에 사정을 두는 것은 오만에 가까운 일이었다.

‘마왕의 괴물 같은 생명력으로 짐작해 볼 때 죽음에 가까운 치명상을 입어도 잠시간 이야기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 테지.“

발타자르는 결정했다.

전력을 다해 아몬을 쓰러뜨리기로.

타앗-

지면에 착지한 발타자르의 두 무릎이 굽혀졌다.

동시에 검을 쥔 두 손이 뒤로 당겨지더니 이내 땅을 박차고 튀어 올랐다.

붉은 선을 그리며 쏘아져 나간 발타자르는 목표한 적을 말살하는 필멸必滅의 창이었다.

“끝이다.”

휘몰아치는 오러의 폭풍.

이를 막기 위해 아몬이 주먹을 내뻗어 보지만 소용없었다.

막아서는 주먹조차 관통하며, 순식간에 아몬의 심장이 꿰뚫렸다.

* * *

[역시 용의 일족답구나.]

심장에 커다란 구멍이 난 아몬이 대지 위에 드러누운 채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가슴 위에 내려선 발타자르가 겨누었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아몬을 응시하던 발타자르가 입을 열었다.

“내가 용의 후손인가?”

발타자르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의문이었다.

비비안과의 계약을 통해 생성된 크라운 하트.

드래곤 하트라 불리는 이것을 소유한 존재는 제국의 역사 그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았다.

단순히 기적이 일어난 것이라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회귀를 경험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는데 거기에 또 기적이 일어나 크라운 하트의 소유자가 되었다는 것은 발타자르 본인에게만 유리한 해석이었다.

따라서 가장 유력한 가설은 발타자르 가문에 용의 피가 흐른다는 것이었다.

[그대가 파수꾼의 일족이라 생각하느냐?]

아몬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한심함이 느껴지는 그 말투에 발타자르는 자신이 가설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내가 용의 일족이라는 것은 무슨 뜻이었는가.”

발타자르의 물음에 아몬이 더욱 크게 소리 높여 웃었다.

[용의 일족임에도 그대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그가 그대에게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았나 보지?]

“‘그’라니? 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누구겠는가.]

웃음을 뚝- 그친 아몬이 발타자르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용이니라.]

발타자르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해할 수 없는 말만 하는군. 질문을 달리하지. 그대가 말하는 용은 무엇인가?”

발타자르의 물음에 아몬의 눈동자가 발타자르를 두 눈에 담았다.

잠시 갈등의 빛이 서렸지만, 그것은 아주 찰나의 순간일 뿐이었다.

[용이란 이 땅의 의지다.]

“의지?”

발타자르는 순간 깨달았다.

아몬이 말하는 용은 오래전 멸종한 중간계의 파수꾼, 드래곤이 아닌 다른 존재를 칭하는 것임을.

[그래. 이해가 되지 않는 눈치이니 쉽게 설명해 주지. 마계에 마신이 있고, 천계에 천신이 있듯이 중간계 역시 신이 존재하고 용이 바로 그 중간계의 신이다.]

“슈미트라 같은 신을 말하는 것인가?”

그 물음에 아몬이 슈미트라 교단의 사제가 들었다면 기함할 만한 소리를 태연하게 해대었다.

[멍청한 소리를 하는군. 용은 그런 잡신 같은 것이 아니니라.]

고위 신으로 알려진 슈미트라를 잡신으로 치부할 정도라면 대체 그 용이라는 존재는 어떠한 존재란 말인가.

발타자르가 당혹스러운 눈빛을 띠자 아몬이 그것을 눈치채곤 말을 꺼냈다.

[네가 하는 모든 일이 네 뜻대로 순순히 풀리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느냐? 혹은 네가 상상하지도 못할 이적을 경험한 적은 없더냐?]

발타자르는 말문이 턱 하고 막혀왔다.

회귀, 크라운 하트.

하나같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또한, 그가 여태껏 벌여온 일 중 몇몇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되는 것이 더러 있었다.

문득 이 모든 것들이 아몬이 말하는 용이란 존재에 의해 일어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의 일족이란. 용의 의지를 계승하는 자.]

발타자르의 짐작이 맞다는 듯이 아몬의 말이 이어졌다.

[용의 의지에 따라 선정하는 중간계의 조율자이니라.]

* * *

한동안 말이 없던 발타자르가 입을 열었다.

“……바르바토스는 모르던 눈치였네. 한데, 자네는 이것을 어찌 알고 있는 것인가.”

바르바토스는 아몬보다 상위 서열의 마왕이었다.

한데, 그녀는 단 한 번도 발타자르에게 용이나 용의 일족에 대해 거론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이 아몬이 꾸며낸 말일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발타자르의 물음에 아몬이 피식 웃었다.

[당연히 모를 만도 하지. 머릿속이 바알을 타도하는 것만으로 가득 찬 그 천박한 것은 첫 세대가 아니니까. 이 정보를 아는 것은 오직 태초의 마왕들. 즉, 첫 세대의 마왕들뿐이지.]

말하는 아몬의 눈동자가 점점 탁해지고 있었다.

생명이 다해가는 징조였다.

아직 의문을 모두 해결하지 못했던 발타자르가 다급히 물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 용이란 존재가 나를 선택했는지, 짐작 가는 것이 있는가?”

아몬이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멍청한 질문으로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군. 뭐, 좋다. 나야 아무래도 좋으니 답해주지.]

말하며, 아몬이 허공에 선을 그었다.

[중간계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니라.]

“균형을 맞춘다?”

[그래. 마왕과 용사들을 모두 몰아내고 중간계의 존재들만이 존재하는 세계. 그것이 용이 원하는 균형이니라.]

발타자르가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그러니까. 내가 용의 꼭두각시이다?”

[글쎄. 그건 그대가 해석하기 나름이겠지.]

순간 발타자르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까지의 노력들이. 자신의 존재가.

모두 부정당한 것만 같았다.

분노가 서서히 이성을 잠식해 들어가던 순간.

발타자르는 문득 아몬의 말이 떠올랐다.

아몬은 분명 용이 자신에게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았느냐고 물었었다.

그렇다는 것은 용이 선택한 존재에게는 용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뜻이었다.

한데, 지금까지 용이 자신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개입할 여력이 없거나 혹은 그럴 의사가 없다는 뜻이겠지.’

순간 머릿속이 맑아졌다.

생각해 보니 화를 낼 필요가 없었다.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존재조차 모르던 존재였다.

이제 와 그 존재를 알았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화내기보다는 반길 만한 일이 아닌가.’

아몬의 말에 따르면 용에게 제법 도움을 받은 것 같으니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용이라는 존재가 원하는 것과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일치하니, 용에게 이용당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이해관계가 일치하여 협력하는 관계라고 생각하면 될 문제였다.

탁해졌던 발타자르의 눈동자가 빛을 되찾자 아몬이 흥미를 잃었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질문은 이제 끝이더냐?]

아몬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말하며 발타자르가 검을 들어 올렸다.

그 모습에 아몬이 다가올 안식을 기다리며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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