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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135화 (135/183)

공작이 회귀함 135화

괜히 제국 최고最古의 명가가 아니라는 듯 총력전을 펼치는 메디치 공작가의 저력은 무시무시했다.

개전開戰과 동시에 마왕 둘을 압살했으며, 파죽지세로 진격을 개시.

전쟁발발 열흘 만에 서부 영토 4분의 1을 탈환했다.

비록 강경파의 파벌 중에서 상위 서열의 마왕이 몇 되지 않는 점이 있다고는 해도 마스터급의 전력이 전무한 상황에서 이만한 전공을 세운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었다.

한편 북부에서도 로키를 위시한 바이칸들이 대대적으로 진격을 시작.

연전연승을 거둠으로써 마왕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후 마왕군은 메디치 공작가와 바이칸 군세에 대항하여 남과 북, 두 전선으로 병력을 투입하니 전선이 고착되기 시작했다.

* * *

발타자르는 서부 전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도 위에 어지럽게 뒤섞인 형형색색의 말들이 현재의 전황이 어떤지 알려주고 있었다.

중앙의 토벌대를 의식해서인지 중부와 서부의 접경지 인근의 영지에 다수의 병력을 주둔시켜 두었던 마왕군이었지만, 메디치 공작가와 바이칸들의 활약으로 남과 북으로 병력을 급파하다 보니 지금에 와서는 처음보다 병력의 수가 제법 줄어 있었다.

‘슬슬 움직일 때가 되었군.’

적들의 이목이 다른 곳으로 쏠리기 시작한 지금이 적기였다.

발타자르는 지도의 중심에 놓인 검붉은 말을 바라보았다.

서부 대영지 살리잔 후작령.

아몬은 그곳에 있었다.

‘아몬만 잡는다면 서부 전은 승리로 끝나겠지.’

강경파에서도 아몬을 제외하면 단 둘뿐인 상위 서열의 마왕들은 한시도 아몬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말인즉.

아몬을 제거할 수만 있다면 강경파의 주요 전력들이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그들만 사라진다면 하위 서열의 마왕들이 이끄는 마왕군은 발타자르가 이끄는 본대가 없더라도 메디치 공작가와 바이칸들로 충분히 정리가 가능할 테니 발타자르는 후방에 대한 걱정 없이 이종족들의 땅으로 떠날 수 있을 것이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아몬의 곁을 지키는 두 마왕이었다.

하나같이 강력한 힘을 지닌 마왕들로 발타자르가 아몬을 상대한다고 하더라도 남은 전력으로 이 두 마왕을 상대하기란 버거울 것이 분명했다.

“혹시나 해서 가져오길 잘했군.”

발타자르가 품에서 작은 구체를 꺼내 들었다.

순백색을 띠는 구슬은 변절자 무리가 검은 사월의 거처에서 훔치고자 했던 물건.

슈미트라 교단의 성물.

성군의 구였다.

* * *

불길에 휩싸인 대전.

살이 녹아내릴 듯 강렬한 열기에 숨이 턱 하고 막혀오는 그곳의 중심에 거대한 불의 거인이 권태로운 표정으로 고개 숙인 두 마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살레오스가 당했다지?”

불의 거인, 아몬의 물음에 보랏빛 로브를 두른 사내.

서열 11위.

마계의 현자賢者 구시온이 답했다.

“그렇다고 합니다.”

구시온의 대답에 아몬이 주먹에 턱을 괴며 쯧 하고 혀를 찼다.

“생각보다 일찍 당했군.”

“죄송합니다. 녀석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제 불찰입니다.”

구시온이 땅바닥에 바짝 엎드리며 죄를 고하자 아몬이 손을 털듯 내저었다.

“되었다. 어차피 버림 패로 사용했던 녀석이니 조금 일찍 죽었다 한들 문책하지 않으마. 그래서. 누구에게 당했다더냐?”

“제국의 용입니다.”

“발타자르. 놈을 말하는 것이냐?”

말하며 아몬이 눈을 빛냈다.

워낙 유명한 인물이다 보니 따로 조사를 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변방의 일개 기병대장으로 시작하여 단기간에 제국 최고의 권력자로 떠오른 제국의 영웅.

또한, 다수의 마왕을 척살한 대적자.

제국의 용.

알레한드로 발타자르.

“제국의 동부와 남부가 시끄러워 한동안 제도에만 틀어박혀 있을 것 같더니…… 용케도 움직였군그래.”

“처세술이 대단한 것 같았습니다. 동부에는 바르바토스를 움직이고, 남부에는 정적이었던 칼 프란츠와 협약을 맺어 남부와 동부를 동시에 안정화시키는 것을 꾀했더군요.”

구시온의 말에 아몬이 조소했다.

“미친년. 아무리 붙어먹을 곳이 없어도 그렇지. 한낱 인간 따위와 손을 잡았는가.”

이에 서열 12위, 매혹의 시트리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분이야 워낙 종잡을 수 없는 분이시잖아요. 아몬 님께서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셔야지요.”

“쯧. 남부의 노인도 그렇고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드는 녀석들뿐이로군. 마의 종주께서 다스리실 이 땅을 한시라도 빨리 정화하지는 못할망정…….”

못마땅하다는 듯이 혀를 차는 아몬에게 시트리가 다가가 그의 손을 감쌌다.

그런 그녀를 힐끗 바라보던 아몬이 구시온에게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벌레 녀석은 지금 어찌하고 있다던가?”

“얼마 전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만. 현재 순조롭게 세계수를 잠식하고 계시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거기다 최근 쓸 만한 장난감들을 손에 넣었다고 하셨으니 조만간 대군을 이끌고 오실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더 이상 수성이 아닌 대대적인 공습을 감행할 수 있을 것이니 조금만 더 인내하시면 될 것입니다.”

아몬이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강경파 내에는 상위 서열의 마왕이 극히 적었다.

상위 서열에 오를수록 몸뚱이가 무거워지기라도 하는 것인지 어지간해서는 자신들의 영역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 탓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강자의 여유라고 말하지만, 아몬의 눈에는 실로 한심하기 그지 않는 모습으로밖에 비치지 않았다.

덕분에 강경파는 서부를 점령한 직후 서부에 발이 묶일 수밖에 없었다. 강경파의 힘만으로는 제국 전체를 상대하기에는 무리이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땅에 강림함과 동시에 세계수의 잠식을 시작한 벌레들의 왕이 조만간 일을 마무리 짓고 강경파를 지원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이끄는 수백만의 마충들은 본래 집단으로써나 위협적이지 개별적인 힘은 그리 강력하지 못했다. 하지만 세계수의 힘을 양분 삼아 힘을 기른 마충의 경우는 얘기가 달라졌다.

하나하나가 인간 하나를 상대할 정도의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니 벌레들의 왕과 그의 마충들이 도착한다면 제국을 장악하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수많은 마왕 중 믿을 것이 녀석 하나뿐이라니. 통탄할 노릇이로군.”

한탄하는 아몬을 달래듯 시트리가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래도 아몬 님께서 이리 노력하고 계시니 종주께서도 아몬 님의 노고를 알아주시겠지요.”

시트리의 위로에 아몬이 그녀의 팔을 부드럽게 토닥이며 이를 악물었다.

“마의 종주께서 도래하시면 내 친히 온건주의자 놈들을 쓸어버릴 것이다.”

“아무렴요. 그러셔야지요.”

* * *

발타자르가 이끄는 토벌대가 오랜 침묵을 깨고 대대적인 진격을 시작했다.

그들이 진군하는 방향이 아몬의 거처인 살리잔 후작령을 향해 있었기 때문에 중부 방면의 경계를 도맡고 있던 하위 서열의 마왕 넷이 부랴부랴 군을 이끌고 토벌대의 진군을 저지하려 했다.

하지만 토벌대의 유인책에 넘어가 불리한 지형에서 무리하게 대회전을 벌이다 대패함으로써 30만에 달하는 대군이 한순간에 증발해 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덕분에 토벌대의 앞을 막아섰던 마왕들은 셋이 사망하고 남은 하나는 두 팔이 잘린 채 도주하는 치욕을 겪어야만 했다.

그들이 이끄는 병력을 제외한다면 마왕군의 전력은 현재 남과 북에 주둔 중이었기에 더 이상 토벌대의 앞을 가로막을 수 있는 병력은 없었다. 토벌대는 빠른 속도로 주변 영지들을 탈환하며 살리잔 후작령을 향해 진격해 나가기 시작했다.

* * *

“여기도 마찬가지군요.”

반쯤 무너져 내린 목책 위에서 마을의 풍경을 바라보던 가웨인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목책과 마찬가지로 무너진 건물들.

주변에 낭자한 핏자국.

거리 곳곳에는 나무 꼬챙이에 꿰인 시체들로 가득했다.

마왕군이 마을을 점령할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충분히 짐작되는 광경이었다.

“마신이 강림한다면 제국 전역이 이런 모습이겠죠?”

가웨인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놈들에게 인간이란 한낱 장난감에 불과하니 말일세.”

발타자르는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마왕들에게 점령당한 영지는 어느 곳 할 것 없이 이런 모습이었다.

제국의 권력자들은 제 이권을 위해 마왕들과 손을 잡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 동맹의 대가로 수많은 제국민들을 제물로 바쳤다.

끝도 없는 혼란이 펼쳐졌고, 수많은 희생 끝에 혼란을 잠식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혼란의 근본적인 원흉인 마신의 강림을 저지하는 것에 실패했고 제국은 사분오열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 혼란을 잠재우는데 얼마나 많은 제국민들이 희생되었던가.

그들이 흘린 피로 쌓아 올린 권좌는 또 얼마나 부질없던 것이었는가.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악몽 같은 기억들이었다.

“그 마신이란 녀석의 강림을 저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말하며 가웨인이 이를 악물고 주먹을 쥐었다.

부르르- 떨리는 것이 어지간히도 화가 나는 듯했다.

“남부 대수림에 신석神石이란 것이 존재하네. 강력한 신력을 품고 있는 것으로 대륙에 유일무이한 물건이지. 그것을 파괴해야만 하네.”

이렇게만 듣는다면 마신의 강림을 저지하는 것은 무척 손쉬운 문제처럼 보였다.

하지만 대수림을 장악한 불사왕과 그의 군대는 무척이나 막강한 전력이었고 이를 상대하려면 제국의 모든 전력이 총집결해야만 했다.

“이제 거의 끝일세. 아몬을 쓰러뜨리고, 세계수를 잠식하고 있는 벌레들의 왕만 무찌를 수 있다면. 제국의 모든 전력이 하나로 집결할 수 있을 걸세. 그렇게 된다면 마지막 일전이 이 대륙의 운명을 좌우하겠지.”

어느새 짙게 내리깔린 어둠 너머로 거센 불길에 휩싸인 성이 보였다.

아몬이 거처로 삼은 살라잔 후작 성이었다.

* * *

동이 트자 토벌대는 지체하지 않고 살라잔 후작 성을 향해 진격했다.

수십만에 달하는 대군이 순식간에 성을 포위하고 공성전 준비에 착수했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마왕군 측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데요? 성벽 위에 아무것도 없는 걸 보니 혹시 어젯밤에 도망친 것이 아닐까요?”

트리스탄의 말에 가웨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척후조의 보고에 따르면 최근 성을 오고 간 병력은 전무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수비병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잖아요.”

“그렇긴 합니다만. 유인책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군을 성내로 끌어들여 기습전을 펼치려는 의도일 수도 있습니다.”

가웨인과 트리스탄이 텅 빈 성벽을 두고 열띤 토론을 하는 사이 발타자르가 근처의 병사에게서 창을 건네받고는 말을 몰아 진영을 빠져나왔다.

“흐음…….”

두 눈에 마력을 집중시켜 성을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선명하게 느껴지는 마기는 분명 저 안에 마왕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오랜만이라 잘 될지 모르겠군.”

창을 쥔 손을 몇 번 꿈틀거리던 발타자르는 이내 창을 쥔 손을 뒤로 크게 당기며 자세를 잡았다.

크라운 하트가 거칠게 요동치고.

마나가 끝없이 창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곧 붉은 오러가 창을 휘감았다.

동시에.

파앙-

발타자르가 창을 내던졌다.

족히 수백 미터가 넘는 거리를 단박에 주파하며 날아간 창이 살라잔 후작성의 성문과 충돌했다.

콰아아앙-

거친 폭음과 함께 성문이 산산 조각났다.

그 직후.

살라잔 후작성을 휘감은 불길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토벌대를 덮쳐들었다.

거대한 불의 파도가 토벌대를 향하자 아크 메이지들을 비롯한 마법사들이 일제히 방어 마법을 펼쳤다.

푸른 장막이 토벌대를 감싸며 불의 파도에 대항했다.

쿠우우웅-

불길이 방어막을 따라 흘러내렸다.

완벽히 막아낸 것 같았지만 그렇지 못했다.

불길이 뿜어내는 열기만으로 보호막과 근접해 있는 병사들의 몸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으아아악!”

“사, 살려…….”

사방에서 비명이 난무했다.

그러나 발타자르는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살라잔 후작성을 응시했다.

폭발적으로 불어난 마기.

그와 함께 거대한 불의 거인이 모습을 드러낸 탓이었다.

“왔구나. 아몬.”

강경파의 수장.

서열 7위.

염옥의 아몬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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